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집입니다. 네... 마음대로 하세요.”
“누군데?”
역시나 맛 집으로 소문난 실내는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소리로 내 목소리까지 크게 만들었다. 약간의 짜증 섞인 내 목소리에 친구 놈이 의아한 듯 막 익기 시작한 닭갈비를 뒤집다 말고 물어본다.
“아는 여자.”
“뭐?? 아는 여자 누구?”
“그냥 아는 여자야. 지멋대로 행동하고 지 꼴리는 대로 약속 잡는.. 약간 이상한.. 그런 여자야.”
“누군데 네가 그렇게 악담을 하냐? 남 얘기 싫어하는 놈이..”
“..”
“사귀는 사이냐? 싸웠어?”
“...그런 거 아니야.”
“혹시...”
“뭐?”
“아니지.. 어제 물어본 건 초대남 얘기였으니 이렇게 단둘이 만날 사이는 아니겠고..”
“됐다. 그 얘기는 꺼내지도 마라.”
“네가 먼저 꺼냈거든!”
“그래.. 내 잘못이네.. 됐고..”
“야!..”
“왜?”
“저 여자 좀 봐!.. 와!~~..진짜... 어..”
뒤집던 주걱까지 놓치며 시선을 뺏긴 친구 놈의 시선 끝엔 세희가 날 찾곤 걸어오는 모습이 있었다.
어처구니없게도 위엔 한쪽 브래지어 끈이 다 보이는 어깨가 늘어진 티셔츠에 바지도 아닌 하얀색 스타킹만을 신고 같은 흰색의 높은 반부추식 구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착각을 느낄 정도로 황당했었다.
어제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큰 사건을 치룬 여자가 저런 복장으로 그것도 분명 내 친구와의 선약 자리에 불청객으로 찾아온 뻔뻔한 모습에 기가 찼고 황당함을 느끼게 됐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뭡니까?”
“네?”
“옷이 그게... 에휴..”
“왜요? 이상해요?”
“참나.. 그걸 지금 말이라고..”
“전 나름 신경 쓴 건데.. 이거 어제 현강씨가 저한테 선물한 레깅스잖아요.”
“....예?”
“자기가 사줘놓곤..”
“자기??? 둘이 무슨 사이세요?”
“네? 현강씨가 뭐라고 얘기 안했어요?”
“그냥.. 지멋대로에다가 좀 이상... 웁웁!!”
“야야!! 뭔 소리야.”
“짜! 쌔끼야!.. 퉤퉤~~..왜 사람 입을 막는데!?”
“헛소리를 하냐 넌.. 취했냐?”
“미친 놈.. 술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취하냐?”
“이 새끼 취했네.. 너 그만 집에 들어가라..”
“뭐??”
“이제 닭갈비 다 익은 거 같은데 가긴 어딜 가세요. 아!~ 죄송해요. 김세희라고 해요.”
“예?? 예.. 고동길입니다.”
“반가워요. 현강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예?”
“가장 친한 친구신데 울산으로 이사 가셔서 아쉽다고 했는데... 맞죠?”
“예.. 하하하하.. 이 새낀 이렇게 아름다운 분하고 인연이 있으면 진즉 이 형님한테 보고를 했어야지....하하하하하”
얼굴빛이 홍당무가 돼 버린 친구 놈의 모습보다 뻔뻔하게도 어제 지나가는 말로 했던 내 얘길 그대로 지금 이용하는 이 여자의 무서움에 정말 놀라게 된다.
“하하.. 아. 왜 이리 덥냐.. 저 장실 좀.. 하하하하”
“예. 다녀오세요. 제가 맛있게 익혀놓을게요.”
“예?..하~”
“뭡니까?”
“뭐가요?”
“지금 뭐하는 거냐고요!?”
“보면 몰라요? 닭갈비 익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옷을.”
“왜요? 입으라고 사준 거 아니에요?”
“누가 이런 건줄 알았습니까? 그냥 요즘 다 입고 다니는 레깅스 같은 건 줄 알았지..”
“비슷한 게 맞긴 하네요.. 색깔이 흰색이란 것만 빼고는..”
“...”
“근데요. 이거 입으니까 도끼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티 났어요?”
“도..도끼 자국??”
“좀 큰 걸로 사주던가.. S사이즈는 뭐람.. 혹시 일부러 이런 거 사온 거예요?”
“누..누가 일부러!!!”
“아씨.. 애인 없는 사람 서럽게.. 사랑 싸움하냐?!”
“호호호.. 아닌데.”
여자의 변신은 무죄?
이 여자의 변신은 범죄다.
“현강씨.. 저 손 좀 씻고 올게요.”
“,,,네,”
“이 새끼.. 솔직히 불어. 섹파냐? 소라에서 만난 섹파지?”
“아니야.”
“아니긴.. 진짜 죽인다.. 저 엉덩이....와~~ 도깽이 자국까지 보이는데.. 눈을 어디다 둬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더라.”
“죽을래.. 진짜 화낸다.”
“...”
“그런 거 아니라고.”
“그럼 뭔데? 저렇게 야하게 입고 다니는 스타일 너 싫어하잖아. 사귀는 사이는 절대 아닐 거고.. 머리 나쁜 나한테 졸라 어려운 문제다.”
“....”
“찝쩍대지 않을게.. 솔직히 불어 봐. 섹파 맞지?”
“진짜 맞을래!”
“새끼.. 잘하면 눈에서 레이저 나오겠다.. 아니면 아닌 거지...”
“넌 그게 친구 여친한테 할 소리냐?”
“....여친 맞아?”
“그래! 내 여친이다. 사귄지 이제 겨우 두 달 된 여친이고, 몸매에 자신 있는 여자가 자기만족에 저렇게 입고 다니는데, 뭐 잘못됐냐?! 그럼 똥꼬 치마 입고 다니는 여자는 다 정육점 아가씨들이냐!!”
“알았어.. 농담이라고 뭘 그렇게 화를 내냐..”
“농담? 너 같으면 자기 여친을 가장 친한 친구란 놈이 쉬운 여자로 쳐다보는데 화 안나?!!”
“알았다고.. 내가.. 어... 벌써 오셨어요?”
“왜 싸워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사인데...”
난 입술을 꽉 깨물며 친구와의 사이에 문제를 일으킨 세희를 노려보게 된다.
“왜.. 그래요?”
“아니야.. 밥이나 먹자.”
“...네.”
더 이상의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 먹는 대에만 집중을 해서도 아니었고,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음으로 인해 목이 아파서도 아니었다. 세희를 바라보는 내 시선조차 곱지 않을게 뻔했기에 일부러 먹는 것에만 집중을 했었고, 친구 놈은 닭갈비가 코로 들어가는 건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모를 정도로 세희의 육체를 훔쳐보는데 바쁘기만 했다.
술잔이 빌 때마다 정말로 내 여자 친구인 냥 소중한 남친의 친구의 잔을 채워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불사르는 여자처럼 팔을 뻗어 술잔을 채웠는데..
그때마다 풍만한 가슴이 팔에 짓눌려 모양 좋게 변해갔고 술잔을 채워줄때마다 고개를 숙여 어색하게 미소 띤 친구 놈의 시선은 역시나 세희의 모아진 가슴을 향해 있었다.
허리를 살짝 숙일 때마다 보이는 가슴골의 향연에 정말로 친구 놈은 정신을 못 차리는 듯 보였다.
“진짜.. 여친이냐?”
“....?”
세희가 손을 씻는다며 두 번째로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친구 놈이 내게 물어본다.
“또 뭐가?”
“아니.. 대화도 제대로 안하고 좀 그렇잖냐.”
“뭐?”
“내가 네 이상형을 뻔히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진짜 한마디만 더해라..”
“아따.. 무섭게.. 금방 오시네..”
“사람이 넘 많아서요. 그냥 왔어요.”
“급한 거 아니세요?”
“조금요.. 솔직히 쌀 거 같은데..”
“그런 걸 뭘 일일이 대답해..요.”
“예?? 그러네..호호~ 동길씨가 너무 편하게 해주셔서 그러잖아요.”
“편하긴..”
“그런데.. 2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서로 존댓말 쓰는 거야?”
“그쵸? 저도 현강씨한테 말 편히 하라고 그렇게 얘기 했는데도..”
“언제 그런 말을..윽..”
급기야 내 몸에 손까지 댄 세희다.
기가 차서 입을 여는 순간 세희의 팔꿈치가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솔직히 이 상황이 적응이 쉽게 되질 않는다. 세희란 여자와 내가 이런 터치까지 할 정도의 사이도 절대 아닐뿐더러 단 두 번의 만남이긴 했지만 이렇게 나긋하게 행동할 여자란 것쯤은 이미 몸으로 느꼈었는데 말이다.
“현강씨 2차 어디로 갈 거예요?”
“..네?”
“2차 안가요?”
“가야죠! 당연히 가야지! 안그냐 현강아!!”
“시끄럽다. 그냥 우리끼리 포차나 가자.”
“우리끼리? 세희씨는?”
“집에 가셔.. 가야지.”
“저 오늘이 휴가 마지막이잖아요. 늦게 들어가도 되요.”
“예?? 대학생 아니세요?”
“예~에?? 호호호호.. 넘 오버다.”
“오버 아닌데.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하하하. 입에 침이나 바르시죠.”
“진짠데. 그럼 직장인? 혹시 연예인?”
“에이~ 넘 띄우신다.”
“아니에요? 어디서 많이 봤는데..”
“벌써 입사 6년차에요. 무슨!!”
“와.. 실례가 아니시면 올해 연세가???”
“큭큭.. 우리 2차가요. 현강씨 노래방 가요. 네~?”
“가긴 어딜 가!...요..”
“야! 가자! 제수씨 노래도 듣고, 춤도 춰주시나? 히히~~”
“저 한 댄스 하는데..”
“오~~.. 가자! 야! 일어나 새끼야!”
나한테는 술도 잘 안사는 놈이 부리나케 일어나 계산부터 한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왜요?”
“장난도 정도껏 하시죠.”
“싫어요?”
“그만 하시라고요.”
“제가 여자 친구라면.. 창피해요?”
“예?”
“다른 남자.. 시선들 즐기는 저 같은 여자는 창피하죠?”
“그런 게 아니고.. 솔직히 적응 안 되네요. 우리가 친했나요? 지금까지 문전박대하듯 쫓아내길 반복하던 건 세희씨잖아요. 가증스럽게 이게 뭡니까?”
“야! 뭐해!!!”
“예~ 갈게요. 동길씨.”
음식점 안이 떠나갈 듯 소리 지른 친구 때문에 사람들의 짜증 섞인 시선을 느끼며 결국 난 그 자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동길씨, 노래방은 제가 쏠게요. 대신 커피 한잔 더 사주시면 안 돼요?”
“안되긴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달달한 커피가 땡기는데. 들어가시죠.”
“테이크아웃으로요. 가서 먹게요. 사다주세요. 오빠랑 할 얘기도 있어요.”
“예?.. 하하하.. 네.”
“오빠?”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간 친구 놈을 보며 난 이젠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대놓고 드러내며 세희란 여자를 쳐다보게 된다.
“저보다 한 살 많잖아요.”
“...”
“근데.. 자신감 충만하던 어제의 모습은 어디 갔어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절 꼭 이상성애자로 쳐다보면서 자긴 방관자처럼 굴던 그 태도는 어디갔냐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거울 안보시죠. 자신의 시선이 얼마나 직설적인지..”
“..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리고 제가 단 한번이라도 잘난 척이나 세희씨를 그런 쪽으로 매도한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걸 말을 꼭 해야 알 수 있는 건가요? 절 쳐다보는 눈빛에 다 담겨 있는데. 그리고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세요. 단순히 절 지켜주고 싶다는 선의에서 접근했어요? 어제.. 제 지저분한 모습 보면서 왜 거긴 커진 건데요? 전부 그쪽으로 절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건..”
“옷을 사다주신 건 고마운데요.. 이런 걸 입히고 뭘 하려고 그랬어요? 오줌이나 지린 여자니까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입어라?”
“말도 안 돼는.. 그게 그런 건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리고 세희씬 봐주는 거 좋아하잖아요. 자기 몸 봐주면서 자위하는 남자들 보면서 흥분하는 거 아니에요?”
“그것도!!...”
“세희씨 여기요~”
“..”
“....”
“응? 뭐냐 이분위기?”
“아니에요. 가요 동길씨.”
“여기요.”
“고마워요. 저기 노래방 있다. 가요 우리.”
“예??.. 엇..”
세희는 커피에 대한 답례라도 하듯 동길이 놈의 팔짱을 낀 채 이끌 듯 걸어갔다.
도저히 저 여자의 정신 상태를 이해할 수 없는 나였고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질 않는다. 당장이라도 집에 가버릴까를 고민해봤지만.. 팔짱까지 끼고 걸어가는 친구 놈과 세희의 모습에 고민도 잠시 그들을 따라가게 된다.
실룩거리며 걷는 그녀의 엉덩이는 약간의 오리궁뎅이 같아 더 보기 좋게 솟아있었고 처짐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문제는 아무리 라인 없는 팬티를 입었다고 해도 저렇게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고 더 선명히 드러난 도끼 자국의 정체는 분명 노팬티가 확실했다.
친구 놈 옆에서 팔짱까지 끼고 가는 그녀의 모습에 심한 질투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