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2/18)

13.

영후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상체를 일으켜 영후의 입술을 찾았다. 영후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입맞춤을 하더니 입술을 열어 자신의 혀를 살며시 밀어 넣었다. 영후도 기쁘게 현주의 혀를 맞아주었다. 끈적거리는 키스를 현주는 한참동안 정성스레 영후에게 해주었다. 마침내 서로의 입술을 떼어놓는데 아쉬움인지 실처럼 늘어지는 줄이 길게 이어진다. 현주가 다시 영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자기야! 사랑해! 정말… 사랑해…요.”

“정말?”

“하앙…, 으응…, 저엉말….”

“나도… 사랑해!”

영후가 현주의 머리를 안아준다.

“나아….”

“응?”

현주가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입에 물면서 수줍게 속삭인다.

“나 자기한테… 잘 할 거야….”

“후후… 어떻게?”

“자기한테… 복종하고 싶어!”

“정말야?”

“흐응…, 자기는 있잖아!”

“난 뭐?”

“하아…, 너무 커다랗게 느껴져…, 큰 산처럼….”

“그래? 허허… 나랑 반대네…, 난 당신이 너무나도 조그맣고 귀여운데…, 응?”

“하이… 몰라! 자기가 나보다 더 어른같이 느껴져…, 어쩌지?”

“ㅎㅎ…뭘 어째…, 어른 같으면 어른 대하듯 하면 되지…, 안 그래? 후후후….”

영후가 현주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며 미소 짓는다.

“하아잉… 나 어떡하지…, 나도… 내가 이상해, 정말….”

“그래서 더 예뻐… 넌!”

“나… 정말… 예뻐…요?”

“입 아퍼…, 같은 말 여러 번 하려니까…, 예뻐! 내 여자 현주!”

“사랑해요, 영후 씨! 쪼옥!”

현주가 배시시 웃으며 영후의 입술에 소리 나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 현주를 사랑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윽하다, 그의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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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주는 행복했다. 상상(想像)이나 해본 일이었을까? 25년여의 나이 차는 물론이거니와 세상이 보는 눈, 아들의 존재…, 제자였던 그와의 관계…, 모든 면에서 현주와 영후의 지금과 같은 새로운 관계 형성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이었지 않은가? 현주의 생각에 그는…, 어리지만 어리지 않았고, 완전한 성인은 아니지만 거의 어른이었다. 그의 목소리와 말투! 거칠게 보이는 행동! 사소한 몸짓! 무엇 하나하나 빠짐없이 모든 게 다 사랑스러워 보였고 멋있어 보였다.

그날 밤 늦게 현주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기 위해 옷을 벗으며 허전해진 아랫도리에 쑥스럽게 미소 지었다. 영후의 집요한 요구에 젖어버린 팬티를 그냥 벗어주고 노팬티 차림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호호… 변태 같애…, 그 사람….”

현주는 몸을 씻어내면서 만져지는 자신의 몸 구석구석이 그저 새롭고 또 새로웠다. 나의 몸 속 구석구석에 그런 황홀한 감각들이 숨어있는 줄 모르고 여태 살아온 지난 세월들의 삶이 괜히 억울해진다. 하지만 이제 그런 감각들을, 숨어 있던 나의 모든 성적인 감각들을…, 잠재되어 있는 나의 모든 욕망들을 그가 깨워주었다. 나의 새로운 남자가…, 이제 나의 주인이 되어 버린 영후가! 그가 고맙고, 그가 사랑스러웠고, 그가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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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후는 현주가 벗어주고 간 연분홍색 팬티를 들어보면서 실실 웃었다. 어찌 이리 작은 것이 그 풍만한 엉덩이를 다 가리고 있을 수 있을까? 젖어있는 팬티 앞섬을 만져보다가 냄새를 맡아본다. 그러자니 슬며시 중심이 부풀어 오른다. 내 여자의 냄새…, 물기 젖은 보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 정신 나간 그 놈을 깨운 건 전화소리였다.

“응, 이모!”

“영후야! 잠간 올 수 있어?”

“왜?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얘기 좀 하게….”

“음…, 알았어요, 지금 갈게….”

이모의 집으로 오자 하진이가 문을 열어준다.

“오빠, 어서 와….”

하진이가 생글거린다.

“뭔 일 있어?”

하고 영후가 표정으로 물었다. 하진이가 고갤 끄덕인다.

“이모 나왔어….”

“응, 들어와….”

“이모 얼굴이 너무 안 좋은데?”

“내가 원래 좀 아프잖아….”

“몸 좀 챙기시지 박 여사님?”

“푸훗! 얘는… 하진아! 네 방으로 가 있어, 오빠랑 얘기 좀 하게….”

“응….”

하진이가 제방으로 들어가자 이모가 영후의 손을 잡는다.

“영후야, 나 말야, 이모부랑….”

“왜… 그러는데?”

박 태신, 영후의 이모… 영후의 엄마인 박 태진의 하나 뿐인 여동생, 태진과는 세살 터울인 올해 마흔 둘의 나이로 남편과의 사이에 하진이를 외동딸로 두고 있었고 그녀 역시 남편의 사업실패 등의 여러 문제들로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남편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전전하며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들를 정도여서 태신이 이모가 거의 혼자 하진이를 키운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형편이 그렇다보니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어린 영후를 돌본다는 게 힘에 부쳤었다. 영후가 그런 자신을 이해했는지 어땠는지 어느 날 독립한다고 집을 나가게 된 것이었다. 아무튼…

“헤어지려고 해.”

“음…, 그래?”

대충 이모의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영후였기에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망나니가 되어 버린 이모부였다.

“영후야! 며칠만 하진이 좀 데리고 있어줘….”

“어디 가? 무슨 일 있어?”

“후우…, 이모부한테 다녀오려고….”

“뭔 일 있대요?”

“정리하려고….”

“며칠이나?”

“글쎄 한… 2, 3일? 길어도 3, 4일이면 되지 않을까 싶어….”

“난 괜찮은데…, 저 녀석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내가 얘기 했어, 며칠동안 참아야지 뭐….”

“그래요, 알았어요, 그럼….”

영후는 피곤해 보이는 이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비록 지금은 많이 야위어서 그렇지만 처녀 때 미모(美貌)는 방구 꽤나 뀌는 수준이었다. 어쩌다 이모부를 만나서 맘고생을 하는지… 엄마나 이모나 편한 팔자는 아니었는가 보다.

“참! 하진이 공부 가르쳐 주는 아이 말야….”

“어… 승호!”

“언제 밥 한 번 해 주려고 하는데 고마워서….”

“그렇게 해…, 이모 편할 때….”

“응…, 그 아이 엄마가 너 담임이었다며?”

“응…, 초딩때…ㅋㅋ.”

“많이 반가웠겠다. 좋은 선생님이었어?”

“그러엄…, 엄청… 예쁘기도 하고…ㅎㅎㅎ”

“에구… 남자들이란ㅉㅉㅉ”

“이모는 근데 왜 선생님 관뒀어? 좋은 직업 아닌가?”

“생각하면 뭐하니? 다 지난 일인데…, 네 이모부 때문이지 뭐….”

“불같은 사랑?ㅋㅋㅋ”

“콩깍지가 단단히 꼈었지… 그땐….”

“아마… 이모도 선생님 계속했으면 인기 캡 짱이었을 텐데… 달랑 1년 했다며?”

“응, 딱 1년… ㅎㅎㅎ 자고갈래?”

“뭘… 잘 곳도 없는데….”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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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현주와 영후는 알콩달콩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서로를 탐닉하며 더욱 더 사랑에 빠져 들어가고, 승호와 하진이도 풋풋한 내음을 풍기며 나름의 사랑을 쌓아 가는데…,

어느 주말을 앞둔 오후, 태신이 영후에게로 전화를 했다. 저녁때 승호랑 같이 집으로 오라는 거였다. 영후는 그러겠다고 하려다가 이모 태신이 몸이 안 좋은 것을 알고는 그냥 밖에서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왕 승호 녀석과 하진이를 밀어주는 거 확실하게 밀어준다는 차원에서 현주도 부르고 그래서 현주와 태신도 같이 인사도 시킬 겸 해서 밖에서 보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태신도 한참동안이나 망설이더니 그러겠다고 승낙했다.

주말 저녁 숯불구이 고기 집,

승호 녀석은 입이 귀에 걸려가지고 영후에게 속삭인다.

“형! 나 떨려…, 하진이 엄마 보는 거요.”

“임마! 이모가 너 잡아 먹냐?”

“헤헤….”

“야! 근데 어떻게 여태까지 이모 얼굴 한 번 못 봤냐? 너 공부하러 간다더니 매일 다른 곳으로 샜던 거 아냐?”

“어떻게 그러겠어요? 하진이 보러 가는 건데…ㅎㅎㅎ”

잠시 후 택시를 타고 온 하진이와 태신이 식당 앞에 도착을 하고 5분정도 뒤에 현주가 식당 문 앞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현주와 태신은 서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하진이 엄마에요.”

“네…, 안녕하세요? 승호엄마에요. 반가워요.”

“네, 저도 반가워요.”

“하진이? 전에 본 적 있지? 미안해, 그땐 경황이 없어서….”

“네, 안녕하세요.”

“어머! 네가 승호구나…, 잘 생겼다~아…, 공부도 잘 한다며…?”

“잘 하긴요, 뭘…, 그냥 하는 거죠….”

잠시 어수선한 인사치레들이 끝나고 영후가 서둘러 주문을 넣는다.

“그런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나요?”

현주가 태신에게 조심스레 물어본다.

“네? 저요? 글쎄….”

“낯이 많이 익어요, 아닌가?”

“그렇게 얘기하시니까 저도 좀 그런 것 같긴 하네요.”

“어디서 봤을까…, 호호호!”

현주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학교는 어디를?”

“주욱 서울에서요, 교대 나오고….”

“교대요? 어디 교대신데요?”

“서울 제일교대요.”

“어머! 저도… 그런데… 호호호!”

“어머! 그래요? 몇 학번이신데요?”

“90학번이요.”

“아! 난 88학번이에요.”

“그럼… 혹시 이름이 서 현…주 씨 맞아요?”

“네에! 그럼 혹시…네가 태신이…니?”

“어머머! 언니이! 맞아요, 나… 태신이… 어머! 이게 웬일이야….”

“정말 맞아? 태신이? 이게… 얼마만이니?”

“오호… 두 분이 아는 사이에요? 와! 이거 정말… 대박이네요.”

영후가 끼어들며 과장되게 놀라움을 보인다. 하진이와 승호도 서로를 바라보며 ‘씨익’ 웃는다. 서로…, 그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다섯 사람은 그렇게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며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여자의 수다에 밀려 영후와 아이들은 먼저 승호네 집으로 향했다. 현주와 태신은 얼추잡아도 20년이 훌쩍 넘어가버린 세월을 붙잡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태신아! 잘 지냈어?”

“언니, 너무 반가워서 눈물날라구 해….”

“살다보니 만나는구나…, 이렇게….”

“언니가 영후 담임 이었다니… 근데 언니랑 영후는 또 어떻게 만났어?”

“어…, 승호 땜에 알게 됐지….”

“응…, 언니 어디 살아?”

“나? 여의도… 태신아! 그런데 너 좀 야윈 거 같애, 옛날에 그렇게 예쁘더니….”

“으응…, 사는 게 만만치 않네, 언니….”

“술 한 잔 할래?”

“후후… 그럴까? 오래 만에….”

같은 대학 같은 과 2년차 선후배 사이인 그녀들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음이 잘 맞아서 붙어 다닐 때가 많았었고 학교 내에서도 남학생들의 인기를 서로 차지하기도 많았었다. 현주가 교사로 임용되고 2년 후 태신도 교사가 되었지만 태신의 갑작스런 사직(辭職)과 함께 두 사람은 더 이상 자연스런 연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서로의 얘기를 하면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해 가며 시간가는 줄 모른다. 태신은 현주 앞에서 초라한 모습을 보인다는 게 슬펐다. 서로의 결혼생활을 얘기하면서 안타까워 하다가 갑자기 솔로예찬론을 펴기도 하면서 술의 지배를 받아가고 있었다. 벌게진 얼굴과 어눌해 진 말투로 태신이는 현주에게 물었다.

“언니… 영후! 어때?”

현주도 술을 어느 정도 먹은 상태인지라 온전한 정신은 아니었지만 태신이 그렇게 물어올 땐 정말이지 '철렁!' 했었다.

“뭐, 뭐가?”

“내 조카지만… 멋있지 않아? 남자로서 말야….”

“으응…, 그…그렇지…, 멋있…지….”

“나 이럼 안 되는데… 나, 남편이랑 같이 잠 자본지 정말 오래됐다, 언니….”

“음…, 그러니?”

“정말… 안 되는데…, 영후 그 자식이 어떨 땐 남자로 보인다…ㅋㅋㅋ 나! 미쳤지? 언니?”

“푸웁! 켁켁…큭!”

현주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다 태신의 얘기에 사래가 들린 듯 ‘켁켁’거린다. 황급히 들고 있던 맥주잔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손이 떨리는 걸 태신이 볼까봐 불안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남자라니?”

“몰라…, 내가 너무 외로운가봐…, 미친 거 같애…나아….”

“그, 그러지… 마, 태신아! 그럼… 안 되잖아!”

“흐흐…, 크크큭! 안 되지…, 당연히…암…, 안 되고 말고… 크큭…그런데… 나도 모르겠어, 자꾸… 자꾸만 그 자식이 이상하게 보여…, 언니! 나 왜 이러지?”

현주는 갑자기 황당하고 또 당황도 되었다. 술을 마시긴 많이 마셨다. 그러나 농담이라고는 전혀 안 느껴진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혹시라도 태신이가 나와 영후의 일을 알고서 하는 얘기일까? 왜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드는 걸까? 박 태신! 앞에 앉아있는 예뻤던 친한 후배…, 태신이는 대학 때도 가끔씩 파격적(破格的)인 생각과 행동으로 자신을 놀래킨 적이 많은 여자였다. 그런 전력을 볼 때 지금 태신의 영후에 관한 얘기들은 자신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태신이가 영후를?

“얘… 태신아! 가자, 그만…, 응? 많이 늦었어…, 얼른….”

“흐으응… 언니! 흐흑! 나 많이 슬프다, 요즘… 언니 알지?”

“응…, 그래 알아! 우선 가서 좀 자야지…, 낼 다시 얘기하자…, 응?”

“언니 먼저 가…, 난 영후 오라고 해서 같이 갈게….”

“안 돼! 그건….”

현주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그리고는 ‘아차!’ 싶어 태신의 눈치를 살폈다.

“왜 언니? 언니 화났어?”

“아, 아니…, 늦었는데 오라고하기 좀 그렇지 않나 해서….”

“괜찮아, 오늘 영후 등에 한 번 업혀가 보지, 뭐….”

“얘가… 정말 왜 이래!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아잉…, 언니 화났구나? 헤헤헤… 알았어, 가자, 그만…, 미아안, 언니야…, 헤헤….”

현주는 대리를 불러 현주의 승용차에 태신과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승호에게 전화를 하니 영후와 하진이는 먼저 영후의 집으로 갔다고 했다. 그럼 태신이를 영후의 집으로 데려다 줘야 되는 건가? 현주는 그냥 태신이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술 취한 태신에게 물어물어 도착한 태신의 집, 조그만 3층짜리 빌라였다. 현주는 기사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태신을 부축해 어렵게 2층까지 올라가서 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초라한 태신의 집이었다. 현주는 다시 차에 올라 집으로 가면서 영후에게 카톡을 보낸다.

[자기 어디?]

[집이지, 자기는?]

[집에 가는 중 자기 이모 데려다 주고…]

[응, 그래? 할 얘기가 많았어?]

[조금ㅎㅎ]

[알았어, 들어가, 그럼]

[응, 사랑해]

[나도…]

[얼른 자요, 늦었어]

[하진이 데려다 주고]

[지금?]

[응]

그리고 한참 동안 영후는 기다렸지만 현주에게선 톡이 오지를 않았다. 현주는 불안했다. 그렇다고 하진이를 영후더러 재우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자니 아까 태신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떠올라서 더욱 그렇다. 현주가 엄지손톱을 입으로 문다. 긴 속눈썹이 쉴 새 없이 깜빡거린다. 입을 굳게 다문다. 그리고 톡을 보낸다.

[바로 올 거지?]

[그래야지]

[갔다 오면 얼마나 걸려요?]

[20분?]

[집에 와서 전화해줘요]

[이긍, 목소리 듣고 싶구나]

[응]

[알써, 울보야]

[자기야, 밤에 조심해야 해]

[넹]

[ㅎㅎ]

집에 도착하고 보니 승호는 자고 있었다. 문단속을 하고 샤워할까 하다가 그냥 세안(洗眼)만 하기로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얼굴에 나이트크림을 바르면서 수시로 고개를 폰으로 돌려본다. 시간을 보니 영후와 톡을 주고받은 게 어느덧 50분이 넘었다. 현주는 좀 더 기다릴까 망설이다. 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놀렸다.

[어디에요?]

[….]

[집에 왔어요?]

[….]

[자기야!]

[….]

그러고도 한참동안 영후에게선 답이 없었다. 현주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20여년을 넘겨 만난 그 예쁘고 사랑스럽던 태신이가 처음으로 미워진다. 그리고 현주는 자기 최면(催眠)을 건다.

“그 사람은… 날 사랑한댔어…, 난 알아!”

“그 사람의 눈은 거짓이 아니었어!”

어느 사이엔가 일어나 앉은 현주가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길고 길었던 그 밤이 그렇게 하얗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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