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희 SIDE>
지호가 죽었다.
……무서울 정도로 냉철한 이성은 그 진실을 받아들였다. 지호의 죽음으로 현진이가 달라진 것은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 좋은 소식조차 순수하게 기뻐하질 못하게 만들 정도로 잔혹한 나쁜 소식이 내 심장에 돌을 얹어놓은 것처럼 무겁게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왜 갑자기 지호가 나타났어야 했는지, 왜 지호가 죽었어야 했는지, 아빠는 숨김없이 말해주었다.
지호는 암흑가에서 제법 큰 조직의 보스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게다가 기껏해야 하룻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아이…… 보스는 변덕으로 지호와 지호의 어머니를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조직원들에게 갖은 냉대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구룡천의 일룡이 우연히 지호의 특이 체질을 발견하고 그 조직의 보스에게 돈을 주고 지호를 사서 계속 끔찍한 실험을 받으며 실험체로 살아왔다가, '어떤 사건'으로 간신히 그곳에서 탈출해 3년 간 정체를 극도로 감추며 살아오다가 마물대습격 때, 운 나쁘게 그 마을에 마물들을 막으러 들렀던 중, 일룡의 눈에 걸려들었고 회유를 하려 했으나 실패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죽였다고…… 그렇게 들었다.
거기까지는, 언제나 들었던 뒷세계의 일과 다를 바 없었다.
언제나 뒷세계, 비일상의 세계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입막음을 하고, 정 할 수 없으면 아무도 몰래 사고로 위장해 죽인다. 비일상의 비정함은, 알고 있었다. 후일 자신이 차기 삼족오 대장이 되었을 때 손을 더럽힐 각오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알아버렸다. 자신이 했던 각오는 겉치례였다. 직접 겪어보지 못해서 할 수 있었던 허세였다. 소중한 사람이 그 비일상에 말려들어 죽고나니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버렸다.
왜 죽어버린거야…… 지호야.
눈물이 흘러나온다. 자신을 사랑했다고 말하던, 자신과 몸을 섞으며 사랑한다 속삭이던 지호가 떠오른다. 왈칵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오열한다.
딩동~!
배게를 눈물로 젖시다가 갑자기 슬픈 분위기를 초인종 소리가 들려 울음을 그치고 얼굴을 든다. 아빠와 현진이는 지금 바쁘니까, 내가 나가지 않으면…….
몸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면서, 용케 넘어지지 않고 걸으며 간신히 문에 도착한다. 문이 붙어있는 거실에서 아빠와 현진이도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 주희야. 괜찮아?"
"으응, 난 괜찮아."
현진이가 걱정스럽게 나를 보며 물었지만 나도 모르게 슬쩍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현진이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아, 내 행동이 현진이를 상처입힌걸까?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현진이가…… 무서우니까.
지호가 죽고 증오심에 몸을 맡겼던 현진이의 모습이 저절로 떠올라 몸이 떨렸다. 그 모습은 용사가 아니었다. 분노에 미친 광전사였다. 성력을 폭주시켜 나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모조리 휘말리게 만들었던 압도적인 광기에 휩싸인 힘은 내가 봤던 어떤 누구보다 더 무서웠다.
딩동~!
"누구지?"
"글쌔요, 열어보시죠?"
드르륵.
"이거이거, 실례하겠습니다."
아빠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나타난 이는 놀랍게도 내게 있어 익숙한 목소리에 익숙한 모습을 한 익숙한 할아버지셨다. 어째서 지호의 집사 할아버지가 여기에 왔는지 의문이었고, 의외였다.
"저, 누구신지……."
"아, 이거 실례합니다. 저는 지호 도련님의 집사,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아, 유지호 학생의 고용인이시군요."
아빠는 감탄을 내뱉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도, 현진이도 마찬가지였다. 지호가 죽은 것은 충분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이 집사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찾아올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곧, 집사 할아버지의 뒤에 서있는 인영을 보자마자 우리는 전투 모드로 변환했다.
"네놈……."
"거기, 난 오늘 싸우려고 온 게 아니니까 어깨에 힘 풀지?"
과거, 현진이를 습격했던 정체불명의 여마인…… 푸른 신체에 검은 꼬리를 달고, 날개를 퍼덕이며 집사 할아버지의 뒤에서 씽긋 웃고 있었다.
"어째서 여기에……!"
"너희에게 좋은 일을 해주려고 하는데, 정 싫다면 거절해도 상관없어."
"좋은 일? 그게 뭐지?"
"예를 들어, 어떤 사건 때문에 죽은 사람을 살린다거나…… 어때? 매력적이지 않아?"
그 여마인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꺼냈다. 당연히…… 우리는 그 여마인을 공격할 수 없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나, 현진, 아빠, 집사 할아버지, 그리고 여마인, 5명이 한 자리에 모여 식탁을 사이에 두고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금방이라도 싸울 듯한 투기와 적의, 그리고 불안과 기대가 한 곳에 섞여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손짓도 못할 적막함이 방 안을 짓눌렀다.
"……마인, 네가 한 말, 무슨 말인지 설명할 수 있나?"
먼저, 현진이가 무서운 눈빛으로 물었다. 나는 익숙하지 못한 현진이의 모습에 살짝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면서 현진이의 말에 동의하며 여유롭게 차를 마시는 마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만약, 쓸데없는 말을 하거나 지호의 죽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 거라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후릅…… 간단해, 나에겐 마계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초희귀 아이템이 있어. 그것이 인간이든, 마인이든, 마족이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하지."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아빠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말하자 마인은 그 눈빛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웃음을 지었다.
"인간인 당신이 마계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리를 찌걸이는거지……? 게다가 내 쪽이 칼을 쥐고 있다는 거 알아? 정 싫다면 여기서 날 죽여도 상관없어. 그럼 살 수 있는 한 생명이 그대로 묻혀버릴테지만."
나와 현진이는 즉시 아빠를 노려보았다.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고 아빠는 움찔거리며 알았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아이템을 볼 수 있을까?"
"상관없지만, 여기선 보여줄 수 없어. 아이템을 가지고 그대로 날 죽인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
"우린 그런 비겁한 짓을……!"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껄? 너희가 살기를 그토록 원하는 사람을 죽인 것도 인간이니까."
막 입을 벌려 반박하려는 내 말을 정론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이 마인, 도대체 정체가 뭐지? 어떻게 그런 정보까지 샅샅이…….
"할건지 말건지 그것만 말해. 내가 그 사람을 살려주기를 원한다면 YES! 그 말 한마디만 있으면 난 그 사람을 살려줄 수 있어."
"그렇다면, 그 댓가는 뭐지?"
"후훗, 역시 말이 잘 통하네. 간단해, 댓가는 거기의 용사, 이현진과의 계약이야."
"나?"
현진이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마인은 긍정했다.
"맞아. 예전에도 말했지? 너와 난 계약을 하게 될 거라고. 그렇다고 용사 씨에게 해가 되는 것은 없어. 오히려 득이 된다면 득이 되었지."
"……알았다. 승낙하지."
"현진아!"
"할 수 없잖아! 내가 계약하지 않으면 지호를 살릴 수 없어! 난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내가 어떻게 된다고 해도…… 지호를, 살리고 싶어. 주희야, 너도 그렇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럼 지금은 이대로 있어줘."
현진이의 고집어린 외침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지호가 보고 싶다. 그 마음만큼은 나도 분명 현진이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현진이의 희생으로 지호가 과연 살아나는 것을 기뻐할까?
……이제는 모르겠다. 이미 현진이는 마인과 계약을 해버렸고 물릴 수 없다. 지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마음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내 차가운 이성을 녹게 만들었다.
나머진, 저 수수께끼의 마인을 믿는 것, 그것 외엔 없었다.
마인, 아스와의 계약이 이루어지고 3일 후…….
아스의 소생술은 성공했지만 동시에 실패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분명 지호는 멀쩡하게 살아나 우리에게 미소까지 지어주었다. 나는 그대로 지호에게 달려가 껴안을 정도로 기뻤지만, 곧이은 아스의 말에 또 다시 절망을 맛보았다.
약 1년…… 그것이 지호에게 주어진 시간이라고 했다.
그 소생 아이템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제한 시간은 1년 뿐, 1년이 지나면 또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고 했다.
살릴 방법은 단 하나, 그 초희귀한 소생 아이템이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1개 당 1년씩, 10개를 찾으면 10년을 살 수 있고 100개를 찾으면 100년을 살 수 있다…… 라는 듯 하다.
아빠는 끝내 의심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지호가 살아나니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
결국,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 틈엔가 결정되었다.
우리의 마계행(魔界行)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