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8 휴가 =========================================================================
“근데 우리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범죄이긴 하지만 동철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어.”
“그래, 다 동철이를 위해서라고. 김준 말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작전이야.”
“김준이라면...그래도 믿을만하니까. 그나저나 녀석은 언제 오는 거야?”
“으음...지금은 못온다고 했어. 저녁에 작전 실행하기 전에나 볼 수 있을 것 같아.”
“하아...이거 엄청 떨리네. 작전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야지. 일단, 우리가 해야 될 임무부터 성공시키자고. 나머지는 김준에게 맡겨야지.”
카페에 모인 김준의 친구들은 동철의 복수계획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이 바로 디데이, 복수를 하는 날이었다. 그들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보는 확실한 거지?”
“응, 오늘 저녁이 확실해. 다행히 그곳이라면 조금 더 가능성이 높을 거야.”
“약은 챙겼고?”
“응...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봐야지.”
“차랑 장소는?”
“모두 준비 끝났어. 가게에서만 찍히지 않으면 문제없을 거야.”
“좋아...일단, 우리한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군.”
그들은 김준이 자신들에게 계획을 얘기 해준 다음부터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역할분담을 해서 개인이 맡은 임무를 착실하게 수행해왔다.
“이런 짓을 해도 되는 걸까...정말 이 방법뿐일까?”
“이 방법이 아니라면 딱히 그년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사회는 점점 더 가진 자들의 세상이 되고 있어. 동철이 같은 남자는 그년에게는 한낱 장난감일 뿐이라고. 단지, 자신이 어떤 짓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뿐이야.”
“그래...우리는 사람이기에 그런 미친년한테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 방법이 아니라면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사람들을 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어차피 세계는 멸망해가고 있어. 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실제로 이 세계는 갈수록 가진 자들의 세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진정으로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폭동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변모 된지 오래되었고,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 사람들을 가두어 놓고 심판하고 있다. 오직 가진 자들만이 그 안에서 벗어나 떵떵거리며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고, 이제는 일반 사람들도 그러한 사실을 점점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다.
“좋아,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한 번 해보자고.”
“그래, 적어도 미안하다는 말, 그 말 한마디만 그년의 입에서 나오게 하자고.”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동철이 동영상 원본도 빼돌리면 좋고.”
“자, 자. 파이팅 한 번 하자.”
법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동철이를 성폭행한 그녀는 아무리 걸린다고 하더라도 법을 피해서 잘 빠져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그녀에게 보복을 했다는 것을 걸리면 그들은 빼도 박도 못하고 감옥행일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손을 모아 다짐을 했다. 꼭 이 복수를 성공시키자고 말이다.
*
*
*
-김준
어제 동생하고 누나하고 셋이서 섹스를 나누었던 김준은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을 벌인 그는 아침이 되자 뭔가 죄책감이 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이내 무시하고 샤워를 하면서 기분을 달랬다.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나가자 김유림이 혼자서 TV를 보고 있었다. 누나는 일 나가고 동생도 밖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유림은 개교기념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오늘 할 쉰다는 그녀의 말에 김준은 오늘만큼은 그녀를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동생하고 누나하고 그 일을 벌이느라 미처 김유림을 챙겨주지 못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그녀와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김유림과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둘은 영화도 보고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맛있는 식사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간중간 김준은 동철이의 복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녀와 보내는 시간이 상당히 즐거웠기에 잠시 어두운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렇게 데이트를 마치고 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아까부터 김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지? 미행당하는 기분인데...’
의심스러운 사람이 자신을 미행한다면 분명히 경호원들이 처리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한참 전부터 분명히 자신을 쫓아왔던 사람이었다. 도대체 저 자를 왜 막지 않는 것일까.
‘경호원들이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는 수밖에.’
신경이 쓰였던 김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자신을 따라오던 남자와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김준의 시선에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에게 가까이 걸어왔다.
“아까부터 왜 우리를 따라다니시는 거죠?”
김준은 김유림을 끌어당겨 자신의 뒤에 위치시킨 뒤 그를 상대했다. 그는 나쁘게 보이지는 않고, 오히려 선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속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모르는 법이라 더욱 조심해야한다. 더군다나 그의 체격이 상당했다. 겁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싸우게 된다면 여자가 있는 김준 쪽이 더 불리한 입장이었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있는데, 두 분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김준에게 사과를 했다. 기다렸다니, 김준은 그가 왜 자신을 기다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시죠? 누군데 저를...?”
“저는 OO에서 일하는 박성용이라고 합니다. 김준님이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그의 말에 김준은 또 한 번 놀랐다. 자신이 임신 능력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렇다면 이자는 클리닉에서 보낸 사람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경호원들이 그를 막지 않는 이유도 당연했다.
“클리닉에서 오신 건가요?”
“하하, 아니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O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OO이라면 우리나라의 10대 대기업 중 하나라 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무슨 볼일이란 말인가. 김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저희 회사에서는 김준님 같이 휴가 나온 임신 능력자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클리닉에서 이쪽으로 완전히 넘어오라는 뜻이 아니라 임시로, 단기로 일하실 분들을 찾고 있죠.”
그가 김준에게 명함과 함께 계약서를 건네주었다. 계약서와 명함을 보니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우선 당연히 김준님의 능력을 원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영상과 화보촬영이 전부입니다. 보수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드릴 예정입니다. 김준님의 경우 상급능력자시기에 상당한 액수가 지급되죠.”
“영상이랑 화보요?”
“예, 자세한 건 직접 오셔야 알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 생각이 있으시면 제 번호로 연락주세요.”
“...한 번 생각은 해보죠.”
그의 말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지만 아직 신뢰할 수는 없었다. 김준은 우선, 집에 가서 계약서를 천천히 살피면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예, 계약서를 보시면서 천천히 생각해주세요. 휴가가 끝나기 전에만 연락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뒤에 계신 아가씨 연락처를 좀 알 수 없을까요?”
“예!?”
그렇게 그와의 대화가 끝나나 싶었는데, 갑자기 그가 김유림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그녀의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아, 오해하시지는 마시고요. 단지, 얼굴도 예쁘시고, 몸매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혹시 연예인 쪽으로 일하실 생각이 없나 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여, 연예인이요?”
“네, 김준님도 아시겠지만 이 정도 외모면 상당히 준수한 편입니다. 아, 혹시 김준님 여자친구 분이신가요?”
“아, 아니요...그건 아니지만...”
그는 다짜고짜 김유림의 외모를 칭찬하며 연예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길거리 캐스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김유림은 어디하나 빠지지 않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키가 살짝 아쉬웠지만 모델이 아니라 연예인이라면 충분히 통할 수 있는 외모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녀의 의사가 중요했다. 때문에 김준은 섣불리 대답을 못하고 김유림의 눈치를 봤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대답을 했다.
“일단, 연락처는 드릴게요. 하지만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시지요?”
“김유림이요.”
“예쁜 이름이시군요. 연예인이 되셔도 특별히 고칠 필요는 없겠네요. 아무튼 유림양, 제가 다시 한 번 연락을 드릴 테니까 생각해보시고 결정해주세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김준과 그녀를 떠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는 그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야 될 문제를 안겨주었다. 김준과 김유림은 그거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집으로 향했다.
*
*
*
-술집, 김준
저녁시간이 되어서야 김준은 친구 동철이의 복수가 시작되는 장소인 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이미 그와 함께 복수를 할 친구들이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왔냐.”
“네가 오니까 이제 정말로 이 일을 해야 된다는 기분이 드네.”
“모든 건 너한테 달려있다, 인마.”
“에휴, 엄청 떨리네.”
그곳에 모인 사람은 김준을 포함해서 총 5명이었다. 김준은 친구들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현재까지 진행된 사항들을 확인했다.
“잠시 후면 그년이 이곳으로 올 거야. 그녀가 소속된 학교 동아리 회식이 있거든. 그리고 거기에는 민기도 들어가 있고.”
“그럼 약은 민기가 타는 건가?”
“응, 그렇겠지. 사실 약이 없어도 상관없긴 한데, 혹시나 해서 쓰는 거야. 몸에 부작용이 있거나 그런 약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년 걱정을 왜 해. 죽여도 시원찮을 년인데.”
“아무튼 그녀가 취기가 올라와서 화장실로 이동하면 그때부터는 영호가 처리할거야. 여기는 남녀공용이라서 미리 잠입할 수 있지. 다른 사람이 있어도 상관없어. 일행인척 하면 되니까.”
“만약에 기절하면?”
“기절해도 일행인척 하면서 데리고 나가면 아무도 의심 안할 거야. 그렇게 여기 뒷문으로 나가면 내가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 차에 태우면 상황은 끝이지.”
그들이 그렇게 긴장하던 작전은 이것이었다. 그녀, 김지영을 납치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그녀를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를 할 생각이었다. 이곳은 뒷문과 화장실 쪽에는 CCTV도 설치되어있지 않았기에 걸릴 위험도 없었다. 때문에 작전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들이 걸릴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와, 상당히 철저하게 준비했네.”
“4명 다 역할 분담을 했지. 나는 차랑 장소를, 민기는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고 약을 타는 역할, 호종이는 약을, 영호는 차까지 그녀를 데리고 오는 역할로 말이야. 그리고 여기에 마무리는 네가 하는 거지.”
김지훈이 차분한 목소리로 김준에게 말했다. 자신이 그냥 툭 하고 던진 아이디어였는데 이들은 그것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들이 동철이의 복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녀와 단둘이 있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그건 나한테 맡기라고. 다만, 아무리 그녀가 나쁘다고 해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이 조금 걸리네.”
“그래, 우리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약자가 강자를 심판하기에는 힘이 너무 부족하더라. 불법이 아니고서는 너무 힘들어. 당장 친구가 힘들어하는데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래...동철이만 생각하자. 좋아, 그녀는 언제 오지?”
“조금 있으면 올 거야. 그 전에 각자 자리로 이동하자고. 호종이랑 김준 둘이서 여기서 전체적인 상황을 확인할 거야. 어차피 김준 너도 마지막 일만 처리하면 되니까.”
그들은 그렇게 호종이와 김준을 남기고 각자 임무를 위해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술을 한잔 기울이면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렸고,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그녀와 일행이 술집으로 들어왔다. 드디어 그들의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