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주가 ‘와락’ 영후를 껴안았다.
“서… 선생님?”
“영후야 제발… 그러지 마…, 응? 제발….”
“선생님….”
“나… 무서워서 그래, 정말….”
실제로 현주는 몸을 떨고 있었다.
힘으로는 절대로 지는 일이야 없겠지만 지금 현주의 간절하다 못해 애처로운 행동과 말투에 영후의 마음은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어쩌란 말인가, 여체의 향기로운 이 내음을…, 영후의 양팔을 두 손으로 ‘꽈악’ 잡은 채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현주의 어깨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영후가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진정하세요.”
“정말야…, 나….”
“선생님, 알겠다니까요.”
“으, 으응….”
“편히 앉으세요, 얘기 좀 해요, 우리….”
“그, 그래!”
현주를 진정시킨 후 영후는 일단 차 밖으로 나와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담배에 불을 붙여 아주 길게 한 모금 삼키곤 또 길게 연기를 허공에 뿜어내었다. 불안한 모습으로 지켜보던 현주의 눈에 담배불빛에 비쳐지는 영후의 벌건 얼굴이 보였다. 자신이 딱히 잘못한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좀 전의 영후의 그 분위기는 쉽게 만류될 상황이 아닌 듯이 보였었다.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차 안으로 들어온 영후가 차문을 ‘쿵!’ 하고 닫더니 털썩하고 현주의 옆자리에 앉았다. 현주가 불안한 듯 영후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색함을 덜기위해 현주가 아주 어색하게 한마디 던졌다.
“담배피면 뼈 삭는다며?”
“흐흐흐… 누가 그래요?”
“몰라, 다 그러던데? 영후도 안 피웠으면 좋겠다.”
“네…, 그러려고요, 잘 보여야지, 이제… ㅎㅎㅎ”
“누구한테?”
“있어요.”
“응…? 누구?”
“선생님!”
현주가 고개를 돌렸다. 영후는 먼 산을 보는 사람처럼 앞을 응시하더니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런 영후를 계속 보는 것도 좀 뭐하다 싶어 시선을 돌리려는데 영후가 독백처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어릴 적 혼자가 되었어요. 내 주위엔 오직 혈육(血肉)이라곤 이모 한 명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그 이모도 사는 게 여의치 않아서 나를 살뜰히 보살피지 못했어요. 이건 이모의 얘기지만…, 그래서인지 난 밖으로 돌기 시작했죠, 아주 거칠게 사춘기(思春期)를 보냈다고 보시면 돼요, 덕분에 세상사는 법이랄까? 그런 걸 많이 터득하게 된 거죠, 선생님은 대충 감 잡으실 것 같아서 이런 얘기 하는 거예요.”
“응….”
“나는… 남들이 나쁘다고 하는 것, 안 해본 것 없어요. 싸움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숱하게 했었죠, 거친 세계에서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 그러다보니 자연히 날 따르는 아이들도 많이 생기게 되고…, 웃으실지 모르지만 우리들만의 세상에선 보스가 된 거죠. 모임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거고… 하지만 승호걱정은 마세요, 그 녀석은 특별하니까….”
“승호가… 왜 특별한 거야?”
영후는 대답대신 현주를 돌아보았다. 현주의 궁금해 하는 표정이 또 예쁘다… 씨발…,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 아들이니까….”
“다른 아이들은?”
“글쎄요?
“좋아! 계속해봐, 이야기….”
영후가 말을 이어가기 전에 침을 한 번 삼킨다.
“선생님은 내가 여자경험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 잘….”
“거짓말! 내가 살아온 게 그러한데 설마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 아닌 거 알아요, 그래요, 많았어요,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선생님보다 나이 많은 여자도 있었고요.”
“뭐? 정말…이니?”
“네….”
“어떻게… 그런….”
“충분히 가능해요, 모든 게….”
“난 잘….”
“이해하려고 하지마세요 그 여자들도 처음엔 이해 못했으니까….”
“들? 한 명이 아니란 거야?”
“그건 선생님이 알아서 생각하세요. 아무튼 처음에 승호랑 같이 집에 갔던 날 좀 많이 놀랐어요.”
“그렇겠지…, 옛 담임이 있었으니….”
“아뇨… 그래서가 아니라….”
“….”
“그건 나중에 알게 된 거고…, 그것보다 선생님의 모습 그 자체가 ‘화~악!’ 와 닿았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조금 내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그때 처음으로 엄마 생각도 났어요. 정말 처음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 담임이었던 거죠, 속으로 얼마나 좋았었는지 잘 모를 거예요, 내 기분…, 난 늘 항상 모든 일에 자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날 선생님 만난 이후로 왠지 선생님한테만은 자신이 없는 거예요, 역시 선생님이니까 그렇구나 생각했었죠. 그랬었는데 오늘…, 아니 조금 전에는 정말 자제하기가 힘들었어요. 알죠, 당연히 그러면…,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 선생님이 혼자도 아니고….”
“내가… 어땠는…데? 그때….”
“솔직하게요?”
“그래 솔직하게….”
“예뻤어요. 섹시하고….”
“푸훗!”
작게 실소(失笑)를 터트리는 현주였지만 영후는 나름 진지해 보였다.
“더… 솔직하게 얘기해도….”
“응? 조…좋아, 말해봐.”
“…안 할래요, 그냥….”
“괜찮으니까, 애기해봐….”
“싫어요, 말하면 나랑 안 보려고 할 거예요, 아마도….”
“약속할게, 뭐라고 하지 않을게….”
“정말요? 그럼 말해요?”
“응….”
“조금 전에도 느낀 건데… 하아….”
“응?”
“나 나쁜 놈 맞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했어요.”
“….”
“그냥… 그냥 여자로 보였어요. 갖고 싶고… 만지고 싶고….”
현주가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정면을 바라본다. 한동안 미동(微動)도 하지 않는다. 영후도 애기해놓고 뻘쭘하긴 마찬가지…, 그때 영후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영후는 번호도 보지 않고 얼른 통화거절을 누르더니 집어넣었다. 현주는 그런 영후의 행동에 아무 말도 없더니 영후를 슬쩍 돌아보곤 다시 시선을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난 엄연히 너의 선생님이었고 넌 학생이야. 너는 나의 제자라고….”
“그야….”
“그걸 떠나서 얘길 해도 마찬가지 일거야, 난 너의 엄마뻘의 여자야, 네가 나한테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걸 탓할 마음은 없어, 내가 처신을 잘못한 거겠지…, 그리고 넌 인기도 많다면서? 예쁜 여자들도 많이 널 좋아한다면서? 그런데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아줌마야? 난 네가 반가워서 오늘도 이런 데까지 온 거고,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 영후야, 그러니까 그러지마, 이제… 영후가 날 좋아해주는 거 나도 기분 좋아, 그렇지만….”
“그래도 못 참겠으면 어떡해요? 정말 못 참겠으면….”
“영후! 너 정말….”
미간을 찌푸려가며 현주가 영후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그 표정이 영후의 눈엔 또, 또 예쁘다 씨발…,
“그래…, 너 멋진 남자가 되었어, 만일 내가 아가씨이거나 네 나이 또래였다면 충분히 반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지만….”
“그럼…, 반해 봐요, 한 번!”
“하아… 정말 왜 이러니?”
“몰라서 묻는 거예요? 선생님 때문이잖아요 서 현주 선생님 때문!”
“너한테 실망하려고 그래, 지금….”
“좋아요, 그럼 하나만 부탁 들어줘요, 그러면 다시는 이러지 않을 게요.”
“뭐? 뭔데….”
“약속 먼저 해요.”
“이상한 거… 아니지?”
“어리광 같은 거예요.”
“좋아…, 말해봐.”
“뽀뽀 한 번만 해주세요.”
“그건 안 되는 거잖아!”
“승호랑 뽀뽀도 안 해 봤어요?”
“그… 그야 아들이니까….”
“그러니까 저도… 네?”
“정말 그러면 앞으로 안 그럴 거야?”
“네….”
“좋아! 그럼… 눈 감아.”
“아뇨, 선생님이 감으세요.”
또 한참 노려보더니 결심한 듯 현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영후는 그런 현주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얼굴을 가져간다. 최대한 부드럽게 입술을 대어보았다. 예상대로 촉촉한 현주의 입술이 느껴지면서 영후는 모든 남자들이 가지고 있던 늑대의 본능이 스멀거림을 감지했다. 입술을 조금 비틀며 약간 힘을 주었다. 하지만 꼭 닫혀 진 현주의 입술이 열릴 리 만무했다. 이제 된 것 아니냐는 듯 현주가 영후의 가슴을 밀며 얼굴을 떼어 내려할 때 영후의 한 손이 현주의 귀 볼을 잡아 쓰다듬듯 만져나갔다. 아까의 학습효과인 게 분명해 보이는 행동이었다. 예상대로 현주의 어깨가 움츠러들며 입술이 조금 벌어진다. 그 틈을 놓칠 리 없이 번개같이 침투한 영후의 혀…, 현주의 귀 볼을 만지던 그 손으로 현주의 뒷머리를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한 후 더욱 자신의 혀를 집어넣으려 힘을 쓰자 현주의 입술이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도망치다 붙잡힌 현주의 입술을 집요하리만큼 공략하고 있는 영후의 강한 힘에 조금씩, 조금씩 현주는 무너져 가고 있었다. 단내가 풍기는 현주의 입속으로 진입한 영후의 혀가 현란한 드리블을 구사하며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는다. 한참을 빨은 후에 잡아챈 현주의 혀를 다신 놓아줄 수 없다는 듯 거칠고 힘차게 빨아댔다. 버둥대던 현주의 몸은 그때쯤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현주의 얼굴을 돌려 완전히 위에서 눌러내리 듯 영후는 현주의 입을 덮어간다.
“우우…우후흡! 움우우움… 후으읍!”
“쭈어헙! 음… 쭈우웁! 음… 으으음….”
힘이 드는지 현주가 영후의 팔뚝과 등을 주먹을 쥔 채 닿는 대로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후는 봐줄 리가 없었다. 더욱 세차게 그녀의 입을 유린(蹂躪)하고 있었다. 살짝 혀를 놔주었다가 다시 물어 빨아댈 때 움직이던 그녀의 두 손이 서서히 멈추더니 그저 영후의 가슴에 대고만 있었다. 그제야 영후도 입술을 떼어내고 얼굴을 조금 들었다. 마침 현주도 눈을 뜨면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하아하아… 아….”
현주가 막혀있던 답답함에서 해방되자 나오는 소리였다.
“죽어도 좋아….”
영후가 읊조리자 현주의 눈이 흔들린다. 영후가 다시 얼굴을 가져가며 현주의 눈을 보자 현주도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다시 대어간 영후의 입술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서서히 열리는 현주의 입술, 그리고… 안타까운 신음…,
“흐으음… 아흐읍!”
“음… 으음… 쭙쭈우웁!”
영후는 정성을 다해 현주의 입술을 빨고 빨았다. 그때, 드디어 현주의 팔이 영후의 목에 걸쳐지고 있었다. 차안에 습기가 끼어갈 무렵 현주의 스마트폰이 울어댄다. 현주가 영후의 가슴을 밀며 일어나 앉는다. 거기선 영후도 선선히 응해주었다.
“응…, 엄마야.”
“엄마 왜 안 와?”
“으, 으응…, 맥주 한 잔 더 하자고해서….”
“무슨 선생님들이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셔?”
“그… 그렇지? 미안해, 아들… 근데… 아직 안 잤어?”
“조금 자다가 깼어.”
“응…, 자고 있어, 빨리 갈게.”
“응…, 알았어, 끊어.”
현주는 전화기를 백에 넣더니 머리를 만진다. 더불어 옷매무새도 점검해보곤 영후를 돌아본다.
“승호인가 보죠?”
“….”
“죄송해요.”
“….”
“선생님….”
“그… 그만 가야겠어.”
“네…, 그러죠.”
영후는 전화기를 꺼내본다. 아까 왔었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자 역시나 대리기사인 듯싶었다. 통화해보니 이미 다른 콜을 잡아 이곳으로 오기가 불가능하단다. 영후 자신은 이제 자기가 어느 정도 술이 깨어서인지 운전해도 될 것 같았다.
“내가 해도 될 거 같아요.”
“….”
화난 표정으로 대꾸 없는 현주를 가만히 쳐다보다 한마디 해보는 영후였다.
“정말 싫었으면 내가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았겠죠? 선생님이?”
“….”
그건… 그의 말이 맞았다. 현주가 대학 다닐 때부터 꿈꾸던 남자의 모습, 바로 그 이상형(理想型)이 솔직히 지금 영후의 모습과 흡사했다. 덩치가 크고 건장하며, 그러면서도 그렇게 못 생기지 않은…, 그리고 영후의 부드러운 손길과 강렬하고도 짜릿했던 키스가 주는 황홀감(恍惚感)도 상당했었다. 더욱이 그녀는 남편의 외도(外道)로 인해 거의 몇 개월 째 남자의 손길을 받아보질 못했었다. 영후의 나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차라리 모르는 아이였으면 좋았을 걸….
“그래…, 맞아, 싫지 않았어, 그렇지만 이젠 그런 일 없을 거야.”
“난 아닌데….”
“너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아, 내가 그럴 거라는 거야.”
“….”
“운전해…, 가자.”
영후가 무언가 더 말하려다 차의 시동을 건다.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차들과 가로등 불빛을 보며 창에 머리를 기댄 채 현주는 방금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있었다. 거칠게 자기의 혀를 빨리던 그때 아프면서도 가슴한곳에 찌릿하고 울리는 게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이 아이도 알까? 살짝 젖어버렸던 나의 그곳을? 그의 뒷모습이 사뭇 두려워지는 건 왜일까? 안 되는 거야…, 다시는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현주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어본다. 그리곤 엄지손톱을 입으로 가져가 역시 깨물어본다.
‘어떡해야 하지?’
여자는 여자일 뿐 - 선생님 03부
“뭐야? 엄마! 어제 몇 시에 들어왔어?”
“으응…, 빠… 빨리… 왔어.”
“배고파…, 얼른 밥 주세용.”
“응…, 얼른 씻어.”
유난히 아침햇살이 눈부시다. 현주는 그 햇살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하룻밤의 꿈이었던 거야…, 꿈…’
“엄마, 어디 있어?”
“어…, 왜? 여기 베란다….”
“엄마! 나랑 어디 좀 가자.”
“어디를?”
“엄마, 음식 잘 하잖아, 그치?”
“뭘… 그냥 좀 하는 거지….”
“영후 형, 반찬 좀 해주면 안 될까?”
현주는 가슴이 ‘철렁’했다.
“엉? 무슨…?”
“그 형 혼자 살잖아, 그러니깐 엄마가 반찬 좀 해주고 오라고…, 엄마 제자였잖아.”
“그래도… 그건… 좀 아니지….”
“왜 싫어?”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런데 혹시? 영후가 얘기한 거니?”
“아니, 내가….”
“왜?”
“그 형한테 점수 좀 따야 되거든….”
“….”
현주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그때 카카오 톡 알림이 울린다. 무심코 들여다보던 현주가 눈을 크게 뜬다.
[영후에요. 잘 잤어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현주는 침대 끝에 앉아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