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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며칠 동안 윤지의 핸드폰에 문자가 울렸다.
‘윤지씨. 어젠 잘 들어갔어요? 당신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어. 아직도 내 아래가 서있는 거 알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
철근의 문자가 떴다. 누구냐는 민철의 질문에 윤지는 친구라고 얼버무렸다.
‘네 혀가 내 좃을 감쌀 때 어땠는 줄 알아? 난 죽는 줄 았다구. 후후’
그리고 하루 종일 이어지는 문자들. 저속하고 음란한 말들이 가득했다. 그러다 핸드폰이 또다시 울렸고 핸드폰 문자에는 윤지가 철근에게 입으로 서비스를 하는 모습이 찍혀있는 사진이었다. 윤지는 핸드폰을 꺼버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물을 한잔 급히 마시더니 윤지는 화장대에 앉아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았다. ‘
[넌 이런 좆 좀 박아줘야 해! 네 년 보지가 찰지다 찰져]
[이 씹년 엉덩이 잘돌리는데!]
철근이 섹스 도중 자신에게 했던 음란한 말들이 귀를 때렸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욕설들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고 맴돌았다.
문득 자신의 입술을 만져보자 입술에 느껴졌던 그의 단단한 물건이 떠올랐다. 온 몸을 휘감던 열기뿐만 아니라 남편 앞에서 외간남자의 좃을 빨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흥분을 다시 느꼈다. 그 짜릿함에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해버렸다.
바로 고개를 도리질 하며 윤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그러던 중 철근의 말 한마디가 떠올랐다.
[딱 한번. 그 후로 더 이상 괴롭히지 않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어 거울 속 자신을 한번 응시했다. 등 뒤로 벽에 걸린윤지와 민철의 결혼 사진이 보였다. 민철의 품 안에서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뭔가 결심한 듯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리고 윤지는 침대에 던져두었던 핸드폰을 다시 켜서 누군가에 급히 연락을 했다.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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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특급호텔 앞에 섰다. 도어맨이 재빨리 다가가 택시 문을 열었다. 택시 문 밖으로 나오는 여자의 늘씬한 다리에 도어맨은 잠시 눈길을 주다 황망히 거두었다. 여자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로비로 들어섰다. 그러나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아름다운 다리에 비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양새가 어딘가 어색했다.
호텔 1층 구석에 있는 카페에는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 쪽에서 육중한 테너가수가 우렁찬 오페라 가곡을 부르며 분위기를 더했다.
구석 자리에서 철근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청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얀 윗도리를 걸친 윤지가 걸어가자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힐끔거렸다. 옷과 화장을 갖추자 윤지의 모습은 영락없이 여대생이었다. 중동에서 온 것 같은 터번을 쓴 남자도 그녀의 뒤태를 감상하며 한국은 올만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흠. 일단 앉아.]
아래가 비치는 유리 테이블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신경쓰인 윤지는 핸드백으로 부족하나마 가렸다. 하지만 워낙 짧은 스커트라 소파를 타고 말려올라가 허벅지가 다 드러나버렸다.
[어차피 치마 속까지 다 본 사이에 부끄러워하긴. 좀 더 짧은 걸 입고 오랬던 거 같은데.]
[집에 있는 치마 중에 제일 짧은 거에요. 충분하지 않나요?]
윤지는 철근의 눈을 피하며 옆을 보고 새침히 말했다. 아직 윤지의 말투에는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이 실려있었다.
[하긴. 짧긴 짧네. 후후. 오면서 남자들이 훔쳐보던데, 알고 있나?]
[이상한 소리 하지 말아요.]
윤지는 거리에서 남자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을 느끼고 있었다. 택시 앞자리에 앉았을 때 우회전을 무심히 하는 듯 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보는 기사의 눈빛 역시 윤지는 창밖을 보는 척 하며 알고 있었다. 괜히 출발할 때면 앞차에 욕설을 날리며 과도하게 큰 기어 변속을 넣으며 잠시 자신의 허벅지에 스치는 기사 아저씨의 손가락 역시 느꼈다. 당혹스럽지만 우쭐한 기분과 함께 잔잔히 흥분되었다. 호텔에서 일어날 일에 대해 생각하자 긴장된 흥분은 더했다.
[대낮에 주택가에서 유부녀가 호텔로 가자고 하면 뻔한거지.]
[아….]
윤지는 그제야 택시기사가 자신을 어떤 의미로 바라봤는지 깨달았다.
[왜 보자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밥부터 먹자구. 여기!]
나오는 음식은 하나하나 맛있는 것은 둘째치고 먹기 아까울 정도로 데코레이션이 화려했다. 윤지는 신혼여행 때도 못 가본 특급호텔에서 식사를 한다는 게 어색했다. 먹는 둥 마는 둥 끝내자 철근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부르면야 나야 언제든 오케이지만, 왜 보자고 한거야? 보고 싶었어?]
[전화하지 좀 말아주세요. 남편이 알면 어쩌려고 그래요.]
[후후 민철이는 걱정마. 눈치 없는 놈이니까. 남편이니까 잘 알겠구만. 그리고 어차피 첫번째 약속 후에는 내가 귀찮게 전화할 일도 없을거니까.]
은지는 숨을 크게 내쉬고 말했다.
[그…그럼 한 번 더 하면 되잖아요. 그럼 됐죠?]
[후… 은지씨. 당신이 내 말을 믿을 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잘 맞는 커플인지 당신도 느끼고 있을 거야. 답답한 일상. 반복되는 집안일. 쥐꼬리만한 남편 월급. 그런 거에 갇혀 평생 살 여자가 아니란 말이지. 여기 까페 좀 한번 훑어 봐.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삼사십대 남녀들이 모여있겠어? 남편 집에 오기 전에 애인 만나러 온 여자들이야. 왜 그리 답답하게 살어?]
[….그래도 전 행복했어요.]
[내가 더 큰 행복을 줄 수 있어. 이렇게 서빙해주는 음식,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으면서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즐기면 돼. 당신이 그런다고 가정이 깨지고 그러면 이 나라 가정은 남아나질 않지.]
[……. 됐어요. 빨리 하러 가요. 그리고 그걸로 끝이에요. 사진도 동영상도 다 지워주시구요.]
그래도 흔들리는 윤지 였다. 결혼 후 음악회 티켓은 꿈도 못 꾸었고 이런 레스토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지금 이 까페 손님들을 위해 소리 높여 부르는 테너 가수의 아름다운 노래가락에 흔들렸다. 단지 이런 데서 밥만 먹어도 들을 수 있다니. 이 사람들은 마치 음악가를 자신의 집에 있는 시디처럼 틀어놓고 밥을 먹고 있다.
[후… 너무 쉬우면 나도 싫긴 하지만 너무 애태우지 말라고. 암튼 나는 오늘 당신과 할 생각이 없어.]
[네…? 당신이 입고 오라는 데로 입고 호텔까지 왔잖아요.]
[오호. 그래? 팬티도?]
윤지는 주변을 살피고 스커트를 잠시 들어주었다. 대학 공연 때 입었던 붉은 끈팬티가 허벅지 사이에 드러났다.
[후후. 당신이 그런 옷을 입고 호텔에 제 발로 오다니. 사랑스러워.]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누가 보기 전에 어서 방으로 가요.]
[어이쿠. 그새 내가 그리웠나봐? 후후. 하지만 분명히 내가 하고 싶은 때와 장소랬어. 오늘은 아냐. 그리고 그 태도가 뭡니까. 뭘 해달라고 부탁할 거면 뭔지 제대로 말해야지요.]
[그..그거 말이에요.]
윤지는 누가 들을까봐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뭔데? 키스 해달라구?]
철근이 목소리를 높이자 주변 사람들이 잠깐 그 둘을 쳐다봤다. 윤지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세…섹스….말이에요.]
[우하하!!!]
철근은 정숙을 떨며 자신을 거부했던 여자가 자신이 입고 오라는 데로 입고 와서 섹스를 해달라고 말하는 상황에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아니었다.
물론 호텔에 올라가 요리할 자신도 있었고 자신에게 매달려 신음하게 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철근은 그녀를 원했다. 그녀가 마음 깊숙이까지 철근을 받아들이길 원했다. 흔해빠진 섹파나 바람 정도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려면 그녀는 자신이 그동안 지켜오던 것이 부질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가 진짜로 그녀를 정복해가는 첫걸음이었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단지 그녀의 단단한 성곽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었다.
[여보! 오늘은 내가 피곤해서 대낮부터 하면 너무 힘들어서 그래. 그냥 집에 가서 쉬고 밤에 하자.]
철근이 주변에 들으라는 듯 크게 말하자 윤지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안타까워했다. 주변 남녀들이 힐끔거리며 자기들 끼리 뭔가를 속삭이며 웃었다. 철근은 싱긋 웃더니 먼저 가겠다며 일어서서 나가버렸다. 여자가 혼자 그렇게 남자 주변에서 쑥덕거림이 심해졌다.
[어머! 윤지 아니니!]
윤지가 고개를 돌려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만나기 싫은.
[어… 정희구나. 오..오랜만이다.]
윤지와 대학 동기로 같은 피아노 전공으로 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던 둘이었다. 그러나 다른 점은 미모가 뛰어났던 윤지가 남자 교수들로부터 예쁨을 받고 선후배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동안 정희는 평범한 외모로 그러지 못하였다. 윤지가 결혼하며 음악계에서 떠난 후 정희는 독신으로 피아노에 몰입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해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터였다. 윤지도 사사건건 자신을 질투하며 해코지하던 정희가 미웠었다.
[누구야? 애인?]
윤지는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아…아냐. 그냥 일이 있어서…]
[호호 하긴, 저 남자 엄청 부자인 거 같던데 너랑은 안 어울리긴 한다.]
정희가 빠르게 스캔한 윤지는 구두에서 핸드백까지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형편이 짐작 갔다.
[잘 지냈어? 내가 바빠서..]
속이 긁혀 속상해진 윤지는 얼른 일어나 형식적으로 인사만 한 후 가려 했다.
[야 나 한달 후에 귀국 독주회 열어. 꼭 와야 해! 대학 동기들 다 오기로 했단 말이야.]
정희는 표 두 장을 윤지 핸드백에 억지로 넣더니 자기 테이블로 걸어갔다. 테이블에서 그녀를 포옹하는 남자의 뒷모습이 익숙했다. 대학 시절 은사님이었던 김교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