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간 나는 즐거운 신혼생활을 즐겼다. 그것은… 원칙주의자인 우리에게 꽤나 도발적인 모험이었다. 하지만 그 짜릿함은 싫지 않았다. 나는… 일상에 있어서
단한가지 빈틈도 없이 철두철미하게 살림을 관리하면서, 밤이되면 요부처럼 나에게 때로는 순종하고, 때로는 도발하는 열살이 어린 아내와의 시간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보냈다. 그녀는… 금방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오랫동안 이 집안의 안주인인듯 익숙하게 자신의 위치를 잡았다.
나는 그래서 종종… 그녀가 전처가 남긴 물건들을 탐탁치 않아 하리라 생각해서 인테리어를 바꿔 볼것도 제안했지만… 의외로 그녀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깝다고 만류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녀는 묘한 조언을 남겼다.
“저는… 이 인테리어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요. 이건 틀림없이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정인을 위해 만든 거예요. 당신의 전처는… 아마도 당신을
상당히 지극하게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럴까? 나는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일상에 질려 집을 나선 전처에게 그런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나는 일단 의문을 접어두고, 그런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있던 가구와 인테리어를 바꾸지는 않았다. 그리고…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래서… 우연히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 그러니깐… 저기…”
나는 할말이 없었다. 아내의 전 남자친구… 우연히 길거리에서 AS 트럭을 몰고 가다 잠시 쉬는 그가 내 눈앞에 들어왔을 때 나는 뭐라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예전에 봤던 기억이 과소평가될만큼 여전히 덩치가 큰 친구였다. 아마도… 아내는 몇 달의 유예를 주고 그에게 자기 몫의 보증금도 돌려받아…
더 이상은 연결될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 그를 우연히 길에서 만날줄이야… 우물쭈물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잠시…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나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두 남자가 찻집에서 어색하게 만났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한참만에… 그가 입을 연 것은
의외의 말이었다.
“그때는… 죄송합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에? 아… 그날요. 그… 그게 따지고 보면 제가 때린겁니다만…”
“폭행당하는 여자가 있으면… 그게 당연한거죠. 잘못하신거 없습니다.”
의외로… 그렇게 개념이 없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가 말해주자… 오히려 대화하기가 편해졌다. 그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뭐… 다시 관계를 돌린다거나 만나겠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잘살고 있다면 그걸로 좋습니다. 결국… 다 제 잘못으로 이렇게 된걸요.”
“실례가 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왜… 바람을 피셨죠? 그녀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났나요?”
“아뇨… 그럴리가요. 제 인생에서… 그녀는 다시 만나기 어려운 그런 존재죠. 지금 같이 사는 애는… 걍 정신 나간 년이에요. 살림은 물한방울 묻히는 것도
싫어하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고… 왕년에 룸에서 놀던 기억으로 사치만 부리고… 그냥 못죽어서 삽니다.”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그렇다면 왜 헤어지게 된거죠? 어딜 봐도… 그녀가 더 나은거 아닌가요?”
“그렇죠. 이해하기 힘드실꺼예요. 선생님 같은 분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 이해 못하실꺼예요. 걔는 진짜 괜찮은 애였어요. 우리처럼 막사는 애가 아니었죠.
항상 자기 원칙에 따라서 철두철미하게 삶을 사는 기준과 개념이 있는 애였죠. 근데… 그게 오히려 저희들에게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더라구요. 뭐랄까나…
뭔가 빛난다고 해야 하나? 고고하다고 해야 하나?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묵묵히 자기 신념대로 사는 걔를 보고 있으면… 우리처럼 막사는 입장이 왠지
모르게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죠. 그리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아… 쟤는 내 옆에 있을 애가 아니구나… 라고요. 그러면서, 조금씩 멀어지고… 그러다 보니
왠지 나랑 비슷한 막사는 애들이 편하게 느껴진거죠.
사실… 아까전에 욕은 한바탕 했지만… 솔직히 마음은 편해요. 항상 깔끔하게 개여진 옷들이며, 먼지한톨없는 방이며, 식단에 경비까지 감안해서 준비된
식사들은… 때로는 스트레스이기도 하거든요. 지금 같이 사는 애는… 그런 점에서 잘맞아요. 집은 개판으로 어지르고, 먹을게 없으면 시켜 먹고, 옷은 없으면
하나 사서 입고… 정말 막사는 거죠.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해요. 그래서, 지금 사는 기집애랑은 맨날 싸우면서도 맨날 사이는 좋아요. 한번 싸우면 누가
잘못했는지 하나하나 따지는 걔랑은 달리 싸우는게 그리 부담되지도 않구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다다음달에 프로포즈하고 결혼할거에요. 애도 생겼더라구요. 몰래 지울 생각 안하는걸 보면 내 애가 맞긴 한가봐요. 그런거 못할 년도 아닌데…
그러니 어쩌겠어요. 그냥 살아야죠. 그렇게 애도 생기고 같이 살면… 이제 몰래 룸나갈 생각도 안하겠죠. 하, 씨바… 또 미안해지네. 언젠가 걔한테 지금
사는 년이 해주는것도 한번 해달라고 해서 강제로 시켰는데… 내가 미쳤지… 힉!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지나가는 말이에요. 아무튼…. 걔는 저보단
선생님 같은 분이 잘어울려요. 그러니, 행복하게 해주세요. 이건 정말로 진심이에요.”
정말과 진심으로 동어 반복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득 떠오른 것은… 지금의 아내가 아니라 전처였다. 왠지 모르게 그가 하는 말이 나에게 생각할 것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도 지금 저 친구가 보는 나의 아내 같은 느낌이었을까? 나는… 왠지 모르게 그걸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망설이며 아내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내는 의외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만나라고 말했다. 빈말이나 돌려 말하는 걸 하지 못하는 아내다.
그녀에게 아내라는 위치는 그런 자신감을 주는 원동력인걸까? 나는… 정말 오랜만에 전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얏호! 오랜만… 이게 왠일이야?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녀는… 예전과 다름없었다. 보이쉬하게 짧게 컷트친 머리를 염색하고, 아내보다 좀 키가 작아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인다. 그녀는 약속장소에서 마치,
일주일전에 보고 다시 만나는 사람처럼 나를 웃으며 반겨주었다. 예전에… 대화가 없었던 우리 사이를 생각해보면… 왠지 지금이 그때보다 훨씬 친해보인다.
나는 조금 망설이며 그녀에게 말했다.
“나… 아내가 생겼어.”
“흠… 그래? 잘됐네. 몇살차이? 히익? 10살~~~ 우와!!! 동네 사람들, 여기 날도둑놈 떴어요. 히야… 축하해. 몇 년간 그 성질 머리에 혼자 궁상떨줄 알았는데
이게 왠일이야… 나보다 먼저 다음 목적지에 골인하셨네. 축하해. 나? 나야 뭐… 원래 엉덩이 가벼운거야 당신이 제일 잘알잖아. 한 두명 정도 같이 살아
봤는데 몇 달 하다 때려치고 지금은 솔로. 그냥저냥 예전에 하던 인테리어 사업 하면서 일을 애인으로… 흑흑흑… 이게 무슨 비극이야. 그렇게 살고 있지 뭐.”
전처의 동거를 들어도 큰 동요가 없는건 시간이 많이 흐른 탓일까? 아니면 아내가 생겼기 때문일까? 나는… 그녀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오늘 들었던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찬찬히 들려주었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생각한 우리의 결별의 원인이 나의 성격 탓에 있다고 생각한 사실을
복기하며 진실을 알고 싶은 행동의 반추였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주문한 와인을 다 마셨을 때… 나는 결론을 말했다.
“결국… 내 생각은 이래. 우리가 서로 헤어진건…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존재가 너에게 있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던 거라고…
너는 그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을꺼야.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맞지 않는 조합이었고… 그 상황에서 너는 나에게
상처주지 않게 하려고 사랑하지 않고 무미건조하다는 말로 이별을 택했다고 생각해.”
“…….”
“결국 그렇다면…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까지는 나는 네가 고칠수 없는 성격을 문제삼아 단순히 떠났다고 생각하고 너를 원망하고
나를 자학했어. 하지만 실상이 그런거라면… 나는 너에게 사과해야 해. 나로 인해 너 역시 상처 받았음에도 너는 나를 탓하지 않았으니깐. 그래서 물어볼게.
정말로 그랬던거였어?”
“그래… 정답. 하지만… 나를 원망해야 하는 건 맞아. 네가 들려준 네 아내의 남친처럼… 나도 업계 사람이랑 염문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깐. 서로가 서로에게
불편한 상황에서… 외도까지 한 내가 네 곁에 있는건 너에게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너를 떠났어.”
“그래… 그랬구나… 미안해…
나의 말에 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하긴 뭐가 미안해… 내가 사고친것도 있다니깐… 아오 씨바… 그날 소맥을 먹는게 아니었는데. 아무튼, 그걸로 오해가 풀리고 네 마음이 편안해지고 지금
네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됐어.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 예전에 그래줬다면…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줬다면, 어쩌면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좀더 서로에게
좋은 느낌인 관계로 만날수도 있었을텐데… 예를 들면 본처와 본남편을 둔 정부라던가 말이지. 킥킥킥…”
그녀는 왠지 씁쓸하게 웃으며 자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를 씁쓸함과 왠지 모를 여운을 느꼈다. 왠지 모르게… 전처에게서 예전 조금
미지근하지만 사랑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런데…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인듯 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 내 맞은편이 아닌 옆자리로 와서 앉으며 말했다.
“우리 자기… 철들었네. 전에 남겨두고 갈때는 원칙 밖에 몰라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았는데… 이제 남자처럼 보이네. 우리 오랜만에 한번 하면 아내분이
화낼까?”
“당연한거 아냐?”
그때였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들어오지 않아도 괜찮아요. 좋은 시간 보내요.’
“……”
“……”
“우와… 이게 뭐야? 당신 아내 진짜 쿨하다. 이거 진심이야?”
진심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라면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내 아내니깐. 나는 조금 망설였다. 그리고 전처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받자… 그녀는 왠지
모르게 당황하였다.
“에? 뭐… 뭐야? 설마 진짜? 어우야… 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은 너무 공처가 아니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상도덕이…”
왠지 조금 허름해보이는 그녀의 방에서 나는 땀을 흠뻑 흘리며 그녀의 등에 쓰러지듯이 엎드렸다. 그녀는 내 밑에서 신음했다.
“우와… 이거 뭐야. 이거 내 전남편 맞아? 월수금만 날짜 정해서 딱 한시간만 하고 가시던 그분 맞으세요? 우와… 나 갑자기 내 전남편이랑 사랑에 빠질 것 같아.
어디서 이런건… 응? 지… 지금 뭐하는… 꺄악!!! 아앙… 거긴… 미쳤어… 거길 어떻게…”
숨을 돌린 나는 그녀에게 아내가 가르쳐준 방식대로 뒷처리를 해주었다. 예전의 나라면 생각할수도 없는 행동이겠지. 잔뜩 쏟아낸 분비물들을 딲아내는 나의
행동은… 늘 그렇듯이 오히려 그녀의 욕망을 자극해버렸다. 다시 국부에서 액이 넘쳐흐르고, 온몸에서 땀이 비오듯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세번째 정사를
다시 시작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그녀의 안부와 밤에 별일없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편으로는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성 원칙주의자의 느낌은 이런걸까? 그녀의 여유가 왠지 모르게 8살이나 어린 그녀가 내 전처보다 거물처럼 보이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것은 아마도… 아내가 임신 2개월인걸 알게 되고 한달 정도 뒤의 일이었을 것이다.
“여보… 지금 급하게 가보야 겠어요.”
밤중에 좀 과로하고 들어와 일찍 잠든 나에게 아내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전처의 메시지가 있었다.
‘도와줘…’
나는 아내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아내는 결연하게 말했다.
“다른 생각하지 말고 얼른 가요. 내 눈치는 보지 말고요.”
내가 도착했을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 전처는 왠지 피멍이 든 얼굴로 소주를 병나발 불고 있었다.
“어이, 늦었네. 뭐… 그래도 고마워…”
“이게 무슨 일이야?”
“뭐… 같이 인테리어 사업하던 사장이 돈들고 튀었어. 그리고 좀 안좋은 곳에서 돈을 좀 빌렸었나봐. 내가 사장 세컨드인거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로 찾아와서
돈내놓으라고 하더라. 알게 뭐냐고 했더니… 그 새끼들 다같이 동서사이 되더라. 요기 구멍 동서 말이지… 아, 씨바 쓰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마시던 소주병을 벌린 국부에 쏟아부었다. 허연 액체가 아직도 여기저기 묻어 있는 그곳이 쓸려내려가자 그녀는 진짜로 아픈듯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소주병을 빼앗고, 그녀를 일으켰다.
“가자, 병원으로…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그러자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적당한 호의라면 대충 해라. 어쩌려고 그래? 전에 한번 먹고 가더니… 그 맛이 안잊혀지디? 나랑 다시 결합할꺼야? 아니잖아. 그러면… 어설픈 동정은
관둬라… 메시지 괜히 보냈다. 그냥 경찰에 연락하면 나도 좀 찔리는게 있어서 얼떨결에 널 찍은거야. 그냥 가… 너 아내가 있잖아. 여기서 이러고 있음 되냐?”
“아, 몰라… 일단은 아내가 도와주라고 했으니… 병원부터 가서 생각해.”
나는 그렇게 그녀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다행히도… 그리 상태가 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말로 앞으로가 문제였다. 전에 갔던 허름한 집…
나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모은 돈도 제법 있었을텐데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왠지 당장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저런 양아치들도 그녀를 위협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가 막힌 상황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때쯤… 아내가 병원에 왔다.
“괜찮아요?”
“아니, 당신이 여길 왜… 어서 돌아가. 임산부가 이런데 오면 어떻게 해.”
하지만 그녀는 당연히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어쩔수 없이 자초지정을 이야기 하였다. 한참을 듣고 있던 그녀는… 고민을 좀 하는 듯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녀가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지금… 당신 전처, 만나볼수 있어요?”
“응? 아니… 왜?”
“만나보고 싶어요. 해야 할 말이 있어요.”
놀란건 전처가 더 심했다. 그녀는 붕대로 감고 병실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다가 나타난 그녀를 보고 당황해했다. 그리고… 마치 사감선생님한테
들킨 여학생처럼 자세를 고쳐 앉으며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전처입니다.
“네… 아내입니다. 많이 다치셨네요. 누우세요.”
“아… 괜찮아요. 이 정도는 뭘…”
처음에는 그저 그런 안부와 상처 관련된 내역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아내는 뭔가를 망설이는 듯 하다가 용건을 꺼냈다.
“저기… 오해는 하지 말고 들으세요. 지금 많이 힘든 상황이시라고 들었어요. 마음이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머무실 곳이 없다면 저희 집으로 들어오시지
않으시겠어요?”
나와 전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네? 아니… 그게… 지금 저는 이이랑 이혼한 상태고… 거긴 아내분께서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일단은… 사람이 살아야죠. 저 역시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외면할 수는 없어요. 그리고…”
“네? 그리고 뭐가…”
“남편… 아직 사랑하시죠?”
그녀의 말에… 전처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상관이… 그리고 그렇다면 오히려 저를 두시면 안되는…”
“저는… 남편처럼 원칙주의자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이를 믿어요. 아내로서 저는 사랑받고 집안에 있을수 있다는 사실이 변치않음을요… 하지만… 사람의
감정은 그렇게 원칙만 가지고 되는건 아니죠. 제 기준에서는 오히려… 그런 마음을 가진 상대가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더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제안하고 싶어요. 집으로 들어오세요. 아내로서가 아니라… 정부로서요…”
“……”
“……”
내 아내… 이렇게 막나가는 사람이었던가? 나와 전처 둘다 할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내의 말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물론… 집안에서 이이의 아내는 저입니다. 그 말은 이 집을 관할하는 것은 저이고, 당신도 집에서는 제 손아랫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정처의 위치에서 저는
당신에게 적당한 공간과 남편과의 시간은 허락하겠지만… 다른 모든 대소사는 제 명령에 따르셔야 할겁니다. 마침, 별채가 비어있으니, 그곳에서 기거하시면
되겠군. 어떠세요? 당신 생각은?”
지금… 그래도 내 전 아내였고… 그 집을 리모델링해서 인테리어했던 자기보다 8살이나 많은 여자한테… 자기가 정처이니 첩으로 들어와 자기 명에 따르라는
그녀… 우와, 이건 너무 막나갔다. 나는 아내를 말리기 보다는 전처에게 말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순간 당황했다. 내가 돌아본 전처는…
“내… 내가 정부…”
왠지 모르게… 당황함을 넘어서서… 뭔가 야릇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뭐야… 지금 설마… 저 말에 욕정하고 있는거야? 나는 왠지 침대 시트의 색깔이
변하는 것이 기분탓이라 여기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왠지 심하게 홍조를 띄우더니… 한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내에게 물었다.
“그… 그래도 괜찮을까요?”
뭐야 이거… 제 정신이라면 거절하는게… 그러나, 아내가 그 말을 받았다.
“이이가 허락한다면요.”
그리고… 두 여자가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우와… 씨바… 이게 뭐야? 일생을 원리원칙만 가지고 살아온 나에게… 이건 정말이지 감당하기 어려운 도발이다.
하지만… 나는 한쪽의 단호한 시선과 다른 한쪽의 황홀한 시선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