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역시나 무더운 여름 한 낯. 정부의 전기 아껴쓰기 정책에 동참하기로 한 우리회사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 점심시간에 한시적으로 에어컨은 작동을 중지시켰다. 그동안 차갑진 않아도 선풍기보다 그나마 시원한 바람을 내뱉던 에어컨이 멈추자 나는 사무실을 뒤로하고 탁 트인 회사 옥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곳에 올라서자 마자 마시던 커피를 한쪽에 나두고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었다.
휴우~ 이제야 살겠다는 듯이 같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들쭉날쭉 우뚝 서있는 빌딩 숲을 감상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끝나가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냥 거를 생각이다.
동틀무렵에 잠이 들고, 그리고 얼마 뒤 깨어난 뒤부터 나의 머릿속에는 오직 안방의 문 밖에 떠오르질 않았다. 모두가 안방의 문 때문이었다. 처음 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내 실수라고 생각했다. 조심할려고 하다가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겠지. 그정도로....
하지만 일을 마친 후 다시 문이 닫혀있는 것을 확인 했을 때에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귀신에 홀려 있지 않고서야 그런 일은 처남 밖에 더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사촌이라도, 그리고 군대에서 아무리 여자가 그리웠어도 친 누나 같은 사람의 그것이 보고 싶었을까?
아침을 함께 먹을 때에도 처남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장면을 봤더라면 조금은 어색했을 텐데...녀석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막상 의심이 가지 않다 보니, 녀석을 남겨 놓고 그냥출근했지만 막상 처남과 연희만 두고 온 것이 실수일까봐 마음이 더욱 불편해졌다. 물론 그 후 여러번 전화를 했지만 말이다.
확인해본 결과 다행인지 불행인지 처남은 아침을 먹고, 내가 출근하자마자 바로 집으로 갔던 것 같고 했다. 이러니....더더욱 처남은 아닌것 같았다. 모든 결과로 미루어 봤을때 생각해보니 범인은 처남이 아닌 것 같았다. 또 그렇다고 단정하면 귀신이 곡할 노릇아닌가? 머릿속에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하루종일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업게 되었다.
“아니...과장님, 이제 낼모래면 새신랑 될 분이 표정이 그게 뭡니까?”
이대리의 목소리였다. 이대리는 점심식사를 막 마치고, 나와 같은 목적으로 옥상에 올라온 것 같았다.
“내 표정이 뭐?”
“무슨 심각한...고민 중이신 것 같은데...”
“내가 무슨 고민이 있겠냐? 너만 속 안썩이면...”
“에이...농담도...저는 다~아 압니다.”
“알긴...뭘?”
“자!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어서 도망치세요...”
이대리는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채로 나에게 말을 건냈다.
“도망? 어디로? 뭘로부터?”
“아시잖아요. 과장님은 제 우상이셨어요. 최후의 골든 싱글! 그런 분이 자발적으로 인생의 무덤으로 들어간다니....답답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이대리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그런 너는 뭐가 좋아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무덤으로 기어들어간건데?”
“20대 중반이 뭘 알겠습니까? 30은 넘어야지 대소변 가리죠.”
나는 뻔뻔한 그녀석의 모습에 기가찼다.
“어이 딸딸딸 아빠. 누가 들으면 우리 지희, 소희, 재희는 다 주워온 줄 알겠다.”
“........딸이라도 있어야지 살지요. 누가 아내보고 삽니까?”
“에라이. 이놈아.”
나는 이대리의 등짝을 때리며 웃음 지었다. 녀석도 엄살을 피우며 웃었다.
“과장님은 얼렁 마무리하고 들어가세요. 내일 모래가 결혼인 양반이 회사에 뭔 큰 빛을 졌다고 아직도 남아 계십니까? 연차도 쓰셨잖아요.”
“이게 다 월요일 일 착오없게 마무리 하고 들어갈려고...”
“제가 알아서 다 준비 할테니 얼른 들어가세요. 신혼여행도 그것 때문에 미뤄 놓고, 아직도 불안하세요?”
“불안은 무슨...워나 중요한 일인 만큼 맘 편하게 놀다 올려고, 그러는 거지...”
우리는 한동한 말없이 담배를 태웠다. 이대리를 보자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참, 제수씨는 남동생이나, 친척동생이 뭐 그런 동생들이 있나?
“.......글쎄요.....아영이네 집은 워낙 남자가 귀해서....”
“아.......그래?....”
“........왜요? 어제 형수님 사촌동생이 와서 무슨일 있었어요?”
이녀석 눈치하나는 알아줘야 한다. 순간 뜨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히 말을 던졌다.
“아니...뭐.....처남이 유난히 연희를 따르는 것 같아서...그냥 부럽더라고...나도 사촌 누나가 있어봐야지 그런 느낌을 알지....”
“....사촌누나라.....”
이대리는 말없이 먼 곳을 응시했다.
“저도 사촌누나가 있는데, 사실 가깝진 않아요.”
“그래? 왜?”
“..........제 얼굴에 여자 가발 씌웠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무리 사촌누나라도 여잔데 이뻐야 좋죠...”
“참내....너는 사촌지간에도 그런 것 따지냐?”
“...그래요...저만 쓰레깁니다. 사실 사촌이라도 이쁘길 바라는 것이 저만은 아닐걸요?”
나는 그 녀석을 한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며 자리를 떠났다.
“저도 금방 내려갈께요. 과장님은 들어가자 마자 얼른 짐싸시고요!!”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환한 조명아래 나는 연희 옆에 서있었다. 새하얀 드레스에 진한 화장 그리고 그보다 더 돋보이는 눈부신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 아주 좋습니다. 네 좋아요...”
어떻게 예식이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연희,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웨딩촬영 중이었다.
“신랑님은 너무 표정이 굳으셨다. 조금만 웃으시고, 턱은 조금만 아래로...네...그렇게...”
사진기사는 연신 내게 무언가를 주문을 했고, 나는 어색한 표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고쳐가며 터지는 사진 후레쉬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사진으로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사랃들로써 나는 드디어 대외적으로 유부남이 된 셈이다.
“자 이번에는 신부쪽 가족들 올라오세요.”
사진기사의 말이 끝나자 마자 장인어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포토존안으로 향했다. 수십명이 사람들이 어색한 표정을 간직한 채 우르르 몰려 들었고,나는 그 중 유독 처남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다. 처남은 내 뒤쪽에 자리 잡았다.
“네...남자분들은 뒤로...좋습니다....”
후레쉬는 끝날 줄 모르고 폭죽처럼 터져댔다.
결혼식은 토요일에 치뤘지만, 신혼여행은 월요일 오후에 출발하기로 했다. 작년 겨울부터 준비해온 계약건을 월요일 오전에 마무리 짓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협의가 모두 완료된 상황이라 내가 굳이 있을 필요는 없었지만, 내가 기획하고 준비했던 것이라 나는 더욱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 되길 바랬다.
결혼식 몇 일 전에 월요일 오후에 신혼여행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연희네 가족들은 신혼집에서 결혼식 당일에 집들이 겸 축하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했다. 나야 물론 첫날밤에 대한 기대가 없어진지 오래라 상관없었지만, 주희는 결혼 후 첫날을 로맨틱하게 보내지 못해 내심 서운한 듯 보였다.
결혼식 당일인 오늘 연희의 마음이야 어떻든 낮부터 술잔이 오고 갔고, 그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술을 멀리한 우리의 새신부는 오랜만의 받아본 어른들의 잔 세례에 초저녁부터 녹다운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벌써부터 안방 침대에 누워버렸다.
“자...자...나하고 몇 살 차이는 나지 않지만, 조카사위, 내 잔도 한잔 받어...”
장인어른의 삼남매중 막내인 연희의 고모가 나에게 잔을 건냈다. 연희를 닮은 그녀는 물론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차이가 많이 나질 않아서 인지 유난히 나를 어색히 대했다.
“고모님, 감사합니다.”
나는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러자 장인어른 내외와, 작은 아버님 내외, 처남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파도치듯 연달아 잔을 들었다. 거침없이 마셔댄 탓인지 모두의 얼굴에는 홍조가 눈에 띄었다.
“자...자...이렇게 즐거운 날에 여기에만 있을 수 없지. 우리 노래라도 부르러 갑시다.”
작은 아버지가 흥에 겨웠는지 노래방에 갈 것을 제안 했다. 평소 음주가무를 즐기시던 장모님은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 조카사위 노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한 번 봐야지...”
“아...저기 저....사실 노래는 잘 못하는데....”
“노래 못해도 괜찮아. 그냥 저냥 부르면 되는 거지.”
작은아버님이 어깨를 두들기며 나를 바라봤다.
“....네....그럼 최선을 다해야죠...”
“자 일어섭시다. 일어서...”
작은 아버지의 재촉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처남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 저는 여기 있을께요.”
“왜? 같이 가...뭐가 쑥스럽다고....”
작은 아버지, 즉 처남의 아버지가 그를 재촉하자, 처남은 고개를 쓰윽 돌려 작은 방을 바라봤다.
고모네 10살, 8살짜리 애들이 피곤했는지 낮잠을 자고 있는 곳이었다.
“제가 둘 보고 있을께요. 연희누나도 자는데, 애들 중간에 깨면 어떻해요?”
“에이....걱정마, 애들 일어나면 TV켜고 잘있을거야..”
고모가 웃음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제가 있을께요. 모처럼 애들 얼굴도 보고...그리고...내일 복귀하는데 좀 쉴려고요...”
“....그래...그럼... 선우가 엄마 찾으면 바로 전화주고...”
고모의 대답을 마무리로 우리는 말없이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처남은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아파트 앞 노래방 입구에 다다르자 나는 핸드폰을 집에 놓고 온 것을 알아챘다. 고모네 애기들이 가지고 놀다가 방전되어 충전하고 있던 것을 깜박한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괜찮았겠지만, 저녁에 중요한일로 아버지가
전화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9층에서 멈추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아직도 현관문은 열려있었다. 바람이 잘 순환되라고,
열어두었지만, 모기가 들어올까 나는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 나는 우선 신발을 벗고 제일 먼저 거실에서
충전중이던 폰을 찾았다. 충전은 아직 반 정도 밖에 되질않았다.
..........?!!
그리고........ 그순간이었다.
‘어라? 처남은 어딨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맨 처음 들어섰을 때 TV가 켜져 있었기에, 처남이 화장실로 갔나?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처남은 화장실에도 그리고 애들이 자고 있는 작은 방에도 없었다. 그러자 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연희가 자고 있는 안방으로 옮겨졌다.
순간 ‘에이.....설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처남을 어디에도 찾을 수 없자 나는 자연스럽게하는 안방으로 향했다. 연희가 자기전 덥다고 열어뒀던 안방문은 너무나 수상하게도 굳게 닫혀있었다. 나는 조용히 귀기울여
안방안을 들어보았다. 그곳에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제 심장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문고리를 잡았다. 잠긴 것 같진 않았지만, 차마 돌리지 못했다. 정말 바로 문을 열고 싶었지만.....호기심이 나를 잡았다. 알고 싶었다. 무엇이 진실이 무엇인지.... 그 날 새벽에 문틈사이로 우리를 봤던 것이
아니 정확히 연희를 봤던 것이 처남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나는 거실 옆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는 안방과 거실이 붙어 있어서 안방의 베란다를 통해 그곳을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소리 나지 않게 크고 무거운 베다란 문을 옆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