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7)

그렇게 그가 살의를 일으키고 있던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부하 두 사람이 옆에 놓인 농기구와 삽자루 등을 집어들고는 달타냥에게 달려들었다.

"크윽!"

달타냥은 자신에게 덤벼드는 두 사람을 막기 위해 정신없이 칼을 휘둘렀다. 

"..."

그러는 사이 칼자국의 사나이는 칼을 집어넣고는 한 발짝 물러나서 태연하게 싸움을 구경하였다.

"훗,  이런 싸움은 겪어보지 못 한 듯 하군. 경험이 없어." 

그의 예상처럼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달타냥은 농기구와 삽자루 같은 괴상한 무기를 상대하는 것에 애를 먹고 있었다.

"아앗?!"

그렇게 눈코 뜰 새 없이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내던 중 그만 달타냥의 칼이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챙그랑!

"하하하, 애송아. 칼도 부러졌는데 이제 그만 항복하는 것이 어떠냐?"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으며 달타냥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가스코뉴 태생의 젊은 무사로서 죽음은 있을지언정 항복이란 말은 없었다.

"누가 질까 보냐...!"

달타냥은 부러진 칼을 들고 끝까지 대항하기로 하였다.

"!!"

독기를 뿜고 있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죄다 움찔했다.

계집애처럼 여려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강단이 있는 녀석이었다.

"이건 안되겠군."

보다 못한 칼자국의 사나이는 달타냥의 뒤로 돌아가 살짝 살기를 드러내었다.

뛰어난 검사라면 당연히 반응을 할 거라는 계산에서 말이다.

-움찔!

과연 달타냥은 그 미세한 살기에 반응해서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뒤에서 날아드는 살기에 반응해 돌아보고 만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칼자국 난 사나이의 부하들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흉흉한 기세로 달타냥을 공격하였다.

-퍽! 퍼억! 퍽퍽!

달타냥은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정통으로 머리를 얻어맞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후우...정말이지 애먹이는 녀석이로군."

칼자국의 사나이는 기절한 달타냥을 보며 한숨을 내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소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였다. 

이대로 이 녀석을 파리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 녀석의 실력은 놀라워. 잠재력도 뛰어나고 솔직히 아까울 정도지. 그렇다고 후환이 두려워 내 손으로 기절한 녀석을 죽이기도 뭐하군. 차라리 모욕을 줘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도록 하는 편이 낫지."

놀림감으로 만들어 수치를 준다면 수도로 갈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더불어 여비까지도 빼앗는다면 더 좋고 말이다.

"아, 그렇군! 그렇다면 그 사내를 부르는 것이 좋겠어. 이런 더러운 일을 맡기기 위해 부른 그 사내를 말이야."

그래서 칼자국의 사나이는 결심을 하고 부하들을 시켜 이번에 새로 그의 동료가 된 사람을 불렀다.

"부르셨소이까?"

부름을 받고 온 이는 추레해보이는 늙은 수도승이었다. 

그는 "그리고리 예프모비치 라스푸틴(Grigori Efimovich Rasputin)"이라는 시베리아 출신의 수도사였다.

그의 얼굴은 못생긴 데다가 머릿결은 푸석푸석했으며 체구도 깡말라 볼품없어 보였다. 

그는 시베리아의 여러 수도원과 성지를 돌아다니며 예언도 하고 환자를 치료하였는데, 농민들 사이에서는 성자(聖者)라는 평판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라스푸틴의 진실된 모습을 알고 있는 칼자국의 사나이의 표정은 미세하게 구겨져 있었다.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보는 듯이 말이다.

"흐음. 그렇습니다. 라스푸틴님."

 일단은 자신의 상관인 "리슐리외 추기경"이 직접 초청을 한 손님이었기에 칼자국의 사나이, 로슈포르는 존대를 하였다.

[요승(妖僧) 라스푸틴]

수도승이면서도 이교도들처럼 온갖 사술과 흑마법에 통달한 사나이.

벌써 수십년째 더이상 늙지도 않고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는 겉으로는 성자인 척하면서 뒤로는 수많은 유부녀와 여인들을 농락하는 괴승이었다. 

 그에게 한번이라도 안겨본 여인들은 영원히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아무리 정숙한 여인이라도 말이다.

 일설로는 말보다 큰 페니스를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솔직히 그건 남자로서 부러운 일이긴 하지만..."

하지만 정말 어이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크고 밤일이 뛰어나면 그에게 안긴 여성들은 한번이라도 그에게 더 안겨보기 위해 안달이 난단 말인가?

그것도 집안이 기울 정도의 돈조차 갖다 받칠 정도로 말이다.

그 어떤 여인도 그의 괴상한 설교와 테크닉에 걸리면 안기지 못하곤 못 배긴다고 들었다.

"이번에 우리 프랑스에 온 것도 단순히 아름다운 프랑스 여인을 한번 안아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라지?"

정말 수도승이 맞는지 의심이 가는, 구역질나는 사내였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보았기에 리슐리외 추기경은 부른 것이리라.

라스푸틴은 흑마술에도 조예가 깊어 더러운 일을 대신해주기도 한다고 들었으니 말이다.

"정말로 그 능력이 소문대로 뛰어나다면 어디 한번 이번 일을 맡겨보고 판단해보는 것도 좋겠지."

로슈포르는 그렇게 생각하곤 라스푸틴에게 말했다.

"실은 이번에 저 대신 처리를 해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불렀습니다."

그는 아직도 기절해 있는 달타냥을 가르키며 말했다.

"성자님께서 직접 이 소년에게 버릇을 고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감히 겁도 없이 우리들에게 검을 들이댄 녀석이라서요."

로슈포르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한번 라스푸틴을 시험해볼 생각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라스푸틴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음...그렇소이까?"

정말이지 겉으로 보기엔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가진 노인이었다.

오히려 더러워 보이는 외모가 특별해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몸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됩니다. 죽여서도 안되고요."

그렇게 했다간 근위대인 로슈포르와 그의 부하들의 평판이 떨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안그래도 추기경의 근위대는 요즘들어 급격하게 세를 확장하면서 안 좋은 소문을 많이 듣고 있었다.

"그러니 단순히 그에게 수치만을 줘서 부끄러움에 그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꽤나 복잡한 요구였다.

하지만 로슈포르의 말을 들은 라스푸틴은 별 거 아니라는 듯 미소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그렇게 하리다."

그는 아직 어려보이는 달타냥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걸 확인하고는 음흉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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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달타냥은 삽자루에 얻어맞아 기절했던 것을 생각해내곤 황급히 두 눈을 뜨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

하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는 자신이 밧줄로 양팔이 결박되어 움직일 수 없다는 걸 확인하곤 몸부림을 쳤다.

"깨어났소이까?"

누군가 그런 달타냥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누구...?!"

달타냥은 소리난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경계심과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그곳엔 꽤나 지저분해보이는 늙은 수도승이 있었다.

"나의 이름은 라스푸틴이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라스푸틴의 얼굴에는 영감이 가득 넘치고 있었고, 고요하고 사려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더러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달타냥에게는 그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친근해서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같다랄까.

일으켰던 경계심이 단번에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아...! 네. 그러시군요. 저는 달타냥이라 합니다."

달타냥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하였다.

적인데도 적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적개심이 전혀 들지가 않아 화가 나지를 않았다.

"이상해..."

그는 라스푸틴에게서  뭔가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고, 멍청하게도 적으로 보이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순순히 말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뭐지..? 이 기분은...? 왠지 모르게 이 사람은 편안해...믿어도 될 것 같아..."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마치 세뇌가 된 것처럼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와 대화를 계속 하고 싶었다.

"나는 이제부터 당신을 이곳에서 풀어줄 것이오."

라스푸틴은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제로 그는 결박된 로프를 풀어주는 자비로움까지 보였다.

"그 대신 그대는 나를 위해 몇가지 시험에 들어야 할 것이오."

"시험?"

달타냥은 손목을 돌리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며 되물어보았다.

풀어주면 그냥 풀어주는거지, 시험은 왜 받아야 하는거란 말인가?

하지만 그가 그리 말하니 꼭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소. 시험. 나는 그대가 이곳에의 자유 뿐만 아니라, 당신에게 영혼의 자유로움까지 알려주고 싶소."

그는 느닷없이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해 설파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거지?"

대체 뭔 개소리인가.

뭔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은데, 그에게 홀린 듯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타냥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의 말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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