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08 107. 퀸이 내리는 벌 (108/116)

00108  107. 퀸이 내리는 벌  =========================================================================

박철호PD 는 8회짜리 드라마 <가을남자 겨울여자> 를 제작하려고 계획했었다. 그는 떠나면서 안명수에게 그 드라마를 꼭 완성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이것이 안명수가 드라마 제작에 첫발을 내디딘 동기가 된다. 그녀는 이번 연말연시가 지나면 바로 제작회의를 하기로 생각했다. 

그런데 안명수는 드라마라는 것을 제작은 커녕 보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아서 못하던 여자이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드라마를 촬영 중인 세트장을 구경하러 다녀야 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와서도 <드라마 다시보기>를 누르고 엄청 열심히 매달린다. 

그런데 오늘은 벌써 새벽 네시이다.

그런데 정수는 아직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추운 새벽까지 발정난 수캐처럼 도대체 어디를 기웃거리고 쏘다니는 거지?

정수가 오늘은 세탁소에서 일하고, 또 저녁에는 다른 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새벽 네시가 되도록 전화나 문자를 하기는 커녕, 아예 전화기를 꺼놓고 있다. 이 정도면 외박이라고 봐도 좋다.

이 일을 어쩐다?

확 결혼을 해서 꽁꽁 옭아매버려?

그런다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요새 세상은 결혼과 이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안명수는 그런 흐름에 휩쓸리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드라마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새해가 되면 바로 제작회의를 하여야 하는데, 아직은 촬영 스케쥴도 구름 위에 떠있다. 집에서는 엄마가 대놓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해를 넘기는 것을 곱지않은 눈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이 연하남은 알 턱이 없다. 엄마는 연하남 관리에 안명수보더 더 열을 올리니까.

드디어 와야 할 남자가 왔다.

안명수는 그가 왔는가를 확인하러 그의 텔을 들락거리다가 열을 받았다. 그래서 그만 비밀번호를 바꿔버렸다. 그가 안명수를 거치지 않고는 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가 지금 안명수의 벨을 누른 것이다.

안명수는 그를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미안하거나 죄송하거나 한 것이 없다. 마치 개선장군이기라도 한 것처럼 너무 당당하게 입성하는 것이다. 제일 먼저 그에게 술냄새가 나는가 보았다. 그가 술을 마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허튼 짓거리를 하고 다닌 것 같지는 않다. 값싼 바디워셔와 샴푸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럼 혹시 모텔에서 오는 건가? 뭔가가 잘 못 되어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안명수에게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하아. .. 이제 오셔?”

"어? 누나. 아직 안잤어요?"

"응?  자기가 아직 안왔는데 어떻게 나 혼자 잠이 와?"

"그런데 왜 내 비밀번호가 맞지 않는거죠?"

"뭐야? 자기 치매 왔어?"

"내 번호 3498 아닌가?"

"뭐야아. 아침에 4598로 바꿨잖아."

"내가?"

"그럼 내가 했을까?"

"그럼 건너가서 빨리 옷 갈아입고 올께요."

"응. 피곤하겠다."

"나도 정신을 못차리겠어."

"그래. 빨리 갔다 와."

안명수는 정수 앞에서 마치 고양이 앞의 쥐처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기회에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휘어잡으려고 했는데 도대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 안명수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아무래도 그와 함께 맥주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셔야 하지 않을까? 안명수는 식탁에 맥주와 안주를 차려놓았다. 그리고 그를 기다린다.

그런데 빨리 오겠다던 그가 또 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안명수는 더 이상 기다릴 마음이 아니다. 그녀는 건너갔다. 그의 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주 보이는 그의 소파에 앉아서 그는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빨리 온다며, 안오고 뭐해?"

"어? 누나 .."

"자기 안잘래요? 지금 몇 시인 줄 알기는 해?"

"내일 토요일이거든요?"

"과천 외숙모 가게에는 안가도 돼?"

"연초까지는 쉬려고."

"그랬어? 우리 건너가서 얘기 좀 해요."

"안그래도 이것만 보고 간다는 것이 깜빡했네. 미안해요."

그는 일어서서 안명수와 함께 그녀의 텔로 건너간다. 안명수는 그를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냉장고에서 맥주캔을 꺼내지 정수가 받아서 잔에 따른다. 

"자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할래?"

"뭐든."

"오늘 무슨 일 있었니?"

"아뇨.  늦게 와서?"

"응. 자기 전화기 열어봤어?"

"앗!"

그는 후다닥 건너가서 전화기를 가져왔다. 

"누나, 미안해. 이 전화기 배터리가 ..."

"그누므 배터리 타령.  

그건 여지껏 지겹도록 써먹었으니까 다른 레파토리를 개발하지 못해?

좋아. .. 아무튼 그것까지도 이해해. 

그럼 나한테 무슨 언질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냐?"

"정말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네.

죽을 죄를 지었는데, 어쩌죠? 헤헤."

"지금 애교로 슬쩍 넘어갈 생각이야?"

"앗. 그럼 누나 지금 혹시 열받은 거야?"

"열받았느냐고? .. 자기가 나라면 어땠겠어?"

"난 누나 살려두지 않죠. 그냥, 콱! "

정수는  손으로 살짝 주먹을 쥐고 안명수의 코 앞에 대고 흔든다. 그런데 동시에 그는 안명수에게 윙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안명수는 웃는 수 밖에 없다.

"하하하. 그래.  지금까지 누구랑 있었어?"

"수지 누나랑요."

"수지 누나라고?"

"예."

"그럼 너 수지랑도 섹스하니?"

"예? 그게 무슨 말이죠?"

"너는 누나라고 부르는 여자랑은 침대에 가잖아, 안그래?"

"아니, 누나.  그건 .."

"내가 아직도 자기 누나야?"

"이젠 마누라죠."

"날더러 누나라고 부르기만 해.

나는 그런 여자들이랑 동급이 아니잖아!"

"맞아요. 마누라."

"하아. .. 요걸 어쩐다?"

"콱 죽여!"

"그럼 나한테는 남편이 없어지는데?"

"아하. 그게 또 그렇게 되네."

"이건 뭐.  남편이 아니라 웬수라니까."

"죄송. 또 죄송요."

"죄송이면 다야?"

"그럼 어쩐다?"

"아니. 윤수지랑 섹스를 한다고 해서, 내가 묻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돼?"

"그럼 내가 어떻게 감히 거짓말을 해?"

"그것도 그렇네."

"하아. .."

그는 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한없이 불쌍하고 애처로운 모습이다. 그가 무대에서 노래하다가 중간에 간주가 나갈 때 저러고 서있다. 그러다가 간주가 끝나고 다음 노래가 이어질 때면 한없이 애처로운 표정으로 어떨 때는 눈물까지 흘려가며 노래를 부르는 통에, 보는 사람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니까.

"이렇게 되면 내가 또 양보하는 수 밖에 없거든. 

그러려면 명분이 있어야 해."

"마누라는 원래 마음이 깊고 넓으니까."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마누라들은 전부 다 나만큼 마음이 넓고 깊거든요. 그것 말고."

"으음. .. 그럼 마누라가 나를 예쁘게 봐주고 싶으니까?"

"뭐야? 그럴 마음 눈곱 만큼도 없는데?"

"흐으음. .."

"너는 적어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아. 알았어요. 앞으로도 또 이런 일이 생기면 항상 솔직할께요."

"뭐야?  자기 방금 나한테 한 말이 무슨 말인 줄 알고 한 소리야?"

"앗!.. 또 그러겠다고 한 거네. 미안요."

"다시는 안그런다고?"

"다시는 안그러려고 노력할께요."

"마누라 노릇 하기 진짜 더럽고 치사하네."

정수는 안명수에게 건배하자고 잔을 든다. 안명수는 따르는 수 밖에 없다. 거절할 명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아이돌 소극장이 오픈하고 4개월이 지났어.

그 동안 연예계나 뮤지션들이 외면하지 않고 우리에게 협조를 많이 했거든.

그 사람들 덕에 소극장도 큰 거야."

"그 사람들이 나를 보고 그랬겠어요?

 박PD님이나 마누라를 보고 한 것이겠죠."

"지금 바깥 세상에 <뜨고 싶으면 아이돌 소극장에 출연하라>는 말이 떠돌고 있단다.

자기 몸조심 하지 않고 아무 여자랑 자고 다니면 앞으로 어쩌려고 그래?"

"절대로 조심하겠습니다."

"내가 네 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눈감아 주지만, 

자기 그러다가 언젠가는 코 다친다. 

그 코 별로 크지도 않구만."

"명심할께요."

“코 큰 남자가 그것도 크다던데. 히히”

“마누라! 지금 부부싸움을 거는거요?”

“에이 그럴 리가?  장모님한테 고자질이나 하려고?”

“이번 일은 꼭 말씀을 드릴껀데…”

"그건 자기 알아서 하고..

자기 혹시 밥 겔도프(Bob Geldof)라는 이름 기억에 있어?"

"아일랜드 가수, 싱어송 라이터, 그리고 음악계의 성자요."

"그니까 이 사람이 왜 음악계의 성자냐고."

"아하. 그거 상당히 복잡한데.

우리 지난번 시험 과제가 이거랑 비슷했거든요.

1984년에 아프리카에 이디오피아랑 또 거기 인접한 다른 나라에 엄청난 가뭄때문에 기근이 와요. 그래서 난민이 엄청 많이 발생해요. 

1984년 11월에 밥 겔도프는 영국, 아일랜드 뮤지션들 40명이랑  Do they know Christmas? 라는 싱글앨범을 만들어요. 이 앨범 판매 수익금이 구호기금으로 전달됩니다. 그런데 이 앨범이 300만장이 팔리는 기적이 일어나요. 그 해 크리스머스에는 사람들이 크리스머스 캐롤 대신에 이 곡을 들었다고 할 정도였대요. 

1985년 7월에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콘서트를 열어서 수익금을 구호기금으로 전달했어요." 

"그럼 아프리카 난민을 도왔다고 해서 음악계의 성자야?"

"그것도 그런데, 바로 이 사람한테서 영감을 받아서 미국에서도 USA for Africa 가 We are the World 를 만들거든요.

(** 또 그로부터 20년 후인 2014년에는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를 돕기 위해서 이 만들어지고 ..**)"

"흐으음. .. 미국에서 USA 가 만들어지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지?  USA가 미국 아니야?"

"United Support of Artists for Africa 이고, 우리말로 꼭 옮긴다면<아프리카를 돕는 예술가들 연합> 뭐 이런 의미겠죠. 미국의 <해리 벨라폰테>가 무보수로 자선 앨범 제작에 동참할 45명의 뮤지션을 모아서 만든 프로젝트 그룹입니다. 이들이 만든 앨범에 수록된 타이클 곡이 바로 We are the World 이고, 여기에 마이클 잭슨이 라이오니엘 리치와 공동 작사 작곡한 곡이 We are the World 입니다."

"그거 앨범 타이틀이랑 노래 곡 이름이랑 똑같다는 .."

"예. 퀸시 존스가 이 곡을 지휘했어요. 이 음반은 700만장까지 팔리고, 한달간 빌보드 챠트 1위를 지킵니다. 이 판매 수익금도 아프리카 구호기금으로 보내집니다."

"그럼 We are the World  25 for Haiti는 무슨 곡이지?"

"마이클 잭슨은 2009년에 사망하고, 다음해 2010년에 지진으로 황폐화 된 하이티를 돕기위해서 25년 전의 퀸시 존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또다시 프로젝트를 합니다. 마이클 잭슨을 추모한다는 의미도 있죠. 이 곡은 하이티를 돕자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하기 위해 벤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개됩니다. 1985년에 We are the World 를 녹음했던 그 녹음실에서 마이클 잭슨 대신 그의 여동생 자넷 잭슨이 출연합니다. 또 힙합, 오토튠까지 추가해서 최신 음악으로 리메이크된 음악입니다. 곡의 후반부에는 랩이 들어가는데 정말 환상적입니다."

"음. .. 자기 정말 나한테 잘못했지?"

"예?"

"수지랑 모텔에서 섹스하고 이 시간에 나타난 것을 말하는 건데."

"예.  진심으로 잘못했습니다."

"신예원이랑도 했어?"

"아직요."

"언제 할꺼야?"

"금방. 

예? 아니죠. 

아아. 이건 말도 안돼. 

아니, 왜 내가 신예원이랑 섹스를 해요?"

"뭘 이렇게 버벅대? 머지않아 할꺼잖아?"

"아직 말이 없는데요?"

"내가 보니까 시간 문제야."

"걔는 누나라는 그룹에 끼지도 않거든요."

"아무튼.  어쨋든.  자기는 과거, 현재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까지 

여자 문제로 계속 내 속을 썩이는거야?" 

"말이 쫌 이상한데? 미래에 어떻게?"

"과거랑 현재를 통해서 미래를 볼 줄은 모르냐?"

"아, 예에..."

"잘했어? 아니면 잘 못했어?"

"잘못했어요." 

"나같이 마음 넓고 관대한 마누라 만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알아라."

"예. 당연하죠."

“그래서 마음 놓고 안심하고 그 짓거리나 하도 다니지?”

“에이 .. 무슨 그런 말씀을?”

"그럼 자기는 이제 내가 하는 말을 들을래? 안들을래?"

"퀸이 시키면 들어야지.  뭐든지 시키기만 해요."

"좋아.  자기도 USA 그러니까  United Support of Artists 를 추진해."

"예?  갑자기 그 무슨 ..?

무슨  USA 를 갑자기 하래?"

"대중예술하는 분야 전부 다 연극, 개그, 뮤지컬, 토크콘서트 등등 

이런 것 하는 사람들을 참여시켜서 예를 들면 장애인을 후원하는 USA를 추진하라고."

"으음 ..."

"내가 갑자기 이러니까 황당해?"

"당연하죠. 이건 뭐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

"자기가 다른 여자랑 섹스하고 이 시간에 나타나면, 나는 황당하지 않을까?"

"그.. 그건.. 그러니까..."

"방금 나한테 얘기하는 것 보니까 아는 것은 꽤 되네?

알기만 하면 뭐해?

직접 실천에 옮겨!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자기는 이런 사회운동을 일으키란 말이다." 

"흐으음. .. 연말에 시간 있을 때 우리 다시 얘기해요.  

그건 그렇게 간단하게 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간단하게 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은 내가 할께. 

그거야 뭐. 사람 골라서 불러들이는 거지. 

좋은 목적으로 퀸이 부르면 웬만해서는 거절 안할껄?

그러면 곡을 써서 연습해서 녹음하는 것은 네가 하라고. 

혼자 하든가 윤현도 선배랑 합작을 하든가 그건 자기가 알아서 해.

영상감독이나 촬영은 우리 방송국에서 하면 되거든."

"아아아. 의욕은 생기는데 .. " 

"그럴만한 실력도 없으면, 여자들이랑 섹스나하고, 찌질하고 허접하게 굴고 다니지 말아요."

"으윽."

"또 이번에 내가 드라마 촬영할 계획하는 것도 알고 있지?"

"예."

"그거 OST도 이번에는 자기한테 넘어갈꺼야."

"예?"

"자기야.  나는 이렇게 자기랑 해보고 싶은 꿈이 많거든?

그런데 자기는 이년 저년이랑 섹스나 하고 다니고 .."

"미안해요."

"미안하기만 하지? 다시는 안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들지?"

"그러니까, 있잖아요. ..  그게 ..."

"알아.  자기는 그러기 싫은데, 그년들이 자기한테 지랄을 친다 이거지? 

자기는 곧 죽어도 남 탓이지?"

"내 말은 그러니까 그게 아니고 ...."

"시끄러워!  결국 그 구멍에 쑤셔 박은 것은 자기잖아!"

“하아.. 미치겠네.”

"이제 자기가 알아서 해.

나는 영감을 불어넣어줬으니까, 

더 이상은 내 영역이 아니라서 난 모르는 일이야."

"이거 하면 섹스하고 다녀도 돼?"

"We are the World 처럼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내면 눈감아준다고 했다."

"진짜?"

"그렇게도 그러고 다니고 싶니?"

"아뇨. 전혀 아닌데요."

"그러니까 퀸이 내리는 벌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자자."

"오늘 걸린 것 때문에는 몇 일 동안 금지죠?"

"아냐. 그런 것 없어. 

당장 가서 깨끗이 씻고 와."

안명수는 침대로, 정수는 욕실로 갔다.

그들은 아침 해가 완전히 떠오른 후에야 잠이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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