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18)

3.

잠을 자는 듯 그냥 눈을 감고 있는 듯 시트에 몸을 기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것이 아마도 잠이 들어 있는 걸로 보인다. 영후는 깨울까하다가 살며시 차문을 다시 닫아두곤 밤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하나 빼어 물었다. 현주가 보았다면 뭐라 한 마디 할 거라는 생각에 슬쩍 차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았는데 취한건가? 영후는 연기를 날려 보내며 생각했다.

현주는 장항 IC를 지나면서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끼고 살짝 잠이 들었었다. 아직은 더운 날씨였지만 밤공기는 제법 차가워져서 서늘하기까지 한 날씨였다.

영후가 차문을 열고 나간 후 다시 닫을 때 잠시 바깥 찬 공기를 느꼈었지만 왠지 눈을 뜨기가 어려… 아니, 애매했다. 몸을 일으켜 어두운 밖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문드문 주차된 차들이 보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적한 분위기였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건장한 영후의 뒷모습이 보인다. 얼핏 보아도 몸은 웬만한 성인남자 이상으로 거대하게 보인다. 그런 영후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은 언젠가 영화에서 보았던 멋진 주인공과 오버랩 되는 건 무슨 일인지…,

사실 현주는 며칠 전 승호와 같이 들어오던 영후의 모습에 무척이나 놀랬었다. 뭐랄까… 여심(女心)을 설레게 하는 자기의 이상형의 외모(?)와도 비슷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면서 급히 영후에게서 시선을 거둔다. 현주의 이상형은 남들이 들으면 약간은 비정상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이종격투기 선수인 최 무배 같은 체격에 삼시세끼에 나오는 주인공 차 승원 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를 좋아했었다. 지금 영후의 체격이 그 남자들과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이… 뭐야? 왜 얘길 꺼내가지고… 이 시간에 옛 제자랑 여기에 있냐고? 응?’

자신을 꾸중하며 후회하던 현주는 갑자기 열린 차문에 깜짝 놀랐다.

“어머! 아이, 깜짝이야!”

“에구 놀랬어요? 주무시는 것 같아서….”

“응…, 지금 막 깼네.”

“에이…, 쌤! 이 시간에 여긴 재미없는데요?”

“그렇지? 난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

“네, 그런데 저도 좋아요.”

“어머! 참…, 너 일해야 되는 거 아니니?”

“선생님한테 일당 받아야죠, 뭐…, 흐흐….”

“그래…, 알았어, 일당 주지 뭐….”

“나오세요, 바람 쐬러 왔으면 쐬어야죠.”

“응…, 근데 제법 바람이 차네. 추워….”

“그쵸?”

현주와 영후는 은은한 불빛 따라 천천히 걸었다. 가끔씩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흔들리는 게 느껴지는걸 보곤 현주가 물어본다.

“사람들이 차안에 있나봐? 추워서 안나오나보다 그치?”

“네? 아… 네,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뭐?”

“흠…! 그냥 뭐… 둘이… 그렇겠죠, 뭐….”

“응? 뭐가 그래?”

“그러니까… 그… 남자랑 여자가….”

무슨 말인지 그제야 깨달은 현주가 얼굴을 붉힌다. 밤이라 영후가 쉬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휴… 좋을 때구나….”

현주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기도 분명 불타는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이제와 새삼 그런 생각이 들면서 또 한 번 대준에 대한 분노가 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좀 전의 대화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후도 조금 뻘쭘하니 걷고 있었다. 그런 영후의 옆모습을 가만히 보던 현주가 장난처럼 슬며시 영후에게 팔짱을 끼었다.

“내 옛 제자가 이렇게 남자가 다 됐으니 어디 한 번 데이트 해볼까? 호호호!”

“어…?”

“뭘 그리 놀래니? 남자가 돼 가지고….”

“선생님….”

“왜 싫어? 설마 이런 미인을 거절하는 거야?”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절대로….”

“호호호! 우리…, 조금만 걷자.”

“네….”

영후는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여자한테 절절매는 스타일 아닌데 이상하네… , 현주선생보다 나이 많은 여자도 많았잖아? 근데 왜 이렇게 주눅이 들지? 내가? 은은히 풍겨오는 여자의 냄새를 음미하며 걷는데 그녀의 오른쪽 젖가슴이 걸을 때마다 자꾸만 영후의 전의(戰意)를 불태우고 있었다. 영후는 현주를 돌아보았다. 제법 내려다보아야 그녀와 눈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현주의 키가 165cm는 되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현주도 영후를 쳐다보곤 수줍게 웃어준다.

“속은 괜찮아요?”

“그럼…, 뭐… 그 정도에 취하겠니?”

“난… 좀 고픈데….”

“배고파? 많이?”

“아뇨….”

“그럼?”

“술요.”

“술? 호오… 이 학생 안 되겠네?”

“나 그냥 술 마시고 선생님한테 혼나면 안 될까요?”

“너… 정말 성인 맞아? 영 의심스러운데?”

“민증 깔까요? 아니… 내기하죠, 우리….”

“싫으네요,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짠가 보지 뭐….”

한참 걸은 것 같았다. 좀 외진 곳이긴 하지만 저만치 카페 같은 게 보이자 영후는 걸음을 멈추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덩달아 멈춰 서서 영후의 시선을 쳐다보던 현주가 팔꿈치로 영후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이그… 저런 건 잘 보이지?”

“헤헤… 네….”

“그래, 가자, 네가 사겠지 뭐….”

“예? 아닌데… 난….”

“뭐니 돈도 없으면서 그랬어?”

“아직 대리비를 안 받아서 그렇거든요.”

“뭐? 푸후훗! 호호호! 그러네…, 알았다, 알았어.”

“하하하! 가요 선생님“

카페에 들어선 둘은 사람들이 듬성듬성 별로 없는 것을 보고는 창가 쪽으로 자리를 잡고 500cc짜리 생맥주를 각각 한 잔씩 시킨 후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옛날이야기부터 해서 최근의 승호와 만나게 된 것까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전주(前酒)가 있던 현주는 조금씩 오르는 취기(醉氣)가 살짝 걱정되었다. 유쾌하게 대화하는 영후의 기분을 다운시키기도 그렇고 해서 시종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고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두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근데 사장님은 지금 집에 계신 건가요?”

“응? 누…구?”

“승호 아버님요.”

“으응…, 그 사람? 지금 집에 없어.”

“아… 그래요?”

“응…, 추…울…자…앙… 지방에….”

“네…, 그래서 선생님도 여유가 있으시구나….”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대준의 애기가 나오니 현주는 슬퍼진다. 제자 앞에서 현재 자신 가정의 위태함을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는 더욱 싫었다. 영후는 모든 것에서, 모든 일에서 상남자였지만 오직 하나 최대의 약점이 있다면 술이 약한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소주 두 잔 정도나 맥주 한 병 정도가 거의 정량이었다. 현주가 화장실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우자 갑자기 말상대가 없어져서인지 영후는 몸이 노곤함을 느끼며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까 느꼈던 현주의 체취를 기억하며 팔꿈치에 전해지던 물컹한 그것이 잊혀 지지가 않는다.

“어머! 영후야 피곤하니?”

“아뇨, 펄펄한 남자가 피곤하긴요 ㅎㅎ”

“그만 가야되겠다, 이제….”

“네, 그럴까요? 그럼 대리기사 불러야 되겠네.”

“음…, 그래야겠다. 이상하네, 대리기사가 대리운전을 부르니까….”

“그러게…, 좀 이상하긴 하네….”

대리를 호출했는데 그들이 있는 곳이 사람이 쉽게 접근하긴 어려운 외딴 곳이어서인지 최소 30분 이상은 걸릴 거란 얘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두 사람은 차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있자니 기분이 여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애써 웃어 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는 행동 자체가 이상한 두 사람이었다. 술은 술인 것, 차안의 두 사람이 공기로 적당히 따뜻해지자 술기운이 점점 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영후는 이런 기분이 처음이었다. 아마도 옛 선생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쑥스러운 기분은 없었었는데…’

지금은 모든 생각이 서 현주 선생에게 맞춰지고 있었다. 기억날 리 없는 그 시절의 서 현주 선생의 치마 속 하얀 팬티가 눈에 아른거린다. 침을 소리 없이 삼키는 찰라 현주의 머리가 영후의 어깨에 스르르 기대어온다.

‘자는 걸까? 아님…’

영후는 팔을 위로 들어 올려서 조심스레 현주의 어깨를 감쌌다. 자연히 현주의 머리가 그의 가슴으로 내려 얹힌다. 아마 무의식이 아니었다면 현주는 얼른 고개를 바로 했을 것, 그런데 현주는 몸을 바로 하지 않았다. 자연스레 그녀의 어깨를 안게된 형국(形局), 현주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려오면서 아주 작은 실망감도 드는 영후의 마음이었다.

‘자는 구나…’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자세가 불편해졌지만 움직일 수 없는 영후였다. 그러고도 한참을 영후는 현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두웠지만 적응된 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잘 보였다.

마흔다섯이라고 했던가? 눈가에 가는 주름이 약간 잡혀있는 것 빼고는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다. 오히려 바라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감싸 안아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여자로 보였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왜 그리 침이 고이는 건지…, 한 움큼 침을 소리 없이 삼키곤 영후의 얼굴이 멈칫멈칫 아주 조금씩 숙여지고 있었다. 더불어 몸을 비스듬히 비틀며…, 그 영후의 얼굴이 멈춰질 곳엔 바로 현주의 입술이 위치하고 있을 곳이리라,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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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느새 자정이 넘어가는 깊은 밤, 주변에는 아무도 없건만 속삭이는 소심한 또 한 녀석이 있었다.

“하진아, 나 승호.”

“응, 오빠! 왜 안자고….”

“히히! 네 목소리 듣고 자려고….”

“피이… 애기 같애.”

“자려고 했어?”

“응.”

“영후 형은 오늘 안 왔어?”

“응, 오빠는 며칠 집에 안 왔어.”

“그래? 하진아, 나아….”

“응, 얘기해.”

“저기… 있잖아.”

“말해…, 뭔데?”

“나… 너랑… 사귀면….”

“응? 나랑 오빠랑?”

“으…응…, 안…돼?”

“우리 자주 보잖아, 그런데 뭘….”

“그거 말고….”

“어? 오빠, 끊어! 엄마야, 끊어!”

이 승호,

정말 연약한 아이였다. 영후가 아니었다면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을 전형적인 범생이…, 집과 학교, 공부와 엄마 아빠밖에 모르던 녀석, 당연히 여자관계는 제로베이스, 우연히 영후와 엮어지게 되면서 별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운 좋은 녀석, 그렇지만 현주의 사랑하는 아들, 전화가 끊어졌다.

‘아이 씨~ 왜 하필 그때 아줌마가…’

승호는 하진이에게 미안했다. 하진이를 보고 자꾸만 나쁜 생각만 하게 되는 게 미안했다. 가슴을 만져보고 싶고, 뽀뽀도 하고 싶고, 어떨 땐 교복치마를 벗겨보고도 싶었다. 엄마보다 예쁜 여잔 없을 거라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진 생각했었다. 그만큼 엄마 현주의 미모(美貌)는 자랑할 만했다. 그런데 간단히 그걸 깨버린 하진이었다. 그러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지는 하진이었다. 영후형의 사촌동생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시간을 보니 막 자정을 넘어 새벽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엄마가 왜 이리 안 오지? 금방 온다고 했는데…, 아빠도 안 오고…’

그러고 보니 요즘 아빠본지가 아주 오래된 것이 문득 생각난다. 하진이에게 빠져서 정신이 없었는가보다.

‘진짜 아빤 어떻게 된 거야?’

아빠에게 휴대폰 전화를 해봤지만 받질 않는다. 승호는 엄마에게 또 전화해볼까 하다가 조금만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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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후는 깜짝 놀라 얼른 얼굴을 들었다. 닿아버린 것이다. 자신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긴장하면서 움직임을 멈추고 현주를 응시했다. 현주는…, 그냥 몸을 조금 뒤척이더니 더욱 깊이 영후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모습에 자중하고 있던 영후의 중심이 드디어 꿈틀대기 시작했다. 자신감의 상승과 경험에서 얻은 그것, 영후는… 현주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현주가 한쪽어깨를 움츠리며 바깥쪽의 팔을 자신의 품안으로 모으곤 더욱 영후에게 밀착해왔다. 영후는 이런 경우가 정말 처음이었다. 평소 쉬운 여자들만 만나 와서 그런 건지 헛갈린다. 손에 땀이 다 났다. 영후의 손이 현주의 귀 볼을 부드럽게 잡았다. 그리곤 느린 속도로 만져보았다. 그래도 현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넘겨주다 귀 볼을 살며시 비벼보다 귀 뒷부분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만져보기도…, 물론 그래도 현주는…,

현주는 선잠이 들었었다. 피곤하긴 했었는지 몸이 힘들었다. 이상한 기분… 그 싫지 않은 느낌에 문득 잠이 깨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남자에게 그것도 제자인 영후의 품에 마치 안겨버린 자세로 기대어 있었고, 건장한 영후가 자신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 했었는데 그때 영후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넘겨주었고 그 손가락의 느낌이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내가 왜 이럴까?’

이어지는 영후의 터치들은 이상하리만치… 미친년 같은 소리지만…, 정말 감미로웠다. 아주 많이…, 영후의 손이 현주의 턱 선을 타고 내려와 엄지손가락으로 입술을 건드렸을 때 현주는 더 지체할 수 없었다. 영후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얼굴을 들어 영후를 쳐다보았다.

“이러지 마, 하지 마!”

영후도 당황스런 눈으로 마주했지만 금방 그의 눈은 확고해 보였다.

‘멈출 수… 없어요.’

마치 현주의 눈엔…, 영후가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는 현주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영후의 눈은 이제 현주에게 레이저빔을 쏘듯이 강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 과거의 여자들을 만났을 때의 그 눈빛이었을까? 현주는 무슨 말을 하려다 그 눈빛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영후의 왼 손이 얼굴을 돌려 잡아 세웠기 때문이었다. 현주가 얼굴에 힘을 주고 버티었다. 하지만 영후의 손의 힘은 그것과는 비교할 수없이 강했다. 돌리어진 얼굴이 영후와 마주했을 때 긴 정적(靜的)이 흐른다.

“영…후…야!”

많이 갈라져 있었다. 현주의 목소리는…, 영후의 검지손가락이 현주의 입술에 세로로 세워지면서 현주는 더 이상 말하기 어려웠다. 그리곤 영후의 손은 다시 한 번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있었다.

“으으음….”

현주는 ‘아차’ 싶었지만 그의 손길에 신음을 얕게 내었다. 영후가 못 들었길 바랬지만 그는 들은 것 같았다. 그의 눈빛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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