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4 103. 윤수지 : 잊혀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 =========================================================================
다음날 정수는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자 바로 세탁소로 갔다. 6시부터는 세탁소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과천점에 있는 외숙모의 세탁소와는 달리 손님도 많지 않고 한가한 편이다. 경애누나는 사진과 함께 라고 적힌 신분증을 목에 걸고 있다.
그 날 경애누나는 정수와 함께 각 층에 있는 매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것은 외숙모 세영이 사용했던 전략으로 정수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 아마도 이번에도 외숙모가 시킨 것 같다. 눈에 띄는 여직원들만 어림잡아 100명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다리 아프지?"
"응."
"지하에 가서 저녁 먹고 올라가자."
마지막으로 간 곳은 지하에 있는 푸드코너이다. 오늘은 일식 코너에서 초밥을 먹었다. 다음은 라벤스베스킨 아이스크림 집으로 가서 아이스크림 4개를 포장해서 들고 세탁소로 올라왔다.
경애누나가 정수에게 접수데스크에 앉아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여직원 두 명을 불러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제 백화점 직원들이 조금씩 이 세탁소로 오는 중이야."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힘들더라도 참아야겠네."
"과천이랑은 다르지?"
"어련하겠어? 서울 하고도 강남인데."
경애누나는 아직은 일이 많지 않다면서 정수를 준비실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게 한다. 접수를 받는 일은 다른 여직원이 하니까, 정수는 그녀 옆에 그냥 앉아있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누나, 그럼 12월에 이벤트를 하나 하자."
"무슨 이벤트?"
"세탁물을 많이 맡기는 고객 몇 명에게 사은품으로 극장 입장권을 선물하는 것이 어떨까?"
"음. .. 그러면 좋기는 한데..."
"지금이 11월이니까 미리미리 홍보를 해보세요."
"알았어. 외숙모랑 얘기해 볼께."
윤수지는 약속대로 8시에 정수에게 왔다. 둘이는 약속이나 한 듯이 야구 모자를 눌러쓰고 함께 백화점을 나섰다.
"누나, 저녁은?"
"먹었지."
"칵테일이나 와인 한잔 할래요?"
"그럼 여기서 택시 타고 삼성동 쪽으로 가자."
수지는 정수를 라는 칵테일바로 데려갔다. 수지는 달콤새콤한 <섹시마일드>를 주문하면서, 정수에게는 지독하게 쓴맛이라며 <오르가즘>을 권했다.
"이름도 참."
"칵테일 이름이구만, 별걸 다 신경을 쓰고 그래? 하하."
"누나, 이번 연말에 바빠?"
"은퇴할꺼라고 했잖아."
"은퇴하면?"
"시집이나 가야지."
"그 나이에 벌써?"
"어쩌겠냐?"
"남편감은?"
"이제 찾아야지."
윤수지가 미소를 지을 때, 그녀의 볼에는 귀엽게 보조개가 피지만,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배어있다. 그냥 두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을 것 같다. 정수는 오늘의 본론으로 얼른 화제를 바꿨다.
"혹시 우리 극장 경영하는 일을 도울 생각 있어?"
"극장?"
"지금까지는 LBS 안명수 PD 랑 같이 했는데, 방송국 일 때문에 극장 일을 나 혼자 해야 할 상황이거든."
"그런 일을 하려면 인맥이 있어야 하는데 .."
"누나는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안PD나 김감독님이 기획은 해주시니까"
"그럼 나는 엑시큐트만 하란 말이야?"
"처음에는 그렇죠. 지금은 이 분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백화점 직원들이 맡아서 하거든."
"음. .. 생각 좀 해보자."
"결정 나면 안PD 한테 가봐. 내가 말은 꺼내놨으니까."
윤수지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둘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마신 칵테일이 어느새 석잔째이다. 정수도 술기운이 올라온다. 수지가 화장실에 갔다 오더니 자리를 정수의 옆자리로 옮겨왔다.
"넌 노래를 얼마나 더 할꺼니?"
"난 학교 졸업도 안 했잖아?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
"진짜 .. 노래하는 것이 좋아서 시작은 했지만, 두 번은 못할 노릇이야."
"그래도 누나는 성공한 케이스 아냐? 스캔들도 별로 없고 .."
"너는 솔로를 하니까, 그룹들의 고충을 몰라."
"나도 나중에는 그룹으로 나갈꺼야."
"그건 정말 차원이 다른 얘기야. 엄청 신중하게 생각해야 해요."
"왜?"
"5인조 그룹이라고 해봐. 너네가 앨범을 냈다든가 아니면 팬 관리를 하려면 뭘 해야지?"
"음악방송에 나가야지. 지상파 3개 그리고 케이블 하나 정도?"
"그거 .. 돈이 얼마나 드는 줄 알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일단 의상만 생각해봐. 노래 컨셉에 맞게 스타일리스트가 직접 제작을 하거든. 그 의상비가 1인당 70만원 정도야. 5인조면 350만원이지? 방송사 4군데 나가려면 1400 이냐?"
"이런."
"거기다가 댄서들을 따로 세운다면 일인당 10만원은 줘야겠지? 무대 한번에 5명이면 50만원이야. 그럼 4개의 방송사가로 계산하면 200이지?"
"거기다가 메이크업이나 헤어 까지 얹으면?"
"한번에 50만원은 계산해야지. 우리 같은 경우 5인조 그룹이거든. 한번 이동하면 차가 4대 정도 뜨고 스태프만 15명이 떠. LBS에 출연하면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이렇게 5군데만 돌아도 일주일로 어림 없어. 1000만원은 금방이야."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이게 지랄이. .. 음악 방송이라는 것은 드라마와는 완전 달라. 시청율이 고작 3% 정도밖에 안 나와. 그런데도 이름을 유지하려면 이것을 안할 수가 없다고. 그 돈을 써가면서."
"어차피 그 돈은 기획사에서 내주는 거 아냐?"
"기획사는 뭐 .. 땅 파서 장사하니?"
"그럼 그룹이 자체로 해결한다고?"
"만일 음악방송 출연비용이 1억이 나오고, 우리 매출액이 3억 정도가 되면야 당연히 기획사가 내주죠. 네 생각에 그런 그룹이 몇 개나 될 것 같아?"
"아아. .. 맞네."
"그런데 현실이 어디 그래? 일년 매출액을 다 쏟아 부어도 음악방송 출연료로 모자랄 때가 있거든. 그렇다고 해서 만일 음악 방송에 안 나가면 어떻게 되겠어? 서서히 사양길로 가는 거야."
"그래서 김미라가 걸그룹 하겠다는 것을 누나는 막으려는 거네?"
"너는 솔로죠. 또 LBS 에서 다 해주니까 진짜 복덩어리에 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해. 박PD님이나, 안PD님이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나 이제 알겠니?"
"그거야 말 안 해도 .."
"그게 .. 이 바닥은 진짜로 완벽하게 되지 않으면 바로 탈락이 답이야. 이것 때문에 나는 이제 고만하고 내려오려는 거고."
"그럼 나이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뻥이야?"
"그렇다고 봐야지. 우리 5인조가 일년에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8주에서 12주 정도를 투자하거든. 그 비용만 1억이 넘어. 알겠니? 너도 알지만, 우리는 랭킹에서 20위 정도 밖에 안돼. 그럼 우리 연 매출액이 몇 억이나 될 것 같아? 그럼 우리보다 못한 애들이 얼마나 많아? 걔네들은 얼마나 비참할 지 생각해본 적이 있어?"
"진짜 어이없네."
"우리는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을 하는 거야. 자존심 다 깔아뭉개고, 벗고, 내놓고, 흔들고, 돌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있는 돈, 없는 돈을 긁어 모아서 이 몸부림에 투자를 하거든요."
"그래. .. 이해 해."
"Top에 있는 애들은 완전 다르죠. 옷도 유명 디자이너들이 갖다 입혀주고, 출연료도 엄청나고, 그런데 이 나라에 그런 애들이 몇이나 돼? 안 그런 애들은 이런 저런 비용을 끄려고 어찌어찌 해서 스폰을 받게 되고, 그러고 보면, 결국은 할 짓, 안 할 짓 다 해야 하고 .. 흑흑흑."
"누나가 은퇴를 앞두고 고민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한류스타들이 해외로 순회공연을 나간다고? 우리의 문화를 해외에 알린다고? 말이야 진짜 좋죠. 그거 한 번 나가면 사람이 몇 명이 떠야하고,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 줄 알기나 해? 중국이나 동남아로 가는 애들이랑, 미국이나 유럽으로 나가는 애들이랑 얼마나 비교되는 줄 모르지? 완전 겉만 화려하고 번지르르해. 뚜껑 열고 들여다보면 완전 생지옥이야. 이것이 현실이야."
그는 흔들리는 수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수지는 그에게 기대오면서 계속 흐느꼈다. 그는 수지에게 몸을 기꺼이 내주다시피 했다.
"누나,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여기는 좀 아니잖아?"
"그래. 내가 잠시 정신줄울 놔버렸네. 미안해."
정수는 계산을 하고, 두 사람은 칵테일 바를 나섰다. 수지는 정수에게 팔짱을 껴온다. 싸늘한 가을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온다. 길에는 벌써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곳도 있다.
"이렇게 밤길을 걸어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누나만 그런 것이 아니거든요."
"정수랑 걸으니까 더 좋은 것 같다. 하하."
"나는 누나가 더 이상 울지 않고 웃으니까 더 좋은데 .."
수지가 걸음을 멈춘다.
정수도 따라서 걸음을 멈추고 수지를 바라본다.
수지도 그의 얼굴을 뚫어져다 쳐다본다.
"잠시 안겨도 돼?"
정수는 대답 대신 양 팔을 열었다. 수지가 그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안겨온다. 그도 수지를 당겨서 안았다. 수지의 몸이 정수에게 밀착해온다. 수지의 얼굴이 정수의 어깨에 얹힌다. 정수의 품에 안긴 수지가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남자한테 안기는 것도 진짜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
"누나는 연애도 못 했겠구나."
"연애는 꿈도 못꾸죠."
수지의 두 팔이 정수의 목과 어깨로 올라왔다. 수지의 얼굴이 정수의 얼굴로 가까이 왔다. 수지의 입술이 정수의 입술로 더 가까이 오면서 수지의 두 눈이 감긴다. 부드러운 수지의 입술이 정수의 입술을 살짝 누른다. 정수는 혀끝을 내밀어서 수지의 입술을 스치듯 쓸었다. 정수의 입술 사이로 수지의 촉촉한 아랫입술이 빨려 들어갔다.
"하아앙."
두 사람은 서로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빨았다. 한참 후에 두 사람의 입이 떨어졌다. 수지는 얼굴을 다시 그의 어깨에 얹었다.
"안기는 것이 오랫만이었으면, 이렇게 키스하는 것도 그렇겠네."
"당연하죠. 난 안아주지 않는 남자랑 키스는 하지 않거든. 하하하"
"어땠어?"
"총맞은 기분이야."
"무슨 뜻? 난 아직 총에 맞아본 적이 없어서. 하하하."
"죽는 줄 알았다고. 진짜 짜릿하고, 아직도 가슴이 벌렁거려 .."
"누나, 지금 이 나이에 그런 말 하면 누가 믿어?"
"내가 대학에 다니기를 했냐? 여고 졸업하고 바로 이 바닥에 들어와서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 연습, 연습, .. 언제 남자를 만나서 연애를 해?"
"연습 안 하는 저녁에나 쉬는 날."
"바보. 그런 때에는 자야죠. 난 남자보다 잠을 택했어. 항상 잠이 부족했거든."
수지의 말을 들으면서 정수는 이것이 결코 남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윤수지는 정수에게 전화하겠다는 말을 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정수도 택시로 집으로 왔다.
집에서는 안명수가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누나, 12시가 다됐는데 안자고 뭐해? 지금까지 날 기다린 거야?"
"드라마 대본 읽느라고. 내일 제작 회의 때문에 .."
두 사람은 씻고 침대로 갔다. 정수는 안명수에게 윤수지를 만났던 얘기를 했다. 그러나 그녀와 키스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피곤하지?"
"누나 보다는 덜 피곤할 껄요."
"아냐. 이리 와보세요."
안명수는 정수를 눕게 하고 정수의 위로 올라앉았다. 그런데 바로 삽입시키는 것이다. 그의 단단한 페니스는 안명수의 미끄러운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자취를 감추었다.
"누나, 다짜고짜 이러면 어떻해?"
"하아. .. 지금까지 너 기다리면서 엄청 젖었거든."
안명수의 허리와 엉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수도 따라서 마주 쳐올렸다. 이렇게 두 사람은 밤을 불태우고 나서야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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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덥죠?
이번 글도 간신히 썼읍니다.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