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12)

“자네.. 뭘 잘못했기에 이번 프로젝트에서 자넬 빼달라는 말이 나와?!”

“...네?”

모텔의 사건 후 일주일동안 난 세희를 만날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나와 꼬박 하룻밤을 보낸 세희는 아침에 홀연 듯 사라졌고, 내 연락조차 받질 않는다. 하루에 수십 번을.. 아니 수백 번을 세희에게 전화를 걸었고, 톡을 날렸는데도 세희에겐 연락조차 없었다.

그리고..

세희의 모든 사진이 소라에서 사라졌다.

--에필로그로 계속-

뻔한 스토리인데도 쓰다보니 몰입이 되내요. 오랜만에 글을 적다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한참동안 타자에 열을 냈습니다. 많은 관심에 정말 감사드리며 이렇게 돌아올 수 있는 장소인 소설게시판을 항상 지켜주시는 다른 작가분들에게도 더불어 감사 드립니다. 

어줍잖은 글인대도 재밌다고 해주셔서 더 감사드리고 더 분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__).

제 특징상 등장하는 악당은 더 악당스럽게 쓰려 노력하는데 쓰다보니 진짜 한대 쥐어박고 싶어지내요. 분노를 느끼시더라도 글은 글일뿐 너무 저에게 뭐라하지 말아주세요. 저도 몇번이나 마대리의 능지를 처참하는 장면을 떠올렸으니까요.

오늘도 재밌게만 읽어주셨다면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랜만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분들에게 쪽지를 받고 연락을 하게 되서 정말 즐거운 한주가 되었내요. 

마지막으로 제 버릇대로 장르에 맞는 에필로그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에필로그. - 공존을 넘어.

[띠리리리링링~ 띠리링~~ 띠리리리링~ 띠리리링~~]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을 무시한 채 난 미팅에 열중을 한다.

“디자인은 괜찮은데.. 그런데 이쪽은 처음이라고 하시던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예, 보미 사장님만 도와주신다면 내일 당장이라도 도안대로 샘플링 잡어 들어가겠습니다.”

“사장이요? 하하하하. 사장 따로 있어요.”

“,,네? 여기 매장 이름도 BoMi라고 쓰여 있던데..”

“그 전 이름이 하두 구닥다리였걸랑요.”

“그럼.. 사장님이 따로 계신가요?”

“그것보다 괜찮으니까 전화 받으세요.”

“아닙니다. 지금 제게 가장 중요한건 이 일인걸요. 그럼 사장님을 좀 뵐 수 있을..어....”

전문 란제리 샵이라고는 해도 분명 성인용품들까지 있는 이 매장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얼굴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텔레비전에서 많이 봤던.. 분명 저 가냘파 보이는 여성은 아나운서가 확실했다.

아나운서씩이나 되는 여자가 이런 매장에... 저 여자도 그럼..

내 놀란 시선에 보미란 여자가 고개를 돌려 입구 쪽을 쳐다보더니 반갑게 맞이하기까지 했다. 진짜 단골인 게 분명해 보였다.

“어머!.. 혜주야!”

“언니. 울 오빠 왔어요?”

“오..빠...???”

“.....누구세요?”

“응?. 아!.. 손님..은 아니고 거래처 분이셔.”

“거래처요? 첨 뵙는데.”

“안녕하세요. 초면에 실례지만.. 진짜 단골이신가 봐요. 거래처도 다 아시는 거 보면..하하하하..”

“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무슨 말이래..호호호. 여기 사장..”

“네!?? 사..장님이세요?”

“아뇨!. 여기 진짜 사장 부인이 혜주라고요! 디게 성격 급하시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언니는 참.. 울 오빠 직장 잘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사장이래..”

“근데.. 민호 오빠 안 들어갔어?”

“네..”

“이 인간들이 진짜!!”

“큭.. 놔두세요. 오랜만에 회포 푸시는데.. 근데 지금 계속 전화 울리는 거 아니에요?” 

두 여자의 시선이 날 향해 집중 되었기에 거의 30분째 진동음이 울리는 핸드폰을 결국 꺼내들어 배터리를 통째로 뽑아 버렸다.

“중요한 전화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런데.. 가슴.. 아니.. 몸은 괜찮으세요? 혜주씨?”

“네?? 아.. 하하하하.. 진짜 건강해요. 울 날다람쥐 같은 작은 혜주 쫓아다니는 것도 거뜬하거든요.”

“....네. 저 혜주씨 펜입니다. 진짜로 존경하고.. 어린 나이신대도 아이들을 위해서,.. 저 책도 사서 읽었어요.”

“그만 해요.. 저 창피해요.”

“네??”

“현강씨라고 했나요? 그만하세요. 혜주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하고 다르게 사람을 심하게 가려요.”

“....죄..송..”

‘똑똑..’

“오늘 무슨 날이래.. 손님이 이리 많이 오냐..”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러실래요? 저희 사장님하고 얘기하고 연락드릴게요.”

“네,,,꼭 좀 부탁드릴게요.”

직장을 다닐 때도 잘 안하던 90도 인사를 하곤 사무실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역시나 봉급을 받을 때와는 다른 절심함이 내게 샘솟기 시작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들어오세요~”

“죄송한데 혹시.. 현강씨!”

“...”

“...”

“..”

“어!.. 혜,,,주 아나운서?”

사무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놀라 문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바라보게 된다.

세희였다.

세희의 엉뚱한 등장에 나도 당황했지만, 작정하고 날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세희의 눈에 혜주란 여자의 모습도 놀람의 일부임은 확실해보였다.

그리고 또 지멋대로의 행동이 나오는 건지.. 날 그대로 지나쳐 혜주란 여자의 손까지 덥석 잡으며 아는 척까지 한다.

“잘 지내셨죠?”

“...아!. 김대리님... 맞죠 CC 김대리님!”

“이젠 팀장이에요.”

“어머!. 진짜 축하드려요. 그렇지 않아도 취재 때 김대리.. 아니! 김팀장님은 꼭 성공하실 줄 알았어요.”

“남편 분은요? 아직 OO지점에 다니시죠?”

“오빠야 항상 그렇죠.”

“부러워요.. 그런데 혜주씨가 이런 덴 웬일이세요?”

“여기가 왜요?”

“..네? 여긴..”

“울 오빠가 부업했던 곳이에요.”

“아~.. 투잡하셨다더니.. 진짜 대단들 하세요. 일반인들도 이렇게 열심히 살기 힘든데..”

“김팀장님이 더 대단하시죠. 하루 3시간 자고 몇 년을 일하셨는데.. 전 잠보라서 그렇게 살다가는 진짜 몸이 버티질 못할걸요.”

“그게 뭐 대단하다고.. 혜주씨야 말로 이렇게 어린대도 예쁘고,, 9시 뉴스 앵커까지.. 그리고 가끔 소식 들었어요. 남편분하고 굳은 일 찾아다니면서 사랑으로 도와주신다고.”

“당연한 거죠..헤헤~.”

“아!.. 저번에 그 의원한테 한방 먹인 건 진짜 고소했어요. 호호호호호”

“쉿.. 그것 때문에 오빠한테 얼마나 혼났는데요..”

“네? 호호호호.”

둘이 안면이 있다는 게 놀랍기도,, 어떻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세희는 내가 사는 세계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저 미모의 아나운서와 이렇게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의 여자가 바로 세희란 여자였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성적 취향이 일반적인 곳에서도 퀸과도 같은 자리에 우상처럼 숭배 받으며 또 한 일까지 완벽히 해 나가는 여자가 세희였다.

“아!.. 내 정신 좀 봐.. 다름이 아니라.. 현강씨 좀 데려갈게요.”

“네?? 현강씨라뇨? 아..”

“괜찮죠!?”

“그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그럼 허락 받은 걸로 알고.. 죄송합니다. 혜주씨 다음에 꼭 저녁이라도 같이 해요.”

“네??..네..네...”

세희는 말을 끝내곤 보미란 여자에게 정중히 인사를 꾸벅하고 나서야 조용히 나가려던 내 목덜미를 낚아채선 그대로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무..뭐하는 거야!”

“조용히 해요!. 진짜 확 패버리기 전에..”

“무..뭐?!”

내가 끌려갈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에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먼저 계단을 걸어 내려가려는데.. 그녀가 내 팔뚝을 잡고는 힘을 꽉 줘 잡아챘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김세희 팀장님!?”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럼 어떻게 불러드릴까요? 팀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으니까.. 잠깐만 얘기해요.”

“할 얘기 없습니다.”

“진짜..삐쳤어요?”

“누가 삐졌!!!....다고 그러세요.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근처에 일 보러 오신 거면 바쁘실 텐데 일보러 가세요.” 

“현강씨 만나러 왔어요.”

“왜요? 그러고 여기 있다고 누가 알려주던가요?”

“.....현강씨.”

“친한 척 부르지 마시고.. 그만 가시죠. 저도 바빠서요.”

“현강씨!!!”

계단을 울리는 세희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깜짝 놀란 내가 고개를 돌려 세 계단이나 위에 있는 세희를 올려다보게 된다. 이미 두 눈에 글썽이는 눈물은 외면하기엔 내 가슴이 너무 아려왔다.

“딱.. 한 번만 얘기해요.. 예~?”

“....사람 흔들지 말고.. 그냥 가주세요.”

“알겠어요. 딱 5분만.. 아니 1분만요.”

“....”

“현강씨.. 제발요.”

“알겠습니다.”

걸어가던 발걸음에 다시 힘을 준다.

잊으려 노력했던, 그래서 겨우 꿈속에 나타나지 않게 된 그녀가 거의 한 달 만에 내 뒤에서 날 따라오고 있었다.

여전히 예쁜 두 눈과 오뚝한 콧날, 그리고 도톰한 입술이 더 매력적인 그녀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오늘은 군청색 재킷과 스커트로 중무장을 한 채 검정색이 아닌 뒤 라인에 길게 흰색의 한 줄이 나있는 단아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살색 스타킹과 조금은 높아 보이는 민무늬 흰색 구두로 코디를 한 모습으로 회사에서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온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우린..

아니 나와 김세희 팀장은 근처의 작은 커피 전문점에 들어가 손바닥만 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게 되었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앉고 싶었지만 테이크아웃 전문점인 이 커피숍에선 전부 통일된 작은 테이블 만이 놓여있었기에 나와 세희의 거리는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은 어정쩡한 위치가 돼 버렸다.

“잘.. 지냈어요?”

“그걸 말이라고 해..십니까?”

“...”

“10초 지났습니다.”

“왜.. 회사 그만뒀어요?”

“..”

“저 때문에 그만둔 거죠? 제가..”

“자기가 진짜 대단한 줄 아시나본데..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 그만 뒀습니다. 됐습니까?”

“왜요? 아니!.. 기껏 해보고 싶은 일이란 게 저런 성인 속옷가계 직원이에요? 저런 곳에서 일하는 게 현강씨 꿈이었냐고요..”

“그게 너... 세희씨랑 무슨 상관입니까?”

“...아직도 화.. 많이 났죠?”

“아직도?? 화!?”

“..미안해요. 계속 사과하잖아요.”

“편하군요. 사과만하면 다 끝이나고..”

“...미안해요.”

“됐습니다. 이제 시간 끝난 거 같은데..”

“저한테 실망했잖아요. 저란 여자가 어떤 여잔지 알면서.. 절 어떻게..”

“누가 실망을 했다고 그러는데!! 그 마대리 새끼가 그래? 내가 너한테 실망했다고!? 그 새끼가 그러냐고!?”

“아.. 아니에요. 진정해요.. 잘못했어요. 내가 다 잘못했다고요.. 그러니까..”

“됐어!. 사람을 물로 보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뭐? 보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사라져줬잖아. 회사도 그만둬 줬고, 핸드폰에서도 네 전번 다 지웠어. 톡도 탈퇴했는데 그걸로 부족하냐고! 왜 여기까지......됐어.. 그만하자. 샘플 작업 때문에 바빠서 갈란다.”

“...한가지만.. 얘기해줘요.”

“....뭐?”

“마..대리한테 어떻게 했어요?”

“...”

“그 인간이 얼마나 집요한 인간인데.. 죽을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인간을 어떻게 회사에서 내 쫓았어요? 그거 현강씨가 한 일이죠?”

“...몰라도 돼.”

“현강씨!”

“..”

“진짜 저 죽는 거 보고 싶어요? 여기서 죽어버릴까요?! 진짜 확 죽어버릴게요.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하시겠어요?”

“연극하지 말고.. 계산은 내가 할게.”

난 세희를 남겨둔 채 계산서를 손에 쥐고 혼자 일어났다.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하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 발걸음에 더 힘을 주며 계산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쨍그랑!’

시끄럽게 작은 커피숍 안에 울려 퍼진 유리 깨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게 된다.

당장이라도 자신의 목을 그으려는 듯 세희가 깨진 유리조각을 손에 쥐고는 목을 가져다 대고 날 노려보고 있다. 난 그런 세희의 행동보다 그녀의 얇고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흐르는 선명한 피에 더 시선이 갔다. 그녀의 새하얀 피부만큼이나 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미쳤어! 찌르지도 못할 거 뭐하는 짓이야!”

“그래요?”

“난 간다!.”

“꺄악!!”

카운터에서 모든 관경을 지켜보던 주인아주머니가 고함소리를 질렀다.

난 반사적으로 뛰어들어 세희의 팔을 붙잡고 유리조각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세희의 목에도 작지만 분명 상처자국이 생겨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진짜 미쳤냐!”

“.....이제 눈을 마주쳐주네요.”

“...”

“시..신고..겨..경찰.”

“아주머니.. 신고하지 마세요.. 이건 다 변상하겠습니다.”

“....그래도.”

“부탁드릴게요.”

겨우 주인아주머니를 진정시킨 난 이젠 세희가 허튼 짓을 못하도록 그녀의 팔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며 앞에 앉았다.

“알았으니까.. 그만 해라. 이미 예전에 화 풀었어. 그러니까 너야말로 진정하고 병원이나 가봐. 알겠지?”

“...”

조금은 다정한 목소리로 우선 세희를 진정시키고 본다.

세희만큼 이성적이고 약삭빠른 여자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그래서 이런 모습은 내 기억 속엔 존재하지 않았다. 잊자는 내 다짐이 심하게 흔들렸고 세희의 손을 더 꽉 잡게 된다.

“아파요.”

“..이상한 짓 안한다고 약속 할 수 있어?”

“....”

“있어?”

“존댓말 안 할 거죠?..지금처럼요. 낯선 사람 같아서 싫어요.”

“알았으니까.. 손 좀 보자.”

다행히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티슈각에서 몇 장일지 모를 티슈를 왕창 뽑아 그녀의 손을 감싸려 했다.

그녀가 손수건을 핸드백에서 꺼내 어색하게 자신의 손을 감싸는 모습에 내 손이 허공에서 멋쩍게 변해버렸지만 이런 모습이 세희답다는 생각에 심각한 이 순간에 피식하고 웃게 된다.

“웃지마요. 더 이상 정들면 죽을 거 같다고요.”

“정이 들어? 그런 말을 표정하나 안 바꾸고 할 수 있나? 그 날.. 아니! 날 그렇게 버려놓고?”

“버린 거 아니에요!”

“그럼? 사랑하니까 떠났다? 날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거다? 울 할아버지 꼬랑네 나는 양말 씹어 먹는 소리 할 거면 됐거든. 내가 어떤 기분으로 너한테 전화하고...됐다.. 나 다 정리했으니까.. 우리 그만하자. 처음부터 너랑 나랑은 어울리지도 않았었어. 아니.. 사는 세계가 너무 달랐다. 차라리 이렇게 끝날 수 있는 게 좋은 추억으로...”

“좋은 추억이요? 제 밑바닥까지.. 다 보여주고 나만 더러운 여자 되고 추억? 그냥 악몽이라고 해도 모자랄 기억으로 남기려고요? 그럼 현강씨 기억 속엔 나란 여잔 어떻게 되는데요? 남자 자지에 미쳐서 강간을 당해도 좋아하는 여자요?”

“넌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내 기억 속에 네가 어떻게 남는 게 중요하니? 잘 포장해서 내 좋은 추억으로 남아야 직성이 풀리겠어?”

“그게 아니잖아요.”

“그럼? 먼저 연락을 끊은 것도 너였고, 날 회사에서 쫓아낸 것도 너였어! 그걸 몰라?!”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요. 현강씰 어떻게 봐야할지 두렵고, 괴로워서 저한테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거 모르세요!? 정말 모르신거예요? 그리고 제가 언제 현강씰 현강씨 회사에서 쫓아냈다는 거예요? 제가요?”

“사람 띄워놓고 갑자기 프로젝트에서 빼달라고 하면! 그만두라는 게 아니고 뭐냐고! 회사 직원들... 됐다. 지난 일인데 그만하자.”

“그건 잠시만 빼달라고.....”

“..잠시?”

“......”

“..”

“그렇게까지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제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됐다고.. 어차피 지난 일이야. 그럼 끝난 거지? 난 진짜 바빠서..”

“고마워요.”

“....”

애니 장화신은 고양이와 싱크로율 100%의 모습으로 세희가 일어서는 날 올려다봤다. 눈에 이슬까지 그렁거리며 이번엔 내 손목을 잡고는 잔뜩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을 가득 담고는 말이다.

“왜?”

“보고 싶었어요... 진짜! 진짜!.. 보고 싶어서 회사에 전화도 걸었는데.. 왜 찾냐고 꼬치꼬치 묻기나 하고.. 사과는 왜 하는지 이유도 모르겠고..”

“...그래 좋다 이거야. 네 말대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고.. 날 보기 괴로워서 그랬다고 치자. 그래서? 이제 뭘 어쩌자는 건데?”

“그건...”

“네 말이 맞아. 나.. 네 말대로 치졸하고 잘 삐져.. 아니 소심해서 누가 뒤에서 내 얘길 한 걸 듣게 된다면 그걸로 며칠 동안 혼자 끙끙거리는 놈이라고.. 그런 내가 너란 여잘 계속 만날 수 있을 거 같아? 그런 모습까지 다 봤는데? 만약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고해도.. 이젠 내가 안 될 거 같다. 계속 한다면 난 네게서 그 모습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어떻게 널 계속 만나겠어.. 이쯤에서 끝내는 게 서로 더 이상 상처 안 받는 유일한 길 일거라고 이미 결론 냈다.”

“그게 다에요?”

“뭐?”

“옛날에도 겪었던 일이란 거 이미 알고 있었잖아요.”

“...”

“저 이런 여자였다는 거 몰랐어요? 그걸 알면서 저한테 마음 열어주신 거 아니에요?”

“그거하고 그건 다른 거잖아.”

“다르죠.. 근데요.. 만약 현강씨가 전 애인이랑 뒹구는 모습을 제가 봤다면요.”

“그런 예가 어디 있냐? 내가 그럴 놈으로 보여? 양다리나 걸치는 그런 놈 같아?”

“전 그런 년 같아요?”

“무.뭐?”

“일일이 다 설명하기도 싫고, 설명하기도 힘들겠지만.. 진짜로 제가 그 짐승을 쫓아간 건 절대 아니었다는 거.. 믿기 힘들겠지만 전 그 짐승이 아닌 현강씬 줄 알았어요. 술에 취한건지..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여튼 정신 줄 놓고 그런 상황까지 놓인 게 분명 제 잘못은 확실하지만 제 의도는 절대 아니었다고요.”

“알아.”

“그래요. 믿기 힘..네?”

“안다고.. 그래서 그렇게 전화를 계속 걸었잖아. 내가 따지기라도 할 주 알았어? 왜 그랬냐고 화를 낼 줄 알았냐고.”

“...”

“자동차 사고를 당해도 고의가 아니면 부주의나 단순한 실수일수도 있다는 걸 몰라? 거기다가 상대방 차가 달려들어 나는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고 자책만 할 거냐고.. 빨리 수습해야 할 거 아니냐고.”

“...차도 없으면서.”

“야!!”

“.....”

“처음부터 네 잘못은 하나도 없었고,, 네 실수도 없었어.. 내가 늦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고.... 내 책임이야.”

“그게 왜 현강씨 책임이에요.. 그 언니... 아!.. 그 언니 어떻게 해... 그 후로 연락도 못했는데..”

“그 년도 한통속이야.”

“.....?”

“그 새끼가 돈 주고 산 길거리 년이라고.”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

“진짜 말해줘요. 마대리를 그 후에 또 만났어요?”

세희의 얼굴에 흙빛이 감도며 혹시나 내가 정말로 범죄를 저지른 건 아닌지 걱정스럽게 내 표정을 살핀다. 맞다. 범죄라면 범죄를 저지른 것도 맞았고, 그 새끼의 내장을 끄집어내려고 직접 찾아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 날.. 세희와 그렇게 병원으로 향할 때 오줌을 지린 그 새끼를 그 모텔에 아무 상처 없이 홀로 놔두고 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용서한건 절대 아니었었다. 세희에게 상처 준 놈을 그렇게 용서할리도 없었기에 난 그 새끼가 일종의 동료들을 부르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침대위에 올려놓은 핸드폰만은 챙겨 아무도 모르게 들고 나왔었다.

세희가 나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을 했을 때.. 

난 분노의 끝을 다른 누구도 아닌 마대리에게 향했고 세희에게 연락을 포기한 후 마대리를 찾게 되었다. 찾는 건 정말 쉬웠다. 그 놈의 핸드폰이 내 손안에 있었기에 이미 끊기긴 했어도 정보는 충만했었다. 잠금장치도 없는 놈의 핸드폰을 조사하는 과정에 난 더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 그 놈의 핸드폰엔 세희를 제외하고도 여럿 여자들의 사진들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희가 말한 개인의 성적 취향 문제라고 하기엔 그 범위가 너무 광대했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들의 치마 속까지 훔쳐보는 놈의 행동에 치를 떨고 있었을 때 유독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장소나 앵글의 각도를 봤을 때 분명 가장 가까운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던 난 세희를 아프게 한 그 새끼의 생각지도 못했던 파멸을 계획할 수 있었다.

‘띵동~’

“누구세요?”

“마대리님 댁이시죠?”

“네.. 누구세요?”

문조차 열지 않고 날 살피는 게 분명한 인터폰에 바로 앞에 난 무작정 핸드폰을 디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이미 가장 많이 저장되어진 그 여자의 사진을 띄워놓았고 내 정체를 밝히기 전에 먼저 사진을 보여주기부터 했다.

“누,..누구세요?!”

한참이 지나고서야 떨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려왔다.

신고를 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내 예상이 맞았음을 직감할 수 있었기에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더 밀어붙이게 된다.

“마대리란 분을 직접 뵙고 싶어서 왔는데.. 계십니까?”

“아니요. 아직 퇴근..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그 사진은.. 뭐에요?”

“옛 여자 불러내서 강간까지 하는 새끼는 콩밥이라도 먹여야 된다는 생각이.. 그 전에 마대란 사람을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따르던 제가 억울해서요. 저한테 분명 형수를 맛보게 해주겠다는 약속도 안 지키는..형수님도 사실을 아셔야 될거 같아서 말이죠..”

“뭐라고요!!”

“...”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형수님도.. 동의가 다 되셨다고 하던데.. 아닌가요?..아!~ 죄송합니다.”

난 서둘러 등을 돌리는 시늉을 했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척을 하는 동안 내 예상대로 굳게 닫혀 열릴 것 같지 않던 문이 열렸다. 

“자..잠깐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그럼 제가 이 사진을 어떻게 가지고 있겠습니까.. 전 진짜 동의 되신 줄 알고... 죄송합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었다.

막상 그녀의 얼굴과 대면하자 몇 번이나 준비하고 계획했던 대사들이 머릿속에 구멍이라도 뚫린 놈처럼 다 빠져나가버렸고 말까지 더듬게 돼 버렸다.

차가 없기에 과속이나, 주차딱지 같은 하찮은 불법행위란 범법행위의 이력조차 없는 내게 이 상황은 정말 긴장의 연속이었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 한 살 떨림의 연장선이 분명했다. 대범하게 마대리놈의 배에 칼을 쑤시려 했던 대범함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전이었기에 더 그랬었고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엉뚱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워 졸지에 난 마대리 새끼와 호형호제 하는 사이가 되버렸고, 같은 선상에 있는 놈이 되어 버렸다.

“그..사진.. 보여주세요.”

“아..안 돼요. 그러다가 형님한테 혼나요.”

“형님이요?”

“네. 마형님.. 죄송해요. 그만..”

“아까 말한 건 뭐죠? 당신 와이프하고 제 남편이 뭘 했다고요?”

이 상황에서 침착한 모습을 계속 연출하는 여자의 모습에 그나마 심하게 떨리는 내 가슴속을 진정시킬 수 있었기에 난 좀 더 자신감을 얻고 연극을 하게 된다. 만약 이 여자가 보통의 부인으로서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를 지르기라도 했다면 더 당황했을 게 분명했었는데 여자의 냉정함에 난 그나마 죄책감.. 마대리에게 느끼는 감정이 아닌 이 여자에게 느끼는 감정을 덜 수 있었다.

“지금이라도 신고할까요?”

“무..무슨 죄목으로요? 저도 억울하게 당한 사람인데 뭘 신고한다고요?”

“...우선 들어오세요.”

우리의 대화소리에 그녀의 집과 마주한 현관문이 열리자 여자는 아주 잠깐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곤 말을 한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려 곧바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해요? 거기 계속 서 계실 거예요?”

“예??..아..아니요.”

우선 의리의리한 집안의 풍경에 분노를 더 느끼게 된 나였다. 집안 좋은 여자라고 하더니 전면이 유리로 된 6자는 되어 보이는 책장엔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트로피들이 즐비해있었다. 체조, 봉사, 무용 등등.. 분명 여자의 배경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하나같이 보여주는 산물들임에 확실했다. 

“앉으세요.”

“..네.”

“기분 상 도저히 차는 못 내놓겠네요. 제 남편이 뭘 했다고요?”

“그..게..”

“핸드폰 좀 볼 수 있을까요?”

“.....”

내 대답은 필요 없다는 듯 그녀가 내 손에 들려 있던 핸드폰을 낚아챘고, 이내 띄워놓은 화면을 접곤 일일이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핸드폰엔 이미 마대리의 핸드폰에서 옮겨놓은 사진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마대리가 그날 했던.. 부서진 카메라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세희를 강간하던 그 사진을 넣어놨었다. 

아무리 철벽같은 여자라고 해도 핸드폰 속에 담겨 있는 사진의 내용엔 당황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듯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나란 존재를 잊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의 침묵이 이어졌을 때 내 귀에 그녀의 떨리는 격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돼..지새끼가..”

“...예..네??”

“이.. 사진.. 진짜 그 돼지새끼가 보낸 건가요?”

“네..네..”

“이..사진 다 그 돼지새끼가 찍은.... 그렇겠네요. 제 이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찍을 수 있을 리 없으니..”

“죄..죄송합니다. 전 저희처럼 같이 즐기시는 부분 줄 알고..”

“.....이 변태 돼지새낄....”

“오늘도.. 아내한테 전화하는 거 같던데.. 늦게 오신다고 하셨나요?”

“당신은 자기 와이프가 이런 돼지새끼랑 어울리는데 그걸 즐긴다고 방금 말한 거 맞죠?”

“....그게..”

“이 인간을.....”

자신의 핸드폰을 들고는 당장 마대리 새끼한테 전화를 걸려던 여자가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춘다.

“그런데.. 여긴 왜 오셨나요? 혹시 일부러 저한테 이걸 보여주시러 오신건가요?”

“....”

“왜요? 억울해서요?”

“솔직히 그렇습니다. 저한테 먼저 접근 한 것도 그 형님이신데.. 물론 형수님 얼굴 보고 혹한 제가 잘못이지만...”

“제가 지금 처한 상황이 이혼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오신 거 아닌가요?”

“..네?”

“모르셨나요?”

“그..그건.. 다만 전 형님이 이미 다 합의 본 상황이고..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형수가 대단한 집안이란 것만.. 그런대도 섹기가 넘처나고 밤일 하나는 끝장난다고.. 보지 구멍도 작... 죄..송합니다.”

“....”

여자의 입술이 파르르르 떨리더니 쥐고 있는 핸드폰을 으스러트리려 듯 힘을 줘 쥐기 시작했다.

“자세한 말을 안 하셨지만 단지 형님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제 와이프를 거리낌 없이 협박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요. 사실 오늘도 그걸 좀 따지러 왔어요. 전화를 걸었더니 갑자기 연락도 끊어버리고.. 그런데 제 와이프한테는 전화를 거는 거 같고.. 쪼잔 하게 먼저 시작하자고 해놓고는 지금에 와서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고...”

푸념하듯 여자의 앞에서 말을 늘어트리게 된다.

당연히 의도적인 내 행동에 그녀의 격분한 모습이 더 보였기에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지막 일침을 가할 시기를 가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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