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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아내는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다 하루는 집에 가자 식탁에 으리으리하게 식사를 차려놓고 나를 반겼다. 언제 아팠냐는 듯이 나에게 애교를 떨며 침대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철근의 언질이 있을 때까지 아내와의 잠자리를 피했다.
그러다 다시 시름시름 앓았다. 일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 같아 아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었다.
[자기 요새 어디 아파?]
[아……아니요……]
[어디 아픈 사람 같아서…… 철근이 오라고 해볼까? 그래도 의사인데 진료라도 받으면……]
[싫어욧. 그 사람 얘기도 꺼내기 싫어요. 담부터 부부동반 모임엔 전 안 갈거야. 자기 친구 기분 나빠]
[뭘 그렇게 화내고 그래?]
[아……아니에요. 아무튼
아내는 내 말을 끊으며 격하게 반응을 보였다. 철근 말로는 차근차근 넘어오고 있다는 데 역시 아내는 넘어가질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조한 며칠이 지난 후 철근이 방문을 격하게 두드리며 내 검사실로 들어왔다.
[크크……
오늘부터야. 크크. 오늘 나한테 네 와이프가 전화했거든.]
쿵….
아무리 아내가 철근의 애무에 무너질 뻔 했다지만 스스로 연락했다니……
믿을 수 없었다.
[어..언제 어디서 보기로 했는데?]
[후후… 왜? 내가 성공할까봐 초조해? 걱정마. 소중히 훈련시켜서 돌려줄 테니.]
[언제.. 어디에서???]
[일단 잠자코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연락할게.]
철근은 자세히 알려주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전화기를 들어 집에 전화를 하였다.
[여보세요?]
아내였다. 긴장해있던 나는 힘이 풀려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여보세요?]
[어…나야. 집에 있구나]
[내가 어디 가겠어요. 방금 청소 끝내고 저녁 준비해놨어요.]
[저녁을 벌써?]
[아…나 이따 오후에 잠깐 나가봐야 하는데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나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무…무슨 약속인데?]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자기 모르는 애야. 고등학교 동기인데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네]
나는 아내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 많이 늦어?]
[잘 모르겠어요.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오후가 지나갔는 지 모르겠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애도 오늘 외할머니집에서 자고 온단다. 식어버린 저녁을 혼자 먹고 싶진 않았다.
오늘 어떻게 될 까.
정말 아내는 친구를 만나러 갔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친구가 철근이라면. 마음 속에 숨겨진 욕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내 가슴은 허락될 수 없는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두근거리는 건지.
내가 숙직을 하겠다고 스케쥴을 변경하고 근처 매점에서 소주 서너병과 과자 한봉지를 샀다. 오늘밤만 버티고 여기서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초조한 이 마음을 달랠 자신이 없었다.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참지 못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여보세요..]
[응 나야 자기야. 오늘 많이 늦어? 너무 늦길래 전화했어]
[아…..]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다.
[뭐라고?]
[아….아녜요…]
한참을 뜸을 들이며 답을 하지 않던 아내.
[늦…을거 같아….아….]
[응? 잘 안들려?]
[늦을 것 같아요. 갈 때 전화할게요. 먼저 자요]
말을 잘 잇지 못하던 아내가 빠르게 말하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걸어봤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전화기를 붙잡고 소주를 털어 넣었다. 어찌되고 있는건지…
못 마시는 술만 연신 들이키던 나는 숙직실에서 뻗고 말았다.
어제 소주 몇 병을 들이켰는지 정장 자켓에다 토하고 쓰러졌나보다. 방안에서 냄새가 진동하였다. 숙직실을 청소하고 토사물에 지저분해진 자켓을 가방에 구겨넣고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흔들거리는 걸음을 하며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일요일이라 주말을 즐기러 어디론가 흥겹게 놀러 가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아이들은 뭣도 모르고 재잘거렸지만 지하철 안의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로 끓어오르는 흥분에 모두 벌개져 한 곳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뜨거운 시선들을 따라가자 어느 여자가 눈에 띄었다. 사람이 많아 더웠지만 그 여자 때문에 더욱 지하철 안은 뜨거워졌다.
그 여자는 뒤로 돌아 있었는데 몸에 달라붙는 얇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 원피스는 워낙 짧아 여자의 팬티를 겨우 가리는 길이였고 얇은 탓에 몸에 달라붙어 몸매의 굴곡이 여실이 드러났다.
적당한 키에 마르지도 않고 살찐 것도 아닌 적당한 볼륨. 특히 찰지고 하얀 허벅지에서 시작되어 엉덩이와 허리로 이어지는 육감적인 라인은 그 중간에 속옷 흔적 없이 매끄럽게 올라가 터질듯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그 여자의 엉덩이를 바라보았고 주변의 남자들도 힐끔거리며 보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여자가 잠시 옆으로 몸을 돌렸을 때였다. 머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풍만한 엉덩이와 매끈한 허리에 어울리는 터질 듯한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브라로 인한 둥그런 라인을 그리는 게 아니라 좁은 어깨로부터 약간의 직선을 그리며 정상을 향해 각도를 이루고 주행했다. 정상에서는 하얀 원피스 아래로 거뭇한 꼭지가 도드라져 얇은 천 따위는 무시하고 서있었다. 정상을 넘자 바로 둥근 라인이 풍만한 가슴 아래를 마무리지고 있었다. 노브라였다….
그것도 하얀 순백의 원피스가 무색하게 색기를 가득 담은 가슴이… 몸을 다시 돌리자 그녀의 젖가슴이 흔들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내 쪽에 서있던 남자들의 안타까운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와 반대에 서있던 남자들은 눈동자에서 희열이 느껴졌다. 앗싸 보인다.
그때 옆에서 어떤 남자 손이 불쑥 나와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물론 힐끔거리며 보던 주변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부럽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고 싶었다. 저 풍만한 엉덩이를 만졌을 때 그 느낌. 그 감촉은 어떨까? 저런 색스러운 여자도 섹스를 하겠지? 그 새끼 부럽다. 아니, 지금이라도 저 엉덩이 주물럭거리는 저 새끼도 부럽다. 나도 만지고 싶다. 만지고 싶다.
여자는 어떠한 저항 없이 가만히 있었다.
제길. 저 여자랑 섹스하는 놈도 저 놈이구나. 역시 가진 놈은 다 가졌다. 주변 남자들의 아쉬움이 묻어나는 한숨이 들렸다. 내 옆에서 자기가 먼저 대쉬해보겠다고 티격거리던 대학생 둘은 그 꼴을 보는 순간 입만 쩝쩝거렸다.
전철 문이 열리자 그 커플이 전철에서 내렸다. 마침 나도 우리 동네 전철역이라 사람을 뚫고 내리는 순간 내 눈은 아까보다 두 배로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 사이로 드러난 남자는 철근이었다. 불길한 느낌에 사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자 여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린다.
나의 아내…... 윤지였다.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고 철근은 연신 싱글거리며 아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쿵쿵거리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뒤에서 조용히 그들의 뒤를 밟았다.
우리 동네 방향 입구로 나가기 위해 둘은 계단을 올라갔다. 아내는 짧은 치마가 신경 쓰이는지 핸드백으로 가리려 하자 철근은 킥킥거리며 손을 뻗어 핸드백을 뺏었다.
계단을 오르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 올라가려던 몇몇이 모두 위를 보고 돌처럼 굳어졌다. 육덕진 엉덩이를 흔들며 올라가는 아내의 짧은 치마가 들리자 하얀 허벅지가 드러났다. 계단 아래의 모든 남자들이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였다.
옆에서는 약속에 늦었는지 달려오던 한 중년의 샐러리맨이 계단에 서자 마법에 걸린 것처럼 멈추더니 느릿느릿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그뿐 아니라 남자라면 멈출 수 밖에 없는 라인이었다. 저 여자가 정말…… 내 아내인가. 추리닝 입고 쓰레기 봉투 두 손에 움켜쥐고 내려가던 그 아내 맞나……
그 때 아직 찬 겨울 바람이 계단 아래서 불어 올라갔다.
아내의 짧은 원피스가 펄럭인다.
“헉……”
주변 남자들은 동시에 숨을 멈추며 짧은 감탄의 소리를 뱉었다.
…….아내의 뽀얀 엉덩이의 골이 드러났다.
바로 앞에 펼쳐진 노팬티의 여자에 모두 아연실색하였다. 팔락이는 치마에 보이는 터질듯한 허벅지 사이로 다리를 올릴 때마다 보지털이 조금씩 삐져나와 반짝였다. 나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주저 앉을 뻔했다.
아내는 다른 손으로 치마를 가리려 했지만 철근이가 뭐라 하며 아내의 손을 낚아챘다. 아내는 살랑거리는 치마 속의 비밀을 계단 아래의 모든 남자들에게 열고 올라갔다.
아내는 다리를 꼬며 애써 다리가 벌어지지 않도록 애썼다. 허벅지 사이로 아내의 은밀한 속살이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았다. 계단 아래에서 눈 호강하는 남자들의 눈에 안타까움이 절절히 흘러 나왔다.
한가하고 나른했던 일요일 한낮, 지하철 계단에서 때 아닌 걸음의 교통정체가 발생했다.
우리 아파트 앞에 도착하자 철근이 이죽거리며 보내주었다. 철근이가 뭐라 소리쳤지만 아내는 뒤 돌아보지도 않은 채 집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밖에서 서성이다 겨우 집으로 들어섰다. 아파트 경비실에서 권씨가 갑자기 인사를 했다.
[어이쿠 오십니까? 어제 내외분이 둘 다 안 들어오셨네요.]
권씨가 고자질 하듯 아내가 안 들어왔다는 것을 나에게 말했다.
[아…… 그런가요?]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발을 끌며 집으로 들어갔다. 권씨가 등 뒤에서 능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문을 열자 집에 인기척이 없어 보였다. 침실 문을 여니 평상 시처럼 츄리닝을 입은 아내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왔냐고 물어보더니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꿈 같았다. 그러나 현실의 쓰레기통에는 하얀 원피스가 구겨져 있었다. 마구 찢어져 걸레가 돼버린 원피스 한 장.
그날 이후 아내는 다시 시름시름 앓았고, 철근은 연락을 두절한 채 해외출장을 나갔다.
병원 휴가를 내고 간호 차 일단 아내 곁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아내의 핸드폰은 물론 집전화로도 어떤 연락도 철근에게 오지 않았다. 아직 확실한 건 없다.
답답한 시간만 속절없이 지나갔다.
윤지는 남편에게 끝내 토로하지 못하고 말았다. 자신만의 이 은밀한 비밀이 커질수록 이 비밀은 윤지의 몸을 잠식하고 있었다. 어디서 밀려오는 지 모를 우울하고 울적한 마음이 커졌고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해졌다.
[이번 정류장은 OO아파트 입니다.]
따뜻해진 햇살을 받으며 아침 일찍 윤지는 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외출을 하였다. 마을버스에 몸을 싣고 머리 속을 비운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우아하게 웨이브 진 검은 머리에 20대 부럽지 않은 하얀 피부의 윤지는 자신을 다스리려는 듯 더욱 청순하게 화장을 하였다. 분홍빛 립스틱이 반짝이며 도톰한 입술에 생기를 돋게 하였다. 꾸미고 나오니 그나마 울적했던 기분이 나아진 듯 했다. 윤지는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눈에 초점을 놓은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흐흠…]
앉아있던 윤지 앞에 어떤 남자가 섰다. 배가 두툼히 나온 중년으로 생각되는 남자가 시야를 가렸다. 멍하니 있던 윤지는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남자의 배를 바라보게 되었다.
‘참 뚱뚱하네.’
그러다 허벅지를 보게 되었다.
‘허벅지는 배에 비해 날씬하네.’
남자의 몸을 훑어보게 되자 철근의 단단한 몸이 떠올랐다. 자신을 들쳐 업고도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이 육동치는 철근의 허벅지가 떠오르고 그리고 그 중심에 불룩한 팬티가 떠올랐다. 윤지는 다소 숨결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자연스레 앞에 선 남자의 가운데로 시선을 옮겼다.
‘이 아저씨 건 어떨까’
남자들이 버스에 앉아 앞에 서있는 여자를 멍하니 보다 여자 몰래 그녀의 가슴과 은밀한 곳을 상상해보듯 윤지는 멍하니 앞에 선 남자 아랫도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흐흠…]
남자들의 그런 시선을 여자들이 모른 척하면서도 알고 있듯, 윤지 앞에 선 남자는 윤지의 그런 시선을 자신의 아래에 느끼자 헛기침을 하였다. 그러나 정신을 빼놓은 윤지의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남자는 아래가 다소 묵직해짐을 느꼈고 윤지의 시선에 바지 앞섬이 부풀어 오르는 게 보이자 더욱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어디 가시나봐?]
윤지는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권부장이었고 지금 아파트경비원인 권씨였다. 권씨가 음흉한 미소를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에….]
윤지는 당황하여 말을 얼버무리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은근히 말을 놓으며 미소 짓는 권씨의 능글 맞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미쳤나봐. 나 미쳤나봐.]
윤지는 혼자 도리질을 하며 그런 상대에게 그러한 호기심을 품었다는 것에, 그리고 그 호기심의 내용에 무기력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윤지는 거리에 서서 멍하니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러 더욱 자신의 처지가 혼란스러웠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자 명함 하나가 잡혔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OOO]
윤지는 이런 고민을 남에게 털어놓을 생각에 두근거렸다. 비록 의사지만 병원 앞에서 오래도록 서성거렸다. 철근이 소개시켜준 병원은 개인병원으로 의사가 한 명뿐인 작은 병원이었다. 안에 들어서자 분홍빛의 따듯한 인테리어가 다소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서오세요]
의사 가운을 자켓으로 리폼하여 몸에 달라붙는 정장을 입은 간호사가 인사를 하였다.
[진료 오셨어요? 예약하셨나요?]
[네..]
다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윤지가 대답을 하였다. 간호사는 부드럽게 웃으며 답하였다.
[아 이윤지씨시죠? 자켓이랑 핸드백은 저 주시고, 옆 탈의실에서 가운으로 갈아입으시면 진료실에서 호명 해드릴거에요.]
[네? 가운이요?]
[네 저희 병원은 처음이시라 잠깐 설명드리겠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소파에 앉아 편한 자세로 상담을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옷이 불편하면 위축되고 상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요. 그래서 요새 신경정신클리닉에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진료를 진행합니다. 저희도 그렇고요. 이쪽이 여자탈의실이에요.]
윤지는 간호사 말대로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벗었다. 따뜻한 실내 공기 속에 편안한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원피스를 벗자 하얀 속옷이 드러났다.. 탈의실 안에 설명문에는 ‘몸을 갑갑하게 하는 것은 마음을 닫는 것과 같습니다. 벨트, 브래지어, 꽉끼는 스타킹 등 갑갑한 복장은 벗으시고 가운만 착용하시길 권합니다.’ 라고 쓰여있었다.
살색 스타킹을 내리고 윤지는 브래지어도 풀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다소 후련함을 느꼈다. 큰 가슴에 꽂히는 남자들의 시선이 언제나 부담스러워 윤지는 한 치수 작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곤 했기에 익숙해졌어도 브래지어를 풀었을 때 해방감을 느끼곤 했다. 풍만한 그녀의 하얀 유방 곁으로 동여매었던 브래지어 끈 자국이 남아있었다.
하는 김에 귀고리도 풀고 동여맨 머리끈도 풀었다. 팬티까지 벗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가운을 입고 반대편 문을 열고 나오자 아는 얼굴의 여자가 자신과 같은 가운을 입고 큰 타월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윤지씨 아니에요?]
철근의 아내 신민아였다.
[아. 민아씨. 웬일이에요?]
[호호 제 병원이에요. 남편이 명함 주었다고 하던데 이름도 안보셨어요?]
윤지는 명함에 있는 신민아가 그 이름인 줄 생각해내지 못했다. 다만 원장이 같은 여자라 말하기 편하리라 생각했다.
[어서 오세요. 잘 왔어요. 병원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음…. 다른 세상에 왔다고 생각해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같은거? 호호 여자들끼리 수다 떤다고 생각하면 되요. 진료비는 내가 안 받을게요]
윤지는 민아가 건넨 덥혀진 타월을 받아 몸에 두르자 온기에 포근함을 느꼈다. 민아의 안내로 들어간 진료실은 진료실이 아니라 정말 고급호텔의 방 같았다. 한 쪽에는 뒤로 젖혀지는 안마의자 같은 것이 있었고 한 쪽에는 의사가 앉는 것으로 보이는 다소 딱딱한 의자가 있었다.
소파에 앉자 민아가 상담을 시작했다.
[요새 잠 잘 자요?]
[아뇨. 음….]
윤지는 꿈 이야기를 하려다 머뭇거렸다. 아무래도 민아의 남편인데.
[음… 그럼 요새 윤지씨 머리 속에 불쑥불쑥 떠오르는 게 있어요?]
[음…. 글쎄요…]
또 말문이 막혔다.
[원래 이렇게 상담은 안 하는데 오늘은 첫날이니까 논다고 생각하고…그럼 일단 제 얘기 해볼까요. 저는 요새 무지 잘 자요. 왜냐구요? 앓던 이가 빠졌으니까 호호. 앓던 이가 뭐냐면요 남편이거든요. 하긴 윤지씨도 그런거 아닌가? 아닌가? 호호 민철씨야 성실하니까.]
윤지는 깜짝 놀랐다. 철근이 그새 이혼을 했다니.
[정말요? 몰랐어요. 지난번에 부부모임에도 오시고.]
[아~ 그거요? 전남편 부탁이라 나간거지 뭐.]
[아….힘드시겠어요.]
[뭘 힘들긴요. 약간 허무하긴 해요. 그 남자 되게 괜찮거든요. 매너 좋고 밤에 얼마나 화끈한데요 호호.]
윤지가 밤일이라는 말에 얼굴이 붉어졌다.
[어머. 부끄러워하긴~ 남녀 사이에 섹스 빼면 뭐가 있겠어요. 하지만 그 남자는 몇 년전부터 멀어지더라구. 어차피 내 남자로 있을 남자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되니 힘들더라구. 그래서 그냥 내가 찼어요. 벌써 일년 되었지. 요새 나도 만나는 남자도 생겼고, 그 인간도 그 인간에 맞는 여자를 만나야 그 바람기가 없어질텐데 걱정이에요.]
[아….]
[그럼 윤지씨 이야기 해볼까? 잠을 왜 못자요? 남편이 괴롭히나? 호호 나처럼?]
[아니요. 그건 아니고.]
[어머 윤지씨 같은 미인을 옆에 두고 밤에 괴롭히지 않으면 남자도 아닌데. 섹스는 일주일에 몇 번해요? 아니 하루에 몇 번해요?]
[아니에요~ 일주일에 한번정도?]
[음 반응보면 아닌데. 한달에 한 번인가보구나]
[네에? 사실은…. 요새 거의 안해서…]
[어머… 그럼 안되지. 우리 나이 여자는 섹스를 해야 예뻐지고 활력도 생겨요. 그럼 야한 꿈 꾸냐고 잠을 못자는구나. 낮에도 불쑥불쑥 야한 생각 나고 그러지?]
[아ㅎㅎ….네 사실은 좀 그래요.]
윤지가 이제야 솔직히 말하자 민아가 살짝 흘겨보았다.
[거봐. 여자가 이십대 후반부터는 섹스를 주기적으로 해야 건강해져요. 이건 의사로서 하는 말이에요. 사실 심적 고통이나 병이 결국 섹스로부터 대부분 시작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많아요. 근거도 있고요. 이 세상에 섹스를 안 하는 것 이외에 잘못된 섹스란 없단 말도 있죠. 마치 운동을 안하는 것처럼 정신건강에 해악해요. 윤지씨는 거기서부터 일단 문제가 있어요. 그 꿈 속의 섹스 하는 대상이 어떤 특정인이에요?]
윤지가 머뭇거렸다.
[남편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아니. 이런 꿈은 남편이 아닌 게 대부분이죠. 그건 윤지씨가 진짜 그 남자랑 하고 싶다는 것 일수도 있지만 단지 윤지씨의 잘못된 성생활이 투영되어 나타나는 현상일 수도 있어요. 친척이나 가족이래도 괜찮아요. 말해보세요.]
[아니에요. 친척이나 가족은. 다만 말씀드리기가….]
[혹시 철근?]
[아..아니에요!]
강하게 부정하자 민아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그럼 꿈에 대해 말해봐요.]
윤지는 꿈 속에서 자신을 추행하는 남자에 대해 말하였다. 그의 억센 손길과 짐승 같은 포효. 두려움에 소리지리지만 그 아래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는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어진 민아의 질문은 남편과의 섹스였고 윤지는 극도로 답하기를 꺼려했다.
[음. 윤지씨에게 지금까지 섹스는 잘못된 것이에요. 약간 행동교정이 필요한 것 같은데 제가 도와줄게요. 윤지씨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해요. 자 편안하게 여기 누울까요? ]
민아는 윤지가 앉아있는 소파를 뒤로 젖혔다. 그러자 다리 받힘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다리를 굽히고 누운 자세가 되었다. 가운이 올라가자 윤지가 손으로 잡아 가리려 했다. 민아가 부드럽게 그 손을 잡아 제자리에 놓았다.
[윤지씨는 지금 다른 거 신경 쓰지 말아요. 편안하게 마음을 풀고 열까지 세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