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장. 동상이몽 (3/10)

3장. 동상이몽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야 집으로 향하는 윤정은 몰려오는 피로를 느꼈다.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도 없었다. 꼼꼼히 준비를 한다는 것이 꽤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지난 3주간이었다.

선우에게 명단을 받아들고 그것을 일일이 선별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윤정이 선택한 일은 직업을 고르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외모와 나이에 대한 정보만 적혀있었고, 헛웃음이 나올법한 경험담이 더러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소개에 직업이 포함된 것만 추려놓고 보니 그중 10%가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직접적인 연락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그것도 일일이 시간을 들이기에는 너무 많아서, 일단은 소개된 직업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작업만 해야 했다. 그것만 하는 데에도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들어간 만큼 범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 예상 밖으로 간단한 통화만으로도 소개된 직업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고, 나머지 중 또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신변 노출 등의 문제로 직접적인 확인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직업에 귀천을 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계획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정보가 대부분 노출되는 만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격을 위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선우가 아닌 윤정이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일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소설 상으로도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윤정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세한 설명은 가장 마지막에 확정된 사람들에게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일단 통화가 된 이후에는 윤정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이 꽤 경계심을 거두는 눈치를 보였던 점이랄까.

어쨌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지금의 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 걸까…….’

그래, 이건 나쁜 짓이다.

윤정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정의 계획은 자신의 계획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벤트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구실에 불과했다. 처음 충동적으로 든 생각은, 선우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혜민에게 다른 남자와의 연애를 권할 수는 없었다. 그 말에 응할 혜민도 아니었고, 설사 그렇게 된 다고해도 지금의 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단지 가볍게 스치면서 길게 가지 않을 만남으로, 그러면서도 혜민과 자신이 속상했던 만큼 선우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로인해 선우에게 조금의 경각심이나마 심어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단발성 만남으로, 선우에게 받은 명단은 나쁘지 않은 소스였다. 모르는 사람들을 이용해먹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대한 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다만 그럴듯한 설정으로, 이벤트처럼 인위적인 만남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현실속의 설정이어야 했다. 인위적인 만남은 단순한 자극만이 될 뿐, 윤정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험한 장난인가. 아니, 이미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일을 크게 벌였나. 그래서 일이 성사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안전장치를 최대한 확보했잖아. 괜찮을 거야. 그냥 꼼꼼하게 판을 벌여놓고, 나머지는 적당히 놀고 오면 되는 거야.’

윤정이 생각한 안전장치의 첫 번째는 그들의 직장이었다. 그들의 직장에 알릴 위험이 존재하는 한, 심각한 사고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윤정의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그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정혁은 미혼이었지만, 상길과 석현은 유부남이었다. 그중 나이가 많은 상길에게는 고등학생인 딸도 있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상식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윤정의 생각이었다.

그중 상길은 놀랍게도, 아내의 연락처까지 건네주었다. 만일을 대비하고 싶다는 윤정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배려의 차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이 매너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다며, 자신들이 혹시 모를 사고를 치게 되면 이 번호로 전화하여 모든 것을 밝혀도 무관하다며 알려준 연락처였다. 자신이 대표로 책임을 지겠다고.

윤정은 그렇게까지 양보하는 상길의 모습에 조금 믿음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44살이라는 상길의 나이가 윤정에게는 상당히 부담이었지만, 연장자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정은 관계, 그러니까 섹스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남자와의 섹스라니, 그건 본인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나서게 될 혜민과 수연도 결코 원할 리 없는 얘기였다.

그저 적정선에서 적당히, 하지만 야하게, 선우에게도 자극이 될 만큼 놀다오는 것, 그것이 윤정이 바라는 일이었다.

***

같은 시각 민속 주점에서는 윤정이 일어선 이후에도 세 남자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 뭔가 꼬롬한데요 형님? 술이나 몇 잔 더 하다 가시죠?”

윤정이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석현이 기지개를 피는 듯한 자세로 상길에게 말했다.

“와,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되게 깐깐하네요. 저 여자.”

윤정이 있을 때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정혁도 그제야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있어봐. 우리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잖아? 석현이 말대로 우리는 한 잔 더 하다 가자고.”

애매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흘리던 상길이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의 주문에 술이 추가되었고, 잔이 몇 번 돌아간 후에, 석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로 사진만 찍고 오실 건 아니죠? 저도 초대라면 엔간히 다녀본 놈인데요. 뭐, 갈 때마다 빈말로 미인이십니다를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솔직히 눈 감고 할 때가 태반이라고요. 씹질 욕심에, 또 옆에 남친이나 남편 두고 하는 재미에 그냥 참고하긴 하지만……. 아무튼 형님, 저 정도 와꾸는 다시 보기 힘들 텐데요. 날로 먹어도 비린내 하나 안날 것 같은 느낌인데, 셋 다.”

석현이 언제 과묵했냐는 듯이 속내를 주르륵 늘어놓아도 상길은 묵묵히 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마저 잔을 다 비운 상길이 이번에는 정혁에게 시선을 두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떤데?”

“저야 뭐, 형님들 생각에 따라가는 거죠. 그런데 석현 형님 말씀대로 애들이 물이 정말 좋긴 하네요. 특히 그 수연이라는 애는 진짜, 아우. 그 정도면 강남에서도 눈 씻고 찾아봐야 가끔 하나 보일까 말까 할 것 같은데…….”

눈은 웃고 있었지만, 정혁의 대답은 비교적 얌전했다. 그런 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길은 다시 세 사람의 잔을 채우더니 건배를 권했고,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세 사람은 윤정을 통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이였다. 상길이 44살, 석현이 35살, 정혁은 30살이라는,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나이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남자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사이트라는 공통점을 공유한 그들은 여과 없는 원초적인 모습을 보이며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이트 안팎으로 꽤 경험이 쌓인 석현이 분위기를 곧잘 이끌었고, 그런 석현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은 상길이 그들을 리드했기 때문이었다. 인물 덕에 여자 경험은 충분했지만, 사이트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혁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기분으로 꽤나 적극적이었다.

“자, 내 얘기를 잘들 들어. 내가 이리 보여도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쟁까지 다 겪은 몸이야. 그동안 배운 게 하나 있는데, 기회가 왔을 때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죠! 형님!”

상길에 말에 석현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는 듯이 액션을 취하며 동조하고 나섰다.

다시 채워진 술잔으로 석현과 건배를 한 번 나눈 상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쭉 봐왔는데, 뭔가 사정이 있는 거 아니겠어? 이런 경우엔 딴 거 없어. 먹고 입 닦으면 돼.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안 그래?”

“캬~. 맞습니다. 형님.”

“아까 저 가슴 큰 년 나가면서, 깔끔하게 계산까지 마무리 하고 나가는 거 봤지? 내가 저런 빈틈없는 년은 보지에 후장까지 씹창을 내놓고 자궁 속에다 내 좆물을 가득 채워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와, 무시무시합니다. 형님?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시려고요?”

“마, 임신하면 어쩌려고 가 아니라 반드시 임신을 시켜야지. 마음 같아서는 좆나게 후려서 내 씨로 세 년 다 배불뚝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만, 뭐 내키지 않으면 지들이 무슨 방도를 내거나 하겠지.”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정혁이, 자못 걱정이 된다는 눈치로 끼어들었다. 상길은 그런 정혁을 보며 혀를 차다가 이내 대답했다.

“인석이, 지금까지 뭐 들었어? 저렇게 숨기는 게 있는 년은 일 크게 못 벌인다니까? 내가 마누라 연락처까지 주는 거 못 봤어? 다 못할 거 아니까, 인심 쓰는 척 신용 있는 사람인 척 하는 거지. 사실 내가 여기 끼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 않냐. 그렇게라도 해서 점수를 따야지. 큭큭.”

“그렇긴 하죠. 낄낄”

상길은 마주 웃는 석현과 함께 잔을 비웠고, 둘이 건배를 하는 모습에 정혁도 따라왔다.

상길은 술이 달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재차 말을 꺼냈다.

“쟤들이 32, 30, 23이랬나? 제일 많은 애도 나랑 띠동갑이네, 띠동갑. 어디보자 23살이면, 워메 나랑 21살 차이다. 내 딸내미가 지금 19살인데, 4살 차이밖에 안 나네. 큭큭. 이번에 내 자지가 제대로 호강하게 생겼구먼.”

“개는 저하고도 띠동갑입니다. 형님, 낄낄.”

“수연이는 제가 먹을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까리한 게 제대로 한번 자빠뜨려보고 싶은데.”

“아, 진짜 이놈이 계속 분위기 못 맞추네? 개만 먹을 거야? 셋 다 번갈아 자빠뜨려야지! 한 번씩은 다 담가봐야 하지 않겠어?”

은근슬쩍 본심을 밝히는 정혁에게 상길이 정색을 하며 혼내듯이 장난을 쳤고, 지켜보던 석현은 박장대소를 하며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셋은 기분 좋게 웃으며 부딪쳤다.

잔을 비우고 나서도 한참동안을 낄낄거리던 석현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이, 자못 진지하게 물어왔다.

“형님, 근데 윤정이라는 애는 사진 찍는 것 까지만 허용했잖아요? 뭔가 비책이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골뱅이 만들어 놓고?”

“것도 재미없는 건 아닌데, 이번 일은 그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위험해. 그년이 작정하고 일벌이면 나도 타격이 있을 거고. 너도 마누라한테 걸리면 좆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겠냐?”

“음, 그건 그렇죠. 그래서요?”

“내가 이번 일하고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지. 그 년처럼 뭔가 숨기는 게 있고, 우리가 본 데로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은, 일이 잘못되어간다 싶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대신 희생하려고 나서게 되어 있어. 두고 봐. 그 년만 자빠뜨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다. 큭큭.”

“오……. 뭔가, 믿음이 갑니다. 형님?”

“야, 씨발. 인생이 별거 있어? 안 되면 마는 거지?”

“낄낄, 맞습니다. 형님.”

“아무튼 그건 나만 믿고. 야, 그것보다 니네, 자지들은 쓸만 허냐?”

상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꽤나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상길의 표정에 장단을 맞추듯이 석현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제가 이리 보여도 형님, 자지밖에 자랑할 게 없는 놈입니다. 초대받고 방문한 아줌마들 여럿 기절 시켜봤습죠. 낄낄.”

“저도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침대에서 꿀려 본 적은 없는데요?”

“오케이. 좋았어. 내가 실은, 저 윤정이 년 처음 봤을 때부터 금딸하고 있다는 거 아니냐? 그날 제대로 달려주려고, 다음 주 금요일까지 쭉 참아볼 생각이다. 니들도 참고 해라잉?”

“와, 씨발. 그 생각을 못했네? 저도 오늘부터라도 금딸해야겠네요. 그날 좆나게 싸줄라면.”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청하던 날부터 금딸을 하긴 했는데요. 그런데 형님, 40대도 딸을 치나요?”

마지막으로 정혁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오자 상길과 석현은 정색을 하고 정혁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상길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정혁의 앞에 콜라 잔을 가져가 소주를 가득 부었다.

“너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거 다 마셔! 이 자식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토를 달아.”

“예! 죄송합니다. 형님! 원샷하겠습니다!”

정혁이 오버하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을 보며 석현도 다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12시를 넘겨 목요일이 되어있었다.

부산행이 꼬박 일주일 남은 어느 날의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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