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임신 클리닉 =========================================================================
김준의 등급은 상급이었다. 생각보다 높은 등급을 받게되자 김준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적에 축구선수로 이름을 좀 날리셨더라고요?”
“아, 네.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를 했습니다.”
김준은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선수로 인생을 살았었다. 그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는 U-15,17 청소년 월드컵에서 모두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부상으로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을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김준님은 학벌이나 지적능력은 평균보다 살짝 부족한 정도이지만, 신체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고 외모 역시 준수한 편이십니다. 키가 조금 아쉽고, 흡연에 음주까지 하신다는 게 문제가 되었지만 특별한 질병도 없고, 유전적 질환도 없어시더군요. 그렇기에 좋은 등급을 받으신 겁니다.”
김준은 뭔가 좋으면서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원래는 최상급까지도 가능하시지만 한 가지가 부족해서 상급으로 낮춰진 겁니다.”
“어떤 게 말입니까?”
그는 원래는 김준의 등급이 최상급이라고 말했다. 등급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신체적인 능력과 지적능력, 그리고 외모와 전문가적 능력이었는데, 그 중 세 부분에서 매우 뛰어난 평가를 받았기에 최상급에 올라갈 자질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의 정자가 문제였다. 분명히 김세진이 채취한 정자에서는 정자의 수나 운동성 등에서 엄청나게 높은 수치가 기록되었는데, 방금 전에 채취한 정자에서는 평범한 수치가 나왔던 것이다.
“어차피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내시면서 계속해서 검사가 이루어지니까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평가가 이루어질 겁니다.”
이상한 결과에 그는 김준에게서 정자를 다시 한 번 채취할까 생각했지만 어차피 김준이 바로 투입될 것이 아니고, 또 처음 투입된 능력자는 일단 교육과정을 거쳐야 되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결정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2주라니요? 그게 무슨 말이죠?”
김준 역시 등급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가 말한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내라는 말이 걸렸다.
“말씀 못 들으셨습니까? 김준님은 모레부터 이곳에서 2주 동안 지내시게 될 겁니다. 뭐, 그 이후에도 집이 멀기 때문에 계속 이곳에서 지내시겠지만, 2주 동안은 외출 같은 것도 금지됩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통보에 김준은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것도 갑작스러운데 2주 동안 이곳에서 지내야 된다니,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대신 오늘은 검사가 끝나고 집에 가셔도 됩니다. 집에는 이미 연락이 갔으니까 따로 말씀드릴 필요는 없으실 거예요.”
그는 그 말을 끝으로 김준과의 상담을 끝냈다. 김준은 이 모든 일이 꿈만 같아서 자신의 허벅지를 강하게 꼬집어 봤지만 역시나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집에 가야겠어, 너무 피곤해.’
오랜 검사 때문인지 아니면 두 번의 섹스와 네 번의 사정 때문인지 김준은 엄청난 피로감을 느꼈다. 그는 클리닉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건물 밖을 나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그에게 배정된 경호원 두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오늘부터 김준님을 담당하게 될 경호원들입니다. 지금부터는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그들은 김준한테 90도로 인사를 하더니 고급스러워 보이는 외제차를 가지고와서 그를 뒷자리에 태웠다. 생각지도 못한 대접에 그는 당황하면서 경호원들의 말에 따랐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제 집을 알고 계십니까?”
“김준님의 관한 모든 자료는 모두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김준님을 경호하게 될 테니, 시키실 일 있으시면 편하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경호원 둘은 앞자리에 앉아서 차에 시동을 걸고 운전을 했다. 김준이 계약서를 작성한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파악하고 경호원까지 붙이다니, 정말이지 정부가 직접 관여하는 기관다웠다.
“댁에 도착하시면 말씀드릴 테니, 편히 계셔도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김준은 어색하고 불편한 자세로 뒷자리에 앉은 채 5시간이 지나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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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집에서는 김준의 아버지와 여동생, 누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클리닉으로부터 김준에 대한 연락을 받은 상태였다. 처음에 그들은 그 전화가 보이스 피싱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믿지 않았다. 김준과 그들 가족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말하자, 그제야 김준이 능력자가 되었음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김준이 능력자가 되었어도 그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통 능력자도 아니고, 임신을 시키는 능력자라니, 이 무슨 황당무계한 소리인가 싶었다. 그나마 김준의 아버지만이 김준이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며 기뻐했다.
김준이 집에 도착하자 가족들은 그를 기쁘게 반겨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김준이 능력자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다들 왜 그래?”
김준은 가족들의 그런 시선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도 왠지 가족들을 상대하기가 민망한 기분이 들었기에 그가 먼저 가족들에게 말을 걸고자 했다.
“너 정말 능력자가 된 거야?”
김준의 누나가 말했다.
“응...그런가봐. 근데 별거는 아니야. 그냥, 임신을 시킬 수 있다나, 뭐라나, 하하.”
김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누나의 질문에 답했다.
“임신? 어떻게 임신 시키는 건데?”
“하영아! 오빠 피곤하니까 그만 물어봐!”
김준의 동생이 해맑게 웃으며 임신에 대해서 물어보자, 아버지가 야단을 쳤다. 김준의 동생과 누나 역시 임신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상태였지만 아버지만큼은 임신이 어떤 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이, 아빠는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아버지의 야단에 그녀는 입술을 삐죽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하은아, 준이랑 대화 좀 하게 자리 좀 비켜주겠니?”
하영이가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김준의 아버지는 김준의 누나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눈치가 빠른 그녀는 말없이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김준과 아버지만이 남게 되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그래, 우선 자리에 앉거라.”
김준이 의자에 앉아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굉장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말로 능력자가 된 것이냐?”
“예, 그런 것 같아요.”
“그렇군. 그래, 넌 임신이라는 게 뭔지는 알고?”
“오늘 알았어요.”
김준은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 중 섹스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말해주었다. 아버지는 그의 말을 듣더니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감으셨다. 그리고 이내 눈을 뜨시고 김준을 보며 말을 했다.
“원래는 남자가 여자를 임신시킨다는 것은 그 여자를 책임져야 된다는 뜻이란다. 아무리 세상이 이 모양이라도 사람이 해야 될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될 행동이 있는 법이야. 솔직히 나는 네가 이 일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단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 빚을 갚을 수 있어요. 대가로 받는 돈이 어마어마하다고요, 아버지.”
김준의 아버지는 김준이 이 일을 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준은 그럴 수 없었다. 이일은 집안의 빚을 청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란다.”
“어차피 이 세상은 멸망해가고 있어요. 제가 희생해서 다른 사람들을 구원해준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
김준의 말에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눈을 감고 생각했다. 사실, 김준의 말은 클리닉에서 자신에게 각종 검사를 실시하던 남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문제가 있다고 여겼던 그였지만 생각해보니까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네가 정 그렇게 하겠다면 내 허락하마. 단, 한 가지만 알아둬라.”
“무엇을 말이죠?”
“아버지가 되는 일이란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중에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아버지는 그 말을 김준에게 남기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남게 된 김준은 아버지의 말을 머릿속에 되뇌면서 자신의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자 했다.
“오빠, 나 들어가도 돼?”
김준이 침대에 누워서 오늘 하루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던 그때, 그의 동생이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응, 들어와.”
김준이 들어오라고 하자 동생이 문을 열어서 문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뭐해, 안 들어오고?”
“오빠, 정말 능력자 맞아?”
“그렇다니까.”
그녀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침대로 걸어와 살짝 걸터앉았다.
“나 궁금해서 왔어.”
그리고는 고개를 살며시 숙인 채 애꿎은 손가락들을 꼼지락 거리며 말을 했다.
“뭐가?”
“사실, 전에 친구한테 들었거든. 능력자 중에서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고.”
“엥? 그거 국가 기밀사항일 텐데.”
그녀는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전부터 알고 있었다. 임신클리닉의 존재라면 모를까 능력자의 존재는 국가에서 비밀로 하는 사항이기에 그녀가 그것을 아고 있다는 것이 김준은 놀랍다고 생각되었다.
“친구 부모님이 국회의원이시거든.”
국의의원정도라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가족이라면 임신 클리닉을 이용할 수 있을 자격이 주어지니 말이다.
“그래서?”
“그게 듣기로는 임신 시킬 수 있는 능력자들은 거기가 커진다고 하던데, 맞아?”
그녀는 생각보다 능력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김준은 그녀가 왜 이렇게 능력자에 대해서 궁금해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응, 그렇긴 하지. 근데 그게 왜?”
“나...보여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