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5 104. 아이돌 세탁소에 나타난 유아랑 =========================================================================
경애누나는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는 손님들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세탁물을 접수할 때나, 나중에 세탁이 끝난 옷을 고객이 다시 찾아갈 때에는 직접 확인을 했다. 손님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고객의 신뢰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몇명 안 되는 고객들은 배달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배달 업무만 전담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남자로 채용했다. 여직원이 배달해주기를 원하는 고객에게는 여직원이나 경애누나가 잠시 갔다오기도 한다.
외숙모 세영은 경애누나와 함께 12월에 있을 이벤트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20만원 이상의 세탁물을 맡길 경우에는 아이돌 소극장의 입장권을 무료로 증정한다는 내용을 큼직하게 적어서 입구에 내걸은 것이다. 공짜를 좋아하는 것은 서울 강남이라고 다르지 않다. 홍보 때문인지 서서히 세탁소를 찾는 고객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루는 정수가 세탁소에서 근무하다가 세탁소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여성 고객인데 자기가 세탁을 맡긴 옷이 배달되면서 몇 개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 고객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지 않았다. 매우 차분한 목소리였다. 정수는 그 여성 고객을 안심시키는 말을 했다.
"저희가 100프로 배상을 해드리고 있으니까 언제 한번 꼭 들러주십시오."
"정말요?"
"저희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세탁소를 몇일만 하다가 문닫을 생각이 아니거든요."
"내가 백화점 안에 와있는데, 지금 들러도 돼요?"
"네. 당연하죠. 기다리겠습니다."
경애누나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정수는 방금 통화한 내용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경애누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내가 분명히 확인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여성이 세탁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핸드백 하나를 어깨에 메고 있을 뿐, 손에 옷보따리를 들고있지 않다. 정수는 그녀가 몇일 전에 맡긴 옷을 찾으러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정수를 보자마자 활짝 웃는다.
"혹시 한정수씨 아니세요?"
"네. 제가 한정수입니다."
"짝퉁 아니고 진짜세요? 하하하."
"진짜 한정수입니다. 하하하."
"한정수씨가 여기서 일한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진짜였구나."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했지만 속으로는 긴장해야 했다. 그녀는 범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는 20대 초반 같은데, 늘씬한 키나, 큼직한 젖가슴이나, 터질듯한 엉덩이, 입고 있는 옷은 정말 야하다는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아까 전화를 드렸었는데. .."
"아. 네에."
정수는 준비실에 있는 경애누나를 불러냈다. 두 사람은 컴퓨터에서 한참 동안 확인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맡긴 옷들이 모두 입력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이상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
"아이. 참.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한다는 말씀이세요?"
"그게 아니라, 제가 직접 확인을 하고 나서 입력하기 때문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속옷이 빠져있거든요."
"속옷일 경우에는 기타로 해서 항목표시가 따로 들어가거든요."
정수는 두고 보기에 너무 궁금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수도 없다. 그런데 그 여성 고객이 정수에게로 왔다.
"나 지금 엄청 신경질이 나거든요."
"그럼 안되죠. 아이스크림 드실래요?"
"먹고는 싶은데, 안돼요. 살과의 전쟁중이거든요. 하하하."
"그럼 커피는 어떠세요?"
"자판기나 믹스 말고 헤즐렛 있어요?"
"제가 가서 사올께요."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나가서 마셔요."
정수는 약간 당황하면서 고민했다. 같이 나가기에는 너무 야한 것이 문제다. 경애누나를 슬쩍 보니까 얼굴에 경악이 가득 들어있다. 그렇지만 커피 얘기는 정수가 꺼낸 것이므로 그는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안내 데스크를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정수에게 착 달라붙어서 팔짱을 낀다.
"백화점 안에서 드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아이. 무슨 커피를 백화점에서 마셔요? 구질구질하게 그러지 말고 .."
"제가 근무중이라서 .."
"사장님, 한정수씨 딱 한 시간만 빌려주세요."
정수는 야구모자를 꺼내서 눌러썼고, 그녀는 경애누나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의 팔을 끌다시피 해서 세탁소를 나섰다. 그는 등에서 작렬하는 경애누나의 눈총을 느낄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녀는 정수와 나란히 서서 은근히 몸을 기대온다. 그녀에게서 향기가 코를 찌른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
"고객님이 아니고 아랑이예요."
그는 약간 떨어지려고 했으나 그녀가 노골적으로 몸을 더 밀착시켜온다. 그의 팔을 그녀의 젖가슴이 지긋이 누르면서 물컹해온다. 그의 팔이 떨린다. 정수는 속으로 더운 여름이었으면 이 여인의 옷이 어땠을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
백화점을 나서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길을 건넜다. 저녁이어서 어두워진 것이 천만 다행이다.
"나는 지금 엄청 좋아서 이러는 건데, 내가 이러는 것이 부담되세요?"
"제가 하는 일이 있으니까 ..."
"아항. 매스컴에 오르내릴까봐서요?"
"고객님께서도 피해를 입으실 수가 있습니다."
"고객님 아니고 아랑이라니까."
"죄송합니다. 아랑님."
"웃겨. 무슨 아랑님? .. 하하하."
두 사람은 카페로 들어섰다. 창가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주문했다. 정수는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가 궁금했다.
"지금 나 때문에 긴장돼요?"
"약간요."
"참나. .. 이걸 어떻해?"
"무슨 일이신데요?"
"정수씨 혹시 변태 알아요?"
"어떤 변태를 말씀하시는데요?"
"아이잉. 그러지 말고 자연스럽게 친구처럼 말 놓자."
"그래도 돼요?"
"너 혹시 변태 알아? 여자들 냄새 나는 속옷 돈주고 사는 변태말이야."
"말은 들어봤는데, 그게 왜?"
"내가 세탁소에 팬티랑 브래지어도 같이 맡겼거든. 그런데 아까 보니까 그게 입력이 안돼있는 거야."
"우리 세탁소에서는 그런 일이 생길 리가 없거든."
"그럼 내가 싸이코야?"
"생각해봐. 나나 다른 여직원들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고. 다른 남자 알바생은 컴퓨터에 접근도 안 하는데?"
"남자만 그러겠냐? 강남 역이나 선릉역 쪽에 가면 그런 거 사고 파는 사람들 많아."
"돌겠네."
"10000원 짜리 싸구려 팬티 하나 잘 때마다 3일동안 입고 갖다 팔면 10만원이야. 그거를 만일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벗어서 직접 전해 주면 20만원이고."
"음..."
"그게 다가 아냐. 여자들 거기서 나오는 물을 매니큐어 병 같은데 담아서 팔면 30만원 이상이거든. 생리할 때 나오는 물은 더 비싸대."
"아랑이는 어떻게 그렇게 빠삭해? 너도 해본거야?"
"정수 눈에 내가 쫌 야해 보이지 않니?"
"안그렇다고는 말 못하겠네."
"나 .. 업소에서 일해."
"흐으음.."
"또 긴장타네. 나는 팬티를 빨지 않고 며칠 동안 입다가 팔아야 할 정도로 돈이 아쉽지 않아. 그런데 우리는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팬티가 그냥 일반 팬티가 아냐. 일본에서 가져온 섹시팬티야. 우리나라에서는 구하지도 못해. 그거를 너네 세탁소에 맡겼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게 뭘 말하는 줄 알아?"
"짐작이 가."
"너네 직원 중에서 누군가가 그 팬티 팔았으면 최소한 50 아니면 70 까지도 받았을 꺼야."
"그럼 이 일을 어쩐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는 나 말고도 업소녀들이 많이 살거든. 아예 업소녀들만 사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건물들도 꽤 돼. 걔네들도 이런 속옷 때문에 엄청 골치 아파 해. 이런 일들이 생기니까 함부로 세탁소에 보내지도 못해. 함부로 말할 수 잇는 일도 아니잖아?"
"아랑아. 이 말 해줘서 너무 고마워. 이제 어떻하면 좋지?"
"나야 뭐. 그 팬티는 잊어버린 셈 치면 되지. 그런데 앞으로는 나 말고 다른 업소녀들도 올텐데, 그거 다 어쩔래?"
"알았어. 사장님보고 직접 관리하라고 말할께. 지금 백화점에 들어가자. 내가 비슷한 걸로 사줄께."
"바보. 그런 옷은 백화점에서는 안 팔아. 성인용품 파는 성인샵에나 가야 비슷한 것이 있을껄."
"음 .."
"정수 너는 그런 데에 못들어가지?"
"그럼 난리나죠."
"됐어. 잊어버려. 그 대신 가끔 나랑 이렇게 커피나 마셔줘. 알았지?"
"정말 고마워."
"다시 말하는데, 난 아랑이야. 유아랑."
"유아랑. 이름 참 예쁘다."
"내가 이름만 예쁘냐? 정수는 21살이라던데 맞아?"
"응."
"그럼 내가 누나네. 하하하."
정수는 아랑이를 데리고 다시 세탁소로 돌아왔다. 경애 누나는 마감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수는 경애누나를 불러서 아랑이를 소개하고, 아랑이에게 아까 한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유아랑은 또박또박 전부 다 말했다.
"강남이라는 곳에서는 진짜 벼라별 일이 다 일어나요. 사장님, 진짜 조심하셔야 해요."
"아랑씨. 정말 고마워요."
"그니까. .. 가끔씩 와서 오늘처럼 정수씨랑 커피 마셔도 돼요? 하하."
"커피를 마시든, 저녁을 같이 먹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상관 안할께요. 하하."
"알았어요. 전화 드리고 올께요."
"오늘은 일 안 나가세요?"
"요새는 몇 일 쉬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죠?"
"아하. .. 알았어요."
정수는 윤수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윤수지는 이미 안명수와 만나서 이야기를 끝냈으며, <아이돌 소극장> 경영에 덤벼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정수에게 만나자고 했고, 그는 세탁소에서 일이 끝나는 대로 옐로우로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유아랑은 경애누나와 서로 웃으면서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유아랑도 심성이 착해서인지 둘이 금방 친해져 버린 것 같다.
"아랑씨 몸 정말 부럽다. 도대체 어떻게 가꾸면 이런 몸이 나와?"
"언니, 난 아직 어리잖아요. 그래도 한 달에 3백 정도는 몸 관리하는 데에 투자해요."
"돈 들인다고 다 이런 몸이 되냐? 아랑씨 몸은 타고난 몸이야."
"나. .. 솔직하게 말하면 아까 엄청 고민했어. 한정수한테 접근했다가, 잘못하면 꽃뱀 취급 당할 줄 알고. 하하."
"나도 솔직히 말할께. 아까 둘이 나갈 때 그 생각 안한 것은 아니거든. 하하."
"그럼 한번 유혹해봐? 넘어 올라나? 하하."
"흐으음.."
경애누나는 세탁소 문을 닫고, 그녀에게 저녁 먹으러 같이 나가자고 했다. 유아랑은 아까는 살찌는 것을 핑계로 삼더니, 이번에는 순순히 경애를 따라 나섰다. 정수는 세탁소를 나서서 윤수지를 만나야 했으므로 그녀들과 작별을 했다.
"뭐야? 왜 도망가는데? 내가 유혹한다고 해서 그러나?"
"그게 아니고, 중요한 일이 있어요. 미안. 다음에는 꼭 저녁 같이 먹을께."
"흥. 누가 저녁 같이 못 먹어서 안달이라도 난 줄 알아?"
경애누나가 보는 앞에서 유아랑은 갑자기 정수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가수 입술이라 그런지 정말 부드럽다. 이제 가봐. 하하하."
그는 택시를 타고 옐로우로 갔다. 가는 동안에 유아랑의 몸매와 그녀가 키스했던 것을 계속 생각했다. 쉽게 잊혀질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엘로우에 도착해서 홀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하면서 윤수지를 찾아야 했다. 윤수지는 구석에 있는 모퉁이를 너머에 있는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수심이 비친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정수를 보자 윤수지는 손을 흔든다.
"이제 끝났어?"
"응."
"그 일 고만하면 안돼?"
"왜? 난 세탁소 일이 몸에 밴 것 같아. 나중에 누나처럼 은퇴하면 세탁소 할꺼야. 하하."
"참나. 농담이 아닌데.."
"농담이 아니면? .. 무슨 일 있어? 왜 그러는데?"
정수는 윤수지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윤수지는 먹는 동안에 별 말이 없이 조용했다. 정수는 가끔씩 윤수지가 한숨을 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윤수지는 고개를 들어 잠시 그를 보고는 얼른 고개를 숙인다.
"누나, 왜 그래?"
"내가 뭘?"
"한숨도 쉬고 .."
"나. .. 오늘부터 그룹 고만해."
"그럼 이제 시원섭섭?"
"그게. .. 한때는 내 인생을 걸고 매달리다시피 했었는데 ..."
"알았어. 그만하고 일단 저녁부터 먹자."
"아무래도 그렇지? 그럼 이따가 또 칵테일 마시러 갈 수 있어?"
"콜."
그제서야 윤수지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