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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8 휴가 (28/62)

00028  휴가  =========================================================================

                                                                  

 “이, 임심?”

 “네, 선배 아이예요.”

 김준은 그녀의 말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클리닉에 들어가기 전날, 그녀와 술집 화장실에서 나누었던 섹스 한 번으로 그녀가 임신을 해버렸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수십 명을 임신시켰지만 실제로 자신의 애를 임신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래? 내...아이라고?”

 “섹스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요. 당연히 선배 애일 수밖에 없죠. 그러면 선배가 능력자라는 건가?”

 “아...그, 그렇구나. 내가...어떻게 해야 될까?”

 지금 김준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한 상태였다. 그녀는 고객이 아니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김준 때문에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상태였다. 이것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김준이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왜 그렇게 땀을 흘리고 그러세요?”

 “아, 아니 그러니까...미안해. 나 때문에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게 돼서...혹시 내가 책임져야 된다면 그렇게 할게.”

 그는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녀는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한 때 사랑했던 그녀였고, 그런 그녀가 자신 때문에 배가 나온 상황이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한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밀려왔다.

 “푸훗, 그것 때문에 그러셨구나. 제가 임신했다고 선배 발목 잡을까봐. 걱정 마세요, 그러지 않을게요. 처음에는 임신 어떤 건지도 잘 모르고, 배가 불러와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요.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행복해요.”

 그녀는 슬프면서도 기뻐 보이는 아이러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선배가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두렵고, 무섭고 떨리기도 하지만 저 혼자서 잘 이겨낼 수 있어요. 가족들도 도와주고 있고요. 들어보니까 요즘에는 임신하려면 돈도 엄청나게 많이 든다면서요? 와, 선배 금방 부자 되겠다. 저는 그냥, 선배가 저한테 비싸고 큰 선물 하나 줬다고 생각할게요. 고마워요, 선배.”

 그녀는 마지막에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김준은 그런 그녀를 보니까 제 자신이 한심스럽고 싫어졌다. 그녀를 당장이라고 붙잡고 무조건 책임지겠다고 말해야 되지만 자꾸만 겁이 났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된다는 사실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렇게 김준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그녀가 그에게 안겨왔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임신한 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 순간, 결심을 내렸다.

 “우리, 결혼하자.”

 “...네?”

 “결혼, 결혼하자고, 우리.”

 그는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말했다. 그녀의 배 안에 자신의 아이가 있다는 사실에 그는 도저히 그녀를 혼자 내버려둘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은 없었지만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생각했다.

 “...고마워요, 그런 말 해줘서. 근데...안 될 것 같아요, 선배.”

 하지만 그녀는 그의 프러포즈를 거절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럴까, 아님 반지가 없어서 그럴까.

 “선배는 정말 좋은 남자이고, 앞으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좋은 남편은 될 수 없잖아요. 선배는...능력자니까요.”

 아니, 그녀가 김준을 거절한 이유는 그의 능력 때문이었다. 임신 능력자인 김준은 계속해서 클리닉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것은 즉, 계속해서 다른 여자들과 섹스를 해야만 된다는 뜻이었다. 아내가 남편이 계속해서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 있겠나.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김준은 포기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면 내가...”

 김준은 클리닉에 다니지 않고 그녀를 돌보겠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내 다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집은 아직도 갚지 못한 빚이 많았다. 그가 만약 클리닉 일을 그만두게 된다면 그는 빚을 갚기 위해서 어차피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된다면 임신한 그녀와 곧 태어날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된다는 것은 변함없었다.

 “걱정하지 말래도요. 저 학교도 이제 그만둘 거예요. 애가 태어나면 정부에서 이것저것 많은 지원을 해주더라고요. 애가 클 때까지는 부모님 집에 내려가서 지내려고요.”

 정부는 임신을 한 여자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다. 애가 태어나면 1억 원의 지원금과 함께 매달 분유, 약, 옷 등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물품들을 지원해주었다. 그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돌보면서 새로운 일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 내려가는데?”

 “3일 뒤에요.”

 “...그렇구나. 내가 따라가야 되는데, 정말 미안해.”

 “에이, 미안해하지 말래도. 그럼, 선배. 부탁하나만 해도 될까요?”

 “응, 어떤 거든 말만해. 해줄 수 있는 거, 전부 다 해줄게.”

 그녀가 그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고 말했다. 김준은 그녀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었다. 

 “저랑 섹스 한 번만 해주실 수 있으세요?”

 “...응?”

 “애 낳는 거, 키우는 거 다 혼자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것만큼은 혼자서 해결하기가 어렵네요. 배가 이렇게 나와서 남자 꼬시기도 어렵고, 헤헤. 부탁드릴게요, 한 번만 해줘요.”

 그녀는 그날 밤 김준과의 섹스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술에 잔뜩 취한 상태라서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겪었던 감정 중에 가장 절정에 도달했던 날이라는 것은 확실히 기억했다.

 그날 이후, 그 기분은 다시 느끼고 싶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위를 시도하고, 남자에게 애무를 당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분을 다시 재현하기는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배가 많이 나와서 남자들이 그녀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으며, 배 때문에 자위하기도 어려워지면서 성욕을 풀지 못해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김준과의 섹스를 통해서 그동안 쌓여왔던 성욕만큼은 확실히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임신했는데, 괜찮을까?”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좀 그렇고, 모레 어때요?”

 “나야 괜찮긴 한데, 걱정이 돼서.” “그날 문자로 주소 찍어줄 테니까, 저희 집으로 오세요. 저기, 동철 선배 온다. 그럼 저는 이만 먼저 가볼게요.”

 저 멀리 김준의 절친인 동철과 다른 친구들이 오고 있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김준에게 인사를 하고 학교로 들어갔다. 김준은 커다란 배를 두 손으로 감싸면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냐? 짜식, 여전히 잘생겼네.”

 동철과 친구들이 김준을 둘러싸면서 각자 인사말을 건넸다. 김준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봤지만 조금 전 그녀와의 만남 때문인지 계속해서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방금 희진이 아니었냐?”

 “야, 걔는 돈이 어디서 난 건지 임신을 했더라고. 그렇게 집이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그들은 김준이 능력자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녀의 애가 김준의 애라는 것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됐고, 얼른 술이나 마시러 가자. 오랜만에 실컷 마셔야지.”

 그렇게 그들과 함께 김준은 술집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복잡한 기분이 들 때는 역시 술이 약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클리닉에서 일하면서 건강 때문에 제대로 술을 마시지 못했었다. 오늘만큼은 죽어라 달리고자 했다.

*

*

*

 “정말? 새엄마가 생겼다고?”

 술집에 도착한 그들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술에 취하자, 문자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김준에게 꺼내놓기 시작했다.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친구들의 이야기 중에서 2가지의 큰 이슈가 있었다.

 첫 번째는 그의 친구인 지훈이의 집안일이었다. 지훈이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1년 전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면서 집에 혼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 살던 집에 갑작스럽게 웬 여자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지훈이네 집에 들어와서는 뜬금없이 이제부터 자신이 엄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밖에서 지훈이 몰래 여자를 만났던 것이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나도 처음에는 못 믿었지. 아버지하고는 딱 1년 정도 만났다고 하더라고. 그러다가 헤어지게 되었고,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하고 연락을 했었대.”

 “너무 막장 아니냐?”

 지훈이의 아버지하고 헤어진 새엄마는 홀로 딸을 키우면서 생활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아버지가 자신이 죽으면 지훈이를 챙겨달라고 부탁해서 마지못해 온 것이라고 말했다. 

 지훈은 그 이야기를 믿기 어려웠지만 그녀가 아버지의 자필 편지와 영상 등을 증거로 내밀자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훈은 처음 보는 여자 두 명과 한 집에서 가족으로 살게 된 것이었다. 

 “딸은 몇 살인데?”

 “이제 20살이라던가?”

 “예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지금 미칠 것 같다고.”

 지훈에게 가장 큰 문제는 새엄마하고의 관계였다. 애써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서로 마음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지훈은 그녀를 엄마로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혹시 재산 빼돌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김준과 친구들은 분명히 새엄마가 재산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에이, 설마.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어. 성격도 얼마나 좋은데. 물론, 그것 때문에 더 짜증나지만.”

 지훈은 새엄마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신뢰를 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그저 관계만 좋아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리가 도와주기가 조금 애매하네.”

 “뭐, 친구들 데리고 집으로 놀러오란 말은 하셨는데, 어떻게 그러냐. 물론 너네들은 내 모든 걸 이해해주는 녀석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분위기에 아는 사람을 어떻게 집으로 데리고 와.”

 “그렇긴 하지. 나 같으면 너네들한테도 말하기 어려웠을 거야.”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어쨌든 내 문제는 별거 아니야.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다고.”

 그렇게 지훈이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이야기, 이 이야기는 지훈이의 일하고는 비교도 안 될 큰일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겪은 참담했을 경험을 떠올리자, 김준은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김지영? 우리 학교 퀸카 아니야?”

 바로 김지영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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