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11 110. 위험한 검은 커넥션 (111/116)

00111  110. 위험한 검은 커넥션  =========================================================================

정수는 윤수지에게 학교 녹음실에 가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가 녹음실에 와서 보니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이 되어버렸다.

녹음실에는 이미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정수가 사용할 수 있는 빈 시간이 없었다. 졸업생들이 졸업 앨범 준비로 저녁까지 전부 예약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는 녹음 문제는 다음 기회에 해결하기로 미뤄야 했다.

갑자기 남아버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궁리하던 그는 그 동안 미루기만 했던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신예원을 만나는 일이다. 그는 큰 마음을 먹고 신예원에게 전화를 했다.

"나 지금 학교에 나와 있는데, 우리 한 시간 후에 여기서 볼래?"

"어디로? 그 초밥집?"

"그럴래? 그래. .. 거기가 좋겠다."

"그럼, 오늘 저녁 자기가 쏠래?"

"그럴께."

"어머머. 웬일이니?

자기야, 고마워.

그런데 나 지금 혼자 아닌데, 친구랑 같이 나가도 돼?"

"그건 마음대로 해."

그는 실용음악과 학과 사무실에 들러서 자기가 할 일을 체크했다. 또 연습실에 들러서 학기 중에 자기가 두고 간 물건들을 정리해서 짐을 꾸렸다. 그는 이 짐을 들고 본관 앞에 있는 주차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윤수지의 동생 경식이가 그를 부르며 아는 척을 한다.

"야. 한정수!"

정수에게는 순간 소름이 끼친다. 경식이가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 신예원과의 만남이다. 그런데 지금쯤이면 신예원은 벌써 초밥집에 도착해있을 시간이다. 

윤수지에게 그가 정수를 녹음실이 아닌 곳에서 만났다거나 신예원과 만난다는 말을 하면, 또 이 사실이 안명수에게 들어가버리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누나가 그러는데, 너 요새 엄청 바쁘다던데, 밥은 제 때 먹고 다니니?"

"이제 먹어야지."

"나도 아직이라서 지금 초밥집에 가는 길인데, 같이 갈까?"

"그래? .. 그럼. .. 그럴까? .. 그래. .. 가자."

그는 차에 짐을 싣고 윤경식과 함께 걸어서 초밥집으로 간다. 그렇지만 그의 머리 속은 복잡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 한다. 초밥집에 들어가서 들통나는 것 보다는 미리 말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경식이에게 말했다.

"초밥집에 신예원이 와 있을텐데. 같이 있어도 괜찮지?"

"나야 아무 상관 없지. 그런데 너네 진짜 사귀니?"

"참나. 우리가 사귀면 공개적으로 그러겠어?  

나한테도 여자 사귈 시간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떠도는 말이 그렇던데?"

"이 바닥에서 연애를 하려면 비밀연애가 필수잖아? 

이렇게 다 까발리고 만나는데 무슨 연애야?"

"하긴. 나도 그런 소문을 들었을 때에 뭔가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

내가 알기로는 한정수 성격에 함부로 그런 소문이나 흘리고 다닐 애가 아니거든.

떠도는 말만으로는 뭐가 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더라고. 하하하."

이들이 초밥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창가에 앉아있던 신예원이 정수를 부른다.

"자기야!  여기!"

그런데 문제는 신예원이 데리고 온다는 그녀의 친구가 바로 이미애였다.  신예원이 자기 친구라는 말을 했을 때에, 정수는 그 친구가 이미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애는 윤경식이랑 시작했다가 이미 끝난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누구도 모른다. 어쩌면 겉으로는 끝낸 것으로 하고 비밀리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정수는 신예원이 부르는 곳을 향하여 당당하게 가지만, 윤경식은 이미애를 보더니 머뭇거린다. 정수가 윤경식에게 말했다.

"너네는 끝난 것 아니었어?"

"끝났지. 그것도 아주 머어언 옛날에."

"서로 원수지고 끝난 것이 아니면, 지금쯤 만나서 밥 한 그릇도 같이 못 먹냐?"

"아냐. 그럴 수 있지. 밥 한 그릇 정도야 뭐."

윤경식은 그제서야 정수의 뒤를 따른다. 정수가 신예원의 옆자리로 앉자 윤경식은 이미애의 옆자리로 앉아야 한다. 정수는 윤경식이 어떻게 할 지에 관심이 쏠리지만, 신예원은 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미애는 윤경수에게 앉으라고 자기 옆자리를 권한다.

"어서 와."

"예원이는 한동안 못 봤다고 더 예뻐졌네."

"경식이가 미애한테 차였다고 소문이 났던데, 오늘 미애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봐.

내가 여기 온다고 하니까, 얘가 너무 좋아하면서 따라오잖아."

"나야 경식이 오는 줄 모르고 온거잖아?

정수가 너한테 저녁 쏜다니까 나도 낄려고 했던거지."

"그런데 이상하지 않니?

내가 정수랑 전화하고 미애를 데리고 오는데, 갑자기 윤경식이 같이 나타났다.

이게 뭘 뜻할까?"

"예원이 추리력이 대단한 것 같아.

미애가 중간에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빠져나가서 경식이한테 문자 메시지를 날렸겠지?"

"나?  화장실?  간 적 없는데?"

"아니거든. 아까 지하철에서 내려서 바로 화장실에 간다고 사라졌었거든."

"정수야. 경식이 폰 검사해봐. 나는 미애 폰 검사할께."

"내 휴대폰 검사를 네가 왜 하냐? 그러면 개인 정보 보호법에 걸려." 

"그럼 신고하시든가.  하하."

이미애와 윤경식의 미스테리는 신예원이 간단히 풀어냈다. 그들이 끝냈다고 소문으로 흘린 것은 거짓말이었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사귈 정도로 경식이가 좋아?"

"아직은 그런 것 같아.  헤헤."

"그럼 .. 정수랑 나랑도 헤어져야 하나?"

신예원와 이미애가 주문해 둔 초밥이 나왔다. 정수는 젓가락을 들고 먹기 시작한다. 신예원은 한번이라도 정수가 입에 넣어주기를 기다리지만, 정수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 하다. 이제 신예원이 정수가 먹는 것을 못하게 하고, 자기가 정수의 입에 초밥 하나를 넣어준다. 그제서야 정수도 눈치를 채고 신예원의 입에 초밥을 넣어준다. 이미애와 윤경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 두 사람이 하는 것을 쳐다본다.

정수가 웬만큼 먹고 나니까 배도 부르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옆자리에 앉은 신예원도, 또 건너편에 있는 이미애와 윤경식도 보인다.

"예원이 너는 정수랑 사귀는 것 아니었어?"

"얘는 다 알면서, 선수끼리 왜 이래?

남들이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러라고 우리도 공을 엄청 들였으니까."

"너도 참. 사귀지도 않을 껄 왜 그 동안 그랬어?"

"너는 너네가 한 짓은 생각 안해?

너네 둘은 본격적으로 사귀려고 하면서, 겉으로는 그렇게 요란하게 뻥을 쳤잖아?""

"우리는 티 안 나게 한다고 했는데...

경식이 얘가 혹시 나 모르게 뒤로 다른 소문을 퍼뜨렸나?"

"야, 난 절대로 입도 벙긋한 적이 없거든요?"

"한정수 신예원, 얘네는 보면 솔직히 헷갈리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야."

"바보 아냐?  미애 네가 하는 것처럼, 정수랑 나랑도 정 반대로만 보면 간단한데."

"하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자기야. 얘네 둘은 여기 떨구고, 우리는 사라져주자."

"그럴까? 안그래도 우리가 꼭 개밥에 도토리 된 기분이네."

"너네는 또 어디 갈껀데?"

"오래만이구만. 조금만 더 같이 있다가 가지 그래?

"걱정 마. 여기 이거 계산은 내 자기가 할꺼야.  하하."

"공개적인 사건은 우리도 여기까지만 흘려준다. 이 이상은 비공개야."

"쟤네들이 자꾸 저러니까 계속 헷갈린다고. 안 그래?"

"아무래도 노이지 마케팅 같은데 .."

신예원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정수랑 같이 그 자리에서 나온다.  

정수가 계산을 하려고 계산대로 가는데, 신예원은 화장실에 간다.

정수는 계산을 하고 윤경식을 따로 불러내서 말했다.

"너, 누나한테는 진짜 비밀로 해야한다."

"나? 나는 너 오늘 못만났고, 보지도 못했어."

"역시 넌 내 친구야. 고마워. 하하."

"나도 고맙거든. 하하."

신예원이 화장실을 나서서 윤경식과 한정수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입구의 문이 열리고 웬 여자가 혼자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그 여자는 그 사람은 정수와 경식이에게로 간다. 윤경식의 표정은 갑자기 얼어붙지만, 정수는 돌아서 있어서 보지 못한다. 신예원은 모퉁이 뒤로 숨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누나.  이 시간에 누나가 여기에 웬일로?"

"뭐? 너네 누나? 그럼 수지누나?"

윤경식이 누나라고 부르는 소리에 정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돌아선다. 윤수지는 한정수를 향하여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갑자기 정수의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야, 한정수. 언제부터 이 초밥집이 너네 학교 녹음실이지?"

"녹음실에 자리가 없어서, 차라리 경식이랑 밥이나 먹을까 해서요."

"그런데 정화예대 여학생은 배고프면 왜 기가예대로 밥 먹으러 오는거지?"

"이미애랑 윤경식이 다시 어떻게 잘해보려고 하는데, 나랑 신예원은 응원해주려고..."

"하아. .. 그러니까 말이 금방 달라지네.

밥 먹으면서 한정수는 윤경식을 응원하신다?

신예원은 아직 안왔나?"

"화장실."

"그럼 기획사 미팅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어?"

"아냐.  안하긴 왜 안해요?  다 먹고 가려고 지금 막 나가는 길인데?

이 카드 전표를 보세요.  방금 계산했잖아요."

"그렇기는 하네."

신예원은 이들이 하는 대화를 다 들었다. 한정수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그런데 윤수지가 하는 것으로 보면 꼭 한정수의 매니저인 것 같다. 윤수지가 정수를 데리고 나갈 상황인 것 같다. 신예원은 자신이 교통 정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그들에게로 갔다.

"언니, 오래만이네요."

"예원씨를 여기서 만나네요."

"저야 뭐. .. 정수가 여기 있으니까 나도 여기 있는건데요. 언니는 웬일이세요?"

'정수가 녹음실에 있을거라고 해서 들렀는데, 가보니까 없어서 이리로 왔죠."

"이거는 거의 스토킹 수준같다. 매니저가 학교를 뒤지고 다니시고, 안그래요?"

"스토킹이라니? 일곱시에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얘는 꼭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는 바람에..."

"하아.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럴 때 전화를 사용하거든요.

언니는 직접 학교로 찾아온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요.

방송국이나 공연 무대라면 또 몰라."

"예원씨랑 정수랑은, 둘이 사귀기라도 해요?"

"아이. 참나.  선수께서 왜 이러실까?

언니 눈에 걸릴 정도로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만났는데, 이걸로 사귄다고 말씀을 하시나요?

우리가 사귀면 이렇게 하겠어요?" 

"하긴. .."

"그러니까, 언니는 은퇴하셨다더니, 지금은 정수 매니저 일을 하세요?"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해.

그런데 이분께서 미꾸라지처럼 요리 조리 워낙 잘 빠져나가는 통에 내가 돌아버리겠다."

"뭐.. 언니도 한 때 그러셨잖아요?

선배들이 한 것을 우리도 따라 하는 거죠. 안 그래요? 하하하."

"정수씨 가요. 여기서 더 어물쩡거리면 미팅에 진짜 늦어요."

"언니, 그 미팅 오늘 몇 시에 끝나요?"

"글쎄. .. 일곱시에 시작하면 한시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자기야. 그럼 나도 같이 가자.

오래 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지, 안 그래?

끝날 때까지 구석에서 조신하게 기다릴께."

"그럼 우리 다 같이 가자."

"경식이는 가서 미애 데려와.

아무래도 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단 말이야.

기획사 매니저가 학교에 나타나는 것은 엄청 드문 일인데 .."

신예원은 지금 자기를 정수 스토커 취급을 한다. 윤수지는 불쾌할 정도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신예원은 벌써 정수의 팔짱을 끼고 초밥집을 나가버렸다. 윤경식도 이미애와 함께 따라 나온다.

윤수지는 자기 동생 경식이와 이미애를 자기 차에 태우고, 정수는 신예원을 태워서 같이 백화점으로 갔다. 이들은 4층에 있는 극장 카페에서 기다리고, 윤수지는 정수와 함께 소극장 기획실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 인터뷰에 대해서 안PD님은 뭐라셔요?"

"아직 모르셔. 나중에 말씀 드려도 되니까 걱정하지 마.."

"이건 아닌데.  특히 기획사 인터뷰는 안PD님 승낙 없이 하면 안 되는데."

"내가 매니저거든요. 이런 정도는 내가 결정해도 된다니까."

정수는 안명수 모르게 기획사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 어색하다. 윤수지가 일을 왜 이렇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안명수와 이런 정도는 알아서 하라는 말을 들은 것인가?

예정대로 기획사에서 왔다는 사람이 오고 윤수지도 음료수를 들고 뒤따라 들어온다. 그녀는 윤수지가 소속해있던 기획사 레옹아트에서 온 팀장이라고 한다. 예리한 눈매와 깎은 듯이 선명한 이목구비 그리고 화려한 원피스 안에 감춰진 육감적인 몸매를 놓고 보면 30대 초반인 듯 하다. 지금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의 현란했을 과거를 짐작하기는 너무 쉽다.   

  

"안녕하십니까?  한정수입니다."

"레옹아트 기획팀 차연희 팀장입니다.

한정수씨께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제가 어떤 일로  팀장님을 도와드릴까요?"

"요즈음 들어 뮤지션들이 설  무대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예.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특히 데뷔를 앞둔 가수 지망생들이나 데뷔한지 얼마 안 되는 신인가수들이 설 무대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무대가 없다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잖아요?"

"얘네들을 길거리 공연만 시킬 수도 없고 ..

우리 기획사에서는 우리 지망생들을 이 소극장 무대에 세워달라는 부탁을 드리려구요."

"어떻게요?"

"공연할 때 마다 한 팀씩이라도 안될까요?

거기 들어가는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또 그 때마다 사례도 할 것입니다."

"실력만 된다면야 무대에 서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래도 공연할 때 마다 한 팀씩을 세우기로 정한다는 것은 안되겠네요.

우리는 출연자를 직접 선발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중간에 기획사를 끼게 되면 항상 잡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저희 기획사에서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보낼 생각입니다.

정수씨도 따로 오디션을 통해서 미리 검증하셔도 됩니다."

"추천하실 뮤지션은 직접 와서 인터뷰를 하면 됩니다.

그 대신 기획사 얘기를 언급하게 되면 탈락입니다.

이것은 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내부 회의를 거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만일 저희 애들이 무대에 섰으면, 언론사에서 기사가 나가도록 배려도 해주시면 좋은데 .."

"그것도 언론사와 직접 해결하십시오.

우리는 언론사 기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안PD님의 막강한 권력을 알고 있는데, 전혀 아니라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언론사에서 기자가 오게 되면 출연자들이 방심하지 않고 긴장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입장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어느 기자도 공연에 초대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하는 공연에는 기자들도 관객의 자격으로 옵니다.

어떤 공연에 어떤 언론사의 기자가 왔다 갔는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죠.

미리 기자증을 제시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우리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차연희 팀장은 이번 미팅에서 성과를 올려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다. 차팀장 입장에서는 윤수지를 통해서 연결된 이 기회를 어떻게 해서든 활용하도록 해야 했다. 차팀장도 답답한 것이, 이런 밀담은 원래 룸사롱에서 해야 하지만, 상대인 정수가 아직 대학생이고, 잘못 시도하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아서, 윤수지만 믿고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혹시 식사 전이시면 제가 모시고 나가도 되겠습니까?"

"이러언.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는데.  

지금 아래층에 있는 카페에 제 친구들이 와있거든요."

"그럼 다음에는 저한테도 기회를 꼭 주셔야 합니다. 하하하."

차팀장은 빈손으로 나갔다. 정수는 윤수지에게 물었다.

"누나 혹시 뭐 목걸이나 명품 백 이런 것 받은 것 없죠?"

"받기는 뭘 받아? 그런 일 없어"

"조심하셔야 해요.

누나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저런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거든요."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오늘 일은 안PD님께는 말하지 않을께요."

"고마워. 나는 그냥 거기 있는 내 후배들이 눈에 밟혀서 .."

"그럼 저렇게 기획사를 끼지 말고, 공연을 기획할 때 직접 와서 인터뷰를 하라고 해요."

"알았어."

"그럼 나는 카페로 내려가요. 누나도 오세요."

"아냐. 난 퇴근할래."

그는 윤수지보다 먼저 기획실을 나섰다. 정수의 생각에 윤수지가 이번 미팅에 지나치게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 같다. 윤수지가 학교에까지 찾아와서 정수를 데려갈 정도였으니까. 만일 저 둘 사이에 검은 커넥션이 생기기라도 하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정수는 카페에 들어서서 신예원 옆자리로 앉았다.

"심각했니?"

"아니야.  레옹아트에서 차팀장님이 오셨던데."

"그 사람 우리 누나네 옛날 기획실 기획팀장이다. 엄청 예쁘지?"

"맞아. 숨도 제대로 못 쉬겠더라.  하하하."

"야아. 한정수, 윤경식. 너네 정말 이럴꺼야?"

신예원이 정수의 어깨를 주먹으로 치면서 버러럭 한다. 그 때 윤수지가 들어와서 이들에게로 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다. 그 차팀장이라는 여자도 윤수지를 뒤따라 들어왔다.

"우리 합석 하면 안될까?"

"누나가 동생 옆에 앉는데 누가 뭐랄거야?  여기 앉아."

윤수지는 윤경식의 옆자리로 차팀장과 같이 앉았다. 윤수지는 차팀장을 소개했다. 그런데 정수는 자기 앞자리에 차팀장이 앉아있다는 사실로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여기 계시다고 수지한테 들었어요.

젊은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해보고 싶기도 하고 또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그냥 따라왔어요."

신예원이 차팀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한마디 했다.

"팀장님 혹시 전에 드라마 하신 적이 있으시죠?"  

"뭐. .. 드라마도 하고, 씨트콤이랑 연극도 하고.  

그런데 노래에는 아예 소질이 없었거든요.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뮤지칼이었는데, 그것은 나한테는 넘사벽이었어요."

"여우같은 여자라는 주말 드라마에서 주연을 하신 것 같은데 .. 맞나요?"

"맞아요.  주연이라고는 그거 딱 한번 해봤어요."

"그 때 그거 완전 대박 아니었어요?"

"무명으로 또 단역으로 그 바닥에서 7년이 넘도록 있다가 한 것이 그거 하나였어요."

"그런데 왜 계속 안하시고 은퇴하셨죠?

팀장님 그 때는 별 스캔들도 없던 것 같은데."

"그건 .. 내가 은퇴를 한 것이 아니고, 은퇴를 당했다고 해야 하나?

이제 그런 얘기는 고만 하고, 같이 한잔 마시는 것이 어때요?"

한참을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팀장은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이들과 헤어졌다. 정수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므로 신예원을 차에 태웠다.

"자기 차팀장 저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잘 몰라."

"우리나라 한류 드라마 초창기때 얘기야."

"왜? 스캔들 없었다며?"

"기획사 사람들이랑 같이 해외로 팬관리 한다고 나갔는데, 밤에 시키는 대로 잘 안했대나봐."

"저런."

"말 들어보니까 너도 나중에 기획사 차리면 되겠던데?"

"왜?  너 또 이상한 말 지어내서 퍼뜨리는 것 아니지?"

"내가 왜 내 자기를 힘들게 하냐?

지금 너네 극장을 통해서 올라온 가수들이 몇 있잖아?

요새 애들이 그래. 뜨려면 너한테 가보라고."

"하하하.  뜰 마음이 없나?  아직 한명도 안왔음"

"하하. 아무튼 조심해.  너한테 은근히 그런 기질도 보여."

그런데 안명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 지금 혜화동으로 왔어."

"지금 신예원 집에 태워다 주고 바로 갈께요."

신예원이 정수에게 묻는다.

"안PD님이랑 밤 10시에 만나?"

"미니 드라마 OST 때문에 대본 받으러 오래."

"무슨 대본을 밤 10시에?"

"감독용이래. 작업이 방금 끝났단다."

"아하. 그런 거였어?"

하마터면 신예원에게 위험할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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