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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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6시 50분.

  서진경이 K호텔 커피 숍으로 들어선다.

  약속 보다 10분 이른 시간이지만 강하영은 와 있었다.

  "일찍 오셨군요!"

  서진경이 강하영의 건너편 의자에 앉으며 미소 짓는다.

  "매력적인 숙녀를 만날 때는 먼저와 기다려야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강하영이 우아한 미소로 답한다.

  강하영의 우아한 미소를 본 서진경이 

  '이 친구 나이에 비해 상당히 세련되어 있잖아?!'

  하고 마음속으로 약간 놀란다.

  서진경이 강하영과 개인적으로 자리를 같이 하는 건 이때가 처음이다.

  강하영이 같은 직장인 에메랄드 백화점 관리과장이라는 것과 나이 서른의 

미혼이라는 것 외에는 취향 같은 개인적인 면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다.

  강하영을 대하는 순간 서진경은 사전 지식없이 나온 자기 행동을 

후회한다.

  서진경은 강하영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서른 살의 미혼 남자 정도는 자기 

페이스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 자심감을 가져도 좋을 만치 서진경은 여자로서도 비즈니스 

우먼으로서도 관록이 붙어 있다.

  그때 호텔 제복을 입은 프런트 맨이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말없이 탁자 위에 키를 놓고 간다.

  서진경의 시선이 키로 간다. 키에는 호텔 객실을 알리는 번호가 새겨져 

있다.

  한눈에 호텔 객실 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오기 전에 종업원을 통해 객실 예약 지시를 해 놓았다는 건 

서진경을 데리고 객실로 갈 예정이라는 뜻이다.

  또 공개적으로 객실 키를 놓게 하는 건 당신을 데리고 객실로 갈 거요 

하는 일방적인 선언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는 여자에게 호텔 객실로 데려 갈 거라는 무언의 

선언을 하는 건 서진경의 어떤 경우에도 자기 요구를 거절하지 못할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서진경이 강하영의 얼굴을 힐긋 바라본다.

  강하영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서진경은 갑자기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강하영이라는 남자에게 위압감을 

느낀다.

  "오랜 전부터 미스서의 매력에 취해 있었습니다!"

  "네?"

  전혀 예상치 못한 강하영의 말에 서진경이 잠시 어리둥절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랜 전부터 저런 여자라면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한번 안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는 뜻입니다"

  강하영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 육체를 요구하는 말을 들은 

서진경은 갑자기 머리가 텅 비어 가는 혼란을 느낀다.

  "나는 집착이 강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여자에 관한 한 강요는 하지 않는 

주의지요."

  "뭘 원하세요?"

  서진경이 겨우 정신을 수습해 하는 말이다.

  다음 순간 자기 말이 매우 적절치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강하영이 서진경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이미 말했다.

  그런데도 서진경은 무엇을 원하느냐는 모순된 질문을 했다.

  "내가 원하는 건 알고 계실텐데요?"

  서진경이 예상한 대로 강하영이 자기 질문의 모순을 지적하고 나온다.

  "내가 거절하면요?"

  "이미 말했습니다. 난 강요하지 않는 주의라고요. 또 하나 분명히 해 둘 건 

자기 청을 거절한다고 해서 그 여자의 약점을 폭로하거나 악용하지도 않는 

다는 것입니다"

  강하영은 자기가 서진경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강 과장은 자기 말속에서 이중성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하셨어요?"

  "무슨 뜻인지 압니다. 미스 사가 여기 나온 건 자의가 아닌 강요된 

것이지요. 그걸 강요한 사람이 나라는 것도 압니다."

  강하영이 잠시 말을 끊는다.

  서진경도 말없이 강하영을 바라보고 있다.

  "내가 가진 카드는 미스 서를 여기 나오게 한 것을 끝으로 두 번 다시 

사용하지 않을 걸 약속합니다."

  "강자가 자기를 미화하는 논리를 약자에게 믿으라는 하는 것도 자기 

모순이 아닐까요?"

  "미스서가 쉽게 믿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미스 서에게는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더 이상 그 카드를 사용할 생각이 없다는 걸 분명히 

해 놓기 위해 한마디만 더 하지요!"

  강하영이 또 말을 끊고 서진경의 눈을 바로 본다.

  서진경도 강하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바라본다.

  "나는 여자에 그리 궁한 녀석이 아닙니다. 미스 서가 매력적인 건 

사실입니다만 내가 언제 건 안을 수 있는 상대 가운데는 미스 서보다 훨씬 

매력적인 여자도 많습니다."

  강하영의 서진경의 눈썹이 꿈틀한다.

  여자가 자존심을 강하게 자극 받았을 때 일어 나는 반응이다.

  "내 진심을 알리려고 한 것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내 서툰 표현이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십시요!"

  서진경이 입술을 꼭 깨물 뿐 말이 없다.

  강하영도 말이 없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속 침묵이 흐른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강하영이 먼저 입을 연다.

  "미스 서는 여자로서의 매력과 프로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커리어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완벽한 분입니다. 위험한 다리를 스스로 찾아 걷는 건 

미스 서같이 매력적인 여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서진경이 말이 없다.

  "알아서 안될 사람 가운데 알고 있는 사람은 아직은 나 혼자 뿐입니다. 또 

내 입으로는 세어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비밀이라는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마친 강하영이 개실 키를 들고일어난다.

  "귀중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키를 들고 일어선 강하영이 서진경을 향해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테이블을 

떠난다.

  "강 과장님!"

  서진경이 등을 가려는 강하영을 부른다.

  강하영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다.

  "오늘 밤 객실에서 혼자 주무실 건 아니겠죠?"

  서진경이 서 있는 강하영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여기 저기 전화를 해 보면 오늘 밤 스케줄이 없는 친구가 한 사람 쯤은 

있겠지요"

  "이미 퇴근들 했을 시간이예요. 집으로 돌아와 있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간이고요."

  "그런 의미에서는 저녁 일곱 시라는 시간은 별로 좋지 않군요!"

  "전화하기에 적당한 시간이 될 때까지 술 한 잔 사주시겠어요?"

  서진경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강하영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강하영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를 바라보며 서진경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강하영의 팔이 일어나는 서진경의 허리를 가볍게 감아 안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커피 수을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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