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37)

1625년 4월, 

완연한 봄을 맞아 하얀 살국꽃이 한창 피어있는 프랑스 남서부의 타르브 마을.

 가스코뉴 지방에 있는 이 작고 아름다운 곳에선, 여자처럼 곱게 생긴 젊은 미소년이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참고로 가스코뉴 지방은 대대로 용감하고 빼어난 군인들이 많이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사람들의 성질이 급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말이다. 

"아버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되는 그 소년은 푸른 조끼에 허리에는 언뜻 보기에도 날렵해보이는 얇은 검을 차고 있었다. 

아직 얼굴 곳곳에 여린 티가 나고 있지만 깃털로 장식된 챙이 넓은 모자를 눌러쓰자 어느 용사 못지 않은 훌륭한 모습이었다.

갸날픈 선과 작은 몸집 때문에 여자로도 착각할 정도로 작은 소년이었다.

 그렇게 미소년 달타냥은 모자를 벗고 아버지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그래, 달타냥. 넌 아직 젊고 패기가 넘치니 잘 해낼 수 있을게다."

달타냥의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한통의 편지를 꺼내 아들인 달타냥에게 주었다.

"달타냥, 이걸 가져가거라. 이건 트레빌 총사대장에게 보내는 소개장이다. 나와는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니 널 친자식처럼 잘 보살펴줄게다."

"네, 아버지. 그럼 조심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게 세가지만 당부하도록 하마."

달타냥의 아버지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첫째는 네가 가스코뉴 출신이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절대로 비겁한 짓은 하지 말거라. 가스코뉴 출신은 설령 목에 칼이 들어와도 비겁한 행동은 하지 않는단다." 

자신의 아버지의 말에 달타냥은 굳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째, 다른 사람과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거라." 

당연한 말이었다. 그래서 소년은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무에게나 비굴해지지도 말고 굽실거리지도 말거라. 네가 고개 숙여할 분은 국왕 폐하와 트레빌 총사대장 뿐 이다. 알겠느냐?"

"네, 걱정마십시오. 꼭 명심하도록 할께요."

달타냥은 굳세고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쾌활한 성격인 그는 아버지의 말을 전부 지킬 자신이 있었다.

"그래, 네가 타고 갈 말은 현관 앞에 매어 있단다. 네 어머니가 떠나기 전에 전해줄 것이 있다고 하니 가기 전에 들러보도록 하거라."

 달타냥은 그 후 아버지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드린 뒤 어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달타냥을 보자 눈물을 글썽이며 안겨들었다.

"얘야, 부디 조심하거라. 그리고 절대 젊은 혈기만 믿고 칼싸움을 해서는 안된단다."

 달타냥이 검술 솜씨로는 마을에서 당할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지만, 아직도 어머니의 눈에는 그는 어린아이로 보이는 듯했다.

 안 그래도 여자처럼 여리게 생긴 것이 컴플렉스였던 소년에게 어머니의 그런 걱정은 조금 마음 상했지만, 어머니의 걱정스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달타냥은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내가 상처에 잘 듣는 약을 건네주마. 예전에 내가 집시들에게서 배운 방법인데 효과가 매우 뛰어나단다. 만드는 법도 같이 적어놓았으니 꼭 숙지하도록 하거라."

 "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꼭 건강한 몸으로 돌아올께요."

달타냥은 어머니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래, 얘야. 꼭 몸조심하거라."

 어머니는 울먹이면서 달타냥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어린 몸으로 총사가 되려는 달타냥이 이해가 안 갔지만, 달타냥의 꿈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네, 그럼 이만 떠날께요."

달타냥은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냐야 한다는 사실에 몸내 가슴이 아팠지만, 훌륭한 총사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어머니의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에는 달타냥의 아버지가 젊었을 적에 전쟁터를 누빌 때 타고 다니던 말이 매어져 있었다.

 그 말은 좋은 품종의 명마였지만 이제는 너무 늙어서 누렇게 뜬 몸에 비쩍말라 볼품없어 보였다.

"후우...이건 정말 아닌 것 같지만..."

 달타냥은 차라리 걸어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을 내어 준 아버지의 배려를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또한 타브르 마을에서 수도 파리까지니는 굉장히 먼 길이었다. 걸어서 가기에는 너무나 멀고 힘들었다.

"에잇, 벌써부터 낙담하면 안돼잖아. 자, 힘내서 출발하자!"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선물인 그 말을 타고 길을 떠났다. 

달타냥은 쉬지 않고 계속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파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파리는 멀구나..."

워낙에 오랜 여행길이었기에 새로 맞춘 망토와 윗도리는 빛이 바래 먼지가 뽀얗게 앉았으며, 모자에 달린 깃털은 거의 빠지고 없어져 차라리 떼어내는 게 나을 듯 보일 정도였다.

늙은 말도 계속되는 여행에 지친 나머지 목을 낮게 늘어뜨린 채로 어정어정 걸어갔기 때문에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달타냥을 힐끔거리며 비웃었다.

"으득...!"

달타냥은 자신을 비웃어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부끄럽고 화가 치밀어올라 몇번이고 칼자루에 손이 갔지만, 어머니의 충고가 떠올라 주먹을 움켜쥐곤 했다.

"참자. 벌써부터 어머니의 당부를 저버릴 수는 없잖아."

그는 최대한 인내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달타냥은 파리 근처의 무앙이라는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달타냥과 늙은 말 모두 힘든 여행길에 지쳐있었기에 그는 마을을 구경할 생각도 못하고 길가의 한 여관 앞에 말을 세웠다. 달타냥이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무사처럼 보이는 세 명의 사나이들이 달타냥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이보시오! 지금 뭘 보고 그렇게 웃고 있는거지요?"

달타냥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실 그동안 자신을 비웃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평범한 농민이었기 때문에 놀림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사람들은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검사들이 분명했다.

 같은 검사에게 그런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은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달타냥은 그 모욕을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하는 말이니 자넨 신경 끄게나."

세 사람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달타냥을 향해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는 키가 늘씬한 귀족 차림의 사나이였다. 뻄에 난 칼자국이 인상적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콧수염이 멋스럽게 다듬어져 있었으며, 화려한 자주빛 옷을 입고 있었고 보석이 박혀있는 검을 차고 있었다.

 "그럼, 지금 제가 괜히 당신들에게 시비를 걸고 있다는 겁니까?"

 달타냥은 점잖은 척하며 자신을 무시하는 사나이의 태도에 더욱 화가 났다. 

그러나 칼자국의 사나이는 달타냥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밖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후후, 저 말도 젊었을 때는 꽤나 훌륭했겠군. 지금은 주인처럼 볼품없어져 아무 쓸모도 없겠지만 말이야."

 세 명의 사나이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먼지와 피곤에 쩔은 모습과 달타냥을 번갈아보며 같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지금 말 주인을 직접 비웃을 용기도 없어 말을 비웃는겁니까?"

달타냥은 더이상 참지못하고 칼을 뺴들며 물었다.

"호오, 지금 나와 결투를 하자는거냐? 제법 용기있는 녀석이로군."

칼자국의 사나이가 놀란 눈으로 말하자, 그의 곁에 서있던 다른 사내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봐, 꼬맹이. 말투로 보아하니 가스코뉴 출신인 것 같은데 좋은 말 할떄 칼을 집어넣고 이 분께 용서를 비는 것이 신상에 좋을거다."

"그래, 이 분이 누군지 알면 크게 후회할테니 그만 두는 게 좋을 껄?"

 또다른 사내 역시 옆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에 더욱 화가 난 달타냥은 더이상 존대를 하지 않고 소리쳤다.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감히 가스코뉴의 사나이를 모욕하다니! 어디 한번 내 검을 받아봐라!"

더이상의 모욕을 참을 수 없게 된 달타냥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앗!"

소년이 뺴어든 칼로 상대의 가슴을 겨누며 돌진해나가자, 그걸 지켜보고 있던 사내들이 깜짝 놀랐다.

끊임없이 연마해서 그 속도가 번개 같은 찌르기였다.

검술에 일가견이 있는 사내들은 달타냥의 검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놀란 탄성을 내었다.

"흥!"

하지만 칼자국의 사나이가 그런 달타냥을 바라보며 빈정거리다 이내 귀찮은 듯 몸을 피하였다.

-휘익!

 다른 두 사내는 쉽게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렸던 칼자국의 사나이는 빠른 발동작으로 피해버릴 정도로 강했다.

그는  옆으로 비키면서 재빠르게 칼을 뽑아 달타냥의 눈앞에 들이대었다.

"크윽!"

달타냥은 갑작스런 반격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너무 늦어서 가슴 근처가 베어져 앞섶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럴수가! 나의 찌르기를 이토록 쉽게 피하다니!"

충격이었다.

뛰어난 군인이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한 가스코뉴에서도 첫째 가는 검사인 그의 일격을 이토록 쉽게 피하다니!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정말 상대가 나쁜 것 같았다.

그는 달타냥이 상대해본 그 누구보다 강한 것 같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스코뉴의 사나이가 불리하다고 등을 보일 수는 없지!"

달타냥은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지만 물러서진 않았다.

-휙! 휘익!

 소년은 오히려 몸을 앞으로 내밀며 상대와의 거리를 줄이며, 상대를 압박했다.

 위험을 각오하고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가르친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매우 적절한 대응이었다.

"!"

그제야 칼자국의 사나이는 긴장을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먼지로 빛이 바래긴 하지만 파란 색임이 분명한 튜닉...이전에 총사대였던 사람의 물건이군."

그는 달타냥의 옷이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총사대 복장인 걸 깨달았다.

"설마 이 녀석, 총사대가 되려고 파리로 가는 녀석인가?" 

최근 수도에서 총사를 새로 뽑는다는 소문이 퍼지긴 했다. 하지만, 근위대의 위세에 눌려서 지원을 하려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재능있는 녀석이 지원을 하려 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귀찮게 되었군. 이런 녀석이 총사가 된다면 많이 귀찮아지겠어."

 칼자국의 사나이는 이 기회에 싹수가 보이는 눈 앞의 소년을 없애버려야 할지 심각히 고민하였다.

"이야압!"

"이 망아지 같은 녀석! 받아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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