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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녀 (妖女) - 8. 무 협
원저자진경룡 번역,각색천연자석
8. 투기 妬忌 .
“쨍그랑!”
“쿵! 퍼석!”
“구..궁주님!”
“시끄럽다! 너도 나갓!”
“꺄아아! 네! 네!”
씨근씨근...거친 숨을 고르는 요염한 여인의 눈빛이 살기마저 띈 채 빛을
뿜었다.
사방에는 깨어진 사기 파편과 찟겨진 천 쪼가리와 부서진 가구들이
너저분하다.
뽀드득! 사방을 흘겨보며 앙칼지게 이빨을 가는 여인...싸늘한 목소리가
허공을 예리하게 갈랐다.
“망할 계집! 정파의...그 것도 천한 비구니출신의 계집이...가증스럽게도...”
으드득! 주먹을 움켜쥐어 쳐들어 보이는 그녀...전신에서 폭풍같은 가공한
기세가 뻗쳐 올랐다.
‘요화신모 (妖花神母)’...악령종 휘하 요화궁을 맡고 있는 그녀는 세간의
평판과 달리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도가 계열의 이단 문파인 ‘요지선문’ 출신으로 전해 내려오던 흡정법과
요사스러운 사술 계열의 무학을 지양하고 따로 습득한 ‘벽력문 (霹靂門)’
이라는 도가문파의 심득을 기반으로 원래 요화궁의 독문심법 ‘요화천류공
(妖花天流功)’을 재정립 했으며 ‘벽력난화수 (霹靂蘭花手)’라는 자신만의
무학을 창시한 ‘무학종사(武學宗師)’ 이기도 했다.
일반적인 마도의 여인 문파와는 차원이 틀린 두뇌와 힘을 지닌 여걸로
자신을 무시하는 악령종의 마왕들과 당당히 실력으로 맞겨루며 스스로의
입지를 다져온 터라 일파의 종주로서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 실력과 힘을
보유한 상태다.
다소 직선적이고 다혈질적인성격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아랫사람들...특히
의지할 데 없는 여인들에게 대모 역할을 해 주고 불행한 여인들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성품을 지닌 그녀가 이토록 살기 띤 노여움을 숨기지 않는
이유는 요 근래 그녀의 성질을 건드리고 있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불마요미 (佛魔妖美)’ ‘려화 (麗華)’
아미파 출신으로 마도의 명망 있는 은퇴고수인 ‘마군자’ 집안을 모두 도륙 낸
살겁을 일으켰던 여자...원래대로 였다면 능지처참을 몇 번 받아도 모자라며,
자칫 정파 무림과 전면적인 전쟁을 벌일 도화선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뽀드드득! 그 계집애...감히...”
콰직! 아무렇게나 뻗쳐진 손에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탁자가 박살이 나며
나뒹군다.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사내 ‘악령마종’...요 근래 악령마종은
자신의 노예가 된 려화와 상당히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구나, 처음에 꺼려했던 마왕들 역시 이제는 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오히려 둘 사이를 배려해 주고 있는 듯한 눈치다.
당연히 알게 모르게 악령마종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요화궁주에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아니 어떻게 해서라도 눈에 가시같은 그 ‘려화’를 제거해
버리고 싶은 마음 뿐 이었다.
“걸리기만 해 봐라! 계집! 이럴 줄 알았다면 이전에 ‘마의’오라버니에게 협조
하는게 아니었어...뽀드득!...“
앙칼지게 눈을 빛내며 이를 가는 그녀...이 때, 약령전에서 희희낙락 실험에
열중해 있던 ‘마의’ 는 갑자기 등골이 시리며 소름이 돋는 느낌에 어리둥절
해 했다고 한다...
단정한 내실...정갈하고 온화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실내였다.
한쪽 활짝 열린 미닫이 너머 작은 호수에 평화롭게 물새가 노닐고 물가에
죽림과 화초가 우거진 그림 같은 모습이 들어왔다.
쪼르륵...작은 잔에 따라진 액체에서 정갈한 ‘주향(酒香)’이 풍겼다.
“흐음...좋군...어느 미주가효보다 훌륭하다...”
“......”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서생...그의 눈앞에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면사녀가 들어 왔다.
스윽...잔을 내밀자 공손히 맑은 술을 따라준다.
단순하게 우려낸 곡주...하지만 깊은 손맛을 품고 있는 입에 착착 붙는 맛이
일품이다.
“......”
잠시의 침묵...미서생...악령마종은 느긋하게 잔을 기울였고 이번에는
타악!...탁자 바닥에 잔을 내려놓는다.
얼른 긴 대나무 젓가락에 안주 몇 점이 집혀 공손히 내밀어진다.
싱긋 미소를 지으며 낼름 받아 씹었다.
두부와 죽순...버섯을 조리한 단순한 요리였다.
“좋아좋아...하핫! 본좌가 호강을 하는구나...예로부터 이르기를 요리를 잘
하는 아낙이야말로 어떤 여자보다 귀하다고 했느니...하하핫...“
슬쩍 려화를 내려다보는 마종의 시선엔 충족감이 그득 했다.
“그런데...아는지 모르겠구나...우리 악령마궁 내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
된다고 하더구나...어떻게 생각하느냐...“
”......“
여전히 웃음기 띈 얼굴로 농을 하듯 툭 던진 이 말...
그러나 순간적으로 마종의 눈빛은 서늘한 기운마저 띄었다.
“본좌는 ‘패도(覇道)’를 숭상하며 복잡한 일을 싫어하느니...그 것도
아녀자들끼리의 문제는 더더욱...헌데, 아무래도 너로 인해 악령종의 질서에
금이 가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소르르...보일 듯 보이지 않게 호위하는 그림자들...그들이 가볍게 몸을 떨
정도로 살벌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본좌는 효율을 중시하는 사람이다...저울로 달아 무거운 것을 취하고 가벼운
것은 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모든 것은 우리 악령종의 규율에 따라 일이
해결될 것이야...알겠느냐 마도의 계율은 오직 ‘강자지존 (强者之尊)’!
...그리고, 그 강함이란 단순히 무공의 강함만이 아니라는 것도...“
“......”
당사자인 그녀...려화...여인은 날아갈 듯 침착하게 예를 갖추었다.
“심려 마시옵소서...주인님께서 절대 근심하지 않으시도록...우리 악령종의
미래에도 해가 되지 않도록 매사를 처신해 나가겠사옵니다...아마도 주인님의
근심은 얼마 안가 모두 풀리게 될 것이옵니다...“
“......”
오히려 약간의 웃음기마저 배인 목소리...악령종의 얼굴에 언뜻 놀람이
스쳤다.
“그런가... 내 듣기로 여자의 투기는 돌로 된 불상을 돌아앉게 한다 했는데
...뭐 좋다! 네 말대로라면 참으로 기특한 일일 것이다...허나, 만일 그렇지
못할 시엔...너는 재차 ‘마의(魔醫)’에게 맡겨지게 될 것이니...하하하!...“
기분 좋은 웃음소리...서생은 잔을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절대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을 것이옵니다...”
다짐인 듯...마종의 잔을 채우는 려화의 목소리는 분명한 음색을 띄고
있었다.
‘악령종’의 내부에서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자 제일 먼저 악령종의 군소
세력들이 눈에 띠게 몸을 사리게 되었다.
무언가 큰 세력들 간에 충돌이 있을 경우 잘못하다가는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되는 법이다.
뿐만 아니라 뒤숭숭한 분위기 때문에 ‘군마 (群魔)’들 역시 불편해 하는
눈치였다.
다만, 이번 일이 여 마두들 간에 마종의 총애를 다투는 어찌 보면 악령마종의
사생활적인 문제라 투덜거리면서도 참고 있는 형국이다.
요화궁과 불마전...거기에 음양마궁 까지 포함되어 미묘한 힘겨루기와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폭탄처럼...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불마전의 려화나
요화궁주는 설혹 마주치더라도 냉랭한 분위기로 스쳐갈 뿐 별달리 충돌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중...마침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꺄악!...그만!...살려주세요!”
“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낭패한 몰골로 나뒹구는 여인...아니, 소녀들...
거의 일방적인 수준의 폭행이 가해지고 있었다.
화려한 전각이 밀집해 있는 이곳...다른 곳과 다르게 어딘지 화려하고 눈에
확 띠는 이 곳은 바로 ‘요화궁’이 자리하고 있는 구역으로 ‘악령마세’의 군마
들에게는 ‘유흥장’ 이자 휴식처와 같은 곳이다.
그 중에 한쪽...외곽지역에 있는 비교적 한산한 전각...요화궁 소속임을
밝히는 ‘도화문양’이 들어간 경장 차림의 여 무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일 이었다.
안쪽...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인들...바깥 전각을 지키고 있는
여인들이 비교적 엄정한 모습의 날렵한 경장 차림이었다면 이 곳에서 일방적
폭행을 가하고 있는 여인들은 화려한 차림의 요염한 여자들...
그러나, 그런 우아한() 여인네들이 겉모습과는 사뭇 다른 앙칼지고 잔인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흥! 건방진 것들 !...”
“그 동안 오냐오냐 했더니...이젠 볼수록 가관이야...”
“얘! ‘향(香)’아! 사정 봐줄 것 없다!”
“네, 언니!”
경멸의 눈초리로 늘어서서 무차별로 폭행당하는 앳된 소녀들을 바라보는
여인들...그리고, 가차 없이 내리꽂는 매질과 구타가 이어지고 있었다.
쉬리릭!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날아드는 채찍과 몽둥이...개중에는
우아하게 궁장의 치마를 휙! 걷어붙이고 날렵하게 발길질을 구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퍽!”
“아으윽!...”
“꺄악!...시...싫어!”
처참할 정도로 이어지는 구타...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소녀들의 옷깃에
새겨진 두개의 희고 검은 원이 겹쳐진 문양...그 것은 바로 근래 악령종에
속하게 된 ‘불마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요화궁과 불마전 간의 알력에 의한 괴롭힘인 것이었다.
그러기에...간혹 지나치는 악령마세의 사람들은 애써 그냥 외면하고 있었다.
물론 전각 밖으로 들리는 비명성에 나직이 혀를 차며 안됐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불마전’ 소속 시녀들은 무공도 약하고 나이도
어린데다가 ‘려화’가 ‘불마전주’가 되자 급히 배정받은 터이기에 당연히
세력이나 배경 같은 것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다가 그나마 요화궁의 요화신모에게 가장 미움 받는 존재가 바로
‘려화(麗華)’가 아니던가...
통제가 잘 되는 힘 있는 단체의 경우 윗사람이 눈만 꿈쩍해도 부하들은
알아서() 움직인다.
이른바 충성경쟁...
더구나, 악령종의 경우 힘의 논리가 무엇보다 우선하는 곳이다.
강자는 위로 올라가고 약자는 자연히 굴복 하던가 도태되는...‘약육강식’
의 법칙이 철저히 지켜지며 이제껏 유지되어 왔다.
그러기에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굴복해야 하는...
한마디로 ‘려화’의 ‘불마전’은 최대의 시련을 맞고 있는 것이다.
“어서 비키세요! ‘불마전주’님께서 납시셨습니다!”
“불마전주 님 이시라고 흥! 죄송하오나 여기는 요화궁 세력권 이라고
말씀 드리거라! 설사 ‘대종사’께서 납시더라도 궁주님의 허가 없이는
들여보낼 수 없느니!“
“뭐! ...방금 뭐라고 뭐가 어째요”
“호오! 귓구멍이 막힌 게냐! 다시 말해주지...이 곳은 요화궁 세력권이다!
잘 모르시는 모양이지만 우리 악령마세는 각 세력권의 구분이 엄격한 터!
더구나, 이곳은 그 중에서도 중지 중 중지! 설사 장로급 인물이나 악령종주님
이라 할지라도 ‘내명부’에 속한 이 곳에 함부로 나다닐 수 없는 법이다!
허가받지 않는 외인은 출입이 엄금된 장소...정 출입을 원한다면 요화
궁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할 것이야!“
“뭐라고! 이이...!”
부들부들 떠는 여인...아니 아직은 앳된 기색이 가시지 않은 소녀가 파르르
분통을 터뜨리며 양 손을 꼬옥 쥐어 보였다.
하지만 그 뿐...감히 대들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상대는 요화궁 소속이라고 하지만 거의 왠만한 군소문파의 장문인 뺨치는
무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여 고수였다.
대대로 악령종의 ‘요화궁’은 악령종주의 부인인 ‘악령마후(惡靈魔后)’를
배출해 내는 가문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순수한 실력으로 볼 때 요화궁 세력은 악령종 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평가된다.
더구나, 악령종의 모든 어린이들은 일단 요화궁에서 엄선된 여 고수가
맡아 어느 정도 철이 들 때까지 기본적인 학문이나 무예를 가르친다.
그 중 지위가 높은 어린이인 경우 아예 젖어미나 가정교사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다가 필요한 경우 육체적 체험 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었기에
요화궁 소속 고수들은 여자 일지라도 악령종 내에서 발언권이 강하고 세력
또한 막강했다.
요화궁이란...악령종의 모든 마왕들에겐 어머니나 누이들이 모인...하나의
구심점이자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불마전 소속으로 배정받아 상급 시녀장의 임무를 받고 있는 소녀...눈치가
빠르고 두뇌가 명석한 그녀가 눈앞의 요화궁 소속 고수의 복장과 몸차림
등을 보고 감히 경거망동 하지 못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비취색 복장과 날렵한 몸차림...그리고, 소매에 수놓인 금빛 도화문양...
바로 요화궁주와 악령마종의 명령만을 듣는다는 ‘금화단(金花團)’소속
고수였던 것이다.
다른 일반 요화궁 소속 여인들...화려한 궁장에 붉은빛 도화문양을 옷깃
이나 소매에 새긴 그들과는 출생부터 전혀 달랐다.
날 때부터 체질이 좋은 모친에다가 배속에서부터 태교를 통해 무공을
연마한다는 그녀들 이었다.
하지만...그런 실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들부들 떨며 안쪽의 비명과 신음
...그리고, 매질 소리를 듣던 소녀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쓰기위해
자세를 갖추었다.
그런 소녀를 향해 은근한 도발과 함께 이미 암암리에 공력을 모으고 있던
‘금화단’ 여고수가 비릿한 비웃음을 띤 채 양 손을 마주 떨쳐내려 했다.
아마 불마전의 시녀는 이번의 일격으로 상당히 곤욕을 치루리라...
그 때...
“......!”
퍼뜩 무엇엔가 놀라며 손을 멈춘 소녀...그녀는 스윽 자신의 어깨에 놓인
따스한 온기를 뿜어내는 무엇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상대하고 있던 요화궁 금화단 고수도 마찬가지...
“저...전주님...!”
“......!”
손...희고 부드러운 하얀 옥을 깎아 정성스레 만든 것 같이 아름다운 손이다.
더구나, 그 손에 배인 따스한 체온이란...
손의 주인공...
하늘거리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수수한 짙은 보랏빛 궁장으로 몸을 감싼
여인...장신구라고는 은으로 만든 머리꽂이에 옥으로 조각한 모란꽃을 장식
했을 뿐이었다.
“...물러서세요...”
“네...네!”
나직한...그러면서, 사근사근 귓가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달콤하면서도 듣는 사람의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게 만드는...아련함 마저
배어있는...
사라락...옷자락 끄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서는 여인...
한줄기 단아한 향내가 가볍게 코끝을 스쳤다.
“......!”
사르락! 사르락...옷 끄는 소리와 함께 우아한 모습으로 나서는 여인...
바로 ‘불마전주’ 이자 악령마종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는 ‘불마요미’
‘려화’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사뿐사뿐...양 손마저 다소곳이 모은 채로 옷자락 안에 숨겼다.
수수한 옷차림...비록 몸을 감싼 궁장이 진귀한 보라색 비단으로 되어
있었 지만 이는 일반적인 요화궁 여인네들의 차림에 비해서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얼굴마저 면사로 가린 모습 아니던가...
“......!”
주춤! 충실하기로 유명하며 더더군다나 기가 드세고 깐깐한 ‘금화단
(金花團)‘ 단장인 여 무사가 한발 뒷걸음질 쳤다.
꺼림직했다.
그리고, 무언지 막연한 두려움...악령마종...존경하는 종사의 총애를 받아
난데없이 전각 하나를 받은 여자...더군다나 마도의 인사에게 혈겁을 일으킨
정파 출신의 여인네라고 들었다.
평소 여러 험담만 들어온 그녀로서는 전혀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모습
으로 나타난 평범하기 까지 한 모습에 약간은 실망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마주대하고보니 ‘모든 것은 실제 경험해야 알 일이다...’ 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흡사...신기루처럼 몽롱히 떠오른 모습...더구나 어떤 공력 역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가 다가오자 절로 몸이 움츠려들며 덜컥! 뒷걸음 치고 말았다.
이는 다른 금화단 소속 여 고수들 모두 마찬가지다.
“...꿀꺽...”
“......”
마른침 삼키는 소리와 함께 파르르 몸을 떠는 모습들...울컥! 치밀어 오르는
도발감과 분노에 흐읍! 아랫배에 힘을 주고 온 몸에 진기를 일주천 시켰다.
짜리릿! 더운 경력이 온몸을 돌며 용기와 정기를 가져다주었다.
양 손에 공력을 모은 채 살짝 감았던 눈을 떴다.
“......!”
퍼득! 몸이 떨려온다.
(이럴 수가!)
찰나지간...상당한 고수인 그녀가 기척을 알아채지 못했다.
어느 틈에 바싹 다가와 그녀 앞에 선...그 것도 다독다독...어깨에 올려진 손
...하얀 옥을 빚어 만든 듯한 손이 살짝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파르르 떠는
금화단 단장의 목 줄기를 지나 살짜기 턱을 치켜 올렸다.
“...아!...”
거부감이나 불쾌감 등은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깨지기 쉬운 그릇을 다루듯 부드럽고 섬세한 손놀림이다.
짜리릿! 전율감 같은 것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맥이 탁! 풀리며 손에 단단히 모았던 공력을 흩어뜨리고 말았다.
“곱군요...정말...정말, 아름답네요...”
“......!”
웃음기와 감탄이 섞인 목소리다.
절대 가식이나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목소리...
귓가에 살짝 속삭이는 듯한...미묘한 음성...게다가 느껴지는 온기는 간지
러우면서 짜릿! 전류가 통하는 듯 가벼운 쾌감마저 준다.
“어려운 부탁일지 모르지만...잠시 실례할 께요...죄가 있다면 내게 물으면
될 것을...어쩌자고 저 아이들이 고생을...미안해요...그럼...“
퍼뜩! 무언가 말하려던 금화단 단장...그러나 그녀는 곧 무엇엔가 크게
놀라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만다.
가벼운...하늘거리는 면사 너머로 분명히 느껴진 느낌...
‘불마전주’ ‘려화’가 그녀의 한쪽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던 것이다.
“......!”
멍 하니 얼굴을 붉힌 채 한쪽 볼을 감싸는 그녀...아련히...한 줄기 상쾌한
향기가 코끝을 감돌고 있었다.
“아아악! 흑흑...”
“제...제발 용서를...”
“호호홋! 이것들이!”
“말 해 봐! 우리가 뭘 용서해야하지 응”
“흑흑...”
“안되겠다...더욱 쳐라!”
“알았어요, 언니!”
“짜악!”
“퍽!”
“꺄아아”
“제발...그만...”
일방적인 구타...
그렇다고 막거나 피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더욱 거센 매질과 욕설이 퍼부어 질 테니까...
이미 한명은 축 늘어져 소변까지 지리고 있는 상태였고 엉망이 되어 부어
오른 얼굴과 몸뚱이는 피투성이로 넝마나 다름없었다.
“그만들 하세요!”
안타까움이 듬뿍 배인 목소리...
흔히 쟁반에 옥구슬이 굴러간다고 했다.
거기에 약간의 슬픔과 아련함을 주는 따스함...콧소리가 가볍게 섞인
‘색기(色氣)’마저 섞였다면 어떠할까...
그리고...그녀의 몸 주위로 어른거리는 금빛광채와 ‘묵기류(墨氣流)’...
가죽과 철사를 꼬아 만든 채찍과 단단한 몽둥이...심지어 피가 배인 가시
도리깨를 쥐고 휘두르던 여인들이 낭패하는 모습으로 튕겨 나가 떨어졌다.
“꺄악!”
“누...누구...”
“아앗!”
펑...펑...
마치 이불 빨래를 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진 요화궁 여인들...
상당한 손대중은 했는지 모두들 별다른 상처 역시 입지 않았다.
하지만 저마다 병기를 쥐고 휘두르던 손을 감싸 쥔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채찍과 몽둥이...가시도리깨 등은 멀찍이 튕겨져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어...어느 틈에...!”
“허어, 대단하군...”
지켜보던 요화궁 금화단 소속 고수들과 우연히 이 모습을 목격한 ‘군마
(群魔)‘들이 경악한 모습으로 입을 떡 벌렸다.
“허어...순식간에 저렇게 손을 쓰다니...더구나, 저렇듯 손대중 까지 하면서
‘장공(掌功)과 ‘지력(指力)’을 쳐내는 손속은 여태 보지 못한 것이로다...“
“으음...대종사께서 저 아낙에게 푹 빠졌다더니 이유가 있는 게로군...”
‘흑(黑)’과 ‘백(白)’...마도의 원로고수인 ‘흑백무상(黑白無常)’이 연신
고개 짓을 하며 번갈아 술 호로를 들이켰다.
세상에 불구경과 싸움 구경만큼 진귀하고 재미있는 것이 또 있던가...
물론 여인들끼리의 것이라 그 즐거움은 더 큰 바...다소()의 위험성은
있지만 이렇듯 지붕위에서 구경하는 것을 뭐라 할 사람 뉘 있을까...
물론 이는 상당히 신분이 높은 장로급은 되어야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또한, 마두들 중 다소 ‘가학적’인 취미를 가진 이들에게 이런 여인들끼리의
구타 장면은 진귀한 볼거리다.
어떤 경우 큰 돈을 주고서 인위적으로 연출한 모습을 훔쳐보기도 하는데
이렇듯 생생()한 장면이야 더 말할 것 있겠는가...
게다가 덤으로 흥미로운 구경을 할 수도 있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
“...정신 차리렴...”
“으으...아...아파요...”
“흑흑...”
따스한...그러면서 아프던 온 몸이 시원해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잔잔한 금빛 광채...그 것이 엉망이 된 몸에 닿자 철철 피가 흘러내리며
흉하게 벌어졌던 상처가 급속히 아물며 새 살이 돋는다.
‘마라불마공 (摩羅佛魔功)’...
이는 어둠과 빛...‘마기(魔氣)’와 ‘정기(正氣)’를 동시에 다스리며 ‘선(善)’과
‘악(惡)’을 공존케 하는 기이한 ‘공부(功夫Kung-fu)’의 묘용이다.
천축 ‘좌도밀교’의 발상은 바로 아이러니 하게도 고대 천축의 왕자 ‘싯달타’
가 창시한 ‘불교(佛敎)’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불교의 교리와 천축 특유의 ‘탄트라’의 비법이 융화되어 나타난 것이 ‘좌도
밀교‘인 것...
‘좌도’란 양 날의 검과 같아서 잘 쓰면 진리로 가는 다리가 되지만 잘못 쓰면
스스로의 몸을 망치고 세상에 큰 해악이 된다.
정법과 좌도의 조화를 꾀하는 불마공...
‘불공(佛功)’은 ‘정법(正法)’으로 마음과 육체의 조화를 꾀하고 ‘마공(魔功)’
은 ‘이법(異法)’으로서 외부의 해독과 사기를 다스린다.
지금 ‘려화’가 발휘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불공(佛功)’으로서 궁극에 달하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정도의 치유력과 심신을 보호하는 강한 ‘호신력’을
발휘하게 된다.
반대로 금빛 속에 잔잔히 감도는 검붉은 ‘묵기류(墨氣流)’는 ‘마공(魔功)’
으로서 ‘불공(佛功)’과 함께 자연히 운용되어 외부의 자극이나 공격이 있을
때 역공을 취하게 된다.
“거 참...”
“가공한 ‘공력’이외다...가히 수 갑자는 넘는 듯 하오...게다가 저런 기이한
효용이라...저 수준이면 어지간한 내, 외상은 엔간히 다스릴 수 있을 듯
하고...“
“아무튼 기묘한 공부인 것은 사실인 듯 하오...허 참...이런, 쩝쩝! 그보다
술이 떨어진 듯하군...으응 어이! 거기! 지금 품속에 넣은 것 이리 좀 줘
보게나...어라 자네...나한테 무슨 불만이라도 있는가“
“아...아닙니다요...어찌 소인이 감히...별로 대단치 않은 술이라...”
억지웃음을 지으며 ‘거령마존(巨嶺魔尊)’ ‘왕산(王山)’이 흑백무상 앞에
큼지막한 술병을 내 놓았다.
“흐음...그런가 아무튼 잘 마시겠네...”
“허허...예의가 바른 친구로군...”
앞에 놓인 덩치 큰 사내의 머리통만한 술병을 보며 흑백무상이 입맛을
다신다.
(...제기럴...!)
왕산은 내심 부르짖었다.
역시 ‘서열’이란 높고 볼일이었다.
려화는 지니고 왔던 약과 불마공의 신묘함으로 대충 상처를 보살피고
뒤이어 불마전의 시녀들로 하여금 다친 소녀들을 부축하게 했다.
그 중 너무 지나치게 얻어맞아 실신 지경까지 갔던 제일 어린 시녀의
저도 모르게 방뇨를 하고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옷을 손수 벗긴 후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준 후 모포로 감싸 품에 안았다.
“흐응...어...엄마...”
“후후...”
약간 정신을 차렸는지 자꾸만 품으로 파고드는 어린소녀를 안고 다정스레
웃음을 흘렸다.
토닥토닥...잠자는 아이를 어르는 듯한 모습...
순간, 그녀의 몸 주변으로 환하게 주위로 발산되는 기운...금빛이 그녀
주위로 어른거리는 듯 했고 흡사 여신이 하강해 후광을 비추는 듯 했다.
거기에 이글거리는 음습한 묵기류...‘마기(魔氣)’ 역시 배후로 깔려 어느
누가 공격을 해 올 경우 그 만큼 각오하라는 말을 하는 듯 하다.
“아아...”
“......!”
주위에 둘러선 요화궁 여인들은 물론 여기저기 숨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악령종의 ‘마웅’들 역시 나직이 신음을 삼켰다.
오늘 이후...아마 ‘불마전주’ ‘려화’의 평가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자, 모두 돌아가죠...”
“네...네!”
“전주님...”
울먹울먹...옹기종기 어미에게 모여드는 어린 아기 새 들이나 양떼들처럼...
려화 주위에 모여들어 종종거리며 따라 나서는 소녀들...
어린 시녀들의 눈망울에는 ‘려화’에 대한 찬탄과 이른바 존모의 감정까지
생긴 듯 하다.
어느 누구도 둘러선 요화궁 여인들은 물론 정예 무력단체이기도 한 ‘금화단’
고수들 역시 자리에 굳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오직 한 명...금화단의 단장...그녀가 려화의 앞을 가로막은 것을 제외하고...
“무슨 일이라도...”
“......”
금화단 단장...그녀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와 금화단의 존재 이유...어느 누구도 허락 없이 이 요화궁 세력권의
전각에 들여선 안 되었다.
상대가 불마전주 려화라면 더더욱...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일은 벌어진 상황...
거기다 도무지 억제할 수 없는 이 충동은 뭘까...
“죄...죄송합니다...”
“......”
잠시 뜸을 들인 후, 금화단 단장이 조용히 물러서며 예를 갖췄다.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려화...비록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윽한 눈길을 주고 있는 듯 려화의 시선이 느껴진다.
마치 발가벗고 그 앞에 선 듯 수치스러우면서 묘한 기분이다.
“고마워요...지엄한 사명이 있을 터인데...궁주님께는 본녀가 곧 방문 하겠
다고 말씀드려 주세요...그리고, 다음에 보았을 때는 이런 만남이 아닌 기분
좋은 만남이 되었으면 좋겠군요...다른 요화궁 식구들 역시...“
“......!”
“......”
파문...그 것은 잔잔하게...그러나 분명하게 여러 사람들에게로 퍼져 나갔다.
나긋나긋 가볍게 움직이는 려화에게로 머무는 시선들...이제와는 달리 그의미는
경탄과 존경이 대부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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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늦어져서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전에썻던 글 또한 계속 이어지지 못했었군요...
뭐 어쨋든 모두 제 책임입니다.
사소한 싸움과 글다툼이 원인이 되어 꽤나 심각했었습니다.
다행이 전화위복이랄까...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어찌어찌 싸웠던 친구들과도
대충 화해는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제 글에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 이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이 야설의 문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드믈게 자신의 상상과 속마음을
마음껏 털어 놓을 수 있는 공간임에도 소홀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제게 글쓰기를 가르쳐 주셨던 분들과 친구들...또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격려로
다시 글을 쓰게는 되었습니다만, 우선 기존의 감각을 찻고 본격적인 글쓰기로서의 준비
운동 으로 '진경룡' 님의 작품을 번역하여 올려보겠습니다.
그런데,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이 양반이 이 글을 완성하긴 하셨는데...문제는 한글, 간체자, 일어...심지어 정체자 까지
사용해 쓰는 바람에 아주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 입장입니다.
더구나, 이분이 쓰는 글은 좀 난해합니다.
동양 삼국의 역사는 물론 각종의 경서에도 밝은 양반인데다...무협매니아 라고 해야 할
분이라...아무튼 잘 읽어보시면 아시는 분은 아실겁니다.
또, 불규칙하게 글을 올리는 것은 이번으로 끝내고 2-3일 정도 간격으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정기간 이상 글을 끊어야 할 시에는 무단 잠수가 아닌 미리 알려
드리고 잠수를 타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이 이상으로 장기 잠수는 없을겁니다. 어떤
분 한테 꽤나 혼났거든요...(잔소리...잔소리...;;)
마협전 등의 글은 이번 요화가 끝나고 올리겠습니다.
얼마 안남았거든요...이 글...'요화'는 분량이 그리 많지 않아 워밍업 으로 딱이겠다
싶었는데...내용상 꽤 어려웠습니다.
각설하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야문 식구 분들께 감사드리며 올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는 더욱 활기차고 행운이 함께하시는 나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천연자석 배상...(__)
한가지 더...야한 장면이 좀 없더라도 당분간만 참아주시기를...^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