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43)

아내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은 대답이야."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는데...."

"뭔데?"

"아까 내게 무슨 선물을 준다고 했잖아. 그게 뭐야?"

"여기 있잖아. 선물."

아내는 미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저요?"

"응. 설마 미라 너, 우진씨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이혼 안하려고?"

"아뇨! 할 거에요! 이제 지쳤어요! 그리고 저한테는 이제....."

미라가 수줍게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내는 그런 우리를 아니꼽다는 눈빛으로 보았지만 자신도 인정을 한 것이니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한 것 같았다.

"우리 그이 곧 우리 아빠 회사 물려 받을 거야. 두 집 살림 정도는 할 능력은 된다는 거지. 아까 한 말 정정해야겠네. 당신 보통 각오로는 절대 안 되겠다. 내게서 우진씨의 잔재를 지우고 미라까지 보듬으려면."

"대신 한 가지 약속해."

"뭔데?"

"설령 우진이가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절대 딴 마음 먹으면 안 돼."

"으음~ 어떻게 할까? 그건 그때 가서 봐야겠는데?"

"안 돼!!! 절대 안 돼!!!"

"알았어! 알았어! 농담도 못해? 난 이미 당신에게 선택권을 줬고 당신은 날 선택했어. 그걸 배신할 생각은 절대 없으니까 그 점은 안심해도 좋아."

"만약 그 말을 어기면...."

"어기면?"

"난 당신 죽일 지도 몰라. 그리고 나도 죽겠어."

아내는 내 고압적인 태도에 살짝 기가 죽은 듯 슬며시 물었다.

"농담이지?"

"진담이야."

"............우리 남편, 강단이 상당히 세졌네. 보기 좋아."

"미라 너도 명심해."

"아, 알았어요. 무서우니까 그런 표정 짓지마요, 윤호씨."

얘기가 일단락나자 아내는 다시 옷을 입는 동안 문득 아내의 핸드폰으로 눈이 갔다.

아직 꺼지지 않은 아내의 핸드폰을 들고 탁자 위에 놓으려고 할 때,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안에 내용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진이와 여행을 하면서 찍은 영상들이 주르륵 나열되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내는 그것들을 지우지 않고 보관하고 있었다.

어쩌면..... 계속 남겨둘 생각일 지도 몰랐다. 그냥 지워버릴까 하다가 아내가 이걸 스스로 지우기를 바라며 내버려두었다. 내가 아내에게 남은 우진이의 잔재를 지우는 그 날이 아내가 이 영상들을 스스로 지우는 날이 될 것이다. 

"내 핸드폰으로 뭘 보고 있는 거야?"

아내는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아내는 내가 우진이와 찍은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를 보며 말했다.

"당신이 지우고 싶으면 지워도 돼."

"영상은 여기 있는 게 다야?"

"응. 따로 보관하지는 않았어. 거기 있는게 원본이야."

"남겨둘래."

"........괜찮겠어? 차라리 지우는게 내가 우진씨를 잊는데 도움이 될 텐데."

"당신 스스로 지울 때까지 기다릴래. 내가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이걸 지울 생각은 없잖아."

"당신 말이 맞아. 아직 내 스스로 그것들을 지울 생각은 없어."

"내가 우진이에 대한 기억은 완전히 잊게 해주겠어. 그 때가 되면 내 앞에서 당신이 지워죠."

"알았어. 고마워, 그렇게 날 믿어줘서."

내가 우진이와 짜고 아내를 속이는 동안 찍었던 영상을 내가 보관하며 그걸 종종 아내와 섹스하면서 써먹었듯, 아내도 이 영상들로 나와 섹스를 하면서 써먹을 지도 몰랐다.

나와 아내가 대화를 나누고 있자 미라가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나누고 그러세요?"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려고 했지만 아내는 미라에게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와 우진씨가 여행하면서 찍은 영상들. 미라 동생한테는 좀 미안하네."

"...........아니요. 이제 잊기로 했으니 괜찮아요. 그렇게 정한 이상 그건 우진씨와 언니만의 프라이버시니까 더 이상 묻지 않을 거고 신경도 쓰지 않을 거에요."

"마음 단단히 먹은 모양이네."

"네."

"뭐 미라 동생이 알아서 잘 하겠지. 우리 이제 밥 먹을까? 당신 어떻게 할 생각이야. 지금이라도 식사 준비 할까? 아니면 시켜 먹을까?"

시켜먹자고 하자 아내는 치킨과 피자를 주문했다. 잠시 후 배달이 도착했다.

"어머? 재형이 너 아직도 거기서 알바하고 있었구나."

"아, 네. 미라 누님도 안녕하세요."

"응, 오랜 만이네."

"사장님도 안녕하세요."

"그래."

솔직히 심기가 그리 편치 않았다. 재형은 그의 친구 찬수와 함께 아내와 미라가 외도를 한 상대.

녀석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추억으로 남겨두자고 했었던 만큼 아내와 미라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돈을 주고 그냥 돌려보낼 때 재형의 얼굴에 스친 아쉬움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아내가 나와 미라에게 말했다.

"미라 동생은 지금 있는 집 처분하고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편이 낫지 않겠어?"

"정말 그래도 돼요?"

"거기 있어봤자 좋을 것도 없잖아. 재산은 우진씨가 미라 동생이 원하는 대로 분할하겠다고 했어."

"알겠어요. 빨리 처분할게요."

"그래도 어느 정도 각오는 해둬. 이혼 문제로 아마 우진씨 한 번은 국내에 들어올 거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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