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아줌마, 엄마, 아내 이기전 나도 여자였다. (1/20)

1. 아줌마, 엄마, 아내 이기전 나도 여자였다.

나 이은하. 

타고 난 피부 미인인 덕에 어려보이지만 

올해로 내 나이 42살에 전업주부, 그저 평범한 아줌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과 모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있는 여자다.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내 과거 이야기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솔직히 그 당시 돈을 번다기 보다는 사회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지만,

대학교때 지금에 남편을 만나 연애을 5년 했고 졸업 직후 24살 이라는 어린나이에 

남편과 연예중에 그만 원치 않던 아이을 임신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생각 보다 좀더 일찍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줄곧 집에서 살림만 하고 있는 형편이다.

난 지금에 남편이 너무 좋아서, 너무 사랑해서 결혼은 했지만, 

그래도 결혼 만큼은 사회 생활을 좀더 충분히 하다가 늦게 시집을 가려고 했었다.

남편은 47살로 나보다 5살 연상으로 조금 조금 큰회사에 차장이며 평범한 샐러리 맨이다.

결혼 후 약 18여년를 뼈가 빠지게 쓸거 안 쓰고 두사람이 고생 했지만,

회사에서 나오는 남편에 월급이라는게 세금을 떼고 평균 300여 만원정도..

그동안 모은 돈과 시댁의 도움으로 몇년 전 고급아파트을 장만한게 전재산이였다.

그나마 아직 3000만원 정도의 융자금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저축은 고사하고 마이너스가 안나면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니말이다.

물론 내가 살림을 잘 못해서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나도 나름대로 하느라고 했지만 도저히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나의 외모는 우리때 치고는 큰키라 할 수있는 168에 58키로 정도 나가는 

조금은 살이 통통한 내나이와 비슷한 밤차을 부른 여가수 이은하 같은 체형이다.

난 엉덩이가 너무 크고 작은 키가 아닌 덕에 통통해도 난 늘상 쭉빠진 글래머란 소리을 대학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들어왔다.

건강미인이라는 소리와 피부가 유난히 하얗고 고와서 얼굴 또한 동안 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어왔다.

아직도 길거리에 나가면 30대 중 후반 정도로 보일정도는 된다.

한참 젊었을때는 남자친구들을 남편을 사귀면서도 결혼전까지 

서너명 정도을 늘 내 주의에 깔아놓고 만나기까지 했을 정도로 대학때 까지는 

좀 놀아 보기도 했지만 유흥가에서 알바을 할 정도는 아니였다.

대게가 그때 나이에 젊은 여성들이 그러하듯 나도 내 인생을 찾아 방황하고 

조금은 뒤늦게나마 남자을 신중하게 골라 결혼을 참 잘하고 싶어서 였던 것 같다.

고등학교 2학년에 첫 섹스을 알았고, 그 후 고등학교을 졸업하고 섹스을 나눈 남자는 대략 20명 정도로 기억난다.

많다면 많겠지만 적다면 또 적은 숫자인 것 같다. 

나도 끼가 있는 여자였고 호기심도 많았던 나 였으니까.

물론 그들과 데이트하며 섹스을 매번하는 동안 즐겼고 호기심 만큼이나 

남자들 자지을 모두 오럴 해주며 모든 남자에 자지도 우리 여자에 보지만큼 

전부 각기 다르다는 걸 알아서 더 관찰도하며 장난도 칠 줄 알정도였다.

난 오럴 섹스을 받는 것도, 내가 오럴 해주는 것도 아주 즐기고 좋아한다. 

그때는 호기심이 만은 나이라 남자들 만큼 나도 즐기며 좋아했던 것 같다.

나와 섹스을 나누었던 남자들은 대게 자지가 거기서 거기였던 것 같다. 

보통이라는 얘기다.

그 당시 내 눈엔 모두다 크기도 비슷했던 것 같다. 물론 자지의 힘. 그 경직도는 각기 조금씩 차이는 있었다.

그 중에 내 경험상 섹스가 나랑 가장 잘 맞았고 여느 남자들 보단 조금은 거칠고 

변태스럽기까지 했어도 지금에 내 남편이 그 당시에는 더 없이 사랑스럽고 좋았었다. 

물론 그래서 결혼까지 결심 했을 것이다.

조금은 난잡했던 결혼전 남자관계는 결혼하고 부터 곧장 모든 남자들을 

하나하나 모두다 깨끗하게 정리했고 아이을 낳은후 부터는 아예 집에서 

살림과 자식 키우느라 전형적인 아줌마의 모습으로 내 스스로 변해 버렸다.

결혼전 난 내가 마음에 드는 남자들만 꼭 사겼었고, 

그 남자들 대부분은 어김없이 내 글래머같은 몸매을 하나같이 좋아했고

난 내 큰엉덩이와 젓가슴을 좋아하고 사랑해주는 남자들과 모두 정사을 했었다. 

나의 글래머스한 몸매를 너무나 많은 남자들이 원했고 너무 내 몸을 이뻐 해주었으니까.

일찍 알게 된 섹스에 난 바람끼 같은 것 보다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유난히 많아서 

내 스스로가 몸을 준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섹스공부(?)을 하려고 더 저극적이였던것 같기도하다.

난 정말 섹스을 어려서 한때 좋아했고, 늘상 가슴이 설레임으로 가득차 충만했던 그런때도 분명있었다.

이제 그렇게 한때 잘나가던 나도, 여느 주부들이 다 그러하듯 집에서 살림만 하다보니 늘어나는 건 아랫뱃살뿐..

그나마 밤마다 동네를 돌며 야깅같은 손쉬운 운동을 꾸준히 해온 덕택에 흉하지 않을 정도의 뱃살만 살짝 나온 상태다.

이렇게 세상 모르게 평범하게 살아온 나에게 조금씩 마음에 변화가 생긴 건,

남편이 30대가 지나고 나서부터인가, 점점 줄어드는 잠자리 관계 때문이다.

아마도 남편은 우리 아들을 낳고부터 예전과 달리 섹스에 적극적인 맛이 전혀 없었던것 같다.

반면 난 아들녀석을 낳고부터 너무 발히는게 사실이였다.

아이을 출산하면서 내 보지가 좀 커진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티을 내면서 너무나 야속하게 

남편은 정열적인 젊을때에 처럼 그런 섹스을 나와는 하진 않았기에..

난 더 그런 남편에 외면에서 오는 주부우울증과 스트레스을 풀려고 더욱 운동을 열심히 했던것 같다.

나이을 먹을수록 과거와는 너무 다르게도 요즘 남편은 그다지 나와 섹스를 즐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때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내게 달려 들어 날 즐겁게 해 주곤 했는데, 아들 진수을 낳고 너무 많이 틀려졌다.

내가 버거울 정도로 그렇게 섹스을 해대던 남편이 30대후반 쯤이되자 아예 의무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또 그런것은 남편이 40대에 들어서더니 한달에 한 두번이던 관계가 한달에 한번을 할까 말까로 변해 버렸다.

일이많고 스트레스을 핑계로 어떤때는 건너 뛰는 달도 점점 늘어만 갔다.

입 버릇처럼 아이을 출산하고 내 보지가 늘어난 것 같다고 

나을 구박 아닌 구박을 섹스 도중에 귀가 따갑도록 이야기 하곤 하던 남편말 때문에 

난 이쁜이 수술도 생각을 해온지 오랜전이지만 그건 마음 뿐이였고, 내겐 별 이상이 없다고 난 판단 되었었다.

난 충분히 남편이 섹스을 해줘도 오르가즘을 느껴으며,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난 아들을 낳고 남편과에 섹스가 더 좋았고 더욱 쉽게 오르가즘의 맛을 맞았기에 그럴수록 더 섹스에 집착하게 되고 .. 

사실 좀 남편에게 난 섹스에 언제나 목말라 했고 그럴수록 나만 점점 더 지쳐갔다.

솔직히 여자의 입장에서 먼저 섹스를 하자고 남편에게 달려든다는 것이 

여자인 내가 자존심 상하고 그것도 먼저 구걸 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아줌마도 여자인지라 섹스하고 싶은 욕망을 참고, 참고, 또 참다보면,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참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선 늘 내가 먼저 남편에게 손을 뻗게 된다.

그래도 남편이 흥쾌히 승낙을 하면 다행이지만,거부를 할 경우에는 자존심 상하는 것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거부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것은,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하는 식으로 남편이 성의 없이 나올 때다.

젊어서는 내 보지을 삽입전에 꼭 빨아 주던 그런 색마였던 남편이였던 터라 난 더 애원 비슷한 걸 해야만 했다.

꼭 그렇게 오럴을 애원하는 날은 대부분 남편이 먼저 사정을 하고 내 배위에서 금방 내려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내가 좀 더 남편에게 속마음 털어 놓고 애무 받고 싶어도 언제나 마음뿐. 그 말은 차마 내입 밖으로 결코 나오는 날은 없었다.

큰 고통과 함께 아들을 낳고 이후부턴 난 내 보지을 아팠던 만큼 더더욱 남편에게 위로 받고 싶었다. 

사랑받고 이쁨을 받고 싶기에 그럴수록 난 남편의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스런 애무을 갈망했고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난 살림과 운동 그리고 애키우는데 정신을 쏟으려 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자꾸만 섹스에 대한 미련으로 점점 이상한 상상을 하는 날 발견하곤 한다.

특히 비가오는 날이면 대낮인데도 난 내몸이 더 뜨거워지곤 했다.

남자들은 아줌마들이 모이면 야한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꺼라고 생각하지만,그건 남자들이 꾸며낸 얘기 일뿐, 

실상에서 조금 그런 대화을 하기는해도 그렇지 않다.

내가 혹은 친한 옆집 언니가 바람을 피워도 서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친 여자가 아니고서야 그런 자신의 치부를 자신있게 말 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바람을 피우는 여자 후배동생이 한명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 동생이 남편에게 안 들키려고 알리바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날 이용하는 바람에 알게된 내용일 뿐, 그 동생이 만나는 남자에 대해서 

대충은 알아도 더 자세하게 얘기 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 윗층에 내 아들과 같은 학교을 다니는 명호엄마 역시 

남편을 둔 여자지만 아들 둘이 친구사이였기 때문에 더 친하게 지냈고, 

또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명호네 엄마는 남자애인이..

남자애인이 너무 많다는 건 흉이 아닌것 같았고 그렇다고 그런 명호엄마을 미워하거나 추하게 여기진 않았다.

적어도 나처럼 집안에서 궁상떠는 여자가 더 추하다고 스스로 난 생각했으니까.

이러듯 섹스에 대한 굼주림으로 쌓일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던 나에게 뜻밖에 재미난 사건이 하나 하나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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