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화 (24/84)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내는 대통령에게 핫라인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외교안보수석이 받더니 안색이 변하며 대통령에게 다가왔다.

“ 무슨 일입니까? 안보수석님.”

“ 저 그것이.....직접 받으셔야 할 듯 합니다”

“ 결국 안보수석이 우려하던 그 전화가 온 건가요? ”

“ 그렇습니다.”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더니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안녕하십니까? 백호단주입니다. 휴가 중인데 편히 쉬시지 못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용산 지역구 주희경 의원 처분 통보차 전화 드렸습니다.”

“ 재고의 여지는 전혀 없는지...”

“ 없습니다. 이미 그 동안의 죄상에 대한 것은..... 

외교안보수석에게 관련 자료는 보내 드렸습니다. 

무엇보다 백림 백호에 대한 기밀 유출 건은 

우리 조직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 처단이 불가피합니다.”

“ 알겠습니다. 

알아서 처리하시고 다만 사체는 곱게 가족에게 돌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하겠습니다. ”

“ 앞으로도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백호에 대한 비밀 유지는 앞으로 더욱 신경 쓰겠습니다” 

“ 한번 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비선 라인을 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 일로 인한 피해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 앞으로 기밀 유지에 더욱 주의하겠습니다. 

그리고 청와대 내부 협력자인 경제수석은 휴가 후 파면해서 내보내겠습니다. 

그렇게 처리해도 괜찮겠지요?”

“ 그 문제는 알아서 하시지오. 그럼 이만....”

전화를 끊은 대통령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 주희경 이 미친 년이 발정나 할 짓 못할 짓 구분을 못하다니...

어이가 없구나. 주위에 인물이 이렇게 없으니. 

국정원에서 금융수석 후보로 추천하며 보고한 내용에 있던 

주의원 행동을 보고 이번 사태를 예견한 그 여자, 

서혜림이라고 했었나? 그 여자가 위기의 나에게 동아줄이 되어 줄까? “

전화를 끊은 재호는 백호단에 지시했다.

“ 주희경 처단 준비해. 아주 제대로 발정난 개처럼.....잡아 죽여” 

지훈은 혜림의 호출을 받고 새벽같이 일어나 혜림의 집으로 달려갔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혜림이 지훈에게 성수를 내리는 중이었다. 

감격에 찬 표정으로 황홀한 듯 혜림의 골든을 받아 마시는 지훈.

“ 꿀꺽 꿀꺽 ”

“ 역시 좆달린 수컷 똥개라 한번에 다 받아 마시는구나.”

중간에 쉬지 않고 한번에 다 받아 넘기는 지훈을 보며 혜림이 흐뭇하게 바라 보았다. 

골든이 끝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온 혜림.

지훈이 그런 혜림을 눈이 부신 듯 올려 보았다.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혜림. 

한 때 자신이 젊음과 순정을 다해 죽도록 사랑했던 연상의 여자.

그 여자로부터 차가운 접금 금지 명령을 받았을 때의 괴로움, 

무엇이 되어도 좋으니 옆에 있게 해 달라는 수많은 애걸 끝에 

조건부로 머물 것을 허락 받았을 때의 기쁨, 

그 조건을 알았을 때의 경악감과 두려움 ,,,

수많은 방황 끝에 그 조건대로 혜림을 절대 숭배하는 개로 

철저히 길들여질 것을 맹세한 것 등이 주마등처럼 지훈의 눈 앞을 지나갔다.

" 주인님,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이신지.....?."

지훈이 무릎을 꿇고 혜림의 물기 젖은 하얀 발등을 감싼 실내화에 입맞추며 물었다. 

" 아 일어나 거기 앉아. 얘기 좀 나누고 아침 먹고 한수현에게로 가."

혜림이 마주 앉은 지훈에게 서류를 건냈다. 

어느 시골 동네의 모습이었다.

" 이 곳이 어디입니까?"

" 오늘 한수현과 가는 곳이다. 춘천과 가까운 가평의 시골동네. 

그 곳이 한수현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가는 게 좋을 듯 해서 이렇게 불렀다."

" 주인님께서 친히 조사하신 겁니까?" 

" 그래, 내가 키우는 개가 어떤 곳을 그렇게 오랜 세월을 바쳐 

그 많은 돈을 바쳐가며 지극정성으로 후원하고 가꾸는지 알고는 있어야 해서 

세번 정도 방문했다. 한 번 읽어 봐"

지훈이 한참 동안 그 서류를 다 읽고는 나즈막히 한숨을 토해냈다.

" 대단하군요. 이 정도면 하나의 작은 낙원이겠네요. "

" 그래 한수현 20대 10년의 결정판이지. 

대학교 신입생 때 우연히 알게 되어 소액 후원하던 

애초 무허가 건물이던 그 고아원이 있던 곳을 사들여 새로 현대식으로 건물을 지었고 

주위의 논과 밭을 구입,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급자족이 가능하게 만들었지.

뒷산 잡목들을 모두 개간하여 유실수, 조경수를 작목하여 풍광도 멋지고 돈벌이도 되게 했더구만."

" 무엇보다 최소의 인력으로 하는 방법을 선택했군요. 

논농사는 옆마을의 기계농에게 수수료를 주며 위탁하여 거의 손이 안들고 

밭농사는 고아원 식구들이 먹을 만큼만 짓고.....

가만히 심어 놓으면 되는 유기농 유실수, 조경수로 수익 사업도 하고... "

" 이 정도 규모를 수현씨 전적으로 혼자 힘으로 했단 말입니까?"

" 그래, 나도 믿기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하더구만. 

동네 사람들이 자랑삼아 농담삼아 말하는데 처음 수현이 매입 할 때 

그 곳의 땅값은 면소재지 강원도 수준이었는데 작년 연말에 

주변에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엄청나게 뛰어 이제는 경기도 분당 땅값이 되었다고 하더군."

" 수현씨가 무슨 돈으로 이렇게...."

" 한수현 삼남매가 부모님 명의의 빌딩 구입시 가진 돈을 모두 보탰다고 하더군. 

수현 부모는 용인의 땅을 선산만 남기고는 모두 처분했고 

한수인 부부는 로펌에서의 수익 전부, 맞벌이로 저축한 돈을 ......

한수정 부부도 그 동안 모으고 재테크한 것을 보탰고....

한수현은 자신이 사회 생활 하면서 모은 돈과 

주식과 선물로 벌어 들인 돈을 모두 보태서 은행 채무 없이 빌딩을 인수했지. 

그리고 한수현이 가족들에게 얘기해서 그 빌딩을 담보로 

은행 대출로 받아 여기 이 고아원이 있는 곳의 땅을 매입했다고 하더군."

" 그럼 수현씨 가족들도 다 아는 사실이라는..."

" 그래, 수현의 가족들도 공동 후원자들이지. 

한수현 집의 별채에는 그 고아원 출신의 대학생 몇 명이 몇년째 항상 거주 중인데 

학비도 보태주고 이모네 레스토랑에서 일자리도 알선해 주고 하더구만. 

지금은 그 은행 채무도 다 갚았다고 들었다. 

그렇게 고아원 후원에 쏟아 붓고 있는 한수현에게 전검사 남친이 혼수 목록 들이밀 때 기분이 어땠겠어?" 

" 제가 봐도 그 입장이면 속물로 보였겠지요."

" 그래, 더 재미 있는 건 한수현이 자기 가족들과 함께 그 고아원에 몇 번 가자고 했는데도 

오검사가 싫다고 하면서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거야. 

이미 수현과 수현 가족들 눈 밖에 난 짓을 한 것이지."

" 그런 상태에서 혼수 운운하니 수현씨 성격이 폭발한 것이로군요"

" 그래, 내가 키우는 개들이 은근히 성격 더러운 명견 똥개들이거든..."

혜림이 그렇게 말하고는 싱긋이 웃으며 지훈을 바라 보았다.

" 전 성격 더러운 것에서 예외로 해 주십시오. 주인님"

" 그러던가. 아침 먹고 한수현에게 가 봐라. 

오늘 잘하면 네 소원 풀겠다. 한수현은 팬티 준다고 하지? " 

순간 얼굴을 붉히는 지훈. 

예전에 혜림에게 팬티 하나만 달라고 애원했던 과거가 떠올랐다.

" 난 너에게 가진 걸 아무 것도 줄 수 없었어. 

질투 많은 마르스님을 주인으로 모시면서부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으니까......

다행히도 한수현 같은 애를 나를 사랑했고 숭배하는 너에게 줄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 제게 과분한 분이라....주인님에겐 늘 감사합니다."

" 후회는 없나? 지금의 모습에....나를 원망하지는 않고?"

" 전혀 없습니다.

누가 뭐래도 전 혜림님의 개라는 것이 행복하고 수현씨와 부부가 되는 것이 더 없이 좋습니다."

" 그렇다면 다행이고...아침 먹고 약속 시간에 맞춰 가 봐라."

지훈이 혜림의 집을 나와 수현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여 

입구에서 조금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수현이 걸어 나왔다.

청바지에 반팔 티셔츠, 운동화 차림, 그리고 머리는 포니 스타일로 묶었고.모자는 썬캡을 쓰고 있었다.

" 수현님, 그러고 있으니 대학생 농활 가는 것 같습니다."

" 놀리지 마세요. 이렇게 늙은 대딩이 어디 있어요?"

" 무슨 말씀을....누가 봐도 대딩 같아 보일 걸요."

" 립서비스 고맙군요. 그게 다 저녁에 받을 팬티 때문에 아부 하는 거라는 거 알아요."

" 들켰군요. 그럼 출발할까요?"

두 사람이 기분 좋게 차를 출발하여 인적이 드문 거리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경춘 가도를 달리며 지훈은 수현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서울에서 의례적으로 만나던 데이트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지훈은 새삼스럽게 수현이 우러러보였다. 

혜림과는 또 다른 매력을 자랑하는 수현을 숭배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실 편의점에 들렀을 때, 

편의점을 나와 나무 그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 

지나가며 수현을 쳐다 보던 그 수많은 남자들의 눈빛을 보며 지훈은 알 수 없는 질투심이 치솟았다

휴게실에서 쉬고 나서 차가 한참을 더 달려 가자 목적지가 다가왔다. 

“ 저기에서 우회전하세요. 대곡. 이정표 보이지요?” 

“ 대곡이라면 큰 계곡인가요.?”

“ 그래요. 큰 계곡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동네예요. 우리 목적지는 대곡면에서 더 가서 대율리예요.”

“ 대율이면? 밤하고 관련된 곳인가요?”

“ 예전에 큰밤골이라고 했대요. 

우리 고아원이 있는 작은 동네는 웃밤골, 웃밤실이라고 불렀고요. 

아래에 조금 큰 마을은 아래밤골, 아래밤실이라고 했대요.”

그렇게 작은 면소재지를 지날 무렵 수현이 지훈에게 말했다.

“ 저기 대형마트 앞에 주차하세요. 애들 간식거리 좀 챙겨가야 하거든요.”

“ 그러지요.”

두 사람이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들어서자 마트 여자 사장이 뛰어 나왔다.

“ 오셨어요? 어제 주문한 대로 포장은 다 해 놓았습니다.

여기 영수증입니다.“

“ 고마워요. 여기 이걸로 결재....”

수현이 신용카드를 내밀자 지훈이 말리더니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를 내밀었다.

“ 첫 방문인데 제가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이걸로 결재해 주세요.”

마트 사장이 지훈을 보더니 물었다.

“ 처음 뵙는데....큰언니하고는 어떤 관계인지...?”

“ 예, 정혼자입니다. 가을에 결혼할 사이입니다.”

“ 그러시구나. 키도 크고 훤칠하니 잘 생기셨네요.”

수현은 마트 여사장의 표정을 보고는 곧 이 동네에 자신의 결혼 소식이 아주 소상하게 퍼질 것을 직감했다.

카트에 실린 짐보따리들을 트렁크와 뒷자리에 나눠 실은 지훈이 출발하며 물었다

“ 여기서는 큰언니라고 부르는 모양이군요.”

“ 예, 집에서는 막내지만....여기선 큰언니, 큰누나로 불려요.”

비포장 시골길을 조금 달려 가자 도로 옆에 커다란 저수지가 보였다.

“ 저수지가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하세요.

그리고 직진하다가 마을이 나오면 다시 죄회전하면 되요. 

그리고 저수지를 왼쪽으로 끼고 약간 오르막 산길로 직진하면 목적지예요.”

지훈이 차를 몰고 약간 산길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작은 동네가 나타났다. 

“ 여기가 웃밤실입구예요. 입구에서 죄회전해서 올라가요”

수현이 말하는대로 올라가며 창문을 열자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왔다.

백미터 남짓 올라가자 정면에 지훈이 아침에 본 사진 속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때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 큰누나, 큰언니”

지훈이 소리 난 곳을 쳐다 보자 건물 옆 밭에서 나는 소리였다.

“ 그래 얘들아 잘 있었니?”

수현이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며 소리를 지르더니 지훈에게 말을 건넸다.

“ 애들이 벌써 포도를 따는 모양이네요.”

“ 포도요? 그럼 오늘 우리가 온 것이....”

“ 포도 따고 고추 따고...그러려고 온 거예요.

그런 수고도 없이 공짜로 그런 어마아마한 선물 받기 바랬다면 꿈 깨세요.”

수현이 웃으며 말을 했고 지훈은 마주 웃으며 건물 앞 마당에 차를 세웠다.

포도밭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 잘 있었니? 아픈 데는 없고...”

“ 우리는 다 잘 있어요. 큰언니 덕분에요”

그 중 가장 나이가 있어 보이는 아이가 말을 했다. 

“ 수현이 왔구나? 더운데 오느라 수고 많았다.”

그 때 집에서 누군가 나오며 수현에게 말을 했다. 

지훈이 쳐다 보니 벽안의 남자였다.

“ 신부님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편하게 왔어요 

운전수가 있어서요.지훈씨 인사하세요 

박보람 신부님이세요. 프랑스 신부인데...한국에 오신지 30년이 넘어요.”

지훈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 장지훈입니다 수현씨에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 반가워요. 수현이가 뭐라고 하던가요? 

성격 괴팍해 신부자리도 짤린 오갈데 없는 노인이라고 안하던가요? ”

“ 별말씀을요.”

“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 때 조용하지만 온화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 다인이 왔구나.”

지훈이 돌아 보자 중년의 온화한 부인이 밭에서 걸어 오고 있었다.

“ 저를 다인이라고 부르는 이 분은 안주인 보살마님이세요. 존함은 유세음입니다” 

“ 반가워요. 유세음은 무슨...그냥 파계한 비구니예요..”

인사를 마치고 나서 수현이 고등학생인 듯한 건장한 사내 아이를 불렀다.

“ 대장아, 이리와 짐 좀 날라라.”

“ 예 큰누나. 자동차 키 주세요.”

녀석은 자주 해 본 일인 듯 차문을 열더니 짐을 내려 놓고는 창고에 짐을 들어 날랐다.

“ 마침 시간 맞춰 잘 왔네. 

새참 먹을 시간이라 한참 쉬려는데....

낯선 차가 보이더구만. 누구지 하고 보는데 막내가 큰누나라고 하더구만.”

“ 헤헤 큰누나 ,제가 제일 먼저 알아 봤어요.”

수현의 옆을 떠나 줄 모르는 어린 녀석이 해맑게 말했다. 

수현이 그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어제는 수현이 네가 보내온 요리사들이 좋은 재료를 잔뜩 싣고 와 

동네 잔치를 아주 거하게 했다. 생전 처음 본 음식들도 많더구나. 

동네 사람들도 아주 좋아하더라. ”

“ 예 회사에서 창립 파티를 하는데..... 

재료들이 많길래 미리 제가 좀 따로 보관해 달라고 했어요. 

대표님도 흔쾌히 허락하셨고요.”

“ 그랬구나. 덕분에 잔치 하고 남은 재료는 아직 냉장고마다 가득하구나. 

서혜림 대표도 안녕하시지? 

대표님 덕분에 내가 한국에 와서 마음껏 모국인 프랑스어를 비롯한 

유럽 각국 언어로 대화를 마음껏 해 봤다. 

젊은 나이인데도 상당히 박식하시더구나.” 

“ 대표님이 왠만한 외국어는 다 하세요.

다녀 가셨다는 얘기는 들었어요.세번 정도 오셨다고..”

“ 그래, 올 때마다 많은 도움을 주고 갔다. 

내가 애들 외국어는 책임 진다고 농담을 했더니 나중에 애들 해외 유학 부분은 

대표님이 책임지시겠다고 하더라. 애들한테도 공부 열심히 하라면서...”

“ 해외 유학을요? 금시초문이군요. 지훈씨는 들은 바 있어요?”

“ 저도 처음 듣습니다”

“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이 청년은 누구냐?”

“ 예 저하고 결혼할 사람이예요.가을에 혼인을 하기로 했어요.”

“ 그래?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나. 

난 유보살하고 둘이 앉아 수현이가 우리 돌보느라 결혼도 안하는갑다 하고 걱정했는데....”

마당에서 유보살이 나눠 준 수현이 사 온 간식거리와 포도,토마토를 먹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거리며 듣고 있더니 지훈을 쳐다 보았다. 일부는 경계의 표정도 역력했다.

“ 결혼해도 여기는 지금처럼 계속 드나들 거예요 지훈씨하고 둘이서요. 걱정 마세요.”

“ 그렇습니다 신부님. 제가 수현씨하고 결혼하면 저도 당연히 같이 해야지요. 

오히려 제가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죄송합니다.”

“ 아닐세. 수현이가 애써 준 덕분에 이젠 충분히 자리를 잡았네. 말만으로도 고맙네.”

“ 아닙니다 저는 큰오빠 소리 들을 겁니다 막내로 자라 그런 말 들을 기회가 없었거든요.”

“ 우리야 그래 주면 고맙지. 오늘은 포도를 수확하고 오후엔 고추도 좀 따야 하는데...그것부터 도와주게.”

“ 알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 때 마당에서 간식을 먹던 앙징스런 여자애가 다가와 수현에게 말했다.

“ 큰언니, 인터넷에 올라온 동영상 보고 내가 우리반 애들한테 자랑했다. 우리 큰언니라고.”

“ 뭐야? 네가 그건 어찌 알고...”

“ 어제 와서 잔치해 준 요리사 아저씨들이 그랬어. 

인터넷 보면 나온다고. 언니 오빠들도 다 봤는데...”

수현이 마당을 쳐다 보자 애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었다.

“ 어휴, 창피해서...다른 애들도 그걸 다 보았니?”

“ 왜? 보기 좋더구만. 수현이 몸매가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노래도 아주 훌륭하고...”

“ 신부님까지 왜 그러세요? 

안 그래도 집에서 사돈 집에서 알게 되면 어쩌냐고 한소리 들었는데...”

“ 수현씨 그건 걱정 마세요 우리 가족들은 모두 흐뭇해 했어요.

특히 아버지와 조카들이 아주 광팬이예요. 

조카들은 친구들에게 아주 자랑을 늘어 놓아요. 

우리 이쁜 숙모, 섹시한 외숙모라면서요. ” 

“ 그만 하세요. 어휴...” 

수현의 달아 오른 모습을 보던 아이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참 얘기 끝에 수현이 말을 이었다.

“ 대표님도 이제 회사 그만 두시고 다른 일 하실 거예요.”

“ 그러냐? 왜 갑자기....”

“ 갑자기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계획한 거예요. 

정치가 꿈이셨는데....청와대로 들어 가실 것 같아요.”

“ 청와대라면....수석비서 자리냐?”

“ 예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경제 금융 정책을 직접 만들고 집행하기를 원해서요. 

아마 다음 주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발표날 것 같아요.”

“ 그렇구나. 얘들아 들었지? 

여기 오던 그 예쁜 대표 왕언니가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과 같이 일한다는구나. ”

아이들은 자기 일처럼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 그리고 저도 회사 그만 둬요.”

“ 결혼한다고 그만 두는 거냐? ”

“ 아니예요. 저도 대표님 따라 정치 하려고요.”

수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애들이 주위로 다가왔다.

“ 그럼 큰언니도 청와대 가는 거야? ”

“ 아니야. 언니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거란다.”

그 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유보살이 말을 했다.

“ 갑자기 왜? 무슨 이유라도...”

“ 이 나라 정치가 하도 엉망이라서요. 

자라나는 후손들 등골 빼먹는 정책들로 기득권 탐욕을 채우는게 이젠 진절머리가 나서...

그래서 한 번 바꿔 보려고요.”

“ 말처럼 쉬운 게 아닐텐데....그래. 부모님들은 뭐라시더냐?‘

“ 가족 회의 결과 출마 하기로 했어요. 다음 달 보궐 선거예요.”

수현의 말이 끝나자 철모르는 애들은 환호성을 울렸다.

“ 그럼 큰언니가 국회의원이 되는 거야?”

“ 바보, 선거에서 이겨야 되는 거야.”

“ 선거에서 당연히 이길걸. 큰언니는 이쁘고 마음씨도 착하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잖아. 

저렇게 잘 생긴 큰오빠도 곁에 있는데...이길거야.”

애들이 조잘대는 말을 들으며 어른들은 그저 입을 다물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그 동안 밀린 얘기를 주고 받은 후 수현은 모두를 데리고 포도밭으로 나갔다. 

나무 크기에 비해 가장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포도 나무를 심은 후 

아이들은 포도에 대해 거의 박사급 수준의 지식을 자랑했다. 

포도 뿐 아니라 토마토,참외,오이,수박 등 유기농 여름철 작물은 아이들이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음식물이었다.

뒷산에 심어 놓은 밤을 비롯한 사과 ,대추 등의 유실수는 이제 한창 익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포도밭 아래로 보이는 저수지 인근의 논에도 유기농 쌀을 재배를 하여 

아이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큰 병 없이 잘 자란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소나무를 비롯한 조경수는 자신의 고객 중 건설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 비교적 제 값을 받고 거래 중이었다. 

한여름 땡볕에 땀을 흘리며 서툰 솜씨로 포도를 따고 상자를 나르는 지훈을 보며 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가 원하는 자신의 속옷은 이미 땀으로 젖을대로 젖어 있었다. 

햇빛에 탄다고 팔소매인 토시를 끼고 있어 수현의 몸엔 땀이 쉴 새 없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포도를 따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클리토리스의 링이 자극을 받아 

보지에서는 한번씩 분비물도 흘러 내렸다. 

이건 수현이 마음대로 제거도 할 수 없는 거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분비물이 한번씩 나올 때마다 수현은 느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은 이미 언제나 음란한 똥개라고. 

점심은 시원한 콩국수를 먹었다. 

대식구들이 어울려 앉은 마당에 펴 놓은 시골 밥상에 어울리는 반찬은 너무나 맛있었다.

대낮의 햇빛을 피해 아이들은 낮잠을 잤고 박신부와 유보살은 

그런 애들 곁에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수현은 지훈과 나란히 걸으며 뒷산에 올랐다. 

각종 유실수와 조경수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것을 보고 지훈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이런 거 언제 다 공부를 했는지..대단합니다.”

“ 아니예요. 전문가 자문을 구한 덕분이지요. 

땅주인이 아들 따라 미국 간다고 논과 밭, 임야를 일괄매매한게 오히려 덕이 되었어요. 

제가 잽싸게 일시금으로 전액 준다고 하고는 싸게 산 거예요. 

그리고는 인근의 농업진흥청에 들러 자문을 구했지요. 

그 결과 유실수와 조경수를 심었고요.

좋은 일 한다고 조경수, 유실수 모묙도 많이 기증 받았어요.”

“ 저런 배치도는 누가 구상한 건가요?”

“ 대학때 같이 연극하던 건축 미술 전공의 친구가 했어요. 

한 번 데려 왔는데 보더니 배치도를 그려 주더군요. 무려 공짜로요. 

몇 년 전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 대상을 받은 친구인데.....

그 친구가 인터뷰에서 자기가 디자인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곳은 

그 건축물이 아니라 외딴 시골마을의 숲이라고 했지요.

그 곳이 어딘지는 말 안했고 사람들이 한 때 그 숲을 찾는다고 난리였지요.”

“ 못 찾았겠군요.”

“ 당연하지요 원본 배치도는 세상에 한 장 뿐이고....그건 제 책상 서랍에 있으니까요.

대신 그 친구는 한번씩 여기와 쉬었다 가고는 해요.”

“ 여기라면 혹 다른 장소가 있다는....?”

“ 숲속 깊숙한 곳에 그 친구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통나무와 흙으로 지은 작은 기와집이 있어요. 

금속은 전혀 사용하지 않은 그런 집요. 구들장에 장작 때면 온 몸이 뜨끈해지는...

고아원 식구들도 감기 걸리면 하룻밤 자는데 아침이면 거뜬해져요...”

“ 그렇군요. 그럼 그 친구가...”

“ 예 저하고 그 집의 공동주인이예요. 그것만은 허락해 줘야지요. 배치도도 공짜로 그려 줬는데요.”

“ 저 집이군요. 그림 같은 기와별장이군요.”

“ 저기 들어가 쉬었다 가요.”

수현은 지훈과 기와집 마루에 올라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마시며 땀을 식혔다.

“ 힘들지요 농사일은 안해 본 사람은 몸살 난다던데...”

“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 오후엔 고추 따는데...그건 더 힘들어요 

허리를 계속 숙이고 해야 하니...키 큰 사람은 고역이거든요.”

“ 까짓거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지요. 수현님도 하시는 일인데...”

“ 나중에 지훈씨가 정치를 하더라도 오늘 이 일을 잊지 마세요. 

이렇게 땡볕아래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농부의 수고로움이 히루 일당 겨우 3,4만원이예요. 

거기 비하면 정치하는 인간들은 시원한 국회에서 일당 수십만원에 온갖 특혜에... 

그러면서 회의조차도 참석도 제대로 안하다니 정말 철면피들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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