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타냥은 트레빌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방을 나서는 순간, 그의 눈에는 창 밖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가 거리를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앗, 그 놈이다!"
"달타냥 군? 왜 그러나?"
트레빌은 의아한 표정으로 달타냥을 바라보았다.
"칼자국이 난 녀석이 바로 저놈이에요!"
"뭐라고?!"
트레빌은 창 밖을 보며 소리치는 달타냥을 보며 의아해했다.
"으드득! 이번에야말로 절대 놓치지 않겠다!"
달타냥은 문을 박차고 방에서 뛰어나갔다.
"이보게, 달타냥!"
트레빌 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리쳤으나, 달타냥은 눈에 불을 켜고 서둘러 달려나갔다.
-탁탁탁!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내려오던 달타냥은 그만 한 총사와 부딪히고 말았다.
"앗!"
-퍼억!
그는 방급 보았던 삼총사 중의 한 사람인 아토스였다.
"크윽~!"
"아, 미안합니다. 지금 제게 급한 일이 있어서, 전 이만."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달타냥은 예의를 차릴 겨를이 없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한마디 사과를 남긴 채 뛰어가려는 순간, 아토스가 달타냥의 팔을 잡았다.
"이봐!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그렇게 성의없게 사과를 하고 그냥 가면 어떻게 하나?"
아토스는 안 그래도 몸이 불편한데, 상대의 성의없는 태도를 보자 화가 치밀어오르는 듯 화가 잔뜩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호오, 그러고 보니 아까 대장님에게 꾸중을 듣고 있을 때 자리에 함께 있었던 녀석이로군. 네가 대장님께 우리의 일을 일러바친 것이냐?"
"그런 게 아닙니다.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니 그만 놔 주십시오."
달타냥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아토스의 팔을 뿌리쳤다.
그녀는 정말 마음이 다급했다.
이러다가 또 눈 앞에서 로슈포르를 놓치게 될까봐 초조했다.
"정말이지 예의를 모르는 시골뜨기로군."
달타냥은 시골뜨기라는 아토스의 말에 발끈했다.
"뭐라고요? 시골뜨기? 내가 별볼 일 없는 시골뜨기라고해도 당신같은 고집스런 사람에게 설교를 듣고 싶지는 않군요."
"꼬마녀석이 입버릇이 무척이나 거칠구나. 아무래도 억지로라도 예의라는 것이 뭔지 가르쳐줘야겠군. 오늘 정오에 칼름 데쇼의 수도원 뒤뜰로 오너라. 네 녀석에게 예의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마."
"좋습니다! 이따 정오에 봅시다."
달타냥은 또다시 정신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토스와 실랑이를 벌이느라 한참이 지난 뒤였기 때문에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광장을 향해 달렸다.
-탁탁탁!
이윽고 정문을 달려 지나려 하는 순간, 문 앞에서 문지기와 이야기하고 있던 포르토스를 만나고 말았다.
달타냥은 그들을 지나쳐서 서둘러 지나가려 하였다.
-휘릭~!
"아앗?!"
바로 그때, 포르토스의 벨뱃 망토가 바람에 날려 나부끼면서 그만 달타냥을 감싸고 말았다.
포르토스는 바람에 날려 올라간 망토 자락을 두 손으로 잡아당겼기 때문에, 달타냥은 온 몸이 망토에 둘러싸여 포르토스의 등에 찰싹 달라붙게 되고 말았다.
"누구냐? 남의 망토 속에서 숨어들어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다니! 어서 나오지 못해?"
포르토스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달타냥도 당황스러운 마음에 망토 바깥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온통 어두컴컴해 나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망토의 갈라진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고, 달타냥은 그 쪽으로 재빨리 어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달타냥의 얼굴이 포르토스의 가슴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
갑작스레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을 보게 된 포르토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가슴이 밋밋한 걸 보니 소녀인가.
그가 긴가민가하는 순간, 달타냥이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만...."
망토를 빠져나온 달타냥은 포르토스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네놈은 길을 다닐 때 눈을 감고 다니는거냐?"
포르토스는 목청을 높여 달타냥에게 소리를 질렀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아직도 둘은 서로 밀착한 채로 붙어있었다.
"눈을 뜨고 있으니 당신 망토 속으로 들어갔지, 아니었으면 당신과 부딪쳤을거요."
달타냥은 상대방의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나기 똑같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칼자국이 난 사나이을 붙잡기 위해서는 빨리 이 자리를 지나쳐야 했다.
"삼총사 중의 한 사람이라면서 예의를 모르는군요. 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만나서 결판을 내도록 합시다."
"좋다. 그럼 오늘 1시에 룩상부르 성 뒤에서 보자. 혼쭐을 내 주겠다."
달타냥은 다시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보았던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이미 아토스와 포르토스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버린 탓에 사나이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칼자국이 난 사나이를 보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달타냥은 간신히 발견한 적을 놓치게 되자 안타까운 마음과 분한 마음이 들었다.
(제길, 그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오늘 중으로 검술의 귀신이라는 삼총사 중 두 명과 결투를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큰일이군. 도저히 이길 자신이 없는데...)
만약 상대가 로슈포르만큼의 강자들이라면 손도 제대로 못 써보고 질지도 몰랐다.
(하아...어머니께 성미가 급해서 항상 침착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주의를 들었는데도 또다시 일을 저지르다니...)
열두시가 가까워오자 달타냥은 결투를 약속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결투를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목숨을 잃더라도 정정당당하게 결투에 임하겠다고 결심하며 달타냥은 수도원으로 향했다.
그러던 도중 그는 길가에서 삼총사 중의 한 명인 아라미스가 친구인 듯한 사나이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아라미스는 품위있는 모습으로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복을 입고 서 있는 아라미스의 모습은 더없이 훌륭하고 의젓한 총사의 모습이었다. 달타냥은 부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빙긋 웃음을 지으며 그의 옆을 지나쳐갔다.
그 순간, 아라미스의 호주머니에서 하얀 손수건이 떨어졌다. 달타냥은 친절하게 손을 내밀어 그것을 주우려고 했으나 , 아라미스가 손수건을 구둣발로 밟아 그의 행동을 제지했다. 달타냥은 화들짝 놀라 아라미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라미스는 불쾌한 표정으로 달타냥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봐,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거야?"
"떨어졌길래 주워 드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달타냥은 도둑 취급을 받게 되자 화가 나서 손에 힘을 주어 손수건을 끌어당겼다. 그러자 손수건은 찌지직하며 반으로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흥! 떨어졌으면 떨어졌다고 말하면 될 것이지, 왜 거지처럼 남의 물건을 줍는거야?"
"뭐라고요? 거지라고? 당신이 바보처럼 손수건을 떨어뜨리니까 그런 것 아닙니까!"
"바보? 애송이 녀석이 건방지기 짝이 없군. 그래서 덤벼볼테냐?"
"겸손하게 대하니까 우쭐대는군. 당신이 삼총사의 아라미스라는 것을 알고 있자만 그렇다고 내가 겁먹을 것 같습니까? 흥! 대결을 원한다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다만 12시와 1시에는 선약이 있으니 피해주시길."
"그래, 좋다. 그럼 2시에 트레빌 대장님의 저택에서 보자."
화가 난 달타냥은 반쪽 난 손수건을 던져주고는 수도원의 뒤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한 마음에 결투를 받아들였지만 또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우우...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삼총사 전부와 결투라니...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정말 큰일을 저질러 버린 것 같구나.)
달타냥은 성급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로슈포르와 다시 맞붙으려 한 것 뿐인데, 괜히 다른 사람들과 시비가 붙고 말았구나...)
최악이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어버린 일이었다.
"하아...."
달타냥은 너무나 암담하고 불안했지만, 약속을 어길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사형장에 끌려가는 죄수처럼 터덜 터덜 약속장소로 향하였다.
수도원의 뒤뜰은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거친 들판에 있었다.
무성하게 자란 잔디 사이로 오래된 나무들이 가지를 뻗치고 있었고, 곳곳에 무성한 덤불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느릅나무에는 아토스가 미리 도착해서 달타냥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맞춰서 제때 왔군. 난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네."
"네,"
아토스는 달타냥의 모습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했다.
달타냥도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한 가지 사과해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구만. 결투의 입회인으로 가장 친한 두 친구를 불렀는데 무슨 일인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네."
"저는 입회인이 없습니다. 어제 파리에 도착해서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아는 사람이라고는 부친과 친분이 있는 트레빌 총사대장님 뿐입니다."
"그렇군. 그나저나 총사도 아니고 호위대원도 아닌 자네와 결투를 한다는 게 좀 난처하긴 하군 그래."
"그건 염려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이야말로 오른쪽 어깨에 상처가 났으니 불리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 말게나. 상처가 욱신거리긴 하지만 나는 왼손으로도 자유롭게 검을 쓸 수가 있다네."
아토스는 자신의 왼손을 휙휙 휘둘러 보이며 말했다.
"왼손으로 싸우더라도 업신여긴다고는 생각하지 말게나. 결투를 약속한 직후에 양손을 자유롭게 쓴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어서 못했으니 이해해주게."
달타냥은 남자답고 호쾌한 아토스에게 점점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 살짝 미소짓고는 그에게 호의를 내보였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약을 써 보시지 않겠습니까? 집시들의 비약인데 약효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아마 바르고 며칠만 지나면 감쪽같이 상처가 다 아물 겁니다. 당신은 부상을 당했으니 분명히 결투에도 지장이 있을겁니다. 이 약을 쓰시고 며칠 후에 정정당당하게 다시 저와 결투를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아토스 역시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달타냥에게 알 수 없는 호감을 느꼈다.
눈 앞의 미소년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아름답고 또한 예의를 갖춘 듯 했다.
"걱정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건 사양하도록 하겠네."
아토스는 정중히 사양했다.
"하지만 호의를 생각해서 약은 감사히 쓰도록 하지."
아토스는 호의를 받아들여 약을 받으면서, 순간 자신이 괜한 결투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긴 나도 당시에 몸이 아파서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니...)
하지만 한번 결투를 신청한 이상, 싫던 좋던 검을 섞어봐야 했다.
삼총사의 맏이인 그가 싸워보지도 않고 결투를 관뒀다고 한다면 트집잡기 좋아하는 근위대 녀석들이 비웃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부스럭
바로 그때, 저쪽 편에서 포르토스와 아라미스가 풀숲을 헤치며 결투 장소를 향해 오고 있었다.
"!"
달타냥은 그들의 모습을 보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당신이 말한 입회인이 저 두 사람입니까?"
"그렇다네. 우리가 삼총사라고 불리는 이유는 늘 함께 붙어 다니기 때문이지."
자리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아토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결투의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사라은 일제히 놀란 탄성을 내질렀다.
"아니? 네 녀석은?"
아토스는 영문을 모른 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자네들 왜 그러나?"
"혹시 아토스, 자네가 대결한다는 애송이가 바로 저 녀석인가? 나도 이 녀석과 1시에 결투를 하기로 했는데."
"아니? 자네도? 나도 2시에 결투를 하기로 했는데?"
삼총사는 얼마 동안 멍하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세 사람 모두 넋이 나간 것처럼 어리벙벙해져 있었다.
"그렇게 놀랄 것 없습니다. 저는 분명 당신들 세 사람 모두에게 결투를 약속했고, 죽기 전까지 결투를 이행할 생각이니까요. 자! 아토스 씨! 이제 결투를 시작합시다."
달타냥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칼을 빼들었다.
-챙!
작은 체구와는 달리 달타냥은 무척이나 깔끔하고 빠르게 검을 중단세에 가져다댔다.
"...."
아토스는 그리 내키지니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칼을 뽑아야했다.
상대의 검술은 자신하는 것만큼 강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