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천사의 불길
1
욕실 문이 열리면서 박지현을 가로 안은 강하영이 모습을 드러낸다.
벌거벗겨진 채 가로 안긴 박지현의 팔이 강하영의 목을 감고 있다.
박지현을 가로 안고 있는 강하영도 벌거벗은 몸이다.
"하영 씨 이 아파트 마음에 들어?"
박지현이 목욕 직후의 발그레해 진 얼굴로 묻는다.
"아가씨! 공연한 짓 하셨어요!"
"나 호텔에서 남의 눈 피해가면서 하영 씨 만나는 싫었단 말이야!"
"그렇다고 결혼도 하지 않은 아가씨가 숨겨 놓은 정부 만나려고
아파트까지 삽니까?"
강하영의 말투에 농담 기가 담겨 있다.
"정부? 호 호 호! 하영 씨가 내 정부야?"
박지현이 재미있다는 눈으로 강하영의 눈을 바라보며 깔깔대고 웃는다.
"그래요. 강하영은 몸을 숨기고 그림자처럼 아가씨를 모실 정부지요!"
"처녀가 정부 가진다는 것 우습다?"
박지현이 여전히 깔깔대는 목소리로 말한다.
"처녀가 정부 가지는 것 보다 더 우스운 게 있는데요?"
"그건 또 뭐야?"
"학생 신분이 정부 숨겨 놓은 것요!"
강하영도 여전히 장난 투다.
"그래! 정말 그렇구나! 호 호 호!"
그 사이 박지현을 가로 안는 강하영이 소파까지 와 있다.
박지현을 가로 안은 그대로 소파에 앉는다.
벌거벗은 박지현이 어머니 무릎에 가로 안긴 어린 아기 같은 자세로
강하영에게 안겨 있다.
"하영 씨! 이 아파트 마음에 드는지 아직 대답하지 않았잖아?"
박지현이 가로 안긴 그대로 강하영을 올려다보며 어리광처럼 말한다.
"마음에 들어요. 아주!. 하지만 여대생과 백화점 일개 과장이 밀회하는
장소치고는 너무 호화롭군요!"
강하영이 자기 무릎 위에 가로 안겨 두 가슴에 우뚝 솟아 있는 젖무덤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나 하영 씨 위해 인테리어 돈 아끼지 않았어!. 저 카펫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수제품이야!"
박지현의 말에 강하영이 잠시 놀란다.
백화점 관리과장인 강하영은 물가에 밝다.
아파트 전체가 50평이다.
50평 바닥 전체가 같은 카펫이다.
박지현의 말대로 50평 전체 바닥이 이탈리아 직수입한 수제품이라면 5천만
원은 넘어선다.
가구도 최고급 수입품이다.
거실 천장과 침실 천장의 샹델리아는 프랑스산 크리스털 수제품이다.
명인 손으로 만든 프랑스산 크리스털 샹델리아는 억대를 호가한다.
강하영이 대충 계산해 보아도 지금 이 아파트의 실내 장식에 들어간 돈은
억 단위로 계산하는 게 빠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재벌급 기업 상속녀의 철없는 낭비라기 보다는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여자가 자기를 사랑해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뜨겁고도 순수한 정성이 담겨 있다.
"회장님께서 아시면 어떻게 하시려고 이러세요?"
강하영이 자기 무릎에 가로 안겨 있는 천사 같은 여인의 젖가슴을 계속
어루만지며 말한다.
"할아버지도 알고 계셔!"
박지현이 장난스러운 눈으로 웃으며 강하영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웃으며 바라보는 박지현의 눈에는 뭔가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빛깔이 담겨
있다.
"회장님께서 아시다니요?"
강하영이 놀라 반문한다.
"한 해에 30억원 이상 세금을 내지만 재산관리는 할아버지가 해 주셔!.
그런 내가 할아버지에게 허락 받지 않고 어떻게 10억원을 한꺼번에 뽑아 쓸
수가 있겠어?"
"아가씨! 지금 지금 세금을 30억원 이상 낸다고 했습니까?"
강하영이 또 한번 놀라 묻는다.
박지현이 한해에 세금을 30억원 이상 납부한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다.
"왜 그렇게 놀라? 나 거짓말하는 것 아니야!"
"아니? 아가씨가 어떻게?"
"하영 씨 모르고 있었어?"
박지현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눈으로 강하영을 바라본다.
"뭘요?"
"에메랄드 백화점 주식의 75%가 내 꺼야!"
"네?"
강하영이 세 번째 놀란다.
강하영이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에메랄드 백화점은 전국에 아홉 개의 지점이 있고 전국에 있는 200여개의
에메랄드 스토어체인도 에메랄드 백화점 산하 기업이다.
제주도와 서울 그리고 부산에 있는 세 개의 에메랄드 관광 호텔의 최대
주주도 에메랄드 백화점이다.
이 모든 계열기업을 관리하는 곳이 그룹 본사다.
그러나 그룹 본사는 형식상 산하기업들을 관리하는 본부일 뿐 실질적인
재산은 없다.
이것은 에메랄드 그룹의 모든 재산은 에메랄드 호텔 소유라는 뜻이다.
에메랄드 백화점은 비상장 기업이다.
비상장 기업도 자산 가치를 공식적으로 발표는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따지는 사람이 없다.
그런 특성 때문에 비공개 법인은 대주주의 편의에 따라 재산가치를 늘려
발표할 때도 있고 축소해 발표할 때도 있다.
에메랄드 백화점의 경우 공인 기관에서 실사한 재산가치를 발표한 일은
없지만 추산은 가능하다.
백화점의 자산은 영업장인 백화점 건물과 부속 부동산 그리고 상표
가치다.
백화점은 특성상 번화가 가운데서도 요충지에 위치한다.
당연히 땅값도 비싸다.
에메랄드 백화점 본점 격인 강남점이 서 있는 땅값만도 평당 2천원을
호가한다.
전국에 중요 도시에 여섯 개의 백화점과 관광호텔이 있다.
백화점과 관광호텔 사업 확장을 위해 사 놓은 부동산도 전국 곳곳에 있다.
업계의 추산으로 에메랄드 백화점의 순수 재산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조원은 넘어 설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겉으로 나타난 재산이다.
여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백화점과 스토어체인의 브랜드 가치와 또 회장
일가가 소유하고 재산과 부동산까지 합치면 전체 재산가치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현실에서 박지현이 에메랄드 백화점 주식의 75%를 소유하고 있다는
건 재산이 최하 가치로 계산해도 4조원이 넘어 선다는 뜻이다.
강하영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아버지 어머니가 항공기 사고를 당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어느 순간 예고없이 갑자기 닥쳐온다는 걸 새삼 절감하신
모양이야!"
박지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사고 때 아버지는 에메랄드 백화점 사장이었고 주식 30%를 가지고
계셨어! 어머니도 주식의 5%를 소유하고 있었고. 그게 모두 나에게 상속되고
또 아버지 어머니의 사고 보상금과 생명보험 그리고 다른 재산들도 모두
나에게 상속되었어!"
강하영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젖가슴을 끌어간다.
"주식을 뺀 나에게 상속된 모든 재산을 정리해 현금으로 만들었고
할아버지는 그 돈을 받고 나에게 주식을 파는 형식으로 백화점 주식 10%를
양도했어!. 그때 내 나이가 아홉 살이었고 난 아홉 살에 이미 에메랄드
백화점 주식 45% 소유한 대주주가 되어 있었던 거야.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외부에는 숨겼어. 할아버지가 왜 숨겼는지 지금을 알 것 같애"
외아들과 며느리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 현실 앞에서 에메랄드 백화점
회장인 박태진은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를 대비해 손녀인 박지현에게 재산을 양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에메랄드 백화점은 비상장 기업이다.
비상장 기업은 재산 가치일 적당히 숨기면 주식 가격 가치 자체를 낮출
수가 있다.
거기다 처음부터 증여를 위한 매매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이 협의하면 또 가격을 상당한 수준까지 낮출 수가
있다.
이런 제도상의 맹점을 활용해 주식 양도를 해 간다.
아버지 어머니가 불행을 당한 직후 박지현은 에메랄드 백화점 주식의
45%를 소유한다.
다음해 결산에서 에메랄드 백화점의 순수 이익금의 45%는 당연히
박지현에게 돌아간다.
여기서 세금을 공제한 현금으로 또 할아버지에게 주식을 매입한다.
이런 식으로 지난 10년 주식을 매입한 박지현은 에메랄드 백화점의 주식
75%를 소유한 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다.
그러면서도 박지현이 에메랄드 백화점 최대 주주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것도 에메랄드 백화점이 비상장 기업이라는 특성이 원인이다.
비상장 기업도 결산 공고의 의무는 있다. 그러나 주식 분포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
거기다 75%의 주식을 소유한 것은 박지현이지만 주주의 권리 행사는
할아버지인 박태진에게 위임되어 있다.
이것도 박지현이 75%를 소유한 절대 주주라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에메랄드 그룹 내부에서조차 박지현이 미래의 상속자일 뿐 주식 75%를
소유한 지배지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강하영이 멍한 눈으로 박지현을 바라만 보고 있다.
"하영 씨!"
박지현이 강하영을 올려다본다.
"네! 아가씨!"
"나는 말이야 보통 여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할 줄 몰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라면조차 내 손으로 끓일 줄 모르고 커피도 내 손으로 타 마신
경험이 없는 그런 여자야!"
말을 마친 박지현이 부끄러운 표정으로 미소짓는다.
강하영은 박지현의 말을 이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태진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박지현을 끔찍이 보호했을 것이다.
마치 공주처럼 아꼈을 것이다.
그런 박지현에게 여자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을 시켰을 리가 없다.
"나 할아버지께 말씀드렸어. 나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해보고
또 배워 놓고 싶다고!"
강하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일을 집에서는 할 수가 없다는 말도 했어. 아무도 나에게 그런 일을
하게 해 주지 않거든?"
강하영이 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일을 해보고 배우기 위해서 아파트를 마련해 가끔 거기서 혼자
살면서 여자가 하는 일을 해 보고 또 배우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잘 생각하셨다며 아파트를 사라는 허락을 해 주셨어"
박지현이 말을 끊고 살짝 미소 짓는다.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불쑥 오시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나를 데려 왔지요?"
강하영이 철없는 동생을 바라보는 눈으로 박지현을 내려다보며 젖가슴을
가만히 쥔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파트를 사겠다는 이유가 또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계시는 것 같아!"
"아가씨!"
강하영이 놀라는 눈으로 박지현을 바라본다.
"아파트를 사도 좋다는 허락을 하실 때 할아버지는 이런 말을 하셨어.
지현이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전 재산을 주고서라도 사라고!"
말을 한 박지현이 무릎 위에 가로 안긴 그대로 두 팔로 강하영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살짝 미소 짓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올려다보는 눈에 뜨거운 정이 넘쳐흐르도록 가득 담겨 있다.
"아가씨는 어떤 경우에도 불행하지 않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강하영이 젖가슴을 쓸며 뜨겁게 말한다
"나 하영 씨 말 믿어!. 그리고 하영 씨 시키는 대로 미국으로 갈 거야!"
"잘 결심하셨습니다"
"하영 씨!"
"네! 아가씨!"
"하영 씨가 나 대신 백화점 맡아 지켜 줘!"
"아가씨?"
강하영은 백화점을 맡아 지켜 달라는 박지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할아버지께 백화점 이사로 추천할 거야!"
"그건 안됩니다!"
강하영이 단호히 말한다.
"왜?"
박지현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아가씨! 내가 노출되면 일을 하기 어려워집니다!"
"하영 씨가 증거를 잡아 주면 모두 자를 거야!. 할아버지도 그러겠다고
했어!"
"회장님께?"
"부정을 조사하는 사람이 누구라는 이름은 말하지 않았어!. 하지만
조사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은 했어.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게 하영 씨라는 걸
눈치 채고 있을 거야!"
"회장님이 어떻게요?"
강하영이 의아한 눈길로 박지현을 내려다보고 있다.
"하영 씨! 미안해!"
"네?"
"나 할아버지께 하영씨 과장으로 승진시켜 달라는 부탁을 했어!"
"그랬군요!"
박지현의 말을 들은 강하영은 스무 아홉 살의 자기를 관리과장으로 발탁한
배경을 처음으로 알게 된다.
"하지만 하영 씨는 내 부탁만으로 과장으로 승진한 건 아니야. 내 부탁을
받는 할아버지가 하영 씨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이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판단을 하고 승진시킨 거야!"
"회장님께는 내 말을 뭐라고 했지요?"
"아주 친한 친구 오빠라고 했어!"
박지현이 살짝 웃는다.
"아가씨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한 거짓말이었군요!"
강하영이 빙그레 웃는다.
"나 사실을 거짓말에 서툴러!"
박지현이 귀엽게 상을 찌푸린다.
"그래서 서희경의 다그침에 고백한 거고요!"
강하영이 빙그레 웃는다.
"어마. 하영 씨가 희경이를 어떻게 알어?"
박지현이 동글 해진 눈으로 강하영의 올려다본다.
"난 서희경을 직접 모릅니다"
"그럼?"
강하영의 눈빛에 호기심이 가득차 있다.
"서희경 양의 언니가 우리 백화점에 근무합니다!"
"희경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자기 언니가 백화점에 근무한다는 걸 알면 아가씨가 부담 가질까 봐 말을
하지 않은 거겠지요!"
"그래. 그걸 거야. 희경이는 그런 아이야!. 그런데 내 애인이 하영 씨라는
걸 희경이가 어떻게 알았지 "
박지현이 고개를 갸웃한다.
"희경 씨도 나를 모릅니다!"
"무슨 소리야?"
강하영이 며칠 전 서진경에게 들었던 얘기와 그때 있었던 일을 말한다.
"희경이 언니 굉장히 센스가 빠른가 봐!"
박지현이 살포시 미소 짓는다.
"아가씨! 영업 3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직적인 부정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어떡하면 좋지?"
"서진경 대리는 믿어도 좋습니다"
믿어도 좋다는 말에 박지현이 강하영의 눈을 바라본다.
"영업1 2 3과를 통합해 관리하는 영업부를 신설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영 씨가 부장 맡을 거야?"
박지현이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확인하듯 묻는다.
"말했잖습니까?. 내가 노출되면 앞으로 일하기가 어렵다고요"
"그럼 희경이 언니를?"
박지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머리도 잘 돌아가고 일에도 빈틈이 없은 프로 급이고 거기가
인간적으로도 믿을 수 있습니다"
"하영 씨하고는 어떤 관계야?"
박지현이 조용한 목소리로 묻으며 강하영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아가씨!"
"바른 대로 말해 줘!"
박지현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조용하다.
"딱 한번입니다!"
"하영씨!"
"네! 아가씨!"
"정 주는 것 싫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진경씨 뿐 아닌 그 어떤 여자에게도요!"
"난 하영씨 말이라면 뭐건 믿어! 그리고 또 믿을 수 있어!"
"아가씨 믿음 절대로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영 씨! 나 침실로 가고 싶어!"
"모시고 가죠!"
강하영이 박지현을 안은 그대로 일어선다.
박지현이 강하영의 목을 끌어안는다.
강하영이 침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