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장. 이벤트 (1/10)

먼저 간단한 공지부터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1. 일단 제목은 달라졌지만, 이 이야기는 무모한 그녀 후속으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지만 스피디한 진행을 위해 불필요한 인물 묘사 및 상황 설정, 기타 서술은 다소 생략된 부분이 있습니다. 때문에 무모한 그녀를 읽지 않으신 분들께서는 자칫 내용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강권하는 사항은 아니지만, 완전히 독립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해주셨으면 합니다.

2. 서술방식을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꾸었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3인칭 관찰자가 아닌 전지적 작가시점입니다. 문제는 문체 등의 분위기를 다소 이어가려는 마음이 없지 않다보니, 제 시점에 많이 치우친 3인칭 시점이 되버린 느낌입니다. 중요한 부분은 아닐 수 있으나 혹시 집필관련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언짢아 하실까 하여 덧붙여봅니다.

참고로 제가 보지 못한, 또는 알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세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직설하자면 특정 부분들에 대해서는 마치 자신이 작가인냥 글을 써서 제게 넘겨주었고, 그것을 제가 수정 및 보충 작업을 거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각색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음을 말씀드립니다.

3. 그것과 더불어, 경험담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관계로, 이제부터는 경험담 카테고리는 아예 빼버리기로 했습니다. 사실 많은 분들께서 이미 말씀하셨듯이, 글은 글로써 봐주시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부터도 중간중간 글 외적인 요소(사진도 그러했고 스레드 이벤트도 글 외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지요.)를 언급하거나 가져다 쓰고는 했지만, 그저 재미를 위해서였다고 너그럽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이곳에 글을 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 쓰여질 모든 글들에 경험담 카테고리는 쓰지 않을 것임을 미리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4. 지금까지 몇번인가 언급했던 본편에 대한 내용은 모두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의견이 듣고 싶어 언급했지만 스포일을 방지하기 위해 대충 얼버무리거나 사실과 다른 대답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본 이야기는 저희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 '사건' 이었고, '실수'였으며 오랫동안(1년간 연재를 쉴만큼) 이곳을 돌아보지 않게 만든 일이었습니다. 사실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윤정과 수연의 분량이 조금 아쉬웠던 점은 제게도 있었습니다만, 저희의 일상적인 얘기를 작화로 하기엔 지루한 감이 없지 않죠. 객관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때 이야기만한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극복의 문제가 남았는데, 이제 어느정도 시간도 흘렀고, 그저 소설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것도 온라인 상에 제한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잘 극복했다는 지도 서로 다독여 볼겸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번 언급한 바 있듯이, 세 친구가(심지어 저조차도) 망가지는 얘기가 제법 나옵니다. 걱정되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시고, 앞으로 가실 분들은 내상조차도 즐기실 수 있는 강심장을 준비해주세요.

뭐, 어쩌면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저 야설정도의 느낌밖에 받지 않으실 수도 있겠지만요. 글을 쓰면서 드는 감정이입을 어쩔 수 없는 제 입장이기 때문에 드는 기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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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이벤트

선우는 복사된 글을 옮겨놓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창밖의 햇빛이 왠지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 2월인데, 찬바람을 막아주는 커다란 유리창 때문인지 햇살이 따뜻했다.

슬슬 봄이 오려나보다.

“오빠, 이게 뭐야?”

돌아보니 기척도 없이 윤정이 들어와 있었다. 윤정은 이제 막 새로 올라간 연재 글에 호기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별 거 아니야. 요즘 재미거리가 없어서. 그냥 재미삼아 쓰고 있는 거야.”

“어머, 이거 혜민이 얘기 아니야? 재석이? 혹시 그때 그?”

“응”

하필이면 마침 재석이와의 씬이 한참 진행 중일 때였다. 눈치 빠른 윤정의 파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수연이한테 듣기는 들었는데. 오빠 요즘 야한 글 쓴다고.”

“그래?”

“응. 그런데 그게 설마 혜민이 얘기일 줄이야.”

“그냥. 요즘 옛날 생각도 간간히 나고 해서.”

“그래도. 이런 거 쓰면 혜민이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뭐 어때. 그냥 소설인데. 사실 그 애한테는 넌지시 귀띔하기도 했어. 우리 얘기를 써볼까 한다고.”

“혜민이야 늘 평소처럼 대답하지.”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했겠네.”

“응.”

윤정이 제법 호기심을 느낀 모양인지, 한참을 들여다보는 눈치였다. 가끔 어머, 어머,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고, 뭐가 우스운지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여기 우리 얘기도 나오겠네?”

“아니야. 그럼 너무 내용도 길어지고. 생각했던 것은 재석이 일 까지인데?”

“그래? 스타 한번 되어보나 했는데.”

선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석이와의 일 이후로 적당히 연재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었다. 진행상으로도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가 되리라 생각했고.

“그런데 이벤트가 뭐야?”

재미를 붙였는지, 댓글들까지 쭈욱 훑어보고 있던 윤정이 물어왔다. 재석이와의 씬이 진행되면서 부쩍 이벤트를 문의하는 쪽지가 많아지던 때였다.

물론 선우의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실존한다니 호기심도 있을 것이고, 글의 내용이 그러하니 욕정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등장인물과 한번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거,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실존한다니까, 혜민이랑 자보고 싶다는 얘기지. 이 사이트가 좀 이런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어머, 세상에.”

윤정은 짧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댓글에 집중했다.

사실 선우도 워낙 많은 쪽지를 받던 차에 아주 조금은 갈등이 되던 차였다.

그래서였을까. 윤정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던 선우는 창을 쪽지 보관함으로 이동하여 저장되어있는 쪽지들을 보여주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세상에.”

양이 만만치 않았던 관계로 윤정은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했다.

재미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인지, 꽤나 자세히 보는 눈치였다. 애매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한참을 쪽지들에 심취해있던 윤정이 이윽고 선우를 돌아보았다.

“오빠, 설마, 오빠도 다른 남자랑 혜민이랑 자보게 할 생각인 거? 그때 재석 오빠 때처럼?”

“글쎄다. 지금은 그냥 생각중이야.”

말 그대로였다.

사실 글을 써내려가면서 드는 흥분도 있었고, 재석이 때 일을 회상하면서 받는 자극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벌려야 하는 명분이 없다고 해야 할까.

“흐음…….”

윤정은 이번에도 애매한 호흡을 뱉으며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표정을 보였다.

***

같은 날 저녁.

선우가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일에 손을 놓고, 스포츠 뉴스만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평소대로 노크없이 들어온 윤정이 기웃거리며 선우의 모니터 화면을 훔쳐보았다.

“왜, 할 말 있어?”

선우가 의례상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던 윤정이 대답했다.

“오빠,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무슨 생각?”

“이벤트, 그거 하자.”

“난 아직 생각중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별로 내키지도 않고.”

사실이었다.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갈등은 되었지만, 사실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선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육체관계나 소유욕 등에 내성이 좀 있을 뿐이지, 선우에게 딱히 네토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랑 자는 일이 반가울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혜민은, 그리고 이 친구들은 내 여자인가?’

선우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애매할 때가 가끔 있었다. 구분 짓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그러니까, 오빠. 저 사이트에서 얘기하는 그런 이벤트 말고. 평범한 건 오빠도 식상하잖아? 단순하게 혜민이가 다른 남자랑 자는 것이 무슨 의미 있는 일도 아니고.”

식상하다고?

누가 들으면 선우가 수도 없이 초대 이벤트를 벌여서, 그런 일에 인이 박힌 사람인줄 알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식상한 건 사실이었다. 그저 그런 초대 이벤트나 스와핑 등의 단어는 선우에게 그다지 감흥이 없는 단어였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이벤트를 해보자는 거지 내 말은.”

“우리를 위한 이벤트?”

“응. 오빠 혹시 혜민이가 바람 필거라는 생각은 안 해?”

“바람?”

“오빠 몇 번인가 다른 여자랑 잔 적 있지? 그거 혜민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글쎄다. 모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겠지.”

선우는 순간, 따로 이실직고한 적도 없는 일을 어떻게 알고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순순히, 바로 나올 수 있는 대답부터 꺼냈을 뿐.

경황없이 윤정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미처 마무리할 수 없었던 주변정리로 인한 부작용은 당연했다.

소개가 없었던 여자를 이제와 거론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니 생략한다고 치자. 잠깐이나마 등장했던 윤팀장도 무척 섭섭해 했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중에는 질질 끌다가 본의 아니게 횟수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나마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도 이제 겨우 1여년이 되어간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변명으로 들릴 뿐이라는 것을 선우는 알고 있었다. 모질게 끊어내지 못한 것은 결국 스스로의 잘못이니까. 어쩌면 좀 더 즐기고 싶었던 욕심인지도 모르고. 선우는 굳이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일을 혜민이라고 모르겠어? 혜민이, 은근 소유욕 많은 애야.”

“알고 있어.”

“홧김에라도 다른 생각하지 않을까, 뭐 그런 걱정 안 해봤어?”

“바람피우고 싶으면 이미 폈겠지. 혹시 이미 다른 상대가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딱히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우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수연이야 워낙 집밖에 나가는 일이 적으니 그럴 일이 없다고 해도, 윤정과 혜민은 아니었으니까.

윤정은 귀가가 늦는 일이 상당히 있는 편이었고, 혜민은 귀가가 빠른 편이긴 하지만 늦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가사를 혜민이 주로 주관해왔다는 이유 때문에 불편을 느낄 뿐.

어쩌다 늦는 일이 있어도 거의 항상 먼저 연락을 주었다.

어찌되었거나, 윤정과 혜민 둘 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선우에게 비밀로 하던, 아님 드러내놓고 하던 간에.

아니, 윤정까지도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상상은 잘 되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선우가 보기에도 윤정은 정말로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자신과 육체관계가 가능한 것이 종종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혜민은? 모르겠다. 선우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민에게는 은연중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우리 가족, 우리 식구라는 표현도 가장 많이 사용할뿐더러,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아이였다. 수연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의존적인 성격에서 오는 결과라는 점에서 혜민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한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처해있는 현실과 맞지 않을 뿐. 어쩌면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 있어서, 이 집의 사람들 중 가장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그러고 보니 선우는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았다.

막연하게. 지금의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그때보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선우도, 그녀들도 아직 대체로 젊었다. 아니, 어쩌면 선우는 이미 가정을 꾸릴 나이가 지났다고 볼 수 있고, 이 세 친구들도 대체로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수연이만이 아직 여유가 있을 뿐.

서서히 진짜 짝을 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남들이 보면 비정상적인, 지금의 이런 가정과 가족에 만족하고 살 수 있을까.

윤정은 애초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수연은 아직 아무런 생각도 없을 수 있다. 그럼 혜민은? 혜민도 그럴까?

갑자기 생각이 길어져있는 선우를 유심히 지켜보던 윤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니야.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어. 오빠도 혜민이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선우는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뚤어진 첫사랑의 결과로, 장장 10년이 넘게 정절이란 단어를 비웃던 선우였음에도, 어느 사이 혜민의 이미지는 선우에게 그렇게 굳어져있었다. 

“그렇다 치고. 혜민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해도, 나한텐 딱히 말릴 명분이 없지 않나?”

선우가 아직 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슬그머니 내비치자, 윤정의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오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왕 놀이는 이제 싫증난 거야? 오빠가 안 말려도 내가 말려. 아니, 나야말로 명분이 없을지언정 오빠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랑 같이 사는 거 아니야?”

“모르겠다, 나는.”

선우는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다. 정말로 선우에게 혜민의 바람을 부정할 권리가 있으려면, 윤정과 수연의 존재도 부정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모두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내가 알기로는, 아니 무조건! 결단코 없어. 혜민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 따위. 지금까지는…….”

선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색을 하고 말하는 윤정의 표정이 자못 매서웠다. 선우가 ‘네 소유욕이 더 무섭다’ 라고 말했다가는 한 대 칠 기세였다. 그럴 리는 없겠다마는.

그런데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선우에게 묘하게 거슬렸다.

“지금까지는?”

“그래, 지금까지는. 그런데 앞으로는 모르는 일 아니겠어? 혜민이도 사람이니까. 지칠 수도 있는 거고…….”

“지쳐?”

“응, 그래서 말인데. 한번 시험해보는 거야. 혜민이가 바람을 필지 안 필지. 어떻게 생각해?”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우리를 위한 이벤트라고 했잖아. 사실 우리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들 중 누군가가 곧 떠나가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말이야. 사실 그 중에서 제일 불안한 것은 오빠랑 혜민이고 말이야. 수연이는 아직 어리고, 나는 누가 보기에도 이집에서 먼저 나갈 것 같지 않은 사람일 테고.”

“그래서?”

“좀 짓궂은 말이지만 불안한 마음도 달랠 겸 테스트를 해보자는 거지. 일단 이벤트는 오빠랑 나랑 둘만 알고 있는 걸로 하고. 저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서 혜민이가 바람을 피거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을까 지켜보자는 거지.”

왠지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우는 표현하지 않았다.

“내기를 해야 하는 분위기인가? 그렇다면 나는 혜민이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쪽으로 걸도록 하지.”

“어머, 그렇다면 내기는 성립되지 않겠는 걸? 나도 혜민이가 바람피우지 않는다는 쪽에 걸 테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일까.

길게 의논한 것도 아닌 채, 선우와 윤정의 이야기는 농담조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쩌면 선우는 조금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혜민의 입장에선 기분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윤정의 말을 듣고 보니 실제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화에 가까운 이벤트 요청도, 윤정의 말 정도면 그럭저럭 라이트하게 끝낼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선우가 다시 윤정에게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

“콜 한 거지? 오케이. 그러면 일단 오빠가 명단을 받아서 나한테 줘.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런데 한 가지. 항상 만약이라는 문제를 등한시 할 수는 없으니까. 너희들 요즘에 약 안 먹고 있잖아? 혹시라도 우리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어쩌려고?”

피임약 얘기였다.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혜민이 문득 약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꺼내왔다. 윤정과 수연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리는 이집의 아가씨들은, 아마도 혜민에 대한 윤정의 배려였겠지만, 생각을 하나로 맞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같이, 두 달간 약을 쉬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게다가 이왕 하는 김에 색다른 분위기도 느껴볼 겸, 그 두 달간 금욕의 시간을 갖기로 했었다.

선우는 자신의 입장에서 두 달은 좀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금지된 것은 새로운 갈증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삽입을 배제했을 뿐, 철저히 금욕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애무와 오럴정도는 당초 계획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벼운 아쉬움도 나쁘지 않았고.

다만 애초에 언급한 금욕의 시간은 어디로 간 것인지, 임신의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여자들끼리의 플레이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뭔가 손해 보는 입장이 된 것 같은 선우였지만, 쪼잔하게 그런 일로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생활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었고, 계획대로라면 아직 한 달은 더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생각한다면, 선우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윤정은 그런 선우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해왔다.

“오빠는 별 걱정을 다 하네. 피임약 먹는 커플보다 안 먹는 커플이 더 많을걸? 그렇다고 그 애들은 섹스 안 해? 애초에 혜민이가 바람을 핀다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도 낮은데다가, 만약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콘돔 쓰면 되지. 혜민이가 어린애도 아니고.”

“으음…….”

선우는 윤정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 대부분의 커플들이 콘돔을 애용하는 것도 맞는 얘기고, 애초에 혜민이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니까. 우연찮게 시기가 맞물린 덕분에 괜한 기우를 하는가 싶었다.

“그래. 알겠다.”

“응, 기다릴게.”

결국 결론을 내린 선우의 말에 윤정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우는 그 미소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오빠는 우리를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돌아서며 생각하는 윤정의 마음을, 당시의 선우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로인해 벌어지게 될 한 달 여 뒤의 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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