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부 (17/18)

17부

식사를 마친뒤 우리는 숙소로 올라와 옷 메무새를 정리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연희도 사장님과의 첫대면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약속시간 보다 10여분 일찍 장소로 향했다. 이 호텔은 16층부터 19층까지는 운행되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마련이 되어있었고, 특히 19층은 다른 층과 달리 키카드를 엘리베이터 단말기에 가져다되야 작동이되었다.

“역시 스위트룸은 다르네 달라.”

나는 좀 전에 최비서에게 받은 카드로 엘리베이터를 작동을 시켰고, 연희는 마치 엘리베이터를 처음 타는 사람마냥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10층이 넘어가고 점점 19층과 가까워 오자 점점 목 부분이 갑갑해졌다. 사장님과 단 둘이 가지는 술자리가 긴장되지 않는 사원이 어디있을까? 일반 샐러리맨들이 항상 꿈꾸오는 그런 라인.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테니 정말 잘해야 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그런데 오빠, 긴장 좀 풀어.. 얼굴이 경직이 되어서....어멋.”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놀랍게도 바로 스위트룸에 도착을 했다. 한층이 통째로 객실이었던 것은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이곳은 우리 객실보다 10배쯤 넓어 보이는 마치 큰 공간과 그 뒤 쪽으로 개인이 즐길 수 있는 고급바, 식탁등이 눈에 띄었고, 왼쪽에는 마치 외국별장에 있을 법한 난로와 그 안에 모닥불 위로 작고 아늑하게 보이는 열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어! 여기로.”

응접실 중앙에 소파에 앉아 있던 사장님은 우리를 보고는 손을 들고 반겼다. 나와 연희는 서둘러 그 앞으로 다가가 꾸벅 인사를 건냈다.

“아 반갑습니다. 유과장으로부터 이야기 들었습니다.”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야기 듣던대로.... 아주 미인이시네요.”

 “어머...감사해요...”

사장님은 아내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자, 연희는 적당히 부끄러운 척 그의 관심에 호의를 표했다. 우리는 사장님의 에스코트를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이름모를 고급와인과 양주, 그리고 멋있게 조각된 과일과 치즈가 놓여져 있었다. 

“혹시 시장하신가요?”

 “아..아녜요..괜찮습니다.”

사장님이 물음에 연희는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연희는 저녁 식사때에도 너무 배부르면 모처럼 타이트하게 입은 옷에 매무세가 흐트러질까 좀 적게으니, 조금은 고민이 되었을 법 했다.

사장님은 먼저 우리의 잔에 와인을 채웠다.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히 비싼 와인이겠지? 하지만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와인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희는 와인과 치즈가 입 맛에 맛는지 조용히 감탄중이었다.

“유과장이 제 못된 버릇 때문에 고생이 많지요.”

 “못된 버릇이요?”

갑작스런 질문에 연희도 궁금한 듯 물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욕심이 많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언제나 부족함 없이 주셨는데 말이죠. 배우고 싶은 것이든 아님 갖고 싶은 것이든 원하는 대로 해주셨죠. 그런데도 욕심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장님이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자 잔 속 붉은 색 와인이 작게 회오리쳤다. 

“하루는 집 앞에서 꼬맹이들이 소꿉놀이 한답시고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어떤 여자애가 가지고 있던 못생긴 인형하나가 눈에 들어왔지요. 생각해보면 아무짝에나 쓸모 없었지만, 그것이 제가 가지고 있던 로봇인형하고 상대시키면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애들한테 집에서 가져온 바나나 한 개씩을 주고 먹고 있을 때 몰래 가지고 집으로 갔습니다.”

 “정말이요? 사장님께서요?”

 “그 때는 완전 제멋대로였죠. 정말로. 하지만 나중에 아버지한테 들키고 엄청 혼났습니다. 당연하죠.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이 도둑질이나 했는데....아버지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겠죠? 해달라는 대로 다해주고, 더 좋은 것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여자애들이 가지고 노는 그런 인형 따위에 집착해서 훔쳐가져가기나 하는지....”

연희가 흥미를 보이자 사장님은 재밌다듯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지금도 마찬가지죠. 사업에서 뭔가 가지고 싶은 아이템이나 아니면 꼭 이뤄야되는 성과는 지금도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손해보는 한이 있더라도 꼭 이뤄야 되지요. 그래서 덕분에 저희는 경쟁회사보다 더 헌팅 프로젝트가 많습니다. 비상식적으로 보일 만큼이죠.”

 “하지만 그게 회사의 성장의 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냐. 아냐... 사실 경영책임자는 그런 식으로 경영하면 안 되지. 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어떻하겠는가? 나란 인간이 그렇게 생겨먹은 것을...”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와인을 다 마시자 사장님은 만족한 듯 씨익 웃었다.

“참. 자네한테는 와인 마시기 전에 특별한 것 한잔 줄려고 했는데 깜빡했구만.”

 “아..아닙니다. 지금 주셨던 술도 훌륭합니다.”

 “잠깐만 기달려보게. 올 초 콜럼비아로 잠깐 갔을 때 사온 술이야. 거기에서만 나오는 명품 술이야. 커피를 증류해서 만드는 술이거든. 한잔 마셔보게.”

사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바(Bar)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즐겁다는 듯이 언더락 잔에 검은 색 술을 따랐다.

“그런데...사장님....”

 “예.”

연희가 사장님을 부르자, 그는 뒤돌아 선채 대답했다.

“그런데 그 인형은 어떻게 하셨어요? 그...훔쳤다는....”

 “.......”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는 따른 술을 한손에 쥐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교환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장남감 100개 정도하고요...”

***

사장님의 배려 덕에 분위기는 무겁지 않게 아니 오히려 즐거운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본인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연희하고도 이야기가 잘 통했고, 적당한 곳에서 유머를 하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어느새 와인 한 병을 다 비우고 또 다른 한 병을 오픈하는 찰나 머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눈꺼풀이 무거워 견딜 수 없었다.

사장님은 수다스럽게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지만, 그의 말이 제대로 귀어 들어오지 않았다. 벌써 취한 것일까? 이런 적이 없었는데....아마도 몇 일 밤을 샌 것이 무리가 되었던 것 같았다. 사장님이 와인 한잔을 더 채워주셨을 때,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

“흐윽..흐윽....”

얼마나 지났을까?....여자의 우는 듯한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이건 꿈인가? 현실이 분간이 되지 않는 상황 나는 내 옆에 아무도 없음을 느꼈다.

“연...연..히...”

나는 연희를 찾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불렀지만, 목이 잠겨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주변을 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눈을 떴고,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식탁에 몸을 기댄채 업드려 있였다. 

“하앙...하아......”

좀 더 가빠진 여자의 소리. 연희인 것일까? 순간 나는 몸을 일으켰다.

쨍그랑!

나도 모르게 테이블 위에 있던 와인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붉은 색으로 물든 유리조각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연희가 달려왔다.

“오..오빠...일어났어?”

연희는 내 얼굴을 살피고는 바닥에 떨어진 유리조각을 줍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동안 멍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미안...잠들었나봐...”

 “아냐..오빠..이제 숙소로 들어가 자자..오빠 많이 피곤해보여.”

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사장님은? 이런 결례를 하다니...나는 황급히 그를 찾았고 사장님은 내 뒤에 있었다.

“자네 술이 생각보다 약하군...”

사장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천천히 다가와 내 등을 토닥였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출창 때 밤새서 일했다고 들었네. 그럴 수도 있지. 덕분에 연희씨가 나하고 말동무 해주느라 고생했지.”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나와 연희를 번갈아 봤고, 연희는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나의 팔을 잡았다.

“오빠. 들어가자. 좀 자야.....”

 “괜찮으면 유과장하고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가능할까요?”

사장님이 부탁에 연희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고, 나는 사장님을 향해 웃음지었다.

“아 물론이죠. 이제 괜찮습니다. 한잠 자고 일어났더니, 완전 멀쩡하네요.”

 “그래...그래야지...”

나는 중간에 자버린 실수를 만회하고자 연희를 설득했다. 

“먼저 내려가 있어. 난 조금 있다가 갈게.”

 “그..그치만...”

 “걱정말고... 응?”

연희는 내 다급함을 눈치를 채고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잠시 후 연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것까지 확인한 뒤 다시 응접실로 향했다. 사장님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넣은 상태로 나를 물끄럼히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를 보자는 건 다름이 아니라...자네. 혹시 연극 좋아하나?”

 “네? 연극이요?”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사실 연극은 질색이지만 이런 질문에서 대답은 뻔하지 않은가?

“네..기회가 있으면 볼려고 합니다..”

 “음....그래...좋아..”

사장님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옛날 영국에서 귀족들은 자기만의 극단을 가지는 것이 하나의 큰 명예라고 생각했다지?”

 “그렀습니까? 몰랐습니다.”

 “당시 왕만이 극단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귀족들이 왕을 흉내 낼려고 몰래 극단을 소유했지. 물론 돈 벌이로 쓸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이 원할 때 극을 보기 원했던 거겠지.”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머뭇거렸다.

“......유과장 저기 저 쪽에 종이 상자 보이나?”

사장님은 손가락으로 향한 곳에는 검적생 종이상자가 놓여져 있었고, 그 안에는 약통 하나, 그리고 스마트폰이 담겨져 있었다. 

“나는 가끔씩 나만을 위해 연극을 즐기지. 뭐, 극단까지는 아니고 배우만 있을 뿐이지만...”

 “아...네..”

 “생각있으면 자네도 보게. 이래뵈도 굉장히 비싼 연극이야. 회당 2억짜리.”

2...2억? 순간 내가 잘못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

“30분 정도 뒤 18층으로 내려오면 돼. 그 스마트폰으로 메시지가 갈테니 쓰여져 있는 곳으로 따라오면 되고....”

그가 건너편으로 천천히 걸어가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될지 난감해졌다. 갑자기 연극이라니? 그것도 호텔에서? 

“그런데....그걸 제가...봐도 될까요?”

나의 멍청한 질문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그 약은 이상한 건 아니고, 일종의 각성제 같은 거야. 비싼 연극인데 보다가 졸면 아쉽지. 안 그래?”

 “아...알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다 무언가 생각난 듯이 잠시 멈춰섰다.

“참. 가장 중요한 것을 깜빡했구만. 이건 개인만 보도록 계약한 것이니 미안한 얘기지만 자네는 커튼 뒤에서 봐야 될거야. 뭐 들켜도 할 수 없구...”

 “커튼이요? 어떤 커튼 뒤에서 보면 됩니까?”

 “보면 알게 될거야. 자연스럽게.”

***

30여분이 지난 뒤 상자안에 있던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왔다. 나는 적혀 있던 내용대로 18층으로 내려가 객실로 들어갔다. 굉장히 어두운 내부. 방구조는 19층과 비슷한 듯 보였지만, 창문마다 장막처럼 블라인더가 내려져 있어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어쩔수 없이 여기저기 부딪쳤다.

“저..저긴가?”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보니 공간을 가로로 크게 가른듯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사이로 미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조심스레 커튼 사이로 얼굴을 내밀자 커튼 바로 앞에 사장님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고급스런 1인용 소파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 안쪽도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사장님 정면에는 매우 큰 소파 하나가 놓여져 있었고, 그 뒤에도 내 쪽과 똑 같은 커튼이 각 구석에 하나씩 쳐져 있었다. 그 곳이 배우들의 대기 장소일 것이라는 짐작은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흠...흠...”

사장님의 헛기침에 자연스레 그를 바라봤고, 그는 손짓으로 내가 좀 더 뒤로 갈 것을 주문했다. 나는 눈만 보일 정도로 조금만 틈새로 안쪽 상황을 확인했다.

“시작하지.”

사장님의 말이 조용한 내부에 정적을 흐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커튼을 젖히고 배우 한명이 성큼 앞으로 나왔다. 그는 다름 아닌 바에서 만난 여배우였다. 그녀는 몸에 붙는 검정색 드레스에 높은 하이힐을 신은채 천천히 사장님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한 발씩 천천히 발을 옮길 때마다 수밀도 높은 그녀의 가슴이 출렁거렸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기대되는데요. 아저씨.”

 “그럼 자네가 누군데 실망시키겠나?”

그리고 사장님이 그녀에게 안대를 던지자 그녀는 크게 미소 짓고는 아무말 없이 그것을 썼다. 당당한 모습과 달리 그녀의 얼굴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자..이제 자네도.....”

 “잠..잠깐만. 아저씨..”

그녀는 다급히 그를 막고는 어깨에 걸린 끈을 조금 흘러내렸다. 다행히 드레스가 흘러 내리지는 않았지만 아슬아슬하게 멈춰 가슴 윗부분이 그대로 노출 되었다. 뽀얀 살결에 깊은 가슴골이 눈에 들어왔고,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막연히 연극을 기대한 상황에서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섹스하기 직전 장면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은 분위기에 어찌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나는 혹시라도 들킬까 더욱 숨을 숙였다.

“앙큼한 것. 그래..그렇게 나와야지....”

 “자 아저씨. 난 준비됬어.”

 “그래...자! 그럼 나오게.”

사장님의 말이 끊나자 마자 커튼 옆 쪽에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상의를 벗은 사내는 우람한 근육과 매서운 눈빛을 지녔다. ...마치 어디서 본 듯한 그의 얼굴..그..그렇지...그는 다름 아닌 얼마전 UFC종합격투기에서 한국인사상 첫 우승을 하고 돌아온 최일한 선수였다. 

그의 우승은 포탈사이트 검색어에 연일 상위랭크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이슈가 되었고, 얼마전부터는 CF등 각종 매스컴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었다. TV에서는 평범해 보이던 그의 모습은 실제로는 매우 사나운 짐승같이 보였다.

“자...이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겠지?”

사장님의 말한마디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여배우에게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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