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2)

<최광후 SIDE>

"담력시험…… 인가. 빌어먹을 상부 놈들 같으니……."

오후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찾아온 검게 물든 밤하늘과 음습한 산 속의 풍경…… 수학여행 둘째날의 마지막, 담력시험이 곧 시작된다.

그리고 방금 전에 통화했던 내용이 아까부터 계속 마음에 걸려 애꿎은 담배를 땅에 비비며 중얼거렸다.

"이번이 벌어질 담력시험에서…… 사망자가 생길테니 알아서 뒷처리를 맡기겠다고? 젠장, 자기 멋대로 말하고 있어!"

담배 하나를 더 꺼내 불을 붙인다. 마치 담배 연기가 속이 타들어가는 자신의 마음을 빗댄 것 같아 답답해졌다. 내가 통화한 상대는 바로 극비로 구분되는 비밀조직, '구룡천'의 대표인 일룡이란 자였다. 계급은 자신과 동급이지만 정부에 주는 영향력만큼은 일룡이 압도적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일룡은 정부의 뒷면 중의 뒷면…… 구룡천의 모든 어둠을, 자신조차 모르는 정부의 어둠을 모조리 꿰뚫어보고 있다. 또한 정부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신도 그에게 감히 대들 수 없을 정도로…….

게다가 이번 계획은 모두 용사의 성장을 위해서라고 하니, 거부할 수 없다. 그에겐 평범한 일반인 1명보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 그 미래의 중심이 될 현진이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1명이 아니라 100명이 죽어도 괜찮다는 각오로 임무에 임하고 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피해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나마…… 세영 씨를 건들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아서 다행인가."

무심코 쓴웃음을 짓는다. 일룡, 그 자가 자신에게 말하길…… 용사의 빠른 성장을 위해서 용사가 누구보다 마음을 주고 있는 친인을 죽여 비정함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 말에 동감하지만 현진이의 친인이라면 주희, 세영 씨 정도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주희는 내 딸이고 차기 삼족오 대장감이니까 건들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세영 씨를 건드리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외치자 일룡은 어린애를 타이르는 어른처럼 말했다.

그렇다면 용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유지호를 죽이겠다…….

거기까지 내가 막을 필요는 없었다. 유지호,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것도 별로 없다. 중학교 시절에 이현진과 만나 누구보다도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는 점…… 집안 사정이 좀 복잡한 것 같지만 그것 외에는 평범한 일반인이었다.

저번에 주희의 목숨을 구해준 행동이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애초에 주희를 위험하게 만든 것도 그 아이였다. 개인적으로는 안됬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 희생을 불가피하다.

담력시험 도중에 벌어진 사고로 처리하면…… 유지호는 이 땅에서 사라진다.

"미안하다. 하지만 네 친구의 성장을 위해서, 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덜 억울할거다."

변명하듯이 유지호란 아이에게 사죄하며 두번째 담배를 땅에 떨어뜨리고 신발로 비비며 꺼버렸다.

그러고보니 주희에게 나서지 말라고 말해두지 않으면…….

<최광후 SIDE OUT>

<임세영 SIDE>

오후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식사가 끝나자 찾아온 검게 물든 밤하늘과 음습한 산 속의 풍경이 보이며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무서웠다. 이제 곧 수학여행 둘째날의 마지막, 담력시험이 시작된다.

오늘 하루종일 자신이 지호에게 보인 반응을 떠올리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들어가버리고 싶을 정도다. 내가 왜 지호에게 그랬지? 그냥 평소처럼 대하면 되는데…… 이상하게 지호의 앞에만 서면 어젯밤의 일이 떠오르고 생생하게 지호의 신음소리가 들리며 부끄러워져 자신도 모르게 지호를 피하고 있었다.

멀리서 은밀히 지호의 모습을 쫒으며 몇 번이나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옆에 있는 아들과 주희의 모습에 몇 번이나 앞으로 나서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내 기묘한 행동에 지호의 메이드 씨인 서규수 씨가 나에게 물었다.

"도련님께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아니에요."

그러고보니 깜빡 잊고 있었는데, 서규수 씨는 지호의 메이드였다. 그러니 지호에 대해 좀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즉시 궁금한 점을 물었다.

"혹시…… 주희랑 지호는…… 애인 사이인가요?"

"네? 갑자기 그건 왜……."

"아, 아니. 둘이 예전보다 더 유독 친해보여서…… 그, 그렇다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궁금해서."

"아, 예…… 저도 도련님의 메이드가 된 지 얼마 안되어 잘 모르지만, 매주 주말마다 주희 아가씨가 도련님 집에 놀러온 적은 많았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친구 사이에도 가능한 일이니 애인 사이가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련님과 주희 아가씨가 예전보다 친해진 것은 확실합니다."

"그, 런가요."

주말마다 지호네 집에 찾아가다니 그런 부러운……! 나도 아직 지호네 집에 초대받은 적 없는데!! 현진이는 지호 집에 초대받았던 적 있었을까? 매번 지호를 우리 집에만 불렀으니 잘 모르겠네.

"도련님이 신경쓰이십니까?"

"에?! 무, 무, 무, 무, 무슨 소리에요, 규수 씨도 참! 아들과 같은 나이의 어린애에게 그, 그런 파렴치한…… 그, 그럴리가 없잖아요! 저 같은 아줌마가 어린애에게 관심을 가지다니, 그런 건 범죄나 마찬가지라구요, 게다가 딱히 신경이 쓰인다기보단 호기심이랄까, 여자 대 남자가 아니라……."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자세히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성인 여성이 도련님처럼 어린아이를 걱정하는 것은 별로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그렇죠? 호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네, 맞습니다."

그래, 이건 지호가 남자로 보인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냥 성인 여성으로서,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아이를 걱정하는 어른의 마음과 같은거다.

"도련님은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좀 걱정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아주머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가끔씩 저도 도련님이 슬퍼할 때는 안아주곤 했으니까요."

"아, 안아준다고요?!"

"……? 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 호호호."

아아, 난 정말 바보! 색녀! 안아준다는 말에 무심코 19금의 상상을 해버린 내가 싫다. 안아준다는 말은 말 그대로 포옹을 해준다는 뜻 외에는 없을텐데…… 그래도 부럽다. 내가 현진이를 안아준 것이 언제적 이야기더라. 현진이가 성숙하고 날 엄마 대신 어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좀 귀염성이 사라지긴 했어…… 대신에 훨씬 더 듬직해졌지만.

그에 비해서 지호는 어린애같다고 할까…… 호기심 많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대답하고 언제나 활기찬 모습에 현진이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지호가 찾아올 때마다 아들이 둘이나 생긴 것 같아 행복했는데…… 어느 새 그, 그런 것까지 할 정도로 성장했다니…… 큰 쇼크였다.

"지금부터 담력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학부모 여러분과 학생 여러분은 모두 모여주세요!"

"가죠, 이제 시작하겠어요."

"아, 예!"

나중에 지호를 만나면…… 다시 예전처럼 대해주기로 하자. 아자아자! 난 할 수 있어, 파이팅!

담력시험이 시작되고, 계획은 실행된다.

"하아~"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담력시험은 2인 1조로 산 속으로 들어가 지정된 장소에서 도장을 받고 종이에 찍어서 돌아오면 끝인, 귀신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에겐 꽤나 시시한 게임이다.

2인 1조로 내가 조를 이룬 사람은 현진이, 때마침 딱 좋다.

난 이 게임 도중에, 당장 내가 세웠던 계획을 실행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이 때만큼 계획을 성공시키기에 어울리는 시간대도 없다. 정신 차리고 계획의 중심인 내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되지가 않는다. 왜냐하면 불과 몇시간 전에 만난 그 계집과 계집이 말한, 내 과거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그 자식의 소식 때문이다.

'놈'이 가까이에 있다!

생각만으로도 달려가 찢어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놈은…… 언젠가, 나에게 검은 손을 뻗을 것이다. 나에게든, 아니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든 어찌됬던 찾아올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언제, 어디서 오느냐는건데…….

적어도 지금만큼은 오지 말아달라고 신이든 마왕이든 빌어본다.

그리고 난,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달이 참 밝네."

"어, 응. 그러네."

현진이는 내 말을 그냥 넘겼지만 이 말은 암호다. 시호에게 전하는, 계획을 즉시 실행하라는 암호.

내가 말을 꺼낸 순간, 쿵! 하고 땅에 진동이 일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해준 모양이다.

"어, 어? 뭐, 뭐야!"

"지진인가?"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래야 현진이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현진이는 곧, 뭔가 느낀건지 얼굴을 굳혔다. 역시 많이 부족한 용사 후보인 현진이라도 이 정도는 눈치챈 모양이다. 아니, 눈치채지 못하면 곤란하다. 평범한 일반인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농밀하고 극도로 압박하는 강렬한 마력(魔力)의 소용돌이…….

"지호야! 넌 당분간 여기 있어! 잠깐 어딜 좀 갔다올게!"

현진이가 나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외치며 달려갔다. 지금쯤 주희도, 주희 아버지도 느꼈을테지.

"……시호야."

"오빠♡"

쾅!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시호를 부르자 시호는 기다렸다는 듯이 강하게 하늘에서 내려와 내 품에 찰싹 찹쌀떡처럼 달라붙는다. 당연하게도 마기로 몸을 강화시켜 막았지만 쓰러지고 땅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 넘 보고 싶었어! 계속, 계속 보고 싶었어! 무지 보고 싶었어! 아아, 오빠의 향기, 오빠의 맛…… 할짝할짝할짝~"

"으읏!"

갑자기 시호가 내 목을 핡자 간지러움에 외쳤지만 시호는 연신 웃으며 내 품에서 뺨을 비볐다.

"후후, 우리 시호. 내 말을 들어주었구나? 착하다 착해."

난 내 말에 굉장히 힘들었을텐데도 충실히 따라준 시호에게 칭찬의 뜻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시호는 이 이상의 행복은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내 손에 머리를 맡겼다.

"응응, 나 무지 고생했어! 하지만 오빠가 머리 쓰다듬어줬으니까 괜찮아졌어! 오빠가 더 기뻐하길 바래서 오빠가 말한 것보다 3배가 더 노력했어!"

흠짓.

"그 말은…… 마계에서 마물을 300마리나 데려왔다는거니?"

"응응응!"

칭찬해줬으면 하는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는 시호였지만, 내 손은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쩐지…… 생각보다 더 쎄더라니……! 이러다가 진짜 대형사고 터지는 거 아냐?

"그리고 마물로 부족할 것 같아서 마족들도 데려왔어! 내가 마물들을 데려가려고 하니까 마족들도 같이 딸려오더라."

……큰일이다아아아아아아아!!

시호는 다 좋은데, 뭐든지 과도하게 하는 것이 큰 문제다. 마물 100마리만 있어도 괜찮은데, 거기에 200마리 추가에 마족까지 합하면…… 어쩌면, 오늘 안에 우리 학교 망할지도.

하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나를 반짝반짝 바라보는 시호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는 애써 어색하게 웃으며 시호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그, 그래, 참 대단하구나. 우리 시호…… 그런데, 애써 데려왔는데 미안하지만 마물을 좀 처리해주지 않겠니?"

"우웅, 알았어! 오빠가 그렇게 하라고 하면 할게!"

"그래, 우리 시호 착하다. 만약 오늘 잘하면 상을 줄게."

"상?! 진짜!? 진짜루!? 그럼 오빠에게 안기게 해줄거야!?"

"그러엄…… 물론이지."

"꺄아! 신난다! 알았어, 지금 당장 가서 보이는 마물마다 족족 쓸어버릴게!"

"그래, 그럼 수고하렴."

"응응응응응!"

시호는 즉시 빛의 속도로 날아가며 '꺄하하하하하하하!'하고 마녀 같은 광소를 터트렸다. 쓴웃음을 지으며 나 역시 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했다.

"……그럼,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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