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모깃불 맵게 타던 밤
그 침묵을 깨어준 건 그들이었다.
그 여자와 그녀 아들이 텐트 속에다 옷가지들을 말아들고 허덕대며 뛰어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었지만 나는 뛰어나가 그들의 짐을 받아들고 작은방 앞마루에다 놓았다.
여자가 엄마 앞으로 와 꾸벅 인사를 했다.
"저희는 저 위 빈터에 텐트를 치고 있었는데 어젯밤 소낙비로 옷을 다 버린 데다 또 비가 쏟아져서 염치불구하고 찾아 왔습니다..?"
여자의 겸손한 태도에 엄마도 호의를 베풀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작은방이 비어있긴 하지만 안 쓴지 워낙 지나서 누추할 텐데..."
여자는 그 말을 허락으로 받아들이며 몇 번이나 고개를 꾸벅였다.
나는 작은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쌓아 놓은 곡식들을 한쪽으로 치워주고 나왔다.
졸지에 손님을 맞는 꼴이 된 엄마도 걸레를 들고 나섰다.
여자가 잽싸게 그 걸레를 받아 쥐었다.
나는 멀뚱히 서있는 그녀의 아들 녀석을 마루에 걸터앉혔다.
"얘, 너 이름이 뭐니?"
"민우라 해요. 함 민우.."
"민우라....? 그래 민우 너 여기서 얼마나 지낼 거니?"
"나도 몰라요."
"모르다니? 그럼 네 학교는...?"
그는 고개를 숙이고 곧 울음을 터트릴 태세였다.
나는 그의 등에 손을 두르고 "다 잘 될 거야!"하고 토닥여주었다.
여자도 엄마와 방안에서 소담을 나누고 있었다.
걔에게 들려주지 않을 얘기라도 나올까봐 나는 그를 데리고 큰방으로 들어갔다.
TV를 켰다.
마침 토요일이라 TV가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도 나도 화면만 주시하고 있었을 뿐 마음은 떠나 있었다.
나는 정말 궁금했던 것을 넌지시 묻기 시작했다.
"민우야 네 아버지는..?"
주저주저 망설이다가 간신히 대답을 했다.
"도망쳤어요."
"도망치다니..? 누가?"
"엄마와 내가요!"
나는 그 말에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들이 텐트를 걷어온 그곳의 사연과 너무나 똑 같았기 때문이었다.
"엄마와 같이 도망을 했다고? 왜??"
"아빠가 폭군였거든요."
"폭군? 하하.."
내 웃음이 너무 컸다는 걸 깨닫고 입을 막았다.
그때 외삼촌이 방으로 들어섰으므로 나는 그를 외삼촌에게 인사를 시켰다.
녀석은 제 엄마를 닮아 제법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얜 누구니?"
"작은 방에 당분간 묵을 손님입니다. 얘네 엄마와...."
"손님? 이 깊은 산골에 귀손이라.. 네 엄마가 복 받을 징조로다!"
평소 풍부하던 외삼촌의 위트감각을 한껏 살린 덕담이었다.
녀석은 머쓱했던지 눈치를 살폈다.
나는 그를 내보냈다.
외삼촌은 뒤에 숨기고 온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그건 노랗게 변색한 다래가 동동 떠 있는 다래주였다.
"벌써 하시게요?
"어때? 비오는 걸 보니 일하긴 걸렸는데.."
"외삼촌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비 그치면 저 녀석과 가서 미꾸라지를 잡아올 테니.. 함께 넣어 매운탕 해요?"
"그러려무나. 나는 네 엄마와 먼저 한잔하고 있을 테니.."
엄마는 언젠가부터 술을 한 두 잔 하기 시작했다.
그때면 외삼촌이 술벗이 되곤 했다.
정확히 얘기하면 엄마가 외삼촌의 술벗이 되어주다 그렇게 발전된 것이다.
나이 마흔이 가깝도록 장가도 못 든 동생에 대한 가련함과 자신의 기구한 처지가 버무려진 의기투합이었을 것이다.
얼마 후 비가 그치자 나는 민우를 데리고 고기를 잡으러 나섰다.
주전자를 든 민우는 대소쿠리로 물고기를 잡는다는 것이 의아한 모양이었다.
투망이나 그물로 고기잡이하는 거야 봐왔을 터이지만 거름이나 들어내는 소쿠리로 고기를 잡다니 신기할 수밖에..
30여분 따른 비에도 개울물은 황톳물로 변해 있었다.
그에게 소쿠리를 대게 하고 발로 밟아 내려와 소쿠리를 들자 미꾸라지와 피라미들이 파닥거렸다.
그는 몹시 신기해하며 고기를 끌어 담기에 바빴다.
나는 "아까 민우 너, 네 아빠가 폭군이라 했지?"하며 집에서 했던 얘기를 다시 꺼냈다.
그는 머뭇대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의 아빠는 정읍에서 철물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정읍이라면 전북이니 이곳에서 꾀나 먼 곳인데, 아마도 그들을 찾지 못하게 여기까지 도망쳐온 모양이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아빠의 사업이 잘 되어 그들은 주택을 하나 사서 살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밤마다 아빠가 엄마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댔고, 나중 참지 못한 엄마가 그의 방으로 도망쳐와서 자기도 했다.
어느 날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는데 엄마는 발가벗겨져 침대에 묶여 있었고, 아빠의 손에는 말채찍이 들려 있었다.
아빠는 그걸로 엄마의 몸을 사정없이 내리쳤고 엄마의 살갗은 빨간 피 멍울이 그어졌다.
소리를 못 지르게 엄마의 입에는 수건이 물려 있었다.
엄마는 발버둥쳤고 아빠는 계속 채찍을 내려쳤다.
정말 잔인했다.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그의 방으로 돌아왔다.
아직 아빠를 이길 수 없을 거 같아 아빠에 대한 증오심만 불태웠다.
그런 어느 날 그날도 아빠의 학대를 당하다 견디지 못한 엄마가 그의 방으로 도망쳐 왔는데 엄마는 종아리와 목 부위까지 피멍이 나 있었다.
그는 엄마에게 이렇게 사느니 도망치자고 했다.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는 밤을 새우며 엄마의 상처 곳곳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런데 얼마 후 그가 없는 사이 엄마와 아빠가 대판 싸움을 한 모양이었다.
집안 세간들은 모두 부셔져 있었고, 엄마는 그 속에서 울고 있었다.
그가 다시 도망치자 했을 때 엄마는 그러자고 이를 악물었다.
그래서 옷가지 몇만 챙겨 엄마가 가져온 통장으로 셋방을 얻어 살았다.
거기에서 학교도 다니고...
하지만 아빠는 그곳을 용케 알고 찾아왔고, 그들은 붙들려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통장도 뺏겼다.
다행히 아빠는 한동안 잠잠했다.
그런 날은 며칠 가지 못했다.
술이 취해 들어온 어느 날 또 다시 그 상황이 벌어졌다.
큰방에서 비명이 들렸고 그 소리를 들은 그가 달려갔다.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그의 주먹이 사정없이 아빠의 배를 내려쳤다.
아빠는 퍽 쓰러졌고 데굴데굴 구르며 일어나지도 못했다.
그 틈을 타 그와 엄마는 다시 짐을 챙겼다.
그의 짐은 이미 가방 속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광에 든 텐트만 꺼내 보태고 밤길을 빠져 나왔다.
얼마나 뛰었을까? 그들을 쫓는 그림자는 없었고, 그들은 어느 허름한 건물 추녀 밑에서 밤을 새웠다.
그리고 다음날 아무 버스나 얻어 타고.. 내려서 또 타고.. 또 타고.. 하여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한다.
참으로 가련한 모자였다.
그들이 라면만 끓여 먹는 것도 수중의 돈이 없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빠가 어떻게 되었을까는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주전자에 고기가 제법 찼다.
내게 그 아픈 얘기를 털어놓느라 침울하던 그가 소쿠리 속에 시커먼 메기 한 마리가 들자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도 한껏 밝아졌다.
나는 나무줄기 하나를 꺾어 메기를 꾀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메기가 커서 주전자에 들어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그에게 여기에선 가물치와 장어도 종종 잡힌다고 말하자 메기를 내게 건네주고는 혼자 잡아 보겠다고 물 속에서 첨벙거렸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노하우가 있는 법이다.
몇 번 첨벙대봤자 발 빠져 나온 올챙이만 잔뜩 건져 올렸다.
우린 그 메기를 마지막으로 소쿠리를 거두고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자 마루에선 술판이 벌어져 있었다.
벌써 엄마의 볼이 발갰다,
민우 엄마도 몇 잔 얻어 마신 모양이었다.
민우는 그들 앞에 나뭇가지로 꿰어온 메기를 자랑하느라 입에 침이 튀었다.
"야, 이왕이면 가물치를 잡아올 것이지!"
"혹시 가물치 쓸데라도...?"
외삼촌의 시선이 민우 엄마를 향하고 있었다.
"아, 가물치..! 그네들 모두 오늘 더덕 캐러갔나 보더라고요.."
"야 저거 봐라! 윤수 녀석 말 받는 게 이제 코흘리개 꼬맹이가 아니라고..?"
엄마가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혹시 내게 술잔을 못 받게 할까봐 하는 말 같았다.
내가 외삼촌이 내민 술잔을 받자 엄마는 고기가 든 주전자를 들고 일어섰다.
민우 엄마도 일어서려 했지만 엄마가 말렸다.
그러고 보니 분위기가 묘했다.
남은 이들끼리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몰라도 아마도 엄마는 그 여자를 외삼촌과 끈 붙여 보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는 눈치였다.
외삼촌도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가물치 얘기가 그걸 증명했다.
엄마는 내게 술 취하기 전에 외할머니와 준철 엄마를 모셔 오라고 했다.
동네 사람이래야 달랑 그들이 모두이니 당연한 심부름이었다.
내가 일어서자 민우도 따라 나섰다.
내가 군으로 가기 전에 민우네가 떠나지 않는다면 민우는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다닐 것 같았다.
저녁밥을 지으려 막 부엌으로 들어가려던 준철 엄마와 마루를 닦고 계시던 외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의 허리가 더욱 구부러진 것 같았다.
외삼촌이 민우 엄마를 인사 시켰다.
준철 엄마는 벌써 인사한 모양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마당에 걸린 솥에선 물고기 익는 냄새가 구수했다.
앞서 잡은 고기는 술안주로 매운탕이 되었고, 저녁에 잡아온 고기로 추어탕을 끓이는 모양이었다.
마루에 펴졌던 술상이 치워지고 방에 크다란 상이 다시 차려졌다.
상엔 메기를 추가하여 다시 끓인 매운탕이 올랐고, 각자 앞에는 산초 향이 구수한 추어탕 그릇이 날라져왔다.
음식을 먹느라 다들 말이 없었지만 외할머니는 민우 엄마를 힐끔힐끔 뜯어보고 있었다.
엄마의 마음과 이심전심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외삼촌은 술만 연거푸 마시며 준철 엄마와 내게도 술잔을 돌렸다.
나는 엄마를 의식하지 않고 그걸 받아 마셨다.
술이 몇 잔씩 돌고 방안에 얘기꽃이 피어오르자 마당에 피워둔 모깃불의 연기가 참으로 정겹게만 느껴졌다.
포만감을 준 상이 물러나고 외할머니와 준철 엄마가 일어나자 외삼촌도 일어섰다.
그 표정은 못내 아쉬운 모습이었다.
엄마와 민우 엄마가 함께 설거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민우 너 공부는 어떡할 거니?"
"나도 모르겠어요."
"반시간 여 걸어나가면 시내 중학교로 가는 버스는 있지만...?"
"검정고시라는 게 있다 하더라고요."
"학원에 다니더라도 시내에 가야 하잖아."
"무슨 수가 생기겠지요 뭐!"
예상외로 그는 낙천적이었다.
하긴 이 상황에 뾰족한 수가 보일 리 없을 것이다.
조금 있자 그네 엄마가 그를 데리고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엄마는 아직도 볼그레한 얼굴로 달여온 약사발을 내밀며 삐쭉거렸다.
"내가 헛공사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나 건강해서 이거 안 마셔도 되는데 엄마가 달여주는 거니까 마시는 거야. 그리고 군 생활이 이 약보다 훨씬 몸에 좋은 거라고..!"
"치- 말은 잘 하네."
"전에 준철이 살쪄서 나온 거 봤잖아?"
"알았다 알았어. 그거나 마셔!"
엄마가 약사발을 들고 나가자 나는 이불을 폈다.
나란히 붙여서..
엄마가 들어와서 그걸 보고 내 이불을 밀어버렸다.
나는 도로 밀어 다시 붙였다.
엄마는 다시 떼고.. 나는 붙이고..
그 실랑이는 내가 이겼다.
내가 이긴 게 아니라 엄마가 져준 것이리라..
오늘밤처럼 매운 모깃불 연기가 정겨워 보기는 처음이었다.
술 탓일까?
아니면 얼마 안 지나 고향을 떠야하기 때문일까?
방안에 불이 꺼졌다.
저쪽 방에서도 불이 꺼지는 거 같았다.
"얘!"
"왜?"
"민우 엄마 어떻대?"
"좋은 여자 같아 보이대. 그런데 왜?"
"그냥 물어봤어.."
나는 엄마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엄마는 뿌리치지는 않았다.
"사정을 엄마에게 털어놓았어?"
"대충..."
"대충?"
"여기서 살고 싶어하더군. 아이가 걱정이라곤 했지만.."
"같이 살면 나도 안심이야. 말동무도 되어줄 거고..."
엄마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외삼촌과 어떻게 끈 붙일까 궁리하는 모양이었다.
내 생각엔 그대로 두어도 서로 좋아지면 자연히 해결될 일 같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잡생각 하지 말고 그냥 자자는 몸짓으로 엄마를 끌어안았다.
이번에도 엄마는 나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단지 몸을 돌려 등을 내게 내어주었다.
엄마의 가슴을 안는 내 손은 불손스럽게도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떨리지도 않는 불손한 손이 저고리 속으로 파고들려 할 때 엄마의 손이 내 손을 조용히 잡았다.
그리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낮에도 말했지만 그냥 장난감으로 생각하거라. 어릴 때 변변한 장난감 하나 못 사준 엄마의 마음으로 열어 줄 테니..."
내 손이 부끄러웠다.
엄마는 머뭇거리는 내 손을 안으로 넣어주었다.
낮에처럼 브레지어는 없었다.
내가 만져본 여자들 그 어느 유방보다도 볼품이 없었다.
한창인 나이에 남편을 잃었고, 이 거친 산에서 산비탈에 굴러 내리는 썩은 돌덩이처럼 살아왔으니 그 아니 그러랴..
내 눈이 젖고 있었다.
눈물이 흘러 엄마의 머리 속을 적셨던 모양이었다.
엄마가 내 품을 향해 돌아누운 거였다.
그리고 섬섬옥수 고우신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술 탓일까, 내 눈물은 더욱 터져 흘렀다.
엄마가 내 얼굴을 가슴에 보듬어 안고 어릴 적 그때처럼 토닥여주었다.
내 눈물이 멎었을 때 내 볼에는 엄마의 젖꼭지가 대어있었다.
"너는 여덟이 될 때까지도 이 젖을 물고 잤지. 철 지난 오이처럼 말라버린 빈 젖을 말이다..."
엄마는 내 기억에서 이미 없어진 일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학교는 가야하는데 젖은 안 떨어지고.. 그렇게 울면서도 십리 길 학교는 촐랑대며 잘 다녔지. 아주 참한 아이였지. 그러다 그 아이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되고. 또 얼마 안 지나선 어미마저 없는 객지 생활을 해야 했지. 그게 내 아이였지. 하나 뿐인 가련한 내 핏줄였다네..."
엄마는 젖꼭지를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나 그걸 함부로 빨 수는 없었다.
난 그때 그 아이가 아닐뿐더러 이미 여색을 맛보며 치떨리게 몸도 떨어본 음탕한 남정네였던 것이다.
그러니 그 음탕스런 입으로 어찌 존엄한 어미의 젖꼭지를 함부로 빤단 말인가?
나는 얼굴을 돌렸다.
밖에선 모깃불이 빨간 알불을 일으키며 타는 듯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창호의 문풍지를 밝히고 있었다.
저쪽 방에선 이미 잠들었는지 조용했고, 벌써 가을을 재촉하는 귀뚤이의 소리만 애잔했다.
이제 얼마 안 지나면 저 소리는 고향을 생각나게 하는 망향의 노래로 들릴 것이고, 엄마의 품을 그립게 만드는 향수의 전령사가 될 것이다.
"엄마는 늘 반문했지. 누구를 위하여 사느냐고..? 누구를 의지하여 살아야 하느냐고..? 묻고 묻고 또 묻고.. 답을 알면서도 또 묻고... 그때마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지. 내 자식, 내 아들.. 무정한 그이가 남기고 간 단 하나의 핏줄이 늘 답이었지. 그걸 알면서도 늘 물었던 거야."
엄마가 이렇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다.
그간 그 어디에도 하소 못한 엄마의 속이 새까맣게 타 있었을 거란 것조차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엄마가 토해내는 말들은 속이 타고 타고 또 타서 까맣게 숯이 되어버린 그 작은 알갱이 몇 파편만 내보이고 있을 뿐일 것이다.
나는 돌렸던 얼굴을 다시 되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무슨 얘기를 할 때마다 그걸 들어주기보다는 외면부터 먼저 해왔던 나였다.
오늘도 엄마는 내가 외면하고 있다고 느낄는지도 모른다.
이제 더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선 안 될 것이다.
흔히 말하는 효(孝)란 그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부모가 자식의 말을 곧이 들어주지 않고 외면부터 할 때 느끼는 소외감이 그렇듯이 자식이 부모의 말을 외면할 때도 꼭 같은 서운함이 있을 것은 뻔하다.
그게 상습화되고 장기화되면 절망감으로 발전해 갈 것이다.
나는 적어도 엄마에게 그 절망감은 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무얼까?
엄마가 원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기에 다다른 것이다.
내 행동에 대한 합리화를 비로소 찾은 셈이었다.
나는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다 물었다.
꼭지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혀로 굴려보자 꼭지가 축 늘어진 살 속에 함몰되어 작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자주 쓰지 않으면 퇴화의 길을 걷는 것처럼, 사람의 꼬리가 퇴화하여 없어진 것처럼 그 꼭지도 오랜 방치로 이미 함몰의 길로 들어선 게 아닐까..
나는 혀와 이빨로 꼭지를 끄집어냈다.
끄집어낸 꼭지는 말라 있었다.
오랫동안 가뭄이 지속되면 과일 꼭지가 말라버리듯 그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느끼는 감촉 감촉이 나를 애통하게 만들고 있었다.
반대편 젖무덤도 꼭지를 끄집어내고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았다.
엄마는 손으로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이 허리까지 내려와서는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고 다시 올라갔다.
내가 너무 커버려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엄마는 내 엉덩이를 토닥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몸을 당겨 올렸다.
입에 물었던 젖꼭지를 놓아야 했다.
코앞에 엄마의 이마가 닿을 때까지 몸을 올렸다.
그 만큼이면 엄마의 손이 마음껏 내 엉덩이를 토닥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손을 치우고 몸을 바로 해버렸다.
텅 빈 천장만 응시하고 계셨다.
밖에서 타닥거리는 모깃불도 이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풍지를 환하게 밝히던 불빛도 사그라지고 없었다.
몸을 다가 붙이려 했을 때 엄마는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엄마가 이제 자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도 몸을 바로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고.. 그 뒤척임에 엄마도 잠을 청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잠이 안 오니?"
"먼저 주무세요!"
"네가 뒤척이니 엄만들 잠이 오겠나.."
"미안해요."
"이리 온!"
내가 엄마에게 다가가기 전에 엄마가 내게로 다가왔다.
"이래주면 잠이 오겠니?"
뜻밖에도 엄마는 내 배 위에 손을 얹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다 넌닝 속으로 손을 넣어 맨 살을 쓰다듬었다.
엄마의 손은 따스했다.
"넌 어릴 때 배앓이를 자주 했지. 그래서 늘 이렇게 문질러 준 건데 나중엔 으레 이래줘야 잠을 잤지."
그 사실도 내 기억 속엔 사라지고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엄마에 대한 추억을 죄다 지워버렸을까?
일찍이 떠나시고 없는 분이지만 아버지도 호의적인 면은 남아있지 않다.
그저 눈꺼풀을 덮어쓰고라도 밤이 이슥하도록 약초를 다듬게 했던 기억.. 그리고 소꼴이며 나무를 해 오라 시키던 일.. 그런 일 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엄마라 하여 별 다를 게 없다.
집마다 키우던 소를 키우지 말자 떼를 쓰던 나였고, 결국 엄마는 내 성화에 못 이겨 소를 내다 팔았다.
그리고 밭일에 불려나가기 싫어 갖가지 핑계를 대던 나였다보니 맞기도 수없이 맞았다.
거기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중학교를 들어가면서였다.
그래서 어릴 때의 포근했던 기억들을 모두 덮어버렸을까?
"그러던 네가 엄마의 손 없이 객지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늘 걱정이었지. 그래서 가끔 다니러 올 때마다 이렇게 재워주려 했는데 넌 내 손을 거부하더군.."
"내가요?"
"그럼 누구겠니? 이 세상에 내 손이 필요한 사람이 너 말고 또 있니...?"
그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니, 기억나는 듯도 했다.
떨어져 혼자 자는 게 편하다고.. 그 정도의 얘기를 한 적은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사춘기여서 사타구니에 털도 나고 수염도 돋던 시기라 부끄러워서 그랬을 거다.
그러고 보면 이불을 따로 깔게 한 장본인은 나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자식(子息)이란 존재는 참으로 편리한 거다.
제 편한대로 생각하면 되고, 이기적이고 유리한 거만 기억하면 되니까..
"이거 때문이었니?"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의 손이 불쑥 나의 아랫둥치를 잡은 것이었다.
"이놈 맞지? 불룩해진 이놈이 어미를 배반하게 만든 거지..?"
나는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서 목젖이 타들어가고 있었고, 다리도 경직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