소설리스트

6화 (6/40)

[TS] 은하보안관 이브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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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처럼 흩날리는 유리 파편들이 살갗을 에고 망토를 할퀸다. 알갱이 하나하나의 무게는 눈송이만큼 가벼웠으나 바람에 벼려져 날카로웠고 폭풍우와 함께 마주치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강화복이나 강화 피부 없이 버티기엔 굉장히 혹독한 날씨였다.

강철창 틈 사이로 새어 나오던 빛도 전선줄이 끊어지며 하나둘씩 사라진다. 거리를 걸을 수 있는 이들은 강화복을 입은 이들뿐이다. 없는 이들은 차양막이 있는 근처에 붙어 바람이라도 피했다. 심지어 소녀의 정면에 있던 오래된 가로등은 굉음을 내며 쓰러지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신곡에서 지옥을 묘사할 때나 등장할 법한 생지옥이었다.

소녀는 망토 자락을 쥐고 오른팔을 들어 얼굴이라도 가렸다. 넝마 조각에 불과한 망토는 방파제 역할도 제대로 못 했다. 가느다란 알갱이는 무자비하게 넝마와 살갗을 찢고, 바람이 불어 상처를 벌리고 핏물을 쏟아내니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따가웠다.

“악!”

굵은 알갱이가 허벅지를 스치자 소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텼다.

이브에게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난 30년간 이보다 훨씬 많은 아픔을 겪어왔으니까.

“고기 사긴 그른 날씨네…”

건물의 강철창 틈에서 새어 나오는 전기마저 끊긴 건지 불안하게 깜박였다. 깜박이는 가로등에서 나오는 불빛이 대기에 흩날리는 유리 조각에 반사되니 분위기도 섬뜩했다.

고기만 살 수 없으면 다행이지 연약한 몸으로 더 걸었다간 전천후로 불어오는 돌풍에 어디 부러지기 십상이었다. 가뜩이나 지칠 만큼 섹스해서 다리도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린데 세찬 돌풍은 통째로 소녀를 날려버리려는 듯 포효했다.

‘그렇다고 어디에 숨나.’

골목패들이나, 경찰이나, 아무 상인의 집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아니면 수정폭풍의 중심을 계속 걸을까. 어디 뛰어들어도 소녀에겐 썩 좋은 미래가 그려지진 않았다. 그래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브를 온전히 욕정의 대상으로 보는 골목패들이 있는 곳이 낫다면 나았다.

어디든 뛰어 안위를 찾으려는 소녀에게 건물 사이 골목에 빈 지붕이 보였다. 소녀는 곧바로 뛰어 들어가 몸을 숨겼다. 파편이 덜 튀는 곳에 자리 잡은 뒤엔 온통 화끈거리는 자기 몸부터 확인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상태는 더더욱 처참했다.

추위에 약한 몸은 오들오들 떨리고 찰과상 가득한 피부엔 눈송이같이 자잘한 유리 파편들이 알알이 박혀 핏물이 송골송골 맺힌다.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 망토자락을 집어 붙어있는 알갱이들을 대충 털어내고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어드벤쳐 호는 멀쩡했다.

‘그냥 고기부터 사고 올걸. 무슨 얼굴로 레아를 봐…’

이브는 술이나 약이라도 빨고 싶었다. 적어도 뭐에 중독돼 있다면 아픔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 이브를 탐했던 남자들은 돈에는 인색했지만, 이브를 침실로 데려가려는 요량으로 가끔 사치품을 건네곤 했다. 하룻밤만의 연인들은 이브가 원하는 대로 사 주었고 이브는 그들을 이용해 얼마간의 술과 마약을 할 수 있었다.

이브에게 라임비의 남자들이란 꾀기도 쉽고 잠자리에서 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언제나 늘어서 있는 뷔페나 다름없었다. 비록 해롱해롱한 상태로 만들고 강간한 뒤 돈도 안 주고 튀는 일이 잦기는 하다만, 밤만큼은 라임비 기준으론 남 부럽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봉이라도 잡자.’

마침 이브가 시선을 돌리니 마침 눈앞에 돈 많아 보이는 블랙 카우가 지나갔다.

그런데 그는 도무지 수정 폭풍이 부는 와중에 볼 수 없는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아득히 비싸 보이는 검은 트렌치코트에 선글라스, 2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키. 한 손에 들린 검은 요원 가방을 든 그는 수상하게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이브는 저 거구에게 깔리는 기분이 어떨까, 몸집에 어울리는 크기의 물건이라면 얼마나 맛있을까 떠올리면서도 유심히 그를 살폈다. 뭔가가 이상했다.

‘왜 저런 사람이 여기 있지?’

거리에는 사람이 적었다. 게다가 온통 영롱한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니 한 치 앞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저 거구를 수상히 여겨 멀찍이서 슬슬 피했다.

이브의 생각도 길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도저히 여기 있어선 안 될 자였다. 행성, 항성계, 별자리, 성단, 아니. 은하 단위로 봐도 손꼽히는 부자라고 감히 예측할 수 있었다.

부자 중의 부자 중의 부자 중의 부자. 심심풀이로 행성 수십 개를 충돌시키고 하룻밤 만에 다이슨 스피어를 건설하는 천문학적인 부자. 라임비 행성쯤은 껌값이라 여기는 경외스러운 자산을 가진 초 재벌. 전 은하에서 겨우 수천억 명밖에 가입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스타 스트링스에서도 0.00001%에 해당하는 은하 단위의 셀럽. 당연히 이런 빈민의 생명 따위는 파리 목숨보다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

혹은 거기 못 미치는 가짜라도 좋았다. 이브는 그를 노리고 싶어졌다. 황새 흉내 내느라 다리 찢어지는 뱁새라도 이브를 이 생지옥에서 구원해주기엔 충분했다. 그녀도 과거에 저런 사람 중 하나였기에 그랬을까.

분명 제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브인데도 도저히 마주쳐선 안 될 상대에게 겁대가리 없이 추파를 건넸다.

시선을 의식했는지 검은 사내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이브는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기분 좋은 의심의 시선을 느끼며 지긋하게 작업 미소를 꾸몄다.

“흐흥… 오빠… 나한테 관심 있어?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들어줄 테니까. 참, 숏은 200페니고 롱은…”

돌풍이 그들 사이를 헤집었다. 유리 파편의 장막과 선글라스 너머 의심의 눈길은 이브의 몸을 잡아먹을 듯이 위아래로 훑었다. 아슬아슬하고 기분 좋은 시선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대답은 이브를 충격에 빠트렸다.

“…보안관님? 정말로… 보안관님입니까?”

이브는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듣기엔 너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으니까. 과연 여기 어디에 보안관이 있단 말인가… 보안관, 보안관…?

‘……어?’

이브는 조금 전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이 떠올랐다.

잊고 있던, 잊어버리려 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차가운 목소리였다. 이브가 십수년간 들어 익숙했던 목소리였다. 꿈속에서, 잊고 싶어 몇 번이나 약을 먹고 술을 먹어도 잊을 수 없었던 지독하리만치 찬란한 과거의 메아리였다.

얼마나 이브가, 퀘이사라는 이름을 썻던 과거를 꿈꿔왔던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나길 원했던가. 30년이란 시간은 평생과도 같이 길었다. 실로 30년은 고대 시대에는 한 사람의 평생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브는 퀘이사를 전생으로 여겼고, 전생의 자신을 알아보는 이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돌아가리란 꿈은 이제는 거의 포기했었다.

그러나 이젠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돌아갈 수 있다. 반가움과 동시에 웃음기가 피어오르기도 잠시였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런데 방금,

대체 나는 방금 무엇을 하고 있었지?

“내, 내가… 아니… 너…는… 아니 그게…”

숏이니 롱이니, 누가 들어도 몸이라도 사달라고 애원을…

갑자기 저 선글라스 너머에서 자신을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그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무게가 난데없이 밀려들어 이브의 심장을 짓눌렀다. 이브는 폭풍우 속에 묻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맺히지 않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자신이 이브가 아니던 시절을 아는 사람에게 베갯영업을 하고 있었다고 깨달으니, 표현할 수 없는 수백 가지의 감정이 수정 폭풍과 같이 휘몰아쳤다. 하물며 그게 수족처럼 부리던, 그리고 가장 가까웠던 부하에게 다리를 벌리고 하룻밤이나 자고 가지 않겠냐고 물은 것이다.

“아…”

목이 메였다.

피부에 조각조각 박히는 유리 파편이 가슴 속 깊숙이까지 저며드는 듯했다. 폭풍우가 웅웅 고막을 찢어대는데 뇌까지 스며들어 갈가리 찢어버리는 듯했다. 소녀에 불과한 이브는 초조하게 떨리는 입술을 덥석덥석 물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가까스로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이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정폭풍을 뚫고 도망쳤다.

오늘은 유달리도 수정폭풍이 강렬했다. 유리 파편이 살갗을 파고들었지만 가슴 속 어딘가를 갉아먹고 분지르는 듯했다. 화가 나고 황망해서 얼굴이 엄청나게 화끈거렸다.

운수 더러운 날이었다.

* * *

[45지구의 수정폭풍은 내일 2시경 그칠 것으로 예상되며…]

“헉, 헉… 흐으…”

아프다.

파편에 쓸려나간 피부는 단어사전의 정의 그대로 온몸이 걸레 조각이 되어버렸다. 너저분하게 살갗이 떨어져 너덜너덜거렸다. 수정폭풍을 꿰뚫고 달려오느라 폐부는 찢어질 것 같았고 이마를 따라 송골송골 맺힌 땀이 핏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언니이!”

“레아… 레아야… 미안… 내가 조금 늦었지…?”

“언니, 어디 갔다 온 거야? 오늘 나가면 안 됐었는데…”

이브는 울먹이는 레아를 보고는 먹먹한 가슴이 더 아려왔다. 레아는 심상치 않은 이브의 분위기를 읽고는 탓하지 않고, 오히려 이브의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이제 겨우 7살짜리 애한테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온정에 기대는 나약한 자신이 너무 한심해졌다.

“상처가… 어서 와서 누워. 여기.”

이브는 레아가 이끄는 데로 힘없이 걸어가 넝마 조각을 깔아 둔 바닥 위에 누웠다. 레아는 행성민들에게 보급해주는 연고를 가져와 듬뿍 퍼선 손바닥에 놓고 착착 두들긴다. 레아는 핏물을 닦아내고 미끈거리는 연고를 이브의 상처 난 피부 위에 펴발라주었다.

“아으윽!”

“언니, 아프지 않아요. 아프지 않아. 내 손은 약손.”

소녀는 따끔거리고, 화끈거리는 상처가 아파 이를 꽉 깨물었다. 세상 정도 모르는 겨우 7살배기짜리 애한테 이렇게까지 보살펴진다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그걸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또 괴로웠다. 상처와 반응해 화끈거리는 연고보다 부끄러움과 정신머리가 반응해 나타나는 열이 더 뜨거웠다.

“아흐윽…”

“아파요? 언니, 호-“

이브는 있는 힘껏 이를 꽉 깨물고 버텼다. 혹 이대로 부끄럽거나 아파서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사람이 부끄러움만으로 죽지 않는 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도 죽을 것 같았다. 피땀으로 젖은 전신에 연고가 다 발라지는 동안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가슴은 조치가 끝난 뒤에도 쉬이 진정되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내가 할 거니까. 언니는 거기 가만히 있어야 해?”

“…응.”

이브는 상처에 젖어 누운 채 허공을 흐릿하게 바라본다. 구멍 뚫린 천장에 덧대어진 판자조각에서 투두둑 두들겨지는 소리가 울린다.

부관 알터 카이로스.

그놈을 만날 당시에는 부끄럽고 황당했지만 숨 돌릴 틈이 생기니 조금은 진정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레아만큼은 어딘가 좋은 행성에서 길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과거는 아니까 레아만큼은 데려가 달라고 부탁할 수 있지 않을까?

눈을 감으니 전 은하를 누비던 찬란한 과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30년 전, 모든 게 갑작스레 바뀌어버렸다. 이브도 판자 너머 저 우주에서 나노머신을 갈아 마시며 개인용 워프엔진과 스타 스트링스를 통해 즐겁게 살았던 적이 있었다. 이 행성 사람들에겐 스타 스트링스는커녕 우주시대에나 썼을 법한 구시대 디지털 통신에 접속하는 것조차도 엄청난 사치라고 여기는데, 분명 이브는 저 우주의 사람이었다.

이브는 저 먼 세상에서부터 떨어졌다. 이곳이 현실이라면 저 위는 이세계였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처음에는 은하보안관이었던 자존심. 그따위 자존심을 내세우며 멋모르고 이 행성에서 벗어나 몸속의 나노머신을 제거하려 헛된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실패했다.

하찮은 꼬마 계집의 몸으로 처음 겪는 발정기에, 정신도 못 차리고 음습한 라임비 남자들의 자아에 희생되어 처녀와 자유를 잃었다. 2년 동안 성노예나 다름없는 상태로 쾌락에 빠져 장난감처럼 허우대다가 가까스로 도망쳤다. 그게 벌써 28년 전 일이다.

다음에는 빈민들을 싸구려 연심으로 도와주려는 ‘후원자.’들에게 기대었다. 나름대로 반반한 외모와 불쌍한 소녀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벗어나려는 계획은 그따위 자존심을 완전히 져버리고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브가 잡은 그는 나름대로 괜찮은 ‘후원자’였다. 라임비 37지구의 소유주였고,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이브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았던 남자였다. 계획은 성공하여 나름대로 우주선을 타고 대기 밖으로 나갈 수는 있었다.

그 뒤가 문제였지.

지독한 발정기, 지난 30년간 겪었던 것 중 가장 위험한 욕정이 때가 아닌데도 끓어올랐다. 우주 엘리베이터와 스타포트 사이의 무중력 공간이 나노머신에게 영향을 미친 게 틀림없었다.

온몸이 붉어진 채로 후원자들에게 매달려 앙앙대는 제 모습이 우주 정거장 유리창에 비추었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으니…

후원자의 진을 전부 빼내어 죽여버린 게. 제 엉덩이 아래에 마음씨 좋은 사람을 깔아뭉개고 복상사시킨 게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 뒤로도 세 번이나 정체를 숨기고 후원자들의 온정을 받았다. 모든 탈출 시도는 전부 끔찍한 결과로 이어졌다. 그게 벌써 20년 전 일이다.

이브는 계속된 실수에 유리병 속에 든 벼룩처럼 변해갔다. 이브는 병뚜껑보다 높은 곳으로 뛰어오를 수 없게 되었다. 유리병이 라임비 행성이었고, 병뚜껑은 이 행성의 중력권이었다.

그런데 이미 오래전에 버렸을 알량한 자존심이, 잊고 있던 자존심이 알터를 만나자 다시금 밀려와 존재를 어필했다. 라임비에 있을 모두가 부러워하는 아득한 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모험을 즐기며 정의를 위해 힘썼던 과거가 다시금 손아귀를 스쳐 지나갔다.

퀘이사의 부관 알터 카이로스는 언젠간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따위… 하룻밤 몸을 판다는 말을 하고도?

버렸다고 생각한 알량한 자존심이 고개를 불쑥 내밀고 자기한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정말로 부하한테 몸이나 대주고 돌아간다고?

이브의 가슴 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언니. 오늘은 밖에 안 나갈 거지? 이상한 사람 안 데려올 거지?”

레아의 물음은 이브를 현실로 되돌려놓았다. 이브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찾아올지는 몰라도 알터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지.

“그러면 나가면 안 돼! 내가 저녁 할 거니까.”

군침 돌만큼 고소한 고깃국 냄새가 났다. 레아가 방실방실 웃으며 저녁거리를 하는 중이었다. 이브가 일어나려 하자 재빨리 눈치챈 레아가 이브를 만류했다.

“누워있어 언니! 내가 먹여줄 테니까.”

“안 돼. 수저 정도는 들 수 있거든? 내가 앤 줄 알아?”

레아가 ‘이브 언니는 애니까 거기 누워서 내가 후후 불어주는 거나 먹어.’라는 눈치를 준다. 이브는 못내 찔려서 조용히 자리에 다시 누웠다.

“언니. 그렇지, 아플 땐 푹 쉬어야 해!”

“어… 응.”

어쩌겠나, 결국 딸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이브가 부모도 아니었고 레아도 딸은 아니었지만, 공공연히 이브가 애 딸린 창녀라고 불리는 것도 레아 덕분이지 않는가.

“아 맞다! 아까전에 무서운 사람들이 왔다 갔어. 여기 재개발한다고 비워 달라고 하는데… 그러면 어떡하지? 우리 쫓겨나는… 거야?”

“재개발… 걱정하지 마. 언니가 살 곳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까.”

이상하게도 최근 라임비에는 재개발이 한창이다. 그래봤자 얼마 자본이 없어 철근 콘크리트와 시멘트 다시 까는 정도다. 평범한 행성에서 자주 쓰는 탄소 필라멘트나 다공성 공합체는 비싸다고 들여오지도 못한다. 기후조차 바꿔주지 못하는 행성에서 무엇을 바랄까.

그러나 콘크리트와 시멘트라고 해도, 어느 컴퍼니에서 돈이 들어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어쨌든 재개발이 되면 이브처럼 자리 못 잡고 사는 무일푼은 쫓겨나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살 곳을 찾아봐야겠네.”

이왕이면 좋은 곳으로.

이브가 알량한 자존심을 버려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작품 후기 ==========

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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