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40)

[TS] 은하보안관 이브 1편

<-- 프롤로그 -->

바람에 벼려진 수백만 개의 날카로운 유리결정이 시속 30km에 가까운 속도로 공기를 가른다. 비나 눈처럼 물이 아니라 산화규소로 이뤄진 진짜 유리결정은 가로등과 거리의 광채를 머금어 잔혹하리만치 찬란하게 빛났다.

최초로 이 행성에 정착한 사람들은 수정처럼 반짝이는 유릿발이 폭풍우처럼 쏟아진다고 하여 수정폭풍이라 불렀다.

아름다운 이름과는 달리 이토록 혹독한 살풍경 속에도, 검은 정장과 선글라스를 쓴 한 명의 사내가 수정폭풍을 뚫고 오래된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구성된 거리를 걷는다.

[경보: 수정 폭풍 특보 5단계]

겉보기엔 검은 트렌치코트 모양의 외계형 강화복 슈트에서 경보음이 삑삑댄다.

앞으로 이 지역에는 7시간 동안 한 치 앞도 바라보기 힘들고, 평범한 강화복으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든 수정폭풍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행성에서는 이런 종류의 폭풍우는 내리지도 않는다. 기후는 이미 수 세기 전 인류가 정복한 영역이기에, 당연하게도 테라포밍 행성들은 그 행성 사람들이 좋아하는 환경으로 맞춰 조성되어야만 한다.

그 어떤 종류의 변종인류도 반기기 힘든 수정폭풍이 내리는 건, 그저 이 행성이 대기에 나노머신을 뿌릴 아주 기본적인 자본조차 없는 소규모 컴퍼니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라임비(LIME:V),

요원 복장의 은하보안관, 알터 카이로스가 걷기엔 비참하리만치 빈곤한 슬럼 행성의 이름이다.

신기하게도, 몇 세기 전에나 썼을 법한 구식 콘크리트가 깔린 길거리에는 사람들과 구형 자동차들이 수정폭풍을 맞으면서 보란 듯이 돌아다닌다. 저 차들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이, 이 바퀴벌레조차 살지 못하는 행성에 13억 명이나 살아간다.

알터는 라임비 행성에 사는 인간들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이들이며, 인간 승리의 결정적 증거라 고찰했다.

하지만 우주 철학자도 아닌 보안관 알터가 한가하게 인간 예찬을 하고자 무법천지의 거리를 하릴없이 걷는 건 아니었다.

알터는 찾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

꼭. 그분을 찾아내야만 했다.

홀홀단신으로 성단 단위로 거래하는 블랙 컴퍼니들에 대항하여 정의를 일궈 내신 분이자, 니콜라 사에 위장 잠입하여 대량의 부정을 밝히고 끝장낸 전설적인 ‘뉴 보스턴 차 사건’ 부터, 마피아들의 영역이라 여겨진 ‘카인 성계 해방 전쟁’에 앞서 나가 지휘하던 제독이기까지 했던 그분.

가장 큰 두 사건만 해도 역사서에 길이길이 남을진데, 그 외에도 수십 가지의 기행에 가까운 작고 큰 사건들을 해결하여 은하적 명성을 떨치며,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전 은하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은하보안관 중 1순위로 꼽히는 분.

알터는 직속 상관이셨던 그분을 떠올렸다. 문제를 해결할 땐 천재적이며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기지를 발휘하셨고, 이지적인 눈동자로 사태의 진실을 꿰뚫어 보셨다. 자신이 맡은 모든 역할을 완벽히 해내셨고 범죄조직에 대한 초월적인 해결 능력을 지니셨다. 그러면서도 술자리에선 털털하니 인간미까지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터는 어느날 돌연히 사라진 그분을 꼭 찾아야만 했다.

명실상부 역대 최고의 은하보안관, ‘퀘이사 라케이니아’를.

모종의 이유도 이유로 값싼 수색용 드론조차 지원받지 못하는 형편이 썩 마음에 들진 않았으나, 알터는 할 수만 있다면 백의를 입고서라도 찾을 생각이었다. 세간에선, 그리고 보안국에선 실종된 퀘이사 보안관님을 사망한 것으로 여겼고, 이에 대한 조사는 이미 오래전에 사실상 종결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몇 년째 반복했던 지루한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 거창한 작업은 아니다. 그저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는 일이다.

삐빅 소리와 함께 선글라스에 내장된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외모와 행태를 분석한다.

[대상과의 유사성: 34.12%. 불일치]

[대상과의 유사성: 21.11%. 불일치]

강화복 살 돈조차도 없어 유리조각에 온몸이 찰과상으로 얼룩진 인간들,

그나마도 몇몇이 입고 있는 강화복이란 초기우주시대에나 썼을 법한 구식 우주복이다.

알터는 이곳에 온 지 3개월이나 지났기에 그분을 찾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슬럼가에 그렇게 대단한 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을 품고 30년 전 사라진 그 사람을 찾길 포기하지 않았기에 이곳을 헤맨다.

라임비 사람들은 모두 알터를 경계했다. 벽으로 눈을 돌리거나 종종걸음으로 발을 재촉한다. 그나마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은 목숨을 건 호기심으로 눈을 끔벅이며 빤히 바라본다.

삶에 찌들어 사는 하층민 중의 하층민들. 행성을 차지한 곳도 변변찮은 재벌가요, 파낼 만한 자원도 없어 개발도 중단된 황무지나 다름없이 버려진 이 행성에 과연 ‘그분’이 있을지는 모르겠다며, 알터는 쓴웃음을 삼켰다.

“후…”

옷가지에서 시가를 꺼내 한탄을 삼키고, 몇 번이고 돌려본 홀로그램 파일을 열어본다.

[퀘이사 라케이니아 보안관은 LIME:V행성에 있다.]

인류가 최초로 달에 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나 썼을 법한 노란색 메모지에 볼펜으로 아무렇게 흘겨 쓴 홀로그램이 선글라스 위로 떠오른다.

보안관님을 찾기 위해 알터의 정보망이 몇 차례나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러나 이 믿기지도 않는 정보 말고는 보안관님에 대한 일말의 정보도 없었다. 그저 30년 전 돌연히 사라진 보안관님은 어디 숨었는지 머리카락 한 올, 손톱 하나 찾을 수조차도 없었다.

“페이야, 이 종이 쪼가리 하나 얻는 데 얼마나 들어갔다 그러더냐?”

[320조 페니입니다. 클로테스 37지구의 한 술집에서 정체불명의 남자에게서 구한 정보고요.]

선글라스에 내장된 초광속 통신 모듈에서 알터의 부관 페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분명 자신의 과거를 보는 듯, 씩씩하고 젊은 사내였는데 휴가도 반납하고 이번 일에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알터는 시가 연기를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고는 한탄하듯 목소리를 흘렸다.

“그래, 그랬지. 은하 보안국에서 지난 30년간 사용한 총예산은 2경 페니고. 그리고 나는 인구가 13억이나 되는 이 행성에서 보안관님을 종이 쪼가리 하나에 의존해서 찾고 있지.”

미친 짓이다.

지금 그는 완전히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30년이나 지난 사건이기에 이미 은하 보안국에선 수사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도 사실상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도 보안국에서 쉬라고 준 안식년에 몰래 나와서까지 수사하고 있다.

[그분이 대체 보안관님께 어떤 사람이기에 안식년을 고스란히 반납하면서까지 이토록 집착하고 계십니까?]

“그러게, 글쎄…. 그분은 모든 은하보안관들의 로망이셨지.”

속마음을 대변해주는 페이의 질문에 알터는 시가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고는 나직이 토로했다.

“…어딜 가셨을까?”

조그마한 나노머신조차도 이동할 때마다 정보가 남는 세상이다. 알터는 어찌하여 한 사람의 행적을 이다지도 철저하게 지울 수 있는지 궁금했다. 대신 가짜 정보와 가짜 퀘이사 보안관님은 은하 곳곳에서 넘쳐났지만 모두 허상에 불과했다.

온 은하의 사람들은 아무도 진짜 보안관님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몰랐다.

그렇다고 이미 박살 내고 가루조차 남지 않게 멸족시켜버린 재벌가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지 않는가.

“아마도 당신께서는 정신 개조나 기억조작쯤은 당연이요, 생체개조는 물론이고 어쩌면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

[…보안관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니면 벌써 죽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은 되살릴 수도 없을 터니.”

퀘이사 라케이니아. 전설적인 은하보안관께서 사라지신 지 벌써 30년이나 지났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론… 이런 변변찮은 행성에서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지, 그 결과는 뻔하다.

죽었다면 고향별에 시체라도 묻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한숨을 깊게 내쉰 알터는 선글라스 위로 손을 올렸다.

“페이야, 이만 끊겠다. 밤에 보자꾸나.”

[보안관님… 보안관--]

알터는 선글라스에 숨어있던 버튼을 눌러 통신을 종료했다. 전 상관을 떠올리며, 알터는 사색에 잠겨 방랑자처럼 무심하니 발걸음을 옮겼다. 실제로 라임비 행성의 부를 아득히 넘어서는 복장을 벗겨 놓으면 그의 행태도 방랑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문득, 알터는 길가에서 용감하게도 자신을 향해오는 시선을 느꼈다.

알터가 시선이 오는 곳을 바라보자 누덕누덕 천을 아슬아슬하게 몸에 두르고, 척 보기에도 몸을 파는 계집이 있었다.

그리고 참으로 우연히도, 수십억 단위의 수색용 드론을 사용해도 발견하지 못했던 푸른 글귀가 계집의 위에서 붉은빛을 발했다.

[대상과의 유사성: 99.98%. 접촉 후 DNA 검사 필요]

“…뭐?”

거기엔 분명 왜소한 체구의 계집애가 서 있었다.

이전의 담대하고 용감한, 훤칠한 키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이지적인 중년의 보안관님은 온데간데없이. 강화복조차 입지 못해 수정폭풍에 쓸려 온몸에 생채기가 난 소녀가 있었다.

단언컨대,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일은 없었다.

단언컨대, 본인이 아니면 절대로 이런 종류의 문자는 뜨지 않는다.

선글라스에 내장된 수색용 인물 판독 인공지능이 무엇이던가. 호흡 중에 발산하는 공기 중의 분자나 주변에 날아다니는 먼지의 정보는 물론이요, 본인의 태도나 행동, 버릇 등. 피부 접촉까지 하면 DNA와 같은 생체 정보까지 모든 정보를 취합해 판단하는 인공지능이다. 오류가 날 확률은 중성미자끼리 부딪쳐 체렌코프 현상을 일으킬 확률만큼이나 극히 드물었다.

“흐흥… 오빠… 나한테 관심 있어?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들어줄 테니까. 참, 숏은 200페니고 롱은…”

퀘이사 은하보안관의 인물 정보를 가진 계집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수차례나 남자를 꾀었을 법한 요사스럽고 잔망스러운 미소였다.

도저히 그분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왜소한 은발 계집의 모습에 알터는 기계의 오류를 한번 더 의심했다. 제 머리와 눈이 잘못된 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하는 마음에, 입 밖으로는 제 의심을 확인하고자 푹 쉰 목소리를 내뱉었다.

“…보안관님? 정말로… 퀘이사 보안관님입니까?”

아직 젖비린내 나는 티를 채 벗지 못한 외모의 계집.

알터의 목소리를 들은 계집의 눈동자에는 선명한 동요가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알터는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주변인들에게 냉혈한, 인조인간, 인공지능이라고까지 불리는 알터였다. 그런데도 초경조차 안 왔을 계집을 보곤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하물며, 몸 파는 창녀라니…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우두커니 대답을 기다렸다.

혹시…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죄송합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소녀에게서 그의 기대에 정확히 반하는 반응이 나타났다. 입술을 하얗게 될 때까지 꽉 깨물고는 뒤돌아 뛰쳐나간 것이다.

수정폭풍 사이로 사라져가는 그림자를 바라보며, 알터는 한동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소녀가 떠난 자리에는 은하인들에게 친숙한 마초 성향의 잡지 ‘어드벤처 호’가 떨어져 있었다. 이미 수십 번은 읽은 듯 끝이 너덜너덜한 잡지에 알터는 손을 올렸다.

알터는 그분의 것과 꼭 닮은 붉은 눈동자를 떠올렸다. 소녀의 붉은 눈동자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찰나의 불안 속에서, 알터 카이로스는 이미 암묵적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소녀는…

[DNA검사 완료. 대상은 퀘이사 라케이니아입니다]

…그가 찾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은하보안관이었다.

========== 작품 후기 ==========

+극단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미래 배경의 스페이스 오페라

이 소설의 주제입니다.

+본 소설에는 다량의 욕설이 등장하니 주의하여 주세요.

감정과잉 부분이 좀 있긴 한데 하차마렵지만 않았으면 좋겠네요.

+목표는 어쨌든 과거의 저만 넘겨보려 합니다.

연재주기는 1.8일에 1편정도 쓰고 있습니다. 올리질 않으니 진도가 안 나가는 느낌이긴 한데… 아무튼 비축분이 떨어질 때까지 1일 1연재, 0시 7분 업로드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말정말 공을 꽤 많이 들이고 있으니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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