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0 109. 한 배를 타고 .. =========================================================================
안명수는 방송국에 있는 직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생각은 집중되지 않고, 마음 속에서는 천불이 나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정수가 보내온 문자 메시지 때문이다.
'두시쯤 윤수지와 같이 방송국으로 갈께요.'
윤수지라면 몇 일 전에 정수와 잠자리를 같이 한 바로 그 여자이다. 이 연하남은 안명수에게 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다. 이유는 소극장 경영실에서 같이 일하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이다. 정수가 전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안명수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자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윤수지는 몇 년간 걸그룹의 멤버로 연예계에서 직접 활동한 경력이 있으므로 연예계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윤수지라면 정수의 매니저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만 복잡하고 머리 속에서는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혼란스럽다. 이 연하남은 도대체 도움이 안된다. 하필이면 이 바쁜 와중에 왜 이렇게도 힘들게 하는 것일까?
두시가 되자 두 사람은 안명수의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안명수는 스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윤수지를 소파에 앉게 했다. 정수는 커피를 조달하겠다며 방을 나갔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이리 앉아요."
안명수는 말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것은 긴장하거나 흥분해서가 아니다. 틀림없이 화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안명수는 이야기하면서 윤수지를 뜯어보았다. 얼굴이나 몸매는 이미 알고 있다. 다소곳한 자세나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윤수지가 지난 세월을 헛되게 살지 않았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바람처럼 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상위 그룹을 유지하면서,
수지씨는 자기 관리도 참 잘 해왔는데 ..."
"한번 떠오른 태양이니까 질 각오도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나오자마자 바로 언니한테 오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수지씨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니까,
수지씨라면 마음놓고 일을 맡길 수가 있어서 내가 고맙죠.
힘들고 곤란한 일을 맡기게 돼서 미안해요."
"이보다 몇 배 더 힘든 일을 몇 년 동안 해왔는걸요.
언니도 아시잖아요?"
윤수지는 벌써 스스럼없이 안명수를 언니라고 불러버린다. 그래서인지 안명수는 어느새 윤수지와 한 배에 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명수의 심난하던 마음이 어느새 가라앉아 버렸다. 이것도 윤수지의 매력일까?
이제 이번 일은 안명수가 얼음공주 컨셉을 하고 한걸음만 양보하면 간단해진다. 그렇지만 양보할 일이 따로 있지. 어떻게 내 남자를 넘본 여자와 같이 일을 하란 말인가?
안명수는 윤수지가 정수랑 저지른 사고를 생각하면 속에 천불이 나고도 남지만 꾹 참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정수도 안명수의 마음이 이렇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수도 윤수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지 않은가? 기특하게도 그에게 사람 보는 눈이 생긴 것이다. 또 적어도 그는 일과 사적인 감정은 구별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나이 어린 연하남이지만, 그가 이렇게 일하는 것은 마음에 든다. 그는 아메리카노 세 잔을 쟁반에 받쳐서 들고 와서 앉는다.
"수지씨, 크게 보면 관리해야 할 대상은 두가지야.
한가지는 소극장 공연이고, 또 한가지는 한정수라는 인물.
가능하겠죠?"
"소극장 공연이야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될 것 같은데,
한정수 관리는 제가 약간 폭력을 사용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하하."
"지금까지는 내가 정수의 매니저 역할을 어느 정도는 해 주었지만,
이제는 너무 힘들어요.
정수도 제법 자라서 행동반경도 엄청 넓어졌거든요.
또 문제는 지금 박PD님이 안 계셔요.
나한테는 방송국 일만으로도 하루가 24 시간으로는 부족한 상황이거든요."
"제가 열심히 하면 해결되는 문제들이네요.
언니가 기회를 주셨으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안명수는 윤수지에게 한정수에게 손대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참기로 했다. 안명수는 퀸이기 때문이다. 우아한 퀸께서 그런 저속한 것을 이야기할 수야 없지 않은가?
이들은 이야기를 끝냈다. 정수는 윤수지와 함께 안명수와 작별하고 방송국을 나와서 백화점으로 갔다. 윤수지가 당장 일을 시작하면서 우선 업무를 파악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극장 경영실로 올라가서 정수는 윤수지를 다른 직원들에게 소개해서 인사를 하도록 했다.
정수는 세탁소로 가려고 경영실을 나서는데 윤수지가 그를 불렀다.
"앞으로 너한테 내가 모르는 스케쥴이 잡히면, 바로 안PD님께 보고할꺼야.
이것은 내 생각이 아니고 안PD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니까 나를 탓하지 마.
불만 있어?"
"당연히 있지만 없다고 해야겠지?"
"으음. .. 그러지 말고 같이 잘 해보자. 알았지?"
"예. 알았어요."
"이따가 세탁소 일 끝나면 데리러 갈께.
8시 반까지 가면 되지?
다른 데로 샐 생각 하지 말고 기다려."
그런데 정수는 세탁소로 가면서 신예원 때문에 고민 중이다. 아까 신예원이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왔다.
'다른 커플들은 요새 엄청 열심히 만나는데, 우리도 한번쯤은 봐야겠지?'
정수는 신예원을 만나주지 않으면 신예원이 뭔가 사고를 칠 것만 같아서 불안하다. 만일 만난다면 윤수지가 모르게 만나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안명수의 눈만 피하면 됐지만, 이제는 윤수지를 따돌리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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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의 마지막 달 12월도 절반이 지났다. 안명수는 명절 때에도 바쁘지만, 연말에는 오랜 기간 동안을 바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각종 시상식이나 자선공연으로 행사도 많고,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는 일도 준비를 마무리되고 있다. 한해 동안 연예계 있었던 일들도 요약해서 내보내야 한다.
아이돌 소극장도 성탄절에 마지막 공연을 끝내면 연말연시에는 쉬게 된다. 윤현도와 안명수는 이번 성탄절 무대를 뮤지컬로 결정하고 김익환 감독에게 일임한다. 김익완 감독은 자기 극단의 멤버들과 함께 24일 저녁 무대를 위해 마지막 준비를 하고 있다.
정수는 12월과 1월에는 무대에 나서는 일과 광고 촬영을 가능한 한 줄이고, 자선무대에 찬조출연을 하여 재능을 기부하는 일도 한다. 그는 또 자기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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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는 백화점에서 보내준 직원 두 명과 같이 공연을 준비하는 일에 팔을 걷고 나섰다. 방송국 일이 바빠지면서 극장과 정수에 대한 일들이 안명수로부터 윤수지에게로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윤수지는 서서히 정수의 매니저 일도 딱부러지게 해낸다. 한정수는 더 이상 고삐 풀린 망아지가 아니다. 더구나 윤수지가 그런 분야의 일은 한번 맡으면 엄청 깔끔하게 잘 해낸다. 안명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안명수에게서 윤수지에게 전화가 온다.
"수지씨. 정수가 왜 전화 안받죠?"
"옐로우로 밥먹으러 간다고 나갔거든요.
그런데 이 분께서 전화기를 무음으로 설정해두고 여기 사무실 자기 책상 위에 두고 갔어요.
이것은 이 분께서 자주 써먹는 수법이거든요.
앞으로 두시간 이내에 나타나지 않으면 제가 잡으러 갈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윤수지의 말대로 안명수는 두시간 반 정도 기다린다.
그러면 정수는 틀림없이 안명수에게 전화를 한다.
이러니까 안명수는 윤수지를 철썩같이 믿을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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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정수가 세탁소에서 일을 하는데 윤수지가 전화를 걸어왔다.
"방금 인터뷰 예약이 들어왔는데."
"무슨 인터뷰?"
"여성잡지 '페미니움 코리아'가 질문서를 보내왔거든."
"안PD한테 어떻게 할까를 물어보세요."
"아까부터 전화를 하는데 연락이 안돼서.."
"안되면 문자 메시지라도 넣어둬요."
"벌써 했거든."
"그럼 기다려야죠."
"방송국에 안계셔?"
"아마 지금쯤 고양 세트장에 가 있을껄요."
저녁에 그는 세탁소 일을 마치고 가게를 정리중이다. 그는 보관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밖에서 경애 누나랑 여자 고객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객님, 조금 더 일찍 오셨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
"그게 .. 잠시 병원에 들렀다고 들른건데, 사람이 워낙 많아서 늦은 거라니까."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요."
"잠시만 확인만 하는 것도 안돼요?"
"벌써 컴퓨터를 껐거든요."
정수는 정리를 끝내고 보관실을 나섰다. 경애누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여자 손님은 바로 유아랑이다. 그런데 유아랑의 비쥬얼은 보는 사람을 긴장시킨다.
하얀 얼굴에는 검은 눈매와 붉은 입술이 너무도 선명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오똑 솟은 콧날 때문에 그녀의 얼굴은 전체적으로 도도한 모습을 나타낸다.
붉은 색의 원피스가 너무 타이트해서 몸에 있는 모든 굴곡과 곡선이 너무도 생생하게 드러난다. 원피스의 길이는 너무 짧아서, 몸을 조금만 굽혀도 감춰져 있어야 할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날 정도이다.
유아랑의 두 다리를 감싸고 있는 짙은 커피색의 스타킹에는 굵직한 줄무늬가 다리의 앞쪽과 뒤쪽에서 위로 올라가다가 원피스 아래 자락에서 가려지면서 끊어진다.
유아랑의 가슴이나 힙라인, 그리고 요염한 두 다리를 보고 있으면 머리 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어느 한가지 생각도 음란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래서 지나가는 남자 뿐 아니라 여자들까지도 결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유아랑의 몸을 훑을 정도이다.
유아랑은 정수를 첫눈에 알아보더니, 어깨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으로 빠르게 그리고 힘을 주어 당겨내린다.
"앗싸아! 한정수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글쎄, 힘들게 달려왔더니, 너무 늦었다네요."
"맞아요. 오늘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죠.
닭 대신 꿩이네.
엄청 열받는데, 우리 나가서 커피 한잔 하죠?"
"지금 저는 아직 저녁도 못먹었거든요."
"그럼 더 잘됐네. 당장 나가요."
"저는 오늘 사장님이랑 같이 먹는데요?"
"그럼 사장님, 오늘 하루만 저한테 양보해주시면 안돼요?"
"뭐. .. 그렇게 .."
"됐죠? 마약씨, 우리 나가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그는 퇴근할 준비를 해서 유아랑과 함께 세탁소를 나선다. 경애누나는 걱정스럽게 그를 쳐다보며 손으로 나중에 전화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정수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서 쓰기는 했다. 그렇지만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그는 당장이라도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질에 오를 대상이다. 유아랑의 살인적인 비쥬얼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가 지금은 그에게 팔짱을 끼고 착 달라붙어있다. 유아랑은 전체적으로 약간 마른 체형이지만, 그녀의 몸은 말랑거리지 않은 곳이 없다.
정수도 이 위험성을 알고 있으므로 백화점을 나서자마자 헤어질 적당한 구실을 찾으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몸이 주는 자극으로 보면 설사 그 구실이 찾아졌다 하더라도, 정수가 그녀에게서 떨어져나올 자신이 없다.
유아랑은 정수가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주위의 시선을 피하면서 걷는 모습을 보고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고 다니기도 쉽지 않겠다."
"잘생긴 매력남이 겪는 고충이라고나 할까.."
"혹시 옆에 있는 내가 너무 섹시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하하."
"그런 것도 무시 못하죠."
"그럼 너는 여자랑 데이트도 제대로 못하겠구나?"
"오늘처럼 목숨 걸어야죠."
"진짜 딱하다.
밖에 나가자 마자 바로 택시에 타자."
그런데 백화점 입구를 나서는데, 안명수가 백화점으로 들어오고 있다. 정수는 안명수를 보고 있지만, 안명수는 유아랑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면서 옆에 있는 남자를 한번 훑어본다. 정수는 잔뜩 긴장하고 놀란다. 유아랑 때문에 두근거리던 심장이 이제는 안명수 때문에 더욱 거세게 뛰고 있다.
"으윽. 너무 춥다."
유아랑은 팔에 들고 있던 갈색 외투를 몸에 걸친다. 그렇지만 앞에 단추를 잠그지 않아서, 앞자락은 훤히 열려있다. 갈색 외투 안에 들어있는 붉은 원피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있는 그녀의 몸. 정수는 마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정수와 유아랑은 무사히 백화점을 나섰고, 안명수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섰다. 정수는 마음이 놓이면서 심호흡을 깊게 한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몸을 감싸지만, 그에게는 추위를 느낄 정신도 없다.
백화점을 나서자 유아랑은 재빨리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정수와 함께 뒷좌석으로 탔다. 유아랑은 기사에게 어딘가로 가자고 말했지만, 지금 정수의 귀에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머리 속이 윙윙거리며 가슴이 두근거릴 뿐이다.
"그런데, 아까 백화점 입구 나올 때 검은 외투 입고 나를 한참 쳐다보던 그 여자,
자기 아는 여자지?"
"어? 어떻게 알았어?"
"그냥. .. 감?"
택시가 서고, 그들은 바로 앞에 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유아랑이 구석쪽으로 자리를 잡고, 외투를 벗고 정수와 마주앉는다.
정수는 스테이크를, 그리고 자기는 파스타를 주문한다. 유아랑과 정수는 마주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이야기를 한다. 유아랑의 가슴이 빨간 원피스 안에서 터질 듯이 너무 풍만하다. 정수는 도대체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를 모르겠다.
"야. 사람이 어떻게 그러고 사냐?"
"그러게요."
"나나 하니까 이렇게 굶주린 중생을 데리고 나와서 구제하는 줄 알아라."
"너무 고마워서 눈물 난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와서 식사를 시작하는데, 정수의 전화기가 벨소리를 낸다. 경애누나의 전화다.
"식사중이지?"
"응."
"방금 안PD가 와서 너를 찾았어."
"특별히 한 말은 없고?"
"백화점 입구 들어올 때 너를 봤다면서, 네가 나간 시간을 묻던데.
그래서 우리 여성 고객님이랑 저녁 먹으러 나갔다고만 말했어."
"고마워요."
"별 일 없는 거지?"
"누나도, 참.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먹는데, 무슨 별 일이 있겠어?"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 안명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다 먹었으면 빨리 들어와.'
식사가 끝나자 정수는 유아랑에게 다시 백화점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유아랑은 발끈하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까 사장님한테 양보하라고 했거든?"
"이건 세탁소 일이 아니고 다른 비지니스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나하고 만난 것도 비지니스 아니야?"
"알았으니까 우리 비지니스는 다음에 해결하자."
"다음에 언제?"
"글쎄. 내가 안죽고 살아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렇게 나를 보내고 싶어?"
"아냐. 나는 유아랑씨 보내기 싫어.
그렇지만 일이 부르는 것을 나라고 어쩔 수 없잖아?"
"좋아. 그거 립서비스 아니고 진심인거지?"
"진심."
"알았어. 다음에는 절대 안봐준다. 각오해."
"고마워."
정수는 유아랑을 간신히 달랬다. 유아랑은 정수와 밖에 나와서 뜨거운 키스를 나눈 후 헤어졌다. 정수는 안명수에게 돌아왔다. 안명수는 윤수지와 함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명수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잡지사 페미니움 코리아에서 인터뷰 때문에 보내왔다는 질문지이다.
"이런 일거리를 두고 이렇게 한가하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못먹고 겨우 저녁 먹으러 나간건데요?"
"문제는 자기가 저녁 먹으러 나간 것이 아니야.
누구랑 나갔느냐는 것이 문제야.
이 질문지 어떻게 할꺼야?"
"그 인터뷰를 꼭 해야하는 거라면 하는 거죠.
내일 답변을 준비할께요."
"하늘이 무너져도 이 인터뷰는 꼭 해.
내년 1월이 아니라 12월 안으로 끝내."
페미니움지는 2월호에 기사를 싣기 위해서 1월 중에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안명수는 이 인터뷰를 한달 앞당겨서 미리 해치우라는 것이다. 세 사람은 퇴근해서 백화점을 나섰다. 윤수지는 집으로 가고, 안명수는 정수를 자기 차에 태웠다.
"자기 오늘 혜화동에서 와서 자고 가라는데, 갈래?"
"오라고 하시면 가야지."
"하아. .. 자기 이럴 때는 꼭 예쁜 강아지 같아."
"왜 꼭 이럴때만?
항상 그런 것 아니고?"
"조용히 해.
아까 그 정신 사나운 고객년이랑 같이 나갈 때는 꼬집고, 두들겨 패주고 싶었거든."
“어라? 누나도 봤어요?”
“내가 눈뜬 장님이야? 거기서 너네 둘을 못보게?”
잠자리에서 정수는 그가 왜 유아랑과 같이 나갔는가를 얘기해주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의 환상적인 비쥬얼에 이끌려 나간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속옷 변태에 대한 얘기를 했다.
"안나가면 속옷 잃어버린 것 때문에 세탁소가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
"그러니까 사업상 나가셨다?"
"당연하죠."
"그런데 말이야. .. 자기는 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
그 여자 옷 입은 것을 내가 안봤으면 몰라도 .."
"물론 그것도 전혀 아닌 것은 아니지만. .."
"요게 정말! 자기 이리 좀 와봐."
"어머님, 아버님 주무시는데 시끄럽게 할꺼야?"
"우리가 시끄러워야, 우리 사이가 좋다고 좋아하실껄?
조용히 그냥 자면, 나중에 전화해서 싸웠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안명수 엄마가 안명수에게 한마디 하신다.
"너네는 잠자리에서 왜 그렇게 요란하고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가 나?
울고, 소리지르고 난리도 아니던데, 꼭 여기까지 와서 싸워야 해?"
그런데 그 날 오후에 정수가 학교 녹음실에 갔다온다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윤수지가 그를 불렀다.
"오늘 끝나면 바로 이리로 와."
"질문지 때문에?"
"기획사랑 다른 일이 또 있거든.
이따가 전화하기로 했으니까, 이야기 되고 나면 말해줄께."
"웬 기획사?"
"만일 저녁 일곱시까지 안오면 안PD님한테 전화들어간다."
윤수지는 또 연말이 되니까 연예계 뉴스에 아이돌 소극장이 자주 언급된다고 말하면서 스크랩 해둔 일간지의 뉴스 몇개를 보여주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부정적인 얘기는 없으므로 소극장의 이미지 관리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정수는 윤수지가 분명 어제 유아랑과의 일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한정수 얘기가 보도되면서, 만일 단 한번이라도 여자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이 소극장은 단 한방으로 끝장이야."
"알았는데, 어제 일은 쫌 억울하거든."
"하아. .. 나도 너한테 주의를 주는 것 뿐이야.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나도 너를 웬만큼은 알기 때문이니까,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을껄."
윤수지는 그에게 여유있는 웃음을 날린다.
그렇지만 정수는 기회는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린다.
그런데 신예원은 더 이상은 못기다리겠다고 항의해온다.
당장이라도 날아와서 덤벼들 기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