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부 (8/19)

제8부

다음날 아침 그들의 단잠을 깨운 것은 재구의 휴대폰이었다.

“여보세요”

“김 재구씨 핸드폰이죠?”

“그런데요...?”

“서부 유통의 김 정미입니다. 김 영주 이사님께서 오늘 아침에 긴급회의가 있다고 꼭 참석해 주셨으면 하십니다.”

“몇 시까지 가야하나요?”

“9시에 하신답니다.”

“저기... 지금이 8시 15분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김 이사님께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전해주십시오. 하지만 길이 안 막혀도 최소한 45분은 걸릴 겁니다.”

“잘 알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재구는 침대에서 튀어나와 다시 한 번 이메일을 확인했다. 하지만 늘 골칫거리 고객인 서부 유통에서 온 메일은 한 통도 없었다. 일단 안심을 하고 부리나케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는 수정에게 말했다.

“아침에 갑자기 회의가 있다고 하네... 오후에는 새로운 고객이 될지도 모를 회사와 미팅이 있고. 너는 어쩔래? 나 따라 갈래? 아니면 집에 있을래?”

“오빠 따라 가도 돼?”

“따라 와도 되긴 되는데 지난번처럼 안보이게 해야 해. 최소한 저쪽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서는.”

“알았어.”

재구는 자신의 노트북가방을 들고 8시 30분에 급하게 현관을 나왔다.

특별히 서두르거나 무리하지 않았는데도 월요일 아침 출근시간으로는 최단시간 기록을 갱신하며 1시간 조금 더 걸려서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서부 유통에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이 회사는 처음엔 함께 일하기 아주 좋은 고객이었는데 어느 순간 임원들이 바뀌면서 엉망이 되어버렸다. 김 영주라는 여자가 관리이사가 되면서부터 아주 변덕스럽고 요구사항만 많은 골칫거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재구의 차가 건물 주차장으로 들어서자 수정이 조수석에서 사라졌다. 차를 주차시키고 서부 유통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9시 45분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 재구씨. 회의실에서 기다리고들 계십니다.”

“고맙습니다.”

재구가 조용히 문을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김 영주 이사가 주름지고 흰머리 가득한 얼굴을 그에게 돌리며 일갈했다.

“김 재구씨. 45분이나 늦었군요. 용서할 수가 없어요.”

재구는 이런 반응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

“김 이사님. 그 말씀은 9시 회의를 8시15분에 전화해서 알려준 사람에게 하셔야 할 것 같군요. 여기까지 오려면 길에 차가 한 대도 없어도 45분 걸립니다. 전에 계셨던 분들은 다 아시는 일일 텐데요. 월요일에 그 시간에 맞춰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발상입니까? 앞으로는 제가 회의에 참석하길 바라신다면 충분한 여유를 갖고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구가 자리에 앉아 김 영주 이사는 자신의 부하직원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예의 그 싸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재구역시 침착하지만 당당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등 뒤에서 요정이 지켜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나게 든든한 일이었다. 그렇게 서로 노려보면서 재구는 속으로 그녀를 비웃고 있었다. 9시 회의를 8시 15분에 전화하게 한 건 그 여자 자신임을 재구는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깨고 김 이사가 입을 열었다.

“당신과는 잠시 후에 얘기 합시다. 김 재구씨.”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고개를 돌렸다.

재구는 노트북을 켜고 서부 유통 관련 파일들을 열었다. 그리고는 방안의 여자들 머리에 상황판을 띄어보며 시간을 죽였다. 회의실 안에는 오직 2명의 여자가 있었다. 그것도 만일 김 영주 이사를 여자로 친다면... 우선 그 아줌마부터 확인했다. 비록 처녀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성생활은 산속 수도승처럼 밋밋하기 짝이 없었다.

그 다음엔 이 명숙 관리 부장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이전의 임원진 중에서 몇 남지 않은 사람 중의 하나였고 꽤 괜찮은 여자였다. 재구가 상황판을 읽기 전에 그녀가 먼저 그를 쳐다보았다. 재구가 김 이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가 윗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다행히 김 이사는 다른 직원에게 짜증을 내느라 눈치 채지 못했다. 이 부장은 다시 회의에 몰두했고 재구는 다시 상황판으로 돌아갔다. 한참을 들여다 보다 머릿속으로 수정을 불렀다.

‘왜, 오빠?’

‘야 이게 무슨 뜻이냐? 보아하니 이 부장은 섹스에 대해 관심도 높고 관심 분야도 다양한데다가 꽤 자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무척 한정돼 있는 것 같거든.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야?’

‘그냥 그 나이 또래 여자들하고 똑 같아’

‘어떻게?’

‘토요일날 우리가 쇼핑몰에서 했던 얘기하고 비슷한 거야. 이 사회 규범에는 어린 남자나 여자들이 이미 성적으로 성숙되고 준비가 끝났어도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지 기다리도록 되어 있잖아. 그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은 성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게 쉽지 않지. 만약 그랬다가는 밝히는 여자로 낙인찍혀서 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잖아. 그게 두려운 거야.’

‘그러니까... 이 부장은 자신이 밝히는 것처럼 상대방이 생각할 어떤 행동도 안한다는 거야? 상대방이 자기를 무슨 창녀나 음탕한 여자로 볼까봐?’

‘맞아, 오빠. 게다가 자기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망가질까봐 걱정하는 것도 있고...’

‘그렇구나. 저 여자 애인은 있어?’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있어. 둘 다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이라 지금은 단지 섹스파트너일 뿐이야.’

‘그렇구나... 그럼 그 남자도 이 부장처럼 해보고 싶은 건 있는데 똑같은 이유로 못하고 그러는 거야?’

‘후훗... 응, 오빠.’

‘그럼 이렇게 하자. 그 두 사람 좀 느긋하게 마음먹고 편안하게 하고 싶은 섹스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만들어 줘. 뭐든 둘이 서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해볼 수 있게 해주고 간혹 한 사람이 별로 좋아하지 않더라도 서로서로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받아 줄 수 있도록 해줘. 그리고 둘 다 나중에 둘 사이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서로 나눈 성생활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비밀로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게 해주고. 두 사람의 성격이나 이런 거 개조하지 않고도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좋은 생각이야, 오빠. 그렇게 할게.’

‘좋아 그럼 그렇게 만들어 줘. 맨날 이렇게 숨 막히는 곳에서 하루 종일 일만하니 저 여자도 뭐 좀 재밌는 게 있어야 살잖아.’

바로 그 때 김 이사가 으르렁거렸다.

“김 재구씨. 왜 우리 홈페이지에 아직도 가격표가 업데이트 되지 않았는지 설명 해봐요. 이건 명백한 계약위반 아닌가요?”

“그건 귀사에서 아직도 가격표 파일을 보내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받은 것은 지난달 가격표더군요.”

“그렇지 않습니다, 김 재구씨. 게다가 지난달 것도 늦게 올라왔더군요. 그것도 계약 위반인거 아시죠? 안 그래, 윤 부장?”

그녀가 기존의 임원을 갈아치우면서 자신의 사람으로 함께 데려온 측근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윤 부장이라는 자가 역겨울 정도로 능글맞게 웃으며 재구에게 말했다.

“제가 금요일 오후 4시에 김 재구씨에게 가격표 파일을 보내드렸습니다.”

그가 자신의 노트북을 가리켰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저는 받은 적이 없으니 어쩌죠? 제 메일 서버는 다운된 적이 없었는데... 그 메일 좀 볼까요?”

“얼마든지요.”

윤 부장이 확신에 찬 어투로 말했다. 재구가 윤 부장옆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그리고는 윤 부장이 보냈다는 메일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저기... 윤 부장님. 제 이메일 주소는 jaegu입니다. jegu가 아니구요. 제 이메일 주소를 잘 못 치셨군요. 그러니 저한테 메일이 오지 않을 밖에요.”

윤 부장의 그 느글거리는 웃음은 사라지고 두려운 눈으로 김 이사를 바라보았지만 재구가 먼저 말을 이었다.

“저 여기 좀 클릭해 보시겠습니까?”

재구가 윤 부장의 받은 메일함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가 클릭을 해 열었다.

“조금 내려 보세요... 아, 여기 있네요. 저한테 메일을 보내시고 1~2분 뒤에 부장님께 배달된 메일을 읽어보셨다면 주소가 잘못돼서 부장님의 메일이 제게 전달될 수 없었다는 걸 아셨을 텐데요.”

재구가 심술궂은 암캐를 쳐다보았다.

“김 이사님,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제가 받지도 못한 가격표를 올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윤 부장님의 전임자께서는 이런 일에 대비해서 이메일을 보내신 후에는 항상 전화를 주셨습니다. 전화를 받고 30분 안에 파일을 받지 못하면 제가 다시 전화를 드려서 파일을 다시 보내주시도록 했지요. 윤 부장님께도 그렇게 해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거부 하시더군요.”

김 이사가 윤 부장을 잠시 노려보더니 재구에게 향했다.

“당신이 그렇게 컴퓨터에 대해서 잘 안다면 왜 윤 부장이 주소를 잘못 쳐서 메일이 가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못 받았죠?”

재구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천천히 내뿜으며 말했다.

“김 이사님, 전화번호를 잘못 누르면 어떻게 되지요?”

그녀가 눈을 꿈벅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전화번호가 잘못되었으니 확인하고 다시 걸라는 녹음이 나오지 않나요? 그게 이일과 무슨...?”

재구가 끼어들었다.

“그럼 그 기계가 잘못된 전화번호가 아닌 이사님이 원하는 번호로 직접 연결해 줄 수 있나요?”

“아니 그거야...”

김 이사가 재구의 말뜻을 알아차린 듯 했다. 하지만 대답하고 싶지 않은 눈치인걸 알고는 재구가 대신 대답을 얘기했다.

“기계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거지요. 이메일 서버도 마찬가지랍니다.”

그녀가 다시 눈을 꿈벅이더니 공격을 재개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 재구씨, 우리의 계약에는 분명히...”

“김 영주 이사님.” 재구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끊었다.

“계속 강조하시는 계약 조항에 대해 몇 가지 주의를 환기시켜드려야겠네요. 가격표 파일은 매월 두 번째 금요일 오전 8시 이전에 제게 도착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 후 특별한 기술적인 문제가 없는 한 근무시간 기준으로 8시간 이내에 제가 서부 유통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되어있지요. 지난달에도 늦었다고 하셨죠? 가격표 파일이 제게 3일 늦게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전 받자마자 두 시간 만에 업데이트 시켰죠. 저는 계약을 위반한 적이 없습니다.”

재구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이번 달 파일은 귀사 직원의 여러 가지 실수로 인해 제가 아직 받지 못했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올라가있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실수들인지 볼까요? 하나: 윤 부장님께서 제 이메일 주소를 잘못입력하신 것입니다. 둘: 메일을 보내고 곧 받아보셨을 에러 메시지를 그냥 무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임자께서 사용하시던 비상 연락망도 아예 무시해 버리셨습니다. 이상의 것들은 어느 하나 제 잘못이 아닙니다.”

말을 마치려던 그가 한 가지 더 덧붙였다.

“아참, 윤 부장님께서 제게 파일을 보내셨다고 한 금요일 오후 4시는 귀사의 파일 전송 마감시간에서 8시간이 지난 뒤란 것도 아시죠? 만약 그때 제가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는 월요일 세시 전에만 올리면 되는 것이지요. 계약서대로라면 말입니다. 파일을 보냈다고 생각하신 시점에서 근무시간 기준으로 겨우 1시간 15분지난후에 전화를 하신 셈이지요.”

재구가 잠시 멈추었지만 김 이사가 무언가 말을 하기 전에 다시 시작했다.

“계약서 조항 중에 이사님께서 오늘 토론의 주제로 삼지 않은 한 가지가 더 있네요. 제 용역비는 매달 1일에 입금하게 되어있는데 이번 달은 물론이고 지난달 것도 입금이 되어있지 않더군요. 45일 연체가 되신 것이고 명백한 계약위반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계약서를 읽어 보시긴 한 거죠?”

이쯤 되자 김 이사는 다른 사람에 의해 그것도 하찮은 하도급업자에 의해 망신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김 재구씨 당장 윤 부장을 따라가서 가격표 파일을 받으세요. 그리고 빈자리를 하나 줄 테니 당장 홈페이지를 업데이트 시키세요.”

“아닙니다. 김 이사님.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계약서에 따르면 용역비가 30일 이상 연체될 경우 연체된 용역비가 전액 지불되기 전까지 귀사의 홈페이지는 정지시키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거래했던 정리로 인해 지난 금요일까지는 업데이트 작업을 계속 하려고 했었습니다만 이제는 아닙니다.”

재구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제가 1시에 다른 고객과 미팅이 있습니다. 그 후에 다시 들러서...”

“다른 고객이 있다구요?”

김 영주 이사가 소리쳤다. 재구는 저 여자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김 이사는 여전히 길길이 날뛰며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너 나 따라와. 당장!”

“김 이사님 말씀을 삼가주시지 않는다면 더 이상 회의에 참석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아주 싸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좋아요, 김 재구씨.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박 부사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순간 방안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재구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있게 대답했다.

“그러지요, 김 영주 이사님.”

그녀를 따라 복도를 내려가니 고급스럽게 치장된 사무실 안쪽에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부사장님, 데려 왔습니다.”

김 이사가 굽실거리며 말했다.

노신사가 읽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들어 재구를 바라보았다.

“김 재구씨, 도급계약의 중요 조항을 여러 개 위반하셨다구요?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법정으로 가야 할까요?”

“죄송합니다만 혹시 계약서는 읽어보셨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아뇨, 당신과의 계약서는 안 읽어 봤습니다. 하지만 김 이사로부터 위반한 조항들에 대해서 보고를 받았지요.”

“부사장님, 김 이사님께서도 제 계약서의 조항에 대해 전혀 모르시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녀가 흥분하기 시작했으나 재구가 말을 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시기 이전에 계약서를 한번 읽어보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귀사에서 서명하신 계약서 사본을 가지고 왔습니다.”

“사본은 변조될 수 있습니다.”

김 이사가 쇳소리를 내었다.

재구가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김 이사님. 이사님의 말씀은 부당하고 비논리적입니다. 귀사와 제가 공증 받은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제가 변조한 계약서를 만들어서 뭘 하겠습니까?”

그가 다시 박 부사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사장님, 귀사의 직원들이 저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한다면 결국 법정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만 됐어요, 김 이사. 그 계약서 어디 봅시다.”

재구가 계약서를 그에게 주고 앉아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김 영주 이사가 앞으로 셰퍼드만 보면 수간을 하고 싶어 미치도록 만들라고 수정에게 명령했다.

이윽고 박 부사장이 말했다.

“좋아요. 그럼 김 이사가 먼저 뭐가 문제인지 다시 말해보시오.”

“네, 부사장님. 김 재구씨가 제시간에 홈페이지를 업데이트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우리 말고 또 다른 회사와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재구를 바라보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계약서에 보시면 용역비가 30일 이상 연체되면 홈페이지의 모든 내용을 정지시킨다는 조항이 있을겁니다.”

“그래요, 봤어요. 그래서?”

“귀사는 현재 45일 이상 연체되어있습니다.”

“뭐라구요?”

그가 김 이사를 향했다.

“우리 회사는 특별한 거래위반 사항이 없는 한 한 번도 지급기일을 여겨본 적이 없소. 그게 우리 회사 전통이야. 그렇다면 당신은 이 젊은이가 여태 용역비를 지급받지 못한데 대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요?”

그녀가 언성을 높였다.

“그건 저 친구가 지난 달 업데이트도 몇일 늦었기 때문에...”

재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을 막았다.

“부사장님. 김 이사 말대로 지난달 가격표가 사흘 늦게 올라갔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사흘 늦게 받았기 때문이죠. 계약대로가면 저는 8시간 후까지 올리면 되지만 늦었다고 생각해서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밤에 작업을 해서 두 시간 만에 올렸습니다. 그전 금요일에도 제가 먼저 전화해서 가격표를 보내달라고 하니까 곧 보내준다고 하고서도 말입니다. 게다가 그땐 이미 전달 용역비가 거의 3주째 연체된 상황이었습니다.”

박 부사장이 김 이사를 쳐다보자 그녀는 마치 어항 밖으로 던져진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거리고 있었다. 그가 겨우 화를 달래며 재구에게 말했다.

“김 재구씨, 두 번째 문제는 얘기가 좀 다른 것 같소. 우리 회사는 어떤 용역업자도 다른 회사와는 거래하지 못하게 되어 있소. 게다가 최근에는 모든 용역업자가 우리 회사에 나와서 일하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했지요. 그런데 당신 계약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부 빠져 있는 것 같군요.”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김 이사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이 계약서를 쓴 건 자신이 아니라는 몸짓을 해 보였으나 그의 노여움은 가신 것 같지 않았다.

“만약 당신이 여기서 일했다면 메일이 잘 못 전달되는 것 같은 일은 없었을 것 같소. 앞으로 계약을 갱신하려면 우리 회사만을 위해서 이곳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소.”

“부사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 회사에서 받는 보수만으로는 겨우 최저생계비를 넘을 정도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알겠소.”

박 부사장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렇다면 정식직원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소?”

재구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두어 달 전에 같은 질문을 하셨다면 심각하게 고려했을 것입다만 지금은 분명히 거절하겠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도 되겠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지금 데리고 계신 간부직원들과는 일을 할 수가 없으며 둘째로는 그 분들이 계속 이 회사를 운영해 나가신다면 아홉달 안에 제가 새 일자리를 알아보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순간 박 부사장의 노여움이 재구 쪽으로 향했다.

“50년이나 회사를 운영해 온 내가 이젠 더 이상 내 회사를 경영할 줄 모른다는 얘긴가?”

“그게 아닙니다. 부사장님이 데리고 계신 간부들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뭔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서부 유통은 내년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 부사장이 재구를 잠시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 쉬었다.

“좋아요, 김 재구씨.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명시한 30일 유보 후에 우리 계약을 파기해야 할 것 같소.”

“잘 알겠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30일 유보조항을 지금 바로 시작해서 다음 달 중순에 끝내시겠습니까, 아니면 다음 달 초에 시작해서 말에 끝낼까요?”

“그건 간부들과 상의해 봐야겠소. 하루 이틀 후에 답을 주면 안 되겠소?”

“그러십시오.”

재구가 그에게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그리고 빨리 귀사의 홈페이지 이전 계획을 세우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왜죠?”

“귀사의 홈페이지는 제 서버에 올려져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당시 귀사에는 홈페이지를 만들고 올리는 작업을 할 사람도, 장비도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달라진 건 없지요. 물론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모든 자료는 귀사의 것입니다. 하지만 홈페이지의 구성은 제 창작품이므로 계약서상 저작권이 제게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구해서 처음부터 새로 만드시고 자료를 다시 올리셔야 할 겁니다. 물론 서버도 새로 구하셔야 하구요.”

김 이사가 덤벼들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도 계약의 일부에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사님. 현재 계약으로는 홈페이지의 유지 관리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디자인은 또 다른 문제지요. 만약 제가 만든 홈페이지를 그대로 유지하시려면 다시 계약을 하셔야 합니다.”

그가 다시 박 부사장을 바라보았다.

“부사장님, 그동안의 정리를 생각해서 싼 가격에 드리겠습니다만 공짜로 할 의향은 없습니다. 물론 그전에 제 일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이루어져야겠지요.”

“알겠소. 덕분에 이것저것 생각할 일이 많아졌군. 며칠 내로 다시 회의시간을 잡아 연락하겠소. 그럼 우선 가격표를 업데이트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김 영주 이사께서 화를 내시며 나가시기 전에 말씀 드리려던 건데 제가 1시에 약속이 있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끝나는 대로 다시 들려서 제 용역비와 가격표 파일을 받아가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파일에 이상이 없는 한 최대한 내일 업무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업데이트 시켜놓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김 재구씨. 여직원이 용역비와 파일을 준비해 놓을 거요. 그럼 이만... 난 김 이사와 할 얘기가 좀 있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사장님.”

재구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다가 돌아섰다.

“저 그리고 부사장님?”

“왜 그러시오?”

“회의 때문에 절 부르시려거든 최소한 45분전 보다는 일찍 연락 주시겠습니까? 제가 도저히 그렇게 빨리는 운전을 못하거든요.”

거의 실신하기 일보직전인 김 이사를 노려보며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하겠소, 김 재구씨.”

“감사합니다.”

재구가 당당하게 문을 열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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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는 침착하고 쿨하게 처신한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동안 자신의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괜찮아, 오빠?’

수정이 물었다. 순간 한동안 그녀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게 미안스러워졌다. 생각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응’

그는 여전히 회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고 30일 후에는 수입이 줄어들 것에 대한 걱정도 하고 있었다.

‘이번에 만나는 사람과는 거래가 잘 성사 되어야지 안 그러면 맨날 놀면서 섹스나 하다가 굶어죽겠다. 뭐 좋은 생각 없어?’

그녀가 깔깔거리는 소리를 느꼈다.

‘그런 건 내가 어쩔 수 없어, 오빠. 하지만 다음 회의 전까지 긴장 풀게 뭘 좀 해줄까?’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재구는 잘 알고 있었다.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미 12시를 넘고 있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없다. 다음 미팅이 한신데 가는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내가 시간을 더디게 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거 알지, 오빠?’

‘음... 땡기긴 하는데 지금은 일에 몰두 하고 싶다.’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조수석에 수정이 나타났다.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눈을 떼기 싫어졌다.

“니가 해 줬으면 좋을 게 하나 있는데. 내 생각 읽지 않고 그냥 맞춰볼래?”

“음...”

그녀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오빠 운전하는 동안 입으로 해주는 거?”

“너 컨닝했지?”

“아냐 오빠. 난 오빠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 거 몰라?”

“음... 허험... 그럼 해 줄래?”

“짱 좋아, 오빠! 보이게 할까 아니면 안보이게 사라질까?”

그녀가 벌써 그의 무릎으로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보이게 해줘. 안 보이면 운전할 때 더 신경 쓰일 것 같아.”

비록 그녀의 환상적인 뒤통수밖에 볼 수 없었지만 자신의 바지 지퍼가 열리는 소리를 듣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더니 부드러운 손가락들이 바지를 열고 벌써 딱딱해지기 시작한 그의 자지를 꺼냈다. 그녀가 좆대의 뿌리부분을 쥐자 그는 그대감에 한숨을 내 쉬었다. 그녀는 그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커다란 막대사탕을 빨듯 혀와 온 입을 사용해 확실하게 빨기 시작했다.

“내가 운전하다 사고 안나게 해줘, 알았지?”

“엉...앙아써...”

그녀가 입에 자지를 문 채 대답했다.

요정 수정의 힘으로 자신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는 재구는 느긋하게 그녀의 환상적인 오럴 서비스를 즐기고 있었다. 수정은 재구의 자지를 끈적거리게 만들듯 고개를 상하로 흔들며 열심히 빨았다. 한 십분 간을 그렇게 헤드뱅잉을 하던 그녀가 귀두를 입술로 물고 천천히 그러나 강력하게 빨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불알을 애무했다. 그가 신음을 토했다.

“자동 운전으로 바꿀 수 있어?”

“어~헝”

차가 자동으로 움직이자 재구는 좀 더 느긋하게 수정을 바라보았다. 거의 도착할 때쯤 되자 수정은 새로운 테크닉으로 바꾸었다. 한 5~6cm 정도만을 입에 물고 강력하게 빨면서 혀로는 귀두 아랫부분을 끊임없이 휘감고 돌았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불알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가 또 다시 신음했다.

재구는 더 이상 못 참을 것 같았고 수정이 더 이상 참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았다. 그래서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채 누가 보던 상관없이 사정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때가 이르렀다. 재구의 자지로부터 길고 느긋한 사정이 시작되었다. 수정은 마지막 한 방울의 정액까지 다 빨아먹을 때까지 빨기와 핥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정이 멈추자 그녀는 고개를 들고 자지가 작아지기를 기다려 바지 속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그리고는 눈을 깜박이자 바지에 잡혀있던 주름이며 약간 흘러서 넘친 정액과 그녀의 claRk지 말끔히 사라졌다.

“나 다시 사라질까, 오빠?”

“응, 그래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오빠만 원한다면 언제든지 그리고 얼마든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며 미소를 남겼다. 그리고는 재구의 생각 속에 말했다.

‘오빠의 유령요정으로 함께 있는 것도 너무 행복해. 재밌어.’

재구가 차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니 12시 55분 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화인상사 라는 간판이 붙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귀엽고 발랄한 여직원이 그를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네, 저는 김 재구입니다. 방 성기씨와 1시에 약속이 되어있는데요.”

“네, 잠시만 기다리시겠습니까?”

그녀가 전화를 들고 번호를 돌렸다.

“김 재구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가 전화를 끊었다.

“잠시만 앉아계시면 곧 나오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재구는 자리에 앉아 사무실을 둘러보았으나 화인상사라는 곳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재구의 고객 중에 한 사람의 소개로 방 성기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홈페이지 디자인에 대해 의논하자고 한 것 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안쪽 문이 열리며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가 잠시 둘러보더니 재구에게 아는 척을 하며 미소와 함께 악수를 청했다.

“김 재구씨? 방 성기라고 합니다.”

재구도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방 사장님.”

그는 카키바지에 푸른색 면 셔츠를 입고 소매를 걷어 올린 차림으로 웃으며 다정하게 악수를 건넸다. 재구는 이 사람이 벌써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그가 다소 의외의 말을 던졌다.

“숙희씨, 잠시 자리 좀 비켜 줄래?”

“알겠습니다.”

여직원이 방 성기가 들어온 문으로 사라졌다. 그가 재구를 바라보았다.

“김 재구씨. 얘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게 있어요.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라서 일단 보자고 했습니다.”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화인상사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성인용품 전문회사인 F.I.의 아시아 총판 본부랍니다.”

재구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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