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1/21)

내 눈동자에 숙모의 슬픈 동공(瞳孔)이 가득 찼다.

나로선 도저히 못 퍼낼 심연 가득 그렁그렁 슬픔이 고여 옆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슬픈 동공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더 바라보고 섰다간 내가 먼저 그 속에 익사하고 말 것 같았다.

볼이 비벼지고 있었다.

그 슬픔이 가루로 화했다면 아마도 이 봄날 황사가루보다도 따가웠을 것이다.

그 슬픔이 연기로 화했다면 붉은 깃발 아래 최루탄보다도 더 매웠을 것이다.

그 슬픔이 눈물로 변한 것은 신이 준 은총이었다.

나는 눈자위에 넘쳐흐르는 숙모의 슬픔을 빨아먹었다.

그리고 볼로 타고 내리는 숙모의 한을 핥아먹고 있었다.

숙모의 손이 내 목을 잡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점점 치열해져서 내 가슴을 쳐대다가,

목을 잡아 질식시켜버릴 것처럼 조여대다가,

등을 쿡쿡 쳐대다가, 허우적거리는 팔을 어쩌지 못해 벽을 갉아 대기도 했다.

"나는 어..떡..해..! 나는 어..떡..해..! 어떡해야 하니? 어떻게 좀 해줘!!"

이러다 또 실신할 거 같았다.

차라리 이것이 흔히 말하는 여자들의 술 주정이었으면 했다.

나는 벽을 갉아대는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발로 이것저것 걷어차며 발버둥을 해댔다.

나는 허겁지겁 침대 위로 올라가 그 발도 내 다리로 꼭 조이며 더 이상 못하게 했다.

"차라리.. 차라리 나를......"

"그럴 수는 없어요. 이러다 또 실신하고 만다고요?"

또 실신하여 이 침대마저 버린다면 다시 저쪽 방으로 옮겨야 할 것이다.

그 방마저 버린다면 이젠 딱딱한 거실에서 재울 수밖에 없는 일이 아니던가...?

"나 미치고 말 거야! 이 엄마 분명히 미치고 말 거라고..!!"

"그러니 제발 좀 고정하시라고요!"

그러나 숙모는 내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펑펑 솟아오르는 증오의 샘에서 원한을 퍼 올려 다 부숴 놓아야 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그러다 제 풀에 꺾인 양 사지의 힘을 뺀 숙모는 이렇게 간절히 호소하고 있었다.

"제발 날 미치지 않게 막아 줘, 제발 부탁이야...!"

그 말은 그냥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막다른 곳에 다다른 구원 요청의 손짓 같았다.

다시 말하여 자신은 천길 낭떠러지 앞에 간신히 버티고 서서 마지막으로 보내는 SOS를 치고 있다는 뜻 같았다.

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요? 밖으로 나가 바람이라도 쇠어드릴까요??"

"아냐, 아냐! 덮어 줘!"

"추워요?"

나는 차 넘긴 이불을 끌어올려 줬다.

그러나 숙모는 발로 그 이불을 다시 차내며 덜렁거리는 팔로 나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이렇게 토해내고 있었다.

"네 몸으로 덮어 줘!"

"..........................??"

"날 강간 해줘!! 배신당한 이 몸을 발기발기 찢어 줘! 제발........!!!"

나는 순간 멍해줬다.

너무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마저 정신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밖에 나가 욕실 물도 빼고, 불도 꺼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섰다.

"가지마! 가지마! 너마저 가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나는 냉정히 나왔다.

퍽퍽 절규하는 소리에 뒤이어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욕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욕조 바닥의 물마개를 빼냈다.

숙모의 가련한 체향을 빨아낸 물이 하수구 구멍으로 빨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 옆 세면기 앞 거울에는 맺힌 이슬이 물방울로 변하여 긴 선을 몇 개나 그려놓고 있었다.

거기에 내 얼굴이 몇 조각으로 갈라져 박혀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철철 쏟아지는 물을 받아 거울에 뿌렸다.

숙모가 우는 모습처럼 퍽퍽 뿌렸다.

거울은 내 얼굴을 엉망으로 만든 뒤 차차 제 모습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숙모와의 모습도 저렇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도 시간이 지나면 차차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나는 자신을 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믿을 수도 없었다.

아무래도 너무 깊은 늪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물이 다 빠졌다.

소리가 멎자 적막이 찾아왔다.

갇힌 공간에서의 그 적막은 너무 무서웠다.

밖으로 나오며 욕실의 불을 껐다.

거실의 불도 껐다.

더 무서운 적막이 나를 에워쌌다.

그 무서움은 공포가 아니었다.

나를 담보하지 못하는 자신감 결여의 조각이었다.

나는 황급히 내 이불을 깔아둔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에서 속으론 더 냉정해지자고 외치고 있었지만, 저 건넛방에서 들려오는 숙모가 훌쩍이는 소리를 듣는 귀만 열어두고 다른 소리는 못 들어오게 문을 걸고 있었다.

그러다 "나는 밑에서 자면 되지!"하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이불을 안아들고 있었다.

그 방을 나와 숙모의 방을 향해 걸어가는 내 발걸음은 잔뜩 조급해져 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았나 하는 근심을 담보로 잡고 나를 합리화시키고 있었던 거다.

숙모는 밑에서 엎드려 흐느끼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손을 벌렸다.

그래, 빨리 올려 드려야 해! 숙모는 오늘 밤 수족을 못쓰는 장애인이야...!

내 손은 가볍게 숙모를 안아들었다.

"돌아온 거지? 완전히 돌아온 거지??"

나는 그 말을 "다시는 저 방으로 가지 않을 거지!"로 들었다.

숙모의 팔은 내 목을 감고 있었다.

숙모의 몸을 침대 위에 내렸건만 그 팔은 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손을 억지로 풀어 숙모를 다시 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착한 아들이 되겠다고 했..지..?"

"네!"

"배신하지도, 속 썩히지도 않겠다고 했..지..?"

"네!"

"그럼 이 엄마 소원부터 풀..어..줘..!!"

정녕 그게 소원이었단 말인가?

왜 그 소원이 필요했을까를 따질 입장은 아닌 것 같았다.

숙모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갑절은 더 절박한 상황일 것이리라는 걸 믿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숙모의 손이 스르르 풀리자 나는 일어섰다.

방에 불을 껐다.

순식간에 덮이는 적막..

이제야말로 공포스런 적막이 나를 휩싸고 있었다.

구부정한 허리로 나를 쿡쿡 찔러대는 어둠이 공포의 가면을 덮어쓰고 같이 뒹굴자고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종일.. 아니, 한 순간 둘을 한 묶음으로 묶어놓았던 잠바부터 벗었다.

바지도 벗었다.

팬티만 남았을 때 나는 침대로 올라섰다.

천장에 내 머리가 닿았다.

쿵 하고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어김없이 메아리가 되어 텅 빈 방안을 배회했다.

소리가 점차 줄어들어 여운마저 시골의 새벽 모깃불처럼 사그라들 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캄캄한 어둠을 깔고 앉은 침대 바닥은 내 몸으로 덮기엔 너무 넓어 보였다.

그 옆 컴컴한 그림자 하나가 마치 그 사그라든 모깃불 더미처럼 퍼석하게 웅크린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애절한 눈빛이 하도 슬퍼서 어둠 속에서도 물 그림자의 일렁임이 다 들여다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눈빛을 짓밟아야 하는 운명을 명 받고 있는 터였다.

내 눈에 피 빛이 돌기 시작했다.

망막 안에 들어찬 회색 어둠이 제일 먼저 피 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음은 눈앞에 버티고 선 허공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리고 아래 애처롭게 누운 그림자 무덤도 피 빛으로 물들었다.

이불을 확 걷었다.

피 빛으로 얼룩진 그림자가 떨면서 붉은 재를 날리고 있었다.

이미 혼이 달아나버린 시신은 나의 빨개진 손이 움직이는 대로 일렁이며 꺼풀이 벗겨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꺼풀도 마치 뱀 껍질이 벗겨지듯 말없이, 너무도 순순히 벗겨져 내렸다.

남은 건 내 마지막 꺼풀뿐이었다.

그거마저 벗는 날 개벽의 낙뢰가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암흑을 울리는 천둥이 일 것이다.

단두대로 향하기 전 최후진술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서릿발이 선 싸늘한 동공을 향해 소리쳤다.

"저를 사랑합니까??"

시신은 말이 없었다.

당연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아니던가?

나는 후닥닥 팬티를 내렸다.

그리고 시신 위로 쓰러지며 그런 바보 같은 질문이 어디 있느냐고 스스로를 비웃고 있었다.

시신은 시신답게 써늘했다.

써늘한 그 속을 내 뾰족한 송곳은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시신의 연한 속살이 찢어지는지, 내 살이 터지는지 비수처럼 예리한 통증이 등골에 와 꽂혔다.

그 통증은 나를 다잡는 자극제에 불과했다.

나는 화살을 맞고 도망치는 멧돼지를 향해 또 하나의 화살을 날리듯이 시위를 뒤쪽으로 바짝 당겨선 사정없이 내려꽂고 있었다.

"헉!"

덜렁거리는 시신의 손이 침대의 쿠션을 이용하여 퉁겨져 오르며 내 등을 툭툭 내리쳤다.

그리고 아직도 명(命)이 떨어지지 않은 근육이 내 가슴을 밀어 올리며 "컥! 컥!!" 목 틔우는 소리를 냈다.

시신이 좀비(zombi)가 되어 살아났단 말인가?

그때 욕실에서 들은 바 있는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또 들렸다.

"너무 .......게 .......지..마..!"

그 목소리의 실체를 찾아 좀비의 입을 보았다.

반쯤 열려진 입에서 아까와 꼭 같이 "살..살..!"이란 소리가 기어 나왔다.

그 소리는 영락없이 썩은 시신의 아가리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처럼 굼실거렸다.

나는 그 구더기를 파먹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곧 입에서 콤콤한 단내가 났다.

그 구더기가 내 입으로 기어 들어간 모양이었다.

섹스는 그 본질이 더러운 거다.

썩은 시신 속에서 알을 깨는 구더기보다도, 그 구더기가 껍질을 벗고 파리가 되어 썩은 똥을 파먹는 것보다도 더 더러운 속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섹스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입안으로 기어 들어온 구더기를 씹었다.

껍질이 터지면서 비릿한 속물을 입안 가득히 묻혀 놓았다.

내 아랫것은 이미 좀비의 흐늘거리는 속살을 모두 메우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인다면 좀비의 뼈는 모조리 나사 풀린 구조물처럼 일그러지고 말 것이다.

이쯤이면 내가 명 받은 임무는 완수한 셈이리..

이제부터는 내가 갖고픈 걸 챙겨야 할 것이다.

나는 자세를 다시 잡으며 고삐를 당겨 쥐었다.

그때였다.

구더기를 쏟아내던 좀비의 아가리에서 유령 같은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사..랑..해........!!"

왜 그런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렇지, 나의 바보 같았던 질문의 답을 이제사 보내온 거겠지...

좀비와 사람과의 반응 거리는 그 만큼 떨어져 있는 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왜 사랑이란 그 고귀한 말이 이런 더러운 거래에서 통용된단 말인가?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 차라리 차라리

..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나의 눈이 다시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적개심이었다.

그 향하는 화살촉이 밑에 누운 숙모도, 그 위에 엎어진 나 자신도 아닌 목적물을 가름하기 힘든 적개심이 들끓고 있었다.

퍽퍽퍽퍽.......

둘 사이의 공간이 퍽퍽 울기 시작했다.

외롭다고 외롭다고 퍽퍽 넘어지며 울고 있었다.

.. 날짐승도 혼자 살면

.. 외로운 것

.. 바다도 혼자 살기 싫어

.. 퍽퍽 넘어지며 운다

.. 큰산이 밤이 싫어

.. 산짐승 불러오듯

.. 넓은 바다도 밤이 싫어

.. 이부자리를 차 내버린다

.. 사슴이 산 속으로 산 속으로

.. 밤을 피해가듯

.. 바다도 물 속으로

.. 물 속으로

.. 밤을 피해간다

<주> 이 詩는 이 생진님의 '외로움'이란 시입니다.

좀비의 입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도 거칠게 퍽퍽 피어올랐다.

피어오른 연기가 알갱이로 뭉쳐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져서 깨지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아.. 아아아아....!!"

방안 가득 그 아우성이 서로 부딪히며 뒹굴었다.

귀가 멍멍해질 때까지 그 소리는 거치지 않았다.

고막에 날파리 한 마리가 들어간 것처럼 귀가 근질거릴 때 나는 기관차의 엔진을 바꿔 달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속도감에 젖은 귀에선 이제 그 소리가 앵앵거리지 않았다.

대신 잔뜩 위기감에 젖어 최절정의 공포로 떠는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마치 놀이동산에서 바이킹을 타고 치솟아 오를 때나 밑으로 내려 박힐 때의 그런 스릴을 느끼는 듯한 반응이었다.

"아, .................아!, ..........................아!!"

탄력이 붙은 열차는 점점 빨라졌고, 극으로 치닫던 그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선로의 끝에 버티고 선 정지木까지 뚫고 나갔다.

어느새 좀비는 사라지고 게걸스런 탕녀가 된 숙녀의 몸이 바람 앞의 문풍지처럼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흐흑! 어어....................!!"

"아, ...........아!, .............아!! 으............................!!!"

발갛던 시야가 까매졌다가 서서히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있었다.

영혼이 빠진 시신이었다가, 육신만 돌려 받은 좀비였다가, 영혼마저 빼돌린 탕녀가 된 숙모는 이제 충전이 끝난 바테리처럼 숨을 몰아쉬며 나를 떠밀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옆으로 내려와 누웠다.

그렇게 널러 보이던 침대는 내 양 손끝을 늘어뜨리기에도 좁았다.

숙모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일어나 앉았다.

창으로 들어온 빛에 숙모의 눈 속이 들여다보였다.

눈물은 없었다.

그렇다고 바짝 말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눈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고마워!"

나는 어둠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뽀얀 젖가슴을 만졌다.

땀에 젖어 있었지만 아직 발기해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 꼭지를 매만질 때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저번에 왔을 때도 다 봤지?"

저번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 가슴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주방 다락에서의 일을 말하는 걸까?

"눈치 빠른 내가 그걸 모르겠니? 밑에 있던 네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고...!"

난감한 일이었다.

나는 슬며시 손을 내렸다.

"괜찮아. 우린 이제 모자잖니? 서로의 아픔도 같이 하고, 기쁨도 같이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은 수긍되지 않았다.

모자가 아닌 연인이라 하면 몰라도...

"이제 내가 네 엄마니까 네 엄마가 못해주는 거 다 해줄 거야!"

엄마가 못해주는 거....?

그건 섹스일까?

그래, 섹스일 거야! 그거 말고는 다 해주었지!

숙모는 아직도 나와 엄마 사이가 냉담하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좁혀진 간격이니까.

그때 숙모의 얼굴이 숙여지고 있었다.

땀으로 번질대는 가슴에 촉촉한 감촉이 내려앉더니 거침없이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아......!"

너희가 이브를 보았느냐?

뱀의 꼬임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따서 입에 넣고는 맛있다고 쪽쪽 소리내며 빠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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