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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59 휴가 (59/62)

00059  휴가  =========================================================================

                                                                  

 “왔다. 다들 준비하라고 전해줘.”

 호종이가 전화로 김지훈에게 말했다. 이제 그녀가 이곳에 들어왔으니 본격적으로 작전에 돌입할 시간이었다. 미리 동아리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이동했던 민기는 그녀와 다른 일행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술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술집 구석에 자리를 잡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민기가 실패하면 어떡하지?”

 “약을 넣는데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취하게는 만들어야지.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민기는 그녀에게 직접 약을 투입하거나 취하게 만들어서 화장실로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때문에 그가 부담을 느껴서 실패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더군다나 단체회식이라 그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약을 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 여자 술은 잘 마신다던?”

 “아무리 잘 마셔도 민기만큼은 아니겠지.”

 따라서 약을 타지 못할 경우에는 그녀를 최대한 취하게 만드는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민기는 동철이의 친구들 중에서 김준과 더불어 가장 술을 잘 먹는 걸로 소문난 주당이다. 그라면 저 멤버들 가운데서 가장 늦게까지 술에 취하지 않고 살아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 상태로 그녀에게 약을 먹이거나 아니면 바로 화장실로 보내기만 하면 게임은 끝이었다.

 “이거 지켜보니까 더 긴장되는 것 같네.”

 “한 잔 더 할래?”

 “아니, 됐어. 나는 마지막에 해야 될 일이 있잖아.”

 김준은 아까부터 심장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온 계획이었지만 막상 실행하려니까 긴장이 된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신들이 앞으로 해야 될 일들은 엄밀히 따지면 범죄가 아닌가. 새삼 범죄자들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된 그였다.

 “일단, 민기가 잘할 수 있도록 지켜보면서 기다려야겠지?”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지. 그래도 긴장은 풀면 안 돼. 혹시나 무슨 일이 발생하면 나서야 되는 게 우리의 임무니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설계자가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이들은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호종이와 김준을 이곳에 둔 것이다.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하는 역할도 이들의 임무이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인 셈이다.

 그렇게 그들은 민기와 김지영이 보이는 곳에 숨어서 상황을 관찰하며 때를 기다렸다.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들 무리는 점점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을 넘어서 하나둘씩 정신을 잃고 있었다. 아직 김지영과 민기는 쌩쌩한 상태였는데, 이제부터 민기가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민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덕분에 작전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그녀의 옆에 앉은 민기는 계속해서 틈을 노렸지만 어떤 여자후배가 아까부터 자신에게 애교를 부리며 계속 쳐다보는 게 아닌가. 그녀를 최대한 멀리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이 여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 덕택에 김지영에게 약을 먹일 타이밍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저놈 그렇게 여자, 여자 했었는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여자가 들러붙을게 뭐람. 저놈도 참 안됐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호종과 김준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했다. 지금 민기의 입장에서 자신에게 들러붙는 여자를 떼어놓고 약을 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 그들이 민기를 도와줘야만 했다.

 “어떻게 할까?”

 “우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될 것 같은데...네가 나서볼래?”

 “내가? 으음...좋아.”

 고민 끝에 김준이 민기의 구원투수 역할로 나서고자 했다. 시선을 끄는 방법이야 많기 때문에 특별한 걱정이 없었다. 다만, 한 번 나서면 두 번째 나서기가 어렵다는 점이 있었기에 이번 한 번으로 무조건 성공시키는 것이 좋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들이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해있었기에 그가 다가오는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민기만이 김준을 발견하고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짜식, 갈등이 많았구나. 빨리 도와줄 테니까, 임무나 성공시켜라.’

 김준의 방법은 간단했다. 그들 근처로 가서 넘어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물 컵을 들고서 말이다. 컵에 든 물이 민기를 유혹하는 여자에게 향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계획대로 그 여자의 근처로 이동한 후, 자연스럽게 넘어져서 그 여자의 얼굴과 옷에 물을 끼얹었다. 

 “꺄악!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이런...”

 “죄, 죄송합니다. 발이 걸려서...”

 “이게 뭐하는 겁니까!?”

 “지연아, 괜찮아?”

 김준이 넘어짐과 동시에 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두 곳으로 옮겨졌다. 김준과 지연이라 불리는 여자에게로 말이다. 그들은 김준에게 뭐라고도 하고, 지연이에게 괜찮냐고 묻는 등 한순간에 관심이 그쪽으로 쏠려버렸다. 그리고 김지영 역시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기야, 빨리. 내가 욕먹어가면서 만든 타이밍인데 성공시켜야지.’

 김준은 최대한 민기 쪽은 쳐다보지 않으면서 속으로만 민기가 성공하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그는 연신 자신이 물을 뿌린 여자에게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세탁비는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난데없이 물을 맞은 여자는 씩씩 거렸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말렸기에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김준은 그녀에게 연락처를 건넨 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민기는? 약 넣었어?”

 “잘했다, 인마. 성공했어.”

 자리로 돌아간 김준은 바로 호종이에게 성공여부를 물었다. 다행히 민기가 타이밍을 잡고 김지영의 술잔에 약을 넣는데 성공했다고 했다.

 “다행이네. 욕먹은 보람이 있군.”

 “이제 저년이 저 약을 먹고 화장실로만 들어가면 게임 끝이야.”

 잠깐의 위기가 있었지만 계획대로 잘 풀리게 된 그들은 다시 자리에서 상황을 지켜봤다. 지금의 상황을 화장실에 있는 영호에게 전해주자, 그가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긴장을 했다.

 “좋아, 먹는다, 먹어.”

 “옳지. 효과가 제법 빨리 오는 약이니까 금방 졸음이 몰려올 거야.”

 그녀가 술잔을 들이켰다. 그녀의 약을 탄 술을 먹는 모습을 보자 김준과 호종은 보이지 않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약을 탄 술을 마신 그녀는 15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약 기운이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그녀가 굉장히 피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오늘따라 이상하게 빨리 취하네...나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한 그녀는 잠을 깨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온다고 말했다. 민기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겉으로는 그녀를 걱정하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웃으며 얼른 다녀오라고 말했다. 이제 그녀가 화장실로 가면 게임은 끝이었다.

 하지만,

 “언니 저랑 같이 가요.”

 빌어먹을, 민기에게 꼬리를 치던 그 여자가 또 다시 훼방을 놓았다. 화장을 고치고 온다는 이유로 김지영이랑 같이 화장실로 가자는 것이었다. 

 “젠장, 어쩌지?”

 “어쩌긴, 출동해야지.”

 “누가?”

 “누구긴, 부탁한다.” 

 “나보고 또 가라고?”

 “나는 상황보고 해야 되니까.”

 또 다시 위급한 상황이 닥쳐오자, 김준과 호종은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고민했고, 또 다시 김준이 나서는 걸로 결정했다. 한 번 얼굴을 팔렸던 그였기에 이번에는 호종이가 나서야 된다고 생각했지만 호종은 막무가내로 김준보고 나서라고 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김준이 출동하게 되었다.

 ‘에휴, 나보고 또 어쩌라는 건지...일단, 얼굴에 철판 깔고 다시 한 번 해보자.’

 김준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그쪽으로 이동했다. 조금 전과는 다른 방법을 떠올려야 그나마 뭔가가 될 것 같았던 그는 그쪽으로 다가가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하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물 컵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똑같이 넘어지면서 물을 부었다. 이번에도 정확히 날아오른 물은 그녀의 얼굴과 옷에 떨어졌다.

 “꺄아아악! 뭐야!!!”

 “죄, 죄송합니다.”

 “시발! 이 사람이 미쳤나! 당신 일부로 이러는 거지!?”

 김준의 물에 또 다시 봉변을 당한 그녀가 폭발해버렸다. 그녀는 김준에게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른 손을 들어서 정확히 그의 뺨을 때렸다.

 짜아악!

 김준이 뺨을 맞는 동시에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옮겨졌다. 김준은 너무나도 억울했지만 이대로 그녀와 싸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최대한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사과했다.

 그리고 그사이, 엄청나게 몰려오는 졸음에 그 재미난 구경거리를 구경하고 있을 수 없었던 김지영이 혼자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이 상황을 지켜보던 호종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모든 사람들이 김준에게 시선이 쏠려있어서 화장실에 있는 영호가 그녀를 납치하기가 더욱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영호는 화장실에서 호종에게 그녀가 화장실로 들어간다는 문자를 받았다. 긴장된 표정의 그는 화장실 제일 끝에 칸에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내밀어 그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의 상태는 상당히 안 좋아보였다. 거의 반수면 상태나 다름없었다. 얼굴에 물을 열심히 뿌려 봐도 졸음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후, 그녀는 세면대를 붙잡고 그대로 잠에 빠졌다. 영호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화장실 안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을 했다.

 “지영아,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굉장히 어색하게 연기를 하면서 그는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 밖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사람들이 김준에게 시선이 꽂혀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호는 저 상황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계획대로 그녀를 데리고 술집 뒷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갔다.

 술집 밖으로 나가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김지영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자 창문이 열리면서 김지훈이 그를 맞이했다.

 “얼른 태워. 사람들 보기 전에.”

 김지훈의 말대로 그는 주변에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후, 차 문을 열고 안으로 김지영을 밀어 넣었다. 문을 닫자 김지훈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보는 사람도 없었고, CCTV에도 찍히지 않았다. 그들의 계획이 완벽히 성공한 순간이었다.

 “성공했어. 지금 이동 중이야. 준이 빨리 보내라.”

 [알았어. 여기 상황 종료되면 바로 보내줄게.]

 “상황? 무슨 상황?”

 [좀 일이 있어가지고. 아무튼 바로 보낼게.]

 운전하던 김지훈은 바로 호종에게 전화를 했다. 김준을 보내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김준은 현재 아직도 지연이라는 여자와 실랑이 중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면 일부로 그랬다는 거 아니야!”

 “정말로 실수였어요. 진짜 죄송해요. 제가 다 보상해드릴 테니까, 저 좀 보내주세요.”

 감준은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굴욕을 참아가면서 죄송하다고 했지만 폭발한 그녀는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는데! 세탁비 준다는 것도 뻥 아니야!?”

 “여기 명함 드릴게요. 제가 클리닉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불안하시면 전화해보세요.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하셔서 제 번호가 맞는지 확인하시고, 여기 클리닉 번호로 전화해서 제 이름을 대시면 될 거 아닙니까.”

 답답했던 김준은 그녀에게 클리닉에서 받은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김준의 명함을 받자 갑자기 잠잠해졌다. 클리닉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이 남자, 클리닉에서 일 한다고?’

 클리닉에서 일한다는 말은 그가 엘리트 중에 엘리트라는 뜻이었다. 클리닉은 실력이 없으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으며, 엄청난 연봉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자신한테 물을 뿌린 남자가 여기서 일한다니, 갑자기 그녀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여기서 일하는 거 맞아요?”

 그녀의 말투가 반말에서 존대로 바뀌었다. 명함을 확인하면서 그의 모습을 쭉 스캔한 그녀는 그가 생각이상으로 잘생기고 몸이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예, 정말이에요. 죄송합니다만, 제가 지금 진짜 바빠서 그런데, 그만 가보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만나서 제대로 사과하고 보상해드릴게요.”

 “흐음...알았어요. 그렇게 해요. 대신, 꼭 연락 주셔야 해요. 그냥 튀었다가는 죽을 줄 알아요.”

 김준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그녀는 바로 그를 용서해주었다. 그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녀는 겉으로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는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김준은 겨우 그녀에게서 풀려나 김지영이 납치된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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