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휴가 =========================================================================
김준은 조심스럽게 골목 안으로 접근했다. 그들은 김준이 가까이 접근했는지도 모르고 작은 여자 아이를 괴롭히는데 열중했다.
‘쓰레기 같은 놈들. 어떻게 사람의 몸으로 저런 짓을 할 수가 있는 거지?’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여자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은 총 5명이었다. 다행히 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여자였다. 여자 아이는 이미 그들에게 폭행을 당했는지 머리가 헝클어져 있었으며, 얼굴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괴롭힘을 당한 아이의 모습을 보자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그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그가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김준을 벌레보듯이 쳐다봤다. 그들의 기세에 김준은 살짝 당황했지만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 다시 그들에게 말을 했다.
“애, 애를 그렇게...괴, 괴롭히면 안 되지!”
하지만 당황해버린 그는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의 모습에 그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이 병신같은 새끼는 또 뭐냐?”
“지가 무슨 왕자님이라도 되는 줄 아나본데?”
“시발, 생긴 건 존나 잘생겼네. 이 새끼 따먹을까?”
그들은 전혀 겁이 없었다. 김준보다 키도 훨씬 작은 여자들이 뭐가 이렇게 겁이 없는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태어나도 폭력을 휘두른 적은 거의 없었던 그는 잔뜩 긴장한 채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네들, 겨, 경찰에 신고한다!”
“하아, 시발 뭐 이런 좆같은 새끼가 다 있냐. 아저씨, 우리가 뭘 어쨌다고 신고하는데!?”
김준이 폰을 들고 경찰에 신고하는 척을 하자 그들 중 한 명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소리쳤다.
“한 아이를 집단으로 폭행하고 괴롭혔는데, 당연히 잘못이지!”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누가 봐도 괴롭히고 있었잖아!”
“야, 시발! 우리가 괴롭혔어? 시발년아 우리가 괴롭혔냐고!?”
그들 중 한 명이 괴롭히던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서 물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봤지? 시발,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지랄이야!”
김준은 그 모습에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그대로 손을 들어서 그들 중 한 명의 뺨을 내려쳤다.
짜아악!
강하게 힘이 실린 손은 그대로 적중했고, 뺨을 맞은 학생은 바닥에 뒹굴었다.
“시발, 미친놈이!”
한 명이 당하자, 그들은 겁도 없이 그에게 덤벼들었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던 경호원이 어느새 다가와 그들을 순식간에 제압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채 김준을 보고 두고보라며 욕을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CCTV도 없으니, 이들이 능력자를 먼저 위협한 것으로 처리될 겁니다.”
경호원이 그에게 말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에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물론 죄책감은 없었다. 다시 한 번 그 순간이 오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한 여자아이를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다. 키가 160도 안 되는 작은 여자아이는 괴롭혔던 아이들과 똑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일로 그녀가 더 큰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아저씨는...능력자란다. 능력자 알지? 사람들을 구해주는 능력자야. 전혀 나쁜 사람이 아니란다.”
“...알았어요.”
김준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이대로 그녀를 돌려보내고 일을 마무리 짓는다면 그녀에게는 더 큰 시련이 다가올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문제는 단순히 결론을 내린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는 적어도 휴가기간 만큼은 그녀를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어떻게 되니?”
“...17살이요.”
“고등학생이구나.”
“...네.”
그녀와 카페에 온 그는 선배애게 조금 늦는다는 문자를 보낸 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서 그녀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김준이 능력자라는 사실에 그녀는 어쩌면 그에게서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거짓 없이 사실만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유림’. 그녀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청소년이었다. 워낙 예쁜 외모의 그녀는 중학교 시절부터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는데 고등학교 들어와서 그것이 크게 번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여름, 그녀가 동아리 활동 중 우연히 알게 된 어떤 남자 선배와 밥을 먹는 일이 있었다. 문제는 그 일이 학교전체에 퍼지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선배는 학교에서 제일 유명한 킹카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녀를 시기한 여자들은 그녀를 왕따 시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녀를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의 돈이나 옷 등을 빼앗는 것은 기본이었고, 틈만 나면 그녀에게 물건을 훔치게 만들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그녀와 같은 왕따인 남자들을 시켜서 그녀를 강제로 애무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동영상을 찍어 유포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발, 아무리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그녀는 살기 위해서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 정부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사람 한 사람보다는 다수를 지원하는 정부의 정책에 소수의 사람들은 희생당하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집은 잘 사는 편이었지만 그녀의 가족들이 문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술만 마셨다면 그녀를 폭행했다. 술이 과하게 취할 경우 폭행 수준을 도를 넘기도 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집을 나간 지 오래였고, 그녀는 여러 번 가출을 시도하고자 했지만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었기에 그녀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가출을 해도 그녀의 아버지는 돈으로 얼마든지 그녀를 찾아내고는 했다. 그녀에게 도망갈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있었구나...많이 힘들었겠다...”
그녀는 김준이 자신의 이야기에 전부 공감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김준 역시 그녀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짐작했기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에 비하면 자신은 나름 괜찮은 삶을 살았지만 그 역시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는 매우 불행한 삶을 살았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녀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싶었다.
“...오빠도 많이 힘드셨겠네요.”
“그랬었지. 그래도 지금 내 삶은 많이 안정된 편이야. 너한테도 곧 있으면 그런 날이 올 거야.”
“...정말로 그럴까요? 저도...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그녀가 울먹이면서 김준을 바라보았다. 김준은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녀를 꼭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도와줄게.”
“...아저씨가요?”
“응, 정확히 어떻게 도와줘야 될지는 솔직히 모르겠어. 그렇지만 노력해볼게. 그러니까 너도 같이 노력해보자.”
“...노력만으로 될까요?”
“응?”
그는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저를 도와주고 싶다면, 제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제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만 죽는다면 그녀는 더 이상 집에서만큼은 안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어차피 빌어먹을 세상, 학교에는 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남자의 씨가 말라버린 이 세상에서 학력은 의미가 없었다. 아버지만 죽는다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평생 먹고 놀 수 있었다. 따라서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죽음뿐이었다.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범죄야.”
“저는 이미 수많은 범죄를 당하기도, 저지르기도 했다고요! 그런데 그러는 동안 경찰은 뭐했는데요? 이런 세상에 법이 무슨 소용인데요!”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국가가 개인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 개인에게 국가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그녀에게 더 이상 법의 존재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해서는 안 돼. 우리 그 문제는 조금 더 생각해보자.”
하지만 김준은 그녀와 달랐다. 그는 능력자다. 국가는 그의 직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우선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됐어요! 이럴 줄 알았어요! 능력자라면서요! 저를 도와주실 수 있다면서요! 다 똑같아!”
그렇지만 그녀는 김준에게 화를 내고는 카페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준은 그녀를 붙잡고자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돌아서버린 상태였다. 이대로 떠나버린 그녀가 걱정이 되었지만 붙잡아도 자신이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준은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 경호원님?”
“부르셨습니까?”
“한 분만 저 아이를 경호해주실 수 없을까요?”
“알겠습니다, 한 명을 붙이겠습니다.”
김준은 경호원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경호원 한 명을 붙이고자 했다. 그것이 그녀를 위해서 그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휴가기간 만큼은 그녀가 폭행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
*
*
-저녁, 김준
선배들과 만난 김준은 술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그는 낮에 있었던 일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기에 간단히 선배들과의 시간을 보내고 밖으로 나왔다.
“에휴, 오늘은 어쩐지 집에만 있고 싶더라니.”
밖으로 나온 그는 집에 가고자 했다. 오늘같이 기분이 찜찜한 날에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게 제일이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던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의 동생이었다.
‘알바 할 시간 아닌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그녀는 매우 짧은 치마를 입고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김준은 누나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가 유흥업소에 다닌다는 말이었다.
‘설마...’
예전과 달리 유흥업소는 여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아니었다. 동생이 그런 곳에 다니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는 무작정 동생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동생을 따라서 이동한 곳은 유흥업소가 모여있는 곳이었다. 밝게 빛나는 거리는 키크고 잘생기 남자들이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나와 있었다. 그들은 김준을 보면서 왜 남자새끼가 이곳에 있는지 짜증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애써 무시하며 계속해서 동생을 따라갔다.
동생은 많은 업소 가운데 하나에 들어갔다. 역시나 동생은 업소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동생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동생을 따라서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심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모아니면 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마사지’라고 써져있는 간판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가자 40대로 보이는 중년여성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야, 너는?”
“예? 아...저...그게...”
그녀의 물음에 김준은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아, 혹시 아까 전화했었던 알바? 2시간 전에 온다고 하더니, 왜 이렇게 늦었어?”
그녀는 김준을 알바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알바 한명이 아파서 이번 주 펑크를 내는 바람에 사람을 급히 모집해야 했던 그녀는 낮에 운 좋게도 금방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겠다던 놈이 약속시간이 2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김준이 그 알바생이라고 생각했다.
“예, 죄송합니다.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쫓겨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김준은 그녀의 뜻밖의 말에 기회라고 생각하고 거짓말을 했다.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동생을 여기서 끄집어낼 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었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오늘은 간단히 이것저것 배우기만 하고, 내일부터 일하는 걸로 하자. 급여는 아까 전화로 말해줬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김준은 졸지에 마시지방 알바생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