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천둥산 깊은 산골
내 고향은 충청도 천둥산(천등산) 줄기의 어느 깊은 산골이다.
충청도라 하니 산이 완만하다 생각할 테지만 우리 마을은 그게 아니다.
사방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해라야 하루 예닐곱 시간이 고작인 산중 중 산중 마을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을이라지만 기껏 여섯 집 뿐이고 그나마 사람이 사는 집은 내 어머니 집을 포함한 단 세 집뿐이다.
어른들의 말로는 한 때는 서른 여 집까지 되는 제법 큰 마을였다고 한다.
나의 어릴 적만 해도 십 여 집까지 남아 있었으나 하나 둘 도시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그 중 반이 폐가가 되어 세월의 풍우 앞에 무참히 무너져 이제 흔적조차 남지 않았고, 남아 있는 여섯 집도 그 반이 폐가가 되어 앞서 쓰러져간 전철을 밟고 있는 중이다.
남아 있는 세 집..
그 중 한 집은 나의 외갓집인데 병석에 누우신 외할머니와 아직 장가를 못 든 외삼촌이 함께 살고 계신다. 외할머니는 팔순이 넘은 노파로 장가를 못간 외삼촌이 마음에 걸려 저 세상으로 못 가겠다는 얘기를 종종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외삼촌은 나이 마흔이 가까운 데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까지 저니 누가 시집오려 할까? 더구나 이 심심 산골에...
나머지 한 집은 내 유일한 친구의 집인데 그 친구 지금 군에 가 있고 그네 엄마만 얼마 전 과부가 되어 홀로 살고 계신다.
그 친구 위로 형이 둘 있었으나 일찍이 도시로 나갔고, 여태 그 친구가 병석에 누워 있던 아버지와 엄마를 모시고 있다가 군에 입대했으나 얼마 전 병석에 그 아버지마저 돌아 가셔서 잠시 휴가를 나와 상을 치르고 다시 군으로 돌아갔다.
가파르고 거친 산세 탓일까, 이상하게도 이 마을엔 옛날부터 남자들의 수명이 유독 짧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들 떠나가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아버지도 내가 열 살 무렵 이유 없이 갑자기 횡사하여 엄마와 둘이서만 살아왔다.
하지만 내 교육 문제가 있어 중학시절부터는 여기서 오십여 리도 더 떨어진 시내 삼촌네 집에서 고등교육까지 마쳐야 했으므로 여태 엄마 혼자 여기서 살아온 셈이다.
나는 시내에서 직장까지 얻어 회사생활을 하다 얼마 전 입대 통지서를 받고 입대하는 날까지 집에서 쉬기 위하여 여기로 온 것이다.
농촌 특히 산골에서의 생활은 뻔하다.
산비탈을 일궈 짓는 밭농사와 약초를 캐어 시내에 갖다 팔아 그걸로 건건이 생활한다.
산골은 또 먹을 것과 돈 될 것을 만드는 낮은 짧고, 낮에 채취한 그걸 다듬는 밤은 길다.
엄마와 둘이서 호롱불 밑에 그 약초들을 다듬노라면 손톱이 찢어지기 일쑤고 손톱 밑은 항상 까만 때가 끼어있었다.
나는 그런 밤이 지독히도 싫었다.
그래서 시간이 있을 적마다 엄마에게 시내에 나가 살자고 했으나 그때마다 엄마는 거절했었다.
늙으신 어머니(외할머니)와 수족이 성치 못한 동생(외삼촌)을 버려 두고 나갈 수 없는 엄마의 심정을 그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아둔 돈과 퇴직금까지 합쳐 제법 큰 돈을 들고 엄마 앞에 내밀었을 때 엄마는 우셨다.
그리고 입영 통지서까지 보이자 더욱 우셨다.
아직 두 달이나 남은 이별이 벌써 서러워서 우는 걸까? 내민 돈에 서러움이 터진 걸까...
"엄마! 이 돈 두었다가 내가 제대하면 이 돈으로 시내에 전세 하나 얻어 같이 살아요?"
엄마는 아무 말을 않으시고 계속 우시기만 했다.
자세히 보니 엄마는 참으로 많이도 늙으셨다.
18살에 저 아랫마을에 사는 22살 아버지와 결혼했다고 했다.
이제 갓 마흔인 한창 때인데도 10년 이상을 청상이 되어 모진 세월을 홀로 살아왔으니 그럴 수밖에...
나도 눈 밑에 눈물이 고이는 걸 느끼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밖에는 언제부터 와 계셨는지 외삼촌께서 등을 돌리고 서 계셨다.
방에 들어가려다 엄마의 울음소리를 들으신 모양이었다.
"윤수 왔구나?"
"예, 곧 군에 가야 하거든요.."
"너마저 군에 가면 네 엄마는 어이 사누...!"
외삼촌이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사립문 밖으로 나와 버렸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고향의 밤 냄새..
그때나 지금이나 캄캄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머리 위에 주렁주렁 박힌 별들도 그대로였다.
요란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걸은 것 같았다.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내 발이 걸어가는 길은 어디쯤 돌멩이가 있고, 어디쯤 진흙탕이 있는지 아직도 다 외고 있다.
아직 여름이 다 가지 않아 어둠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도 여기저기 보였다.
어릴 적엔 저것들을 잡아 밀짚으로 만든 여치 집에다 넣고 밤길을 다닌 적도 있었다.
엄마의 통곡에 우울했던 내 마음은 금새 사라졌다.
그런데 저 앞 어디쯤일까..?
뒤늦게 피서 온 텐트 하나가 보이는 거였다.
어디쯤일까? 캄캄한 산세 지형을 훑고 방향으로 미루어 거긴 분명 옛날 폐가 하나가 엎어져 지금은 수풀만이 무성하던 그곳 같았다.
나는 조심조심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깊은 산골에도 여름이면 피서하러오는 외인들이 한 두 무리씩 늘어간다는 말을 들었다.
아마 그들도 그 중 하나이리라..
내 발이 그 텐트에 거의 다다랐을 때 텐트 안의 불이 꺼져 버렸다.
갑자기 눈앞 시야가 캄캄해져버린 그 현상은 잊고 있었던 내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그들이 텐트를 친 그곳은 내가 조그마할 때 그 집 남자가 술에 취해 아내와 아들을 낫으로 찔러 죽이고 야반도주 해버렸다는 사실이 이제야 생각난 것이다.
그리고 내 상상은 그들 모자 유령이 되살아나 거기에 텐트를 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옮겨갔다.
안 그렇다면 이 음산한 곳에 무리도 아닌 단 하나의 텐트를 치고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발을 돌려세우려 했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그 안에서 여자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음산한 소리.. 내 상상이 틀림이 없었다.
나의 두려움은 더욱 깊어져 갔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았다.
내가 겨우 몸을 돌리는 데 성공했을 때 등뒤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엄마, 제발 울지 마!! 이젠 못 올 거야. 그리고 내가 있잖아...!"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에게 낫으로 찔려 죽었다는 그 아들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나는 죽어라 뛰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엌으로 들어가서 냉수를 덜컥덜컥 마셨다.
등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야 왜 그러니?"
"아무 것도 아네요."
"아무 것도 아니긴.. 내 혈색이 하얀데??"
"밤 공기 마시며 한참 뛰었더니..."
"이 좁은 동네에 뛸 데가 어디 있다고....?"
"군에 가면 매일 뛰어야 한 대요! 그래서 연습한 거예요."
"자, 들어가서 자자!"
"네..."
외삼촌은 가시고 방안에 비단 이불이 깔려 있었다.
내가 시내에서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을 다니다 이곳으로 한번씩 올적마다 엄마가 깔아주는 이불이었다.
그 이불은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도 까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이불 속에 몸을 묻었으면서도 잠이 오질 않았다.
엄마는 평소에 덮던 이불을 덮고 누우셨다.
늘 그랬다. 당신은 늘 그게 편하다고 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몹시 뒤척였다.
"왜 잠이 오지 않니?"
"곧 잠이 오겠죠..."
그러나 좀처럼 잠이 찾아주지를 않았다.
"거 있잖아요? 저기 관동댁 뒷집.. 내 조그마할 때 넘어져 없어진 그 집...?"
"정능댁 말인가?"
"네, 그 집 아들과 엄마가 낫에 찔려 죽었다 했지요?"
"그게 언제 쩍 얘긴데... 그런데?"
"아니, 그냥요..."
"방금 거기까지 뛰어갔던?"
"네!"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집 뒤에서 부엉이 우는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엄마도 잠이 안 오는지 뒤척이고 있었다.
그러다 몸을 내 쪽으로 돌려 누우며 말문을 열었다.
"사실은.. 사실은 말이야.. 그 집 아들과 엄마는 도망친 거야! 그 집 어른의 술 주정이 워낙 심해서 야반도주 한 거지..."
"낫에 찔려 죽은 게 아니고요?"
"그 말은 술 주정하는 그 사람 정신 차리게 하려고 동네 사람들이 꾸민 이야기지. 그 남자 술 마셨다 하면 온 동네 휘젓고 다녔고, 그리곤 하루 이틀씩 깨어나지 못할 때도 있었거든...."
"그럼 그 어른은?"
"얼마 후 집에서 동사하여 죽었어!"
"천벌 받은 거군요.."
"글쎄...."
엄마는 다시 돌아누워 버렸다.
'글쎄..'란 말뜻의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건 솔직히 궁금증이었으나 일부러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겨우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을 때 내 얼굴 위로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문을 열고 아침상을 들여오고 있었다.
얼마나 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피곤하진 않아서 그대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 세수를 했다.
어느새 수건을 들고 따라 나와 있던 엄마가 수건을 건네며 물었다.
"오늘 뭐 할 거니?"
"왜요? 뭐 할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 네 보약이나 한 재 지어올까 하고..."
"나는 말짱하니까 엄마 거나 지어 드세요!"
엄마는 정말 아침을 먹자마자 한약 지으러간다고 집을 나섰다.
나는 엄마와 같이 먹지 않으면 나도 안 먹겠다고 떼를 썼지만 엄마는 내 것만 지어 올 게 뻔했다.
늘 그랬으니까..
나는 내가 없을 동안 집안에 남자가 해야 될 일을 외삼촌이 봐줄 테지만(여태까지 그래왔고) 그래도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손을 봤다.
두 시가 넘어 엄마가 차려두고 간 점심을 먹고서야 어젯밤 일의 정체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는데..
어젯밤 본 그 텐트가 환상이 아니었다.
바로 그 자리에 그때까지도 텐트가 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을 어슬렁거리며 그 속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뭘 하는지 동태를 살폈다.
안엔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그 엄마인 듯한 여자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텐트 구석에 커다란 가방이 둘 놓여 있었고 여자가 텐트 뒤쪽에 나와 라면을 끊이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그 곳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반대쪽 산으로 올라가서 거의 두 시간 여나 살폈는데 왠지 그들은 밖으로 잘 나오지를 않았다.
왜일까?
피서를 왔다면 거기보다 훨씬 시원한 산이나 계곡으로 가서 텐트를 쳤을 거고, 민가에 가까운 그곳에 텐트를 쳤다 하더라도 더위를 피해 계곡이나 나무 그늘 밑에서 낮 시간을 보낼텐데......??
나의 그 의문은 엄마가 돌아오고 저녁을 먹고 나서도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저녁을 먹기 전부터 화로에다 숯을 가득 채우고 그 위에다 한약 항아리를 올려놓았었다.
내가 밤 달리기를 하는 폼으로 집을 나설 때 벌써 그 항아리에서는 약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털썩털썩 달려나오는 내 호주머니엔 망원경이 들어 있었다.
낮에 그들의 동태를 살폈던 그 자리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산 모기가 헌혈을 재촉하며 왱왱거렸지만 내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들은 텐트 안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또 라면인 거 같았다.
피서를 왔다면 쌀을 준비했을 터인데..?
그리고 밑반찬들도 가져 왔을 터인데..? 그들 앞엔 달랑 손에 들린 라면 사발뿐이었다.
아무래도 피서 온 사람 같지 않았다.
어젯밤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와 아들이 아버지의 술 주정을 피해 야반도주했다는...
하필이면 그 비극의 땅에다 텐트를 치고...
이제 어둠이 깔려 완전히 캄캄해졌는데도 그들은 텐트 안에다 불을 밝히지 않았다.
모기들의 극성은 점점 심해지고 망원경의 렌즈를 아무리 당겨봐도 그들의 모습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산을 기어 내려와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살금살금 그 텐트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