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5/12)

‘해변의 연인’

‘여름이다.’

‘바다의 왕자....’

그녀가 부른 건 전부 여름에 관한 노래였고 댄스라기 보단 단체 체조나 율동에 가까운 춤을 추며 마이크를 점령했다. 소실 적에 좀 놀아본 여자처럼 몸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마이크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세희의 또 다른 모습에 호기심을 느꼈다.

자극적이지 않은 몸짓에도 입은 옷들로 인해 동길이 놈은 침까지 흘리며 그런 세희씨의 율동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는 넋 나간 표정을 연발하게 됐다.

출렁이는 가슴과 함께 땀으로 젖은 그녀의 목덜미와 그리고 벌어진 목 부분은 더 늘어난 듯 아예 한쪽 어깨까지 드러내길 반복했고 그럴수록 동길이의 눈은 더 휘둥그레졌다.

제자리에서 깡충깡충 뛰는 서른 살이라곤 믿기지 않는 세희의 모습엔 나도 귀여움을 느꼈고, 숨길 수 없는 실소를 드러내게 됐다.

내 바로 옆에 앉아 앞섬을 잡고는 땀을 식히듯 펄럭이길 반복하는데, 분명 노브래지어가 확실했다. 한 팔을 앞으로 해 무릎을 짚고 남은 손으로 옷을 펄럭이는 세희의 행동에 동길이에겐 가슴골만이 보일 테지만 바로 옆에 앉은 내겐 속에 입은 몸에 달라붙는 면 티로 봉긋 솟은 유두의 윤각이 그대로 보였다.

브래지어 끈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나시의 어깨 끈으로 그래서 출렁임이 과한 이유는 역시 노브래지어임을 확인시켜 줬다.

그나마 어두운색의 블라우스식 폼이 넓은 티 안에 나시를 입었기에 겉으로 보기엔 노브래지어임이 티가 덜 났듯 했다.

옷을 펄럭이며 땀을 식히던 세희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세수를 한다며 자리를 비웠을 때.. 역시나 방정맞은 이놈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야야..”

“??”

“너.. 세희씨랑 결혼할 생각이냐?”

“뭐?? 미쳤냐?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냥 즐기는 여친이면...”

“닥쳐라.. 또 헛소리 할 생각이면..”

“와... 몸매 진짜 끝장이다..”

“...”

“내가 여자를 좀 아는데..”

“..?”

“아니다... 아~.. 목이 왜 이렇게 마르냐..”

“뭔데?”

“아니야..”

“괜찮으니까.. 뭔데?”

“세희씨 노브라지? 맞지?”

“이 새끼가...”

“괜찮다며! 솔직히 즐기는 입장이면 이 정돈 괜찮지 않냐? 내가 손을 댄다거나 꼬신다는 것도 아닌데.. 너 나 몰라? 내가 지저분하게 놀긴 하지만 진짜 친구 놈 어장엔 발 안 담그잖냐. 안 그냐?”

“....”

“그런데 말이야. 노브란데 저 정도 탄력하고 모양이면.. 솔직히 수술을 의심해야 돼. 저럴 수가 없걸랑.”

“미친놈.. 수술 안했어..”

“진짜? 의젖이 아니라고? 만져 봤냐?”

“아니라고.”

“요즘 의학이 얼마나 발전한지 아냐? 진짜 같데. 아무리 생각해도...”

“휴~.. 시원하다.”

세희가 룸의 문을 열고 들어오며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다.

얼굴에 물기가 묻어 반짝이는 그녀의 모습은 의미심장한 섹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나였기에 느끼게 된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그렇게 보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난 시선을 가슴으로 옮기게 됐다. 

정말로 보기 좋은 모양임이 확실할거라는 느낌에 의학의 도움을 받은 게 맞을 거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나도 장실 좀 다녀오마. 너무 많이 마셨나봐..”

“여기 화장실이 좁으니까 조심하세요.”

“그래요? 네.”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응?..아..아니에요.”

“진짜 오랜만에 노래방 와 봐요.”

“그런 거 같네요..”

“잼나다.. 하하하하하하하하”

“...”

“왜요?”

“..팔색조도 아니고.. 참 여러 가질 보여주시네요. 체하겠어요. 너무 갑자기 많은 걸 보여주셔서..”

“풋~..큭큭..”

“..”

“그런 얘기.. 제 가슴 보면서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제..가 언제.. 봤다고..”

“하긴.. 저번에 말 하신대로 제 여기까지 다 봤는데 가슴이 대수겠어요.”

“....”

“진짜 이상하내.. 왜 그렇게 봐요?”

“..혹시... 가짜에요?”

“네!?”

“....”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세희의 웃음소리가 테이블 위에 있는 마이크를 통해 방안에 공명까지 일으키기 시작했다.

“....”

“왜요? 수술한 거 같아요?”

“동길이가 확실하다고..”

나도 모르게 동길이 놈 핑계를 댄다.

“역시.. 음어한거 같더니..”

“음어??...”

“큭큭.. 자요.”

“네...예???”

갑자기 세희가 날 향해 가슴을 크게 들이밀었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탐스런 세희의 가슴이 더 큰 원을 그리며 내 눈 바로 앞에 나타났다. 

“만져봐요. 만져보면 알 수 있잖아요.”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게 아니..엇..”

갑자기 세희가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위로 얹게끔 잡아끌었다. 부드럽지만 탄력 있는 세희의 가슴이 내 손바닥에 푸짐하게 그대로 느껴졌다. 유두의 촉감이 내 손바닥에도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풍만함에 꽉 찬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수술한 거 같아요?”

“...잘 모르겠는데..”

난 슬그머니 손을 빼려는데 세희가 더 꽉 손목을 잡고는 좌우로 흔들어댔다. 난 의도치 않게 세희의 가슴을 잡고 흔들어대는 꼴이 됐고, 그 황홀한 출렁임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때요?”

“그..게...”

우습게도 방금 전까지 느꼈던 그녀에 대한 짜증이 물밀 듯이 녹아내리게 된 순간이었다. 남자란 동물이 얼마나 단순한지.. 바로 눈앞에 일어난 쾌감에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동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며 난 온 정신을 손끝과 손바닥에 집중하게 된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그냥 말캉하기보다는 탄력이 있다고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의젖이란걸 만져본적이 없는 아였지만 분명 세희의 가슴은 진짜 그녀의 일부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에요...”

“예?...네..”

“...”

“.....”

“..”

“스톱!! 지금 뭐하는 거야!”

“악!.. 아..아파...요”

“미..미안해..”

덜컥 예고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동길이 놈의 행동에 깜짝 놀라 세희의 가슴을 꽉 움켜지자 세희가 허리를 빼며 내 손목을 밀어낸다.

“이거~ 이거~.. 이 새끼 뒤로 호박씨 까는 거 보소.. 와!~~~”

“무..뭐가?”

“참나. 뭐가? 누구 염장 지르냐? 나 굶은 지 1년 넘은 거 몰라? 너무 하네..”

“미친놈. 그러게 누가 바람 같은 걸 피래!”

“야!”

“어머!.. 동길씨 바람피우다가 차인 거예요?”

“아니에요!. 이 새끼가 장난 치는 거지.. 제가 어딜 봐서 양다릴 걸 놈입니까! 얼굴에 이렇게 ‘나 정직’이라고 딱 쓰여 있는데.. 전 티 나서 거짓말도 잘 못해요.”

“그것도 거짓말이죠?”

“아나!!.. 야! 말 좀 해봐. 세희씨 오해하시잖냐!”

“오해? 여친 출장간 사이에 여친 방에 왜 다른 여잘 부른 게 오..읍!웁!!”

“하하하하.. 이 간나새끼.. 목을 따버리갔어!!”

“호호호..”

노래방의 서비스 시간까지 탈탈 턴 우리는 노래방에서 나와 각자 갈 길로 헤어지게 된다.

먼저 세희가 한참을 기다리고 나서야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고, 그 뒤를 동길이 놈이 택시를 잡아탔다. 물론 노래방에서 나와 잔뜩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3차를 가자는 동길이의 애원이 있었지만 더 이상 사건, 사고는 사양이었기에 더욱 강력하게 말을 한 나였고 의외로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 세희였다. 끝내 동길이 놈의 아쉬운 눈빛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택시를 기다리게 된 나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엔 여전히 잔상처럼 어른거리는 세희의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을 다시 기억해내며 감상에 젖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봤던 모델 같은 몸매와 부드러운 가슴, 그리고 미모의 얼굴.. 선명히 드러난 보지 둔턱의 갈라짐과 도톰함의 굴곡들은 흰 레깅스였기에 더욱 흥분할 수 있었던 재료였고 황홀한 눈요깃거리였다.

종아리와 허벅지가 굵지도 그렇다고 너무 얇지도 않은 정당하면서도 완벽한 비율을 보여주며 노래방에서의 율동 같은 춤을 보여줬을 때의 하반신의 형태는 급격한 꼴림을 숨기게 만들었었다. 딱 붙은 허벅지위로 살짝 벌어져 역U자를 그린 그녀의 사타구니가 적나라하게 보여졌고, 그 속에 수줍게 드러난 도끼가 갈라놓은 듯 한 자국과 살집이 약간 있어 도톰한 언덕의 형태에 진심으로 저 허벅지를 벌리고 얼굴을 파묻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으니 얼마나 웃겼겠냔 말이다. 있는 폼은 다 잡는 척을 하면서 머릿속엔 온갖 그런 상상을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문득 저 정도의 여자가 왜 아직도 홀로 남아 있는지.. 그녀의 상황에 더 궁금증을 느끼며 아무리 일에 미쳐 산다고 해도 저 정도의 얼굴이면 남이 가만히 안뒀을텐데..라는 의구심을 품으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마침 택시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덜컥..’

“어.. 죄송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택시의 뒷문을 열던 난 꺼진 탑등과 함께 안에서 느껴진 인기척에 사과부터 했다.

“타세요.”

“내리실 건가..네?”

“저에요. 타세요.”

“어....”

뒷좌석엔 세희가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려 운전석 바로 뒤로 이동하고 있었다.

“집에 간 거 아니에요?”

“기사님한테 한 바퀴 돌아달라고 했어요... 동길씨 때문에 두 바퀴나 더 돌았지만..”

“...왜요?”

“계속 미터기 올라가요. 타세요.”

“...”

택시 안엔 60대는 넘어 보이는 노신사 같은 이미지의 기사와 나 그리고 세희가 만든 적막감으로 숨소리마저 들리는 듯 느껴졌다. 

그 침묵의 연장선을 먼저 끊은 건 택시 기사였다.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기에 라디오에선 시사토론인 듯 한 프로로 여러 사람들이 열띤 공박을 벌이고 있는 대화 내용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음악보다는 지금 순간엔 차라리 더 낫다는 생각을 하며 공방을 벌이고 있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왜 다시 돌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네?”

“우리 한 잔 더할래요?”

“..아뇨. 더 이상 마시면 실수할거 같아서요.”

“어제 나보다 더 실수를 할 수 있나...”

“예?”

“아..니에요.”

“오늘 많이 놀랐죠?”

“....”

“저도 놀랐어요. 저한테 이런 활발한 면이 있는지 처음 알았거든요. 아니.. 오랜만에 느꼈다고 해야겠네요.”

“그럼 오늘 모습이 원래의 본 모습인가요?”

“..글쎄요.”

“오늘도 도중에 내리게 하시려고요?”

“.....어제 화 많이 났어요?”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오늘 했던 행동도 그렇고.. ”

“어제... 미스터마스터를 만났어요.”

“미스터?”

“아이디요.. 소라의..”

“그게 누군데요?”

“....나중에 얘기해요.”

“....”

“근데.. 오늘 저 어땠어요?”

“...예?”

“아는 사람 앞에선 이런 옷 처음 입어 봤는데...”

“저번에 저한테도 보여줬잖아요. 이것보다 더 심한..”

“그거하곤 질적으로 다르죠.”

“...”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혼났어요.”

“그게 조마조마한 거였어요? 전혀 아니던데..”

“그거야 일부러 티 안 나게 행동하려고 했던 거고,, 솔직히 안보면 그만인 사람이니까...”

“...”

“아뇨! 동길씨요. 동길씨는 안보면 그만이지만.. 현강씨 얘기 한 거 아니에요.”

“어제랑 너무 다르셔서 적응이 안 되네요. 지금 제 심정도 신경써주신건가요?”

“....비꼬지 마세요.”

“비꼬긴요.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그리고.. 어제 좋지 않은 일을 당한 거 맞죠? 그런데 오늘 웃을 수 있는 세희씨가 좀 무섭기까지 하내요.”

“.....”

“됐습니다. 제가 참견할 일도 아닌 거 같은데 괜히 주제넘..”

“저한테 소라란 곳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남자였어요. 마스터는...”

“지금 회사에서 입사 동기였지만 지금은 영업부에 대리직함으로 따로 근무하고 있지만 한때는 총괄 팀에 같이 있었고요.”

“사귀었어요?”

“...그걸 사귄 거라고 해야 할까요?”

“예?”

“그 사람은 이미 결혼할 여자가 있더라고요. 뭐 나이도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았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처음부터 나이 차이에도 동기라는 이유로 말을 트고 지냈고 같이 고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고요. 여자 친구가 있다는 건 아주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럼 당신을 속이고 사귄 건가요?”

“사귄 건 아닐 거예요. 아까 동길씨가 얘기했던 섹파정도?”

“...들었어요?”

“들렸어요.”

“...”

“이런 말을 제가 하긴 뭐하지만.. 그 사람은 진짜 섹스를 좋아했어요... 아니 즐길 줄 알았다고 해야겠네요.”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서요. 그럼 그 사람한테 할 것이지..”

“그 사람 말대로라면.. 제가 순수한 영혼이래요..큭큭크.. 음란한 몸을 갖고 태어난 순수한 영혼.. 참 아이러니하죠. 시골이 싫어서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 공부했고 집이 가난해서 학교 다니는 동안 알바를 두 개 이상했는데 그게 다이어트가 됐고, 취직되고 이젠 더 이상의 고생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매일이 학교 다닐 때보다 더 지옥일 줄은..”

“역시 모든지 중간이 좋네요.”

“그렇죠?.. 전 그걸 왜 몰랐을까요.. 젊음을 공부하고 일하고,, 남들은 연예란 것도 잘만해서 몇 박 며칠씩 여행도 다녀온다고 하던데 전 그 시간을 다 허비해버렸으니..”

“허비는 아니죠. 그 나이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기업의 팀장이면...” 

“크큭.. 사실.. 그 사람을 만나고 한때는 중간의 삶을 생각도 했는데.. 사내 연예를 몰래 한다는 착각에 스릴까지 느끼면서 그 사람하고 더 가까워졌는데... 점점 달라지던데요. 보내는 시간의 대부분이 모텔로 변하더니.. 저한테선 점점 더 야한 것만 원하더군요. 대놓고 요구하는 게 많아지더니...”

“...예?”

“소라란 공간에서 사람들은 그걸 조교고 교육이라고 하더군요.”

“교육?”

“예. 암캐를 만드는 방법.. 여자란 인성이 아닌 성의 노예나 도구처럼..”

“그건 그 마스터란 놈이 이상한 거죠. 저도 들어가 봤습니다. 제가 그 마스터란 놈과 했던 행위에 대해서 까진 몰라서 자세히 말은 못하겠지만 이 세상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많은 사람들마다 각자의 개성이란 게 있는 거고 인성이란 게 있는 건데..그럼...??”

“...?”

“그 마스턴지 미스턴지.. 그 놈이 소라를 알게 해줬다는 게.....”

“....네. 현강씨가 상상했던 모든 걸.. 해봤을걸요.”

“....마시지나.. 쓰리..”

난 말을 하다 말고 택시안의 룸미러를 쳐다보게 된다.

그제야 나와 세희가 앉아 음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곳이 택시 안이었고, 이곳엔 우리 둘만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깨닫고는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런데..

“더럽죠?”

“네?”

“잘난 척은 다 한 년이.. 다른 남자의 품에..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세 명한테 둘러싸여서 엉덩이를 흔들어 됐을 거라는 걸 알게 되니.. 제가 더럽고 지저분하게 느껴지죠?”

“아니요. 어제 말씀하신대로.. 제가 상관할 과거가 아닌데요. 뭐..”

“............”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난 택시기사의 눈치를 살펴봤지만 우리의 대화엔 관심조차 없는지 룸미러로 비췬 옆모습엔 시선조차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막지 않았었는데.. 내 대답에 그녀의 입술이 굳게 닫히게 돼 버렸다.

정말로 못 들은 건지 아니면 듣고도 모른 체하는 프로의 정신이 남다른 건지 잘 모르겠지만 택시 기사는 세희를 내려주고 날 내려줄때까지 단 한마디도 꺼내질 않았다. 세희가 내릴 때까지 우리에겐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고, 난 머릿속에 이전에 세희란 여자의 모습을 그리는데 열중했다. 

처음부터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는 말인데, 그녀는 왜 지금까지도 자신의 누드 사진을 그 사이트에 올리는 것인지, 그리고 어제 다시 만났다는 그 마스터란 놈과의 관계는 아직도 진행형인건지..

그녀가 말한 목적지에 도착해 내가 먼저 차문을 열고 내리자 그녀가 따라 내린다.

당연히 난 곧바로 택시에 오르려 허리를 숙이는데, 그녀가 내 팔을 살짝 잡아 날 멈추게 했다. 혹시나 날 자신의 집으로...

그런 내 잠깐의 상상은 그녀의 작은 목소리로 착각임을 알게 되었지만..

“오늘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요. 덕분에 속이 많이 풀렸어요. 다음엔.. 저한테 말 편히 하세요..”

오랜만에 신나게 놀았던 걸 감사한 것도 아니었고 어제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이 아니었지만 더 진심 어리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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