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장. 그날 밤
2013년 3월 30일 19:30.
“커, 취한다. 저는 담배 좀 피고 오겠습니다.”
“어? 형님. 같이 가시죠?”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상길을 보더니 석현이 잽싸게 따라 일어섰다. 바깥 풍경을 신경 쓴 발코니는 두 남자가 흡연하기에도 충분할 만큼 넓었다.
상길은 석현이 따라 나오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일단 지금까지는 잘 된 것 같죠?”
석현이 옆에서 나란히 담뱃불을 붙이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던 상길은 깊게 한 모금 빨아 허공에 여유 있게 뱉으며 물었다.
“먹였냐?”
“예. 아까 정혁이가 무사히 수면제 먹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틈 보다가 바로 작업했습니다. 한명 한명 마시는 것 다 확인했고요. 혜민이랑 수연이는 반 알씩 먹였고, 윤정이 년은 한 알 다 먹였습니다. 셋 다 10분쯤 되었습니다.”
“자식, 반쪽씩만 먹이라니까. 하기는 윤정이 년은 좀 해롱대는 것이 도움 될 수도 있겠네. 잘했다. 근데 그건 왜 들고 나왔냐?”
석현의 손에는 맥주잔이 들려 있었다.
상길의 말에 빙그레 웃음을 보이던 석현은 이내 주머니에서 알약을 꺼내 보였다.
“이제 저도 먹으려고요.”
“낄낄. 꼼꼼한 자식. 나도 한 모금 하자.”
“예. 건승하십쇼, 형님.”
석현이 맥주잔을 내밀자 상길은 잊고 있었던 약을 꺼내 입안에 넘겼다. 나란히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약을 삼킨 그들은 서로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자리로 돌아와 막 앉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눈에 졸음을 참기 어려워하는 선우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빠, 졸려요?”
“어, 조금 그러네.”
걱정스러운 혜민의 목소리에도 대답은 건성이었다. 몇 차례 정신을 차려보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이내 등 뒤에 있던 소파에 기대는 것 같더니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2013년 3월 30일 20:00.
‘아, 안되는데…….’
윤정의 눈에도 그런 선우가 들어왔다.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고 있음을 느꼈지만 어째서인지 크게 아쉽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몸이 평소와 같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이 들었지만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피곤함은 전혀 느껴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마치 기지개를 피듯이 등골부터 발끝까지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그럴 때마다 찌르르하고 울리며 약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기분 좋은 소름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기분.
윤정의 눈에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혜민의 얼굴이 들어왔다. 선한 눈매와, 섹시함보다는 귀염성을 느끼게 하는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 애교스럽게 솟은 콧날, 가늘지만 도톰하게 자리 잡은 입술, 너무나 작고 동글동글해서 항상 내심 부러워했던 얼굴선.
‘섹스하고 싶어…….’
윤정은 술자리가 끝나고 침대에 누우면 반드시 그녀를 괴롭혀 주리라 생각했다. 여행지에서의 술자리가 이렇게 기분 좋을 줄 알았다면 진작 자주 기회를 갖는 건데, 라는 생각과 조만간에 가족끼리 넷이서 다시 한 번 계획을 잡아야겠다는 생각도.
“윤정씨, 윤정씨?”
한참을 딴생각에 잠겨 있던 윤정이 고개를 들어보니, 상길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다들 과음하신 거 같은데, 술은 이쯤하고 기념도 할 겸 가벼운 여흥도 즐길 겸 종목을 바꿔볼까요?”
“무슨……?”
“제가 할 줄 아는 게 셔터 누르는 일 뿐이라……. 업무용 사진은 지겹도록 찍으셨으니, 기념하는 의미에서 제가 서비스로 개인소장용 사진을 찍어드리겠습니다. 세분 다요.”
“사진을 또요?”
“예. 그런 일상복 사진 말고, 조금 섹시컨셉으로 란제리룩이라던가, 세미누드라던가, 올 누드라던가. 뭐 개인 소장용이니 선택은 각자 하시는 거지만요. 요즘 젊은 여성분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서 많이들 찍으시는 추세입니다.”
흐려진 눈의 초점을 맞추느라 애를 쓰던 혜민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술자리를 정리하자는 상길의 말을 반겼던 혜민이었다.
그러나 상길의 말은 자신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저, 저희는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선우오빠도 취한 것 같고, 저희도 많이 마신 것 같으니 기사님 말씀대로 회식은 이만 정리하는 게 좋겠어요.”
혜민의 말과는 달리 어느새 슬그머니 사진기까지 챙겨들고 일어선 상길은 혜민을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에이, 그러지 말고 찍어보세요. 혜민씨 몸매가 아까운데. 혹시 저희가 나쁜 사람들같이 보여서 그런 것은 아니시죠? 이틀 촬영하면서 보셔서 충분히 느끼셨을 거 같은데……. 윤정씨? 윤정씨도 싫으세요? 몸매라면 윤정씨도 뒤지지 않잖아요?”
상길은 능글능글 웃으며 슬그머니 윤정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윤정의 귀 가까이에서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윤정씨? 약속은 지켜주셔야 하잖아요?”
‘약속…….’
윤정은 상길이 말한 의미가 무엇인지 떠올랐다.
원래는 선우 앞에서 벌어졌어야 의미가 있는 일이었지만, 선우가 잠들어버린 지금도 약속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윤정의 몸 안을 맴돌고 있는 뜨거운 피 때문에 판단이 흐려졌을지도.
“뭐, 어때? 란제리정도야. 너희들 비키니도 실컷 찍었잖아? 어차피 개인 소장용이라고 하니까 기분 삼아 찍어봐~.”
“언니!”
“싫어? 싫으면 내가 먼저 찍어야지~.”
혜민을 살짝 놀리듯이 말을 던진 윤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시스트하겠다는 약속도 약속이었고, 촬영을 거듭하는 수연과 혜민을 보면서 설명하기 힘든 여자로서의 경쟁심도 느꼈던 윤정이었다.
게다가 술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을 맴돌고 있는 기분 탓인지, 옅어진 부끄러움조차 야릇한 흥분감으로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윤정은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혜민의 시선을 받으며, 몽롱하게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수연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블라우스 단추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윤정의 앞섬이 열렸고, 이어서 윤정의 손길에 의해 검은색 치마가 흘러내리며 팬티가 드러났다.
이미 상길 일행들의 눈빛에 이전의 신사적인 모습은 없었지만, 윤정에게도 그것을 판단할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혜민과 수연에게 미소까지 보이며 겉옷을 모두 벗은 윤정은 바이올렛 빛깔의 브라와 팬티, 셋 중 가장 하얀 피부 톤으로 인해 그마저도 진해보이는 커피색 밴드스타킹만이 남아있었다.
“예쁘게 찍어주세요~.”
‘술 때문인가? 언니가 이상해. 아니면 정말로 이게 보통인 거야?’
분위기 탓인지 윤정의 속옷차림은 더욱 색기가 있어보였고, 그를 지켜보는 혜민은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아랫배가 따뜻하면서 골반과 꼬리뼈를 타고 쭈뼛쭈뼛 올라오는 느낌이 마치 아주 가벼운 오르가즘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런 기분이라니, 있을 수 없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윤정의 말에도 묘한 설득력이 느껴졌다.
몇 번인가 인터넷에서 그런 얘기를 본 것도 같았다. 스튜디오에서 젊은 부부나 여자들이 기념으로 남길만한 사진을 찍기도 한다는 얘기들. 윤정의 말처럼 단순히 노출만 따진다면 비키니 촬영과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쪽 벽에 서서 자리를 잡은 윤정은 이리저리 자세를 취하며 자못 과감한 포즈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였다.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상길의 뒤편에서 석현과 정혁의 가벼운 환호성이 연달아 이어졌고, 달아오른 분위기는 흡사 텐션이 적당히 오른 파티 분위기와 같았다.
뒤로 돌아 히프를 살짝 내밀며 취해진 도발적인 포즈와, 입술에 손을 올리며 허리를 살짝 숙이는 과장된 몸짓, 바닥에 앉아 한쪽 무릎을 세우고 밴드스타킹을 당겨 올리는 포즈가 연이어졌다.
자세 자세마다, 그리고 다음 포즈를 위해 움직일 때마다, 브라위로 보이는 가슴 둔덕이 부드럽게 물결쳤고, 다리 사이의 깊은 음영이 슬쩍슬쩍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지켜보는 혜민은 달아오르는 갈증을 느끼며 연신 맥주잔을 기울였지만 몸 안을 맴도는 야릇한 기분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는 것만 같았다. 슬그머니 수연의 눈치를 살피니, 그녀도 살짝 상기된 표정과 몽롱한 눈빛으로 멍하게 윤정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윤정에게 다가간 상길이 귓속말을 했고, 윤정이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더니, 이윽고 손을 뒤로 돌려 브라 후크를 풀었다. 이어서 어깨에 걸쳐진 브라 아래로 팔을 두르며 가슴을 살짝 가렸고, 다른 한손에 의해 천천히 브라를 걷어냈다.
상길은 그 모든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듯 쉬지 않고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잠시 주춤하던 석현과 정혁도 휘파람을 불러댔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려 노력하는 혜민의 눈앞에 셔터를 누르고 있는 상길의 트레이닝복 하의 앞섬이 크게 부풀어 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가슴을 가리고 있던 윤정의 팔이 머뭇거림을 반복하며 천천히 내려왔고, 하얗고 풍성하게 솟아있는 가슴과 선정적인 느낌의 유두가 완전히 드러났다.
상길이 연신 셔터를 눌러댔지만, 윤정의 포즈는 이전만큼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저, 정말로, 그냥 사진만 찍는 거죠? 사진도 저희에게 다 주실 거죠?”
왠지 걱정스러운 마음에 혜민이 석현에게 물었다. 그러자 석현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미소와 함께 지어보이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술자리가 즐겁다보니 분위기야 이렇지만 사실 스튜디오에서 이런 사진 많이 찍어봤습니다. 솔직히 세분이 다 너무 예쁘셔서 저희 눈이 즐거운 것은 숨기지 않을게요. 하지만 사진은 혹시라도 걱정되실지 모르니 상길 형님께 말씀드려서 메모리까지 통째로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공교롭게도, 혜민과 석현의 문답에 반응을 보인 것은 윤정이었다.
석현의 목소리에 점차 포즈가 자연스러워졌고 대담해지고 있었다.
“네네, 윤정씨 아주 좋습니다. 자연스럽게 가슴을 받치고, 좋아요.”
상길의 말투는 여지없이 촬영을 할 때의 그것이었지만, 혜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특히 윤정의 모습이 이상했다. 브라를 벗을 때만큼은 잠깐 망설이는 듯 보였지만, 아무리 봐도 어딘가 점점 달아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무리 술 때문이라고 해도, 평소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을 쓸어올리며 포즈를 잡았던 윤정이, 이번에는 한손가락으로 유두를 살살 돌리며 다른 손을 입술로 가져갔다. 포즈였지만 포즈만으로 보기에는 정말 선정적인 모습이었다. 좋게 말하면 섹시하고, 나쁘게 말하면 포르노 화보 같은.
‘그런가? 모르는 사람 앞이라는 기준은 내 생각이 잘못된 걸까? 하기야 찍는 사람이 사진기사라면 모르는 사람인 것이 당연할지도 몰라. 어쩌면 다시 볼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사진도 찍을 수 있는 걸지도.’
끊임없이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혜민의 눈앞에서, 이번에는 윤정이 팬티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밴드스타킹은 그대로 두고서 팬티를 끌어내리는 윤정의 눈빛은 초점이 흐려보였고, 이제는 부끄러워하는 기색마저 느낄 수 없었다.
“와, 언니, 예쁘다…….”
몽롱한 표정으로 윤정을 바라보고 있던 수연이 중얼거렸다. 마치 이 자리에서 혜민만이 혼자 비뚤어진 생각을 갖고 있다는 듯이.
혜민이 다시 시선을 돌린 그곳에는, 수연의 말대로 밴드스타킹만을 입고 있는 윤정의 아름다운 나신이 있었다. 선천적으로 멜라닌을 적게 타고나 혜민도 가끔 부러워하던 새하얗고 핑크빛이 감도는 피부와, 크고 보기 좋게 솟아있는 머쉬멜로우 같은 느낌의 하얀 가슴과 예쁜 연한 빛이 감도는 유두, 아름다운 골반선과 상대적으로 잘록해 보이는 허리, 귀엽게 다듬어진 음모 아래로 도톰하게 솟아있는 둔덕과 부끄러운 듯 입을 다물고 있는 세로선까지.
10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던, 지금까지 수도 없이 몸을 부비고 사랑을 나눠왔던 윤정의 나신이었다.
혜민은 새삼스러움을 느꼈고, 오히려 자신이 야릇한 흥분감에 사로잡혀가는 것을 느꼈다.
“자, 이번에는 수연씨 차례입니다.”
혜민이 잠시 멍한 눈으로 윤정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느새 촬영을 마친 상길이 수연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석현은 어디서 가져왔는지, 목욕가운을 들고 있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윤정을 덮어주었다. 마치 이것은 촬영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래, 벌써 서른 살이잖아. 이런 기회가 다시 오는 것도 아닌데, 잘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오빠 보여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혜민은 자꾸만 달아오르는 것 같은 뺨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나중에 혹시라도 뺨이 발그레하게 나오면 윤정에게 조금 보정해달라고 해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몽롱한 나른함과 몸을 휘감고 있는 야릇함은 술기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술기운에 의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살짝 멍해 보이긴 했지만 씩씩하게 일어선 수연은 윤정과 마찬가지로 다들 보는 앞에서 그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러한 모습마저도 카메라에 담으려는 듯, 상길도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매끈한 어깨선이 드러나고, 봉긋하게 모아진 가슴골과 연분홍색 브라, 그 아래로 군살 없이 내려오는 허리라인과 귀엽게 생긴 배꼽이 드러났다. 그리고 오래 걸리지 않아 색상과 디자인에서 브라와 세트임을 드러내는 연분홍색 팬티가 모습을 보였다.
답답하다며, 숙소에 오자마자 스타킹을 벗어버린 수연에게 남은 것은 귀여운 디자인의 브라와 팬티가 전부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석현과 정혁은 환호성을 지르며 분위기를 잡았고, 수연도 언제나 그렇듯이 카메라 앞에 나서더니 평소의 소심함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언니, 괜찮아요?”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듯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어있는 윤정은 무슨 생각에선지 옷도 입지 않고 목욕가운만을 걸친 채로 자리에 앉았다. 물론 단단하게 동여맨 허리끈으로 인해 가려야 할 곳은 다 가려진 상태였지만, 앉은 자세로 인해 위태롭게 드러난 허벅지와 목욕가운 아래로 풍만하게 솟아있는 가슴은 어딘가 위험한 모습이었다.
혜민은 윤정에게 옷을 입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려다가, 말을 꺼내기 전에 도로 삼켜버렸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윤정도 아니었고, 한참 촬영 중인 수연도 있었으며, 이미 보일 것 다 보인 마당에 옷이야 나중에 함께 입어도 괜찮으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윤정은 대답 없이 잔을 기울이며 혜민에게 미소를 보여 왔다. 이윽고 잔을 내려놓은 윤정이 초점이 흐려진 눈빛으로 혜민의 귓가에 다가가 속삭였다.
“너랑 키스하고 싶어.”
“네?”
“너랑 키스하고 싶다고. 아까부터 그 생각만 들어. 나 벌써 밑에가 축축해진 것 같아.”
소곤거리는 윤정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그런 장난기와는 별개로, 혜민은 그렇지 않아도 달아오르는 것이 신경 쓰였던 얼굴이 타오를 듯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남들이 들을까봐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혜민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평상심이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흐트러져있었다.
“자, 수연씨도 하나씩 벗어보세요.”
때마침, 셔터를 쉬지 않으며 요구하는 상길의 목소리에 혜민은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그곳에 서있던 윤정만큼이나 몽롱한 눈빛으로, 수연은 상길의 말에 따라 브라를 걷어내고 있었다.
천천히 드러나는 수연의 가슴과 유두를 그윽한 눈으로 지켜보던 윤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수연이, 참 예쁘다. 그치?”
“언니도 예뻤어요.”
잔을 부딪혀오며 미소를 보이는 윤정에게 혜민도 함께 웃어주었다.
수연은 조금 전 윤정처럼 머뭇거리지도 않았고, 크게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윤정처럼 도발적인 포즈는 없었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예쁘고 아름다운 피사체였다.
곧이어 팬티가 내려오기 시작했고, 윤정과 비슷한 모양으로 다듬어진 음모와 왠지 수연이라서 더욱 귀엽게 느껴지는 둔덕과 갈라진 틈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혜민은 윤정의 시선이 수연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윤정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정혁이 뚫어질 듯한 눈빛으로 수연을 보며 자신의 바지춤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혜민은 살짝 당혹감을 느끼고 윤정을 돌아보았지만, 윤정에게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긴 아무리 프로라도 젊은 남자들인데, 저 정도는 이해해줘야겠지. 촬영이 끝나면 아까처럼 신사적으로 가운을 가져다 줄 거야. 자고 있긴 하지만 오빠도 옆에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
이미 평상심을 잃어버린 혜민에게도, 이제는 걱정보다는 다른 생각이 앞서고 있었다. 윤정의 귓속말과 함께 저릿하게 울렸던 아랫도리와, 갈수록 짙어져가는 몽롱한 쾌감은 혜민에게 불안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미 잠들어버리기도 했으니 선우를 오늘 이곳에서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술에 조금 취했을 뿐이니까, 곧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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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6장은 길기 때문에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