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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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둘은 며칠 전 철근의 방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민철은 김철근과장의 호출을 받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문을 열고 나오는 선글라스를 낀 여자와 부딪힐 뻔 하였다. 

[죄송합니다.]

그녀는 민철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까닥하고 나갔다. 고급 향수 냄새가 철근의 방안에 짙게 남아있었다. 

[뭐야. 그새 또 새 애인이야?]

[애인? 후후 글쎄다. 남일에 신경 끄고,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뭔데?]

[아 민철이 너 요새 돈 필요하다고 했지?]

[엉, 앞으로 며칠은 야근하려고]

[아 근데 좋은 요청이 있어서. 너 낙도 검진사업 이번에 우리 병원에서 따낸 거 알지? 그게 금요일 점심에 출발해서 금요일 밤이면 끝나거든. 방사선 촬영기사가 한 명 필요해. 거기서 하루 자고 토요일 일찍 서울로 출발하는 일정인데 수당은 야근수당보다 열 배. 어때? 하루 저녁에 할 만하지 않아?]

야근해서 집에 계속 못 들어가느니 하루 저녁에 버는 게 당연히 나았다. 민철은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아 근데 조건이 있대. 이 사업이 끝날 때까지 담당 인력이 바뀌면 안 된다고 그러더라.]

그야 오케이.

돌아서는 민철의 어깨를 철근이 다시 잡았다.

[야 할 말이 또 있는데.]

[뭔데?]

[너 수영장에서 봤지?]

[……]

민철이 말이 없자 철근은 말을 이어갔다.

[근데 말리지도 않고… 지금 날 때리지도 않고…]

[그… 그건….]

[너희 부부 요새 밤일 제대로 못하지? 아니. 제대로 한 적이 없지?

네 와이프 음탕한 몸을 가졌더군. 그것도 진한 암캐의 몸을. 흠… 멋진 여자야. 한 남자에게 묶여서 그렇게 집안에서 애나 보는 여자로 살기에는 뜨거운 몸을 가졌다구. 평소에 윤지씨 보면서 한 번도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는데…… 후후 그런 면이 있을 줄이야. 그건 네가 부정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뭐….뭐??]

[네가 부부관계가 안 된다길래 워터파크에서 너에게 부족한 게 뭐인지 보여주려고 오라고 한 거였는데… 그건 너도 눈치채지 않았나.]

사실이었다. 민철은 철근을 워터파크에서 만나는 순간 그가 일부러 이런 만남을 만들기 위해 민철에게 표를 준 것을 깨달았다. 

[내 의도를 알았다면 정상적인 남편이라면 거기에서 와이프 손을 붙잡고 집에 가버려야 했어. 하지만 넌 그렇지 않고 와이프가 딴 남자랑 노는 꼴을 보고 있었지. 그리고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 데 와이프 사진을 소라넷에 올리고. 내가 보여달라니까 캠으로 와이프 몰래 생중계도 하고 말야. 그러니까…. 넌 와이프가 음탕하게 바뀌는 거에 흥분하는 거 같은데. 맞지?]

[……]

[음…. 긍정하긴 좀 어렵겠지. 내가 기회를 주지. 네가 원하는 게 뭐냐.]

민철은 자신의 와이프가 색녀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겉으로 정숙함과 남편에 대한 일편단심은 지키면서도 속으로 끓어오르는 그녀를 보고 싶었다. 이율배반적인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민철은 잃을지 모르는 많은 것이 떠올라 선뜻 답하지 못했다. 

[물어 볼 때 솔직히 답하는 게 좋을거야. 내 얘기를 좀더 할까? 사실 윤지씨가 워낙 예쁘니까 관심이야 있었지만 좀 심심한 여자 같아서 흥미가 그리 크진 않았어. 하지만 케이블카에서 어쩌다보니 내 앞에서 붙어있게 되었고 꼴리더라구. 근데 만져보니 윤지씨 몸이 어찌나 쫀득하던지 솔직히 놀랐다. 천하의 철근도 몰라봤던 보석이 숨어있었다구. 거기에다 수영장에서 어찌나 몸매가 착하던지. 게다가 다리 마사지로만 느낌을 숨길 수 없는 뜨거운 몸까지 가졌다니. 하하 그렇게 청순해보이는 현모양처가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보지 말라구. 네 결정을 돕기 위해 해주는 말이니까. 그래서 난 말야, 네가 어떻게 하던 네 와이프를 따먹어 보려구. 이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그 여자는 내가 본 여자 중에 정말 희귀한 보물 같거든. 

네가 만약 허락해주고 약간의 협력을 해준다면 난 너에게 네 와이프를 유혹하는 과정을 모두 오픈하지.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게 있음 들어주고. 어차피 내가 따먹을 거 그 편이 낫지 않아?]

민철은 철근의 여자 후리는 솜씨를 익히 알고 있었다. 민철은 철근에 의해 정복되는 와이프를 떠올리자 흥분을 느꼈다. 하지만 실수 한 두번한 것 가지고 윤지가 정말로 그렇게 쉽게 철근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윤지가 그렇게 쉬운 여자인 줄 알아? 웃기지 마.]

[맞어. 쉽지 않지. 그래서 더 흥분되지 않아? 네가 조금만 도와주면 돼]

[미쳤구나. 어떤 미친 놈이 지 와이프가 바람나서 도망치게 도와주냐]

[왜 도망쳐? 나도 가정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몸이야. 남자는 바람 피워도 가정만 지키고 앉아있으면 결국 다 용서하게 되어있어. 내가 지금 이 자리를 버리고 네 와이프랑 손 잡고 도망칠 한심한 놈으로 보이냐? 네 와이프도 도망 같은 거 갈 여자도 아니고 설사 그래도 내가 싫다고 할 걸. 그러면 결국 아무리 바람 난 여자도 지 서방한테 돌아가 있게 되어있어. 갈 데가 있어야 가지]

그건 맞는 말이다. 그는 숫사자였다. 허구한 날 바람피고 게을러도 남의 것을 먹기 위해 지 영토를 거는, 그런 인간다운 실수는 저지르지 않는다. 

[나 좋다고 윤지를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아. 원하지 않는 관계를 갖게 하고 싶지도 않고]

[윤지씨? 윤지씨야 말로 그대로 두면 자기도 모르는 채 서서히 말라갈걸. 그런 몸을 자신이 가졌는지도 모른 채, 자기가 왜 우울한지도 모른 채. 내가 약속하지. 적어도 네 와이프가 집 버리고 도망 못 가게 한다. 둘째로 네 와이프를 강제로 어떻게 하지 않는다. 겁탈 따윈 없을 거야. 결정을 돕는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네 와이프가 허락하는 선까지만 간다.]

민철은 철근의 내민 악수를 받고 말았다. 그 악수로부터 시작하는 소용돌이가 어떻게 커지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로. 

…………………………………………………..

철근이 수화기 너머에서 웃기만 하였다.

[어떻게 된 거야.]

[후후… 정작 일이 진척되는 것 같아 불안한가 보군]

민철은 입이 탔다. 설마 아내가 벌써 외간남자를….

[역시 윤지씨는 쉽지 않은 여자야. 웬만한 유부녀들은 그 정도에선 눈치 채고 모르는 척하며 넘어오는 데 말야. ]

민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민철은 아내를 시험에 들게 해놓고 흥분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내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랬다. 윤지가 철근의 유일한 실패로 끝나길 바랬다. 

[그…그치…? 무슨 뜨거운 몸은… 역시 아닌 것 같아. 야 철근아 그만 하자]

민철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야 무슨!!! 지금 보내는 사진이나 봐봐]

민철은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보는 순간 믿을 수 없었다. 윤지의 정장 한 벌과 구두 사진이 왔고 이어 충격적이게도 철근의 손에 들린 빨간 브래지어 사진이 떴다. 민철은 그 속옷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윤지가 결혼 전에 회사 남자직원들에게서 받았다는 속옷. 

숨겨놓은 그 속옷을 발견하고 입어보라고 졸랐지만 아내는 한번도 그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 속옷이 대체 왜 철근에게 있지?

[이…이게 왜….]

[그리고 지금 소라넷이 접속해봐. 그리고 전화해]

민철은 다급히 스마트폰으로 소라넷에 접속했다. 철근이 말한 코너에 가보니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여자가 빨간 끈팬티만 입은 채 뒤돌아있는 전라의 뒤태. 농염한 엉덩이. 늘씬한 각선미와 단단한 허리. 그리고 옆으로 드러난 풍만한 가슴의 옆라인.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내였다. 저 속옷을 입고 철근에게 전라로 서있었다는 것만이 믿기지 않았을 뿐.

클릭수는 짧은 시간 내에 이미 천명을 넘겼고 댓글이 주르르 달려있었다. 

-바로 팬티 찢고 박아주고 싶네요-

-뒤태가 음란한 년이네요..-

-남편이 알고 있을까요. ㅋㅋ-

등등…… 입에 담기 어려운 저속한 리플들을 사진 속 아내는 전라로 받고 있었다. 

뭇 남성들이 아내의 전라를 향해 딸딸이를 치고 있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민철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느끼며 자위를 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단지 야한 사진이 아니라 그 사진을 찍었던 철근의 끈적한 욕망 어린 시선이 사진에서 넘쳐났다.

아내가 대체 왜 철근 앞에서 옷을 벗은 건지. 그리고 왜 가슴을 드러낸 드레스를 입고 집으로 온 것인 지. 철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봤지? 크크]

[설마….]

[아직 여기까지야. 하지만 쉽지 않은 여자야. 대개 여기까지 가면 눈치 채고 모르는 척하며 다리 벌리곤 하는데. 손맛이 매섭더군. 후후.. 더욱 갖고 싶어졌어. 여자가 너무 쉬우면 재미없지.]

민철은 실망감 반, 안도감 반이 들었다. 그래도 벌써 옷을 벗다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저런 속옷을 입고 옷까지 벗다니. 민철은 아내가 낯설었다.

[후후 이제 시작이야. 이번 주말에 시간이나 비워놔. 부부 동반 모임 해보자고. 아직 내가 따로 만나자면 오늘 일도 있어서 안 볼테니까.]

민철이 현관문을 열자 윤지가 밝은 얼굴로 맞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아이를 안고 있는 아내의 모습 어디에도 사진 속 전라의 여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 민철은 다른 여자를 찍어 놓은 거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아내 몰래 뒤진 빨래통에서 붉은 드레스와 빨간 티팬티를 찾았다. 

부들거리는 손으로 티팬티를 펴보자 아직 아내의 온기가 남아있었고 촉촉했다. 

시큼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이 여자가….]

아내가 철근에게 젖어버린 것이다. 정숙했던 아내가 철근의 손놀림에 젖었다니 믿기지 않았다. 서둘러 빨래통에 다시 넣은 후 민철은 빨래를 널고 있는 윤지에게 다가가 이번 주말에 부부동반 모임이 있으니 가자고 말했다. 

뭔가를 털어버리려는 듯 온 힘을 다해 심각한 표정으로 빨래를 털던 윤지는 남편의 말에 웃으며 그러자고 하였다. 

민철은 그 동안의 일을 철근에게 들었고 그 이야기보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지내는 아내에게 놀랐다. 간혹 허공을 보다 쉬는 한숨이 전보다 잦아진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철근에게 젖어 신음하고선 정숙한 척은….]

민철은 그런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꼈지만 아직 정복되지 않고 철근의 뺨을 날린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좀 더 아내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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