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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01 100. 정수의 공연 준비 %26 요새 애들 참 복잡해. (101/116)

00101  100. 정수의 공연 준비 %26 요새 애들 참 복잡해.  =========================================================================

미라는 수지네 집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다가 밤 늦게 자기 집으로 갔다. 다음 날 수지가 정수에게 전화를 했다.

"미라는 어제 밤에 집에 들어갔어."

"다행이네. 그 뒤로 미라네 집에서는 별 일 없었겠죠?"

"오밤중에 무슨 일이 있었겠어? 아침에 이모는 또 일하러 나갔을꺼고."

"어제 보니까 수지 누나가 중간에 껴서 입장이 곤란할 때가 많겠네."

"내 입장을 알아준다니 고맙다. 이따가 저녁에 시간 되면 좀 볼까?"

"그래요."

"내가 너네 학교로 갈께.  몇 시에 끝나?"

"네시면 끝나요."

"알았어. 네시에 본관 앞에 주차장에서 기다릴께."

정수는 수지와 만났다.

두 사람은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다.

수지는 정수에게 어제 저녁을 얻어먹었다면서, 오늘은 자기가 사겠다고 학교 앞에 있는 초밥집으로 가자고 했다.

초밥을 먹으면서 수지는 미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이번 연말에는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진짜 고민이다." 

"으음.  그럼 누나 다음 주에 우리 소극장 무대에 설 수 있을라나?"

"왜? 이번에는 뭔데?"

"이번 주에는 윤현도 형님 뮤직쇼이고, 다음 주에는 내가 무대 기획을 혼자 해야 하거든요."

"흐으음.  그래?"

"왜?  우리 극장이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럴 리가 있어? .. 강남 땅에 있는 극장인데."

"그건 그런데 백화점 안에 있잖아요?"

"아무렴 어때? 강남이면 됐지."

"이번 주말에 악보 넘겨주세요. 세곡 중에서 두 곡 부르고, 반응 좋으면 한 곡 더 부르게 준비해요."

"거기서 부르는 노래는 클래식이라야 해?"  

"아뇨. 그냥 누나가 평소에 꼭 부르고 싶었는데, 걸그룹 하느라고 부를 기회가 없었던 노래 .. 뭐 이런 정도면 좋을 것 같아요. 왜 부르고 싶었나 이런 히스토리가 있어도 좋고."

"그럼 미라네 한테는 비밀로 해야 하나?"

"뭐하러 그런 비밀을 만들어요? 차라리 다 초대하세요. 누나네 식구랑 미라네 식구 전부 다요."

"그렇지. 그게 맞을 꺼야."

정수와 수지는 초밥집을 나섰다. 다시 학교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수지가 걸음을 멈추고 정수를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하아~. .. 너는 뜨는데, 나는 지는구나."

"누나. 한 단계를 열심히 마무리 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하긴.  꼭 White 에 있어야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요. 바깥 세상이 누나에게 더 넓을 수도 있어요."

"내일 미라네 오면, 내가 노래 불러볼께."

"내일은 아침에 갈께요. 9시쯤에요."

정수는 수지와 헤어졌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차에 오르고, 정수는 수지의 뒤를 따라서 정문으로 내려갔다. 수지는 깜박이를 넣어서 인사를 하고 왼쪽으로 꺾었다. 정수는 오른 쪽으로 꺾는다.

신예원에게서 전화가 온다.

"자기야. 우리 오늘 영화보러 갈까?  시간 되니?"

"영화?"

"응.  엊그제 보니까 꼭 보고 싶은 것이 하나 떴던데."

"글쎄. .. 지금은 시간이 좀 늦었는데."

"에이.  그냥 확 사고 한번 치자."

"잠깐만.  .. 인생이 생각보다는 길다고 해서 사고 치면서까지 살 정도는 아니거든."

"아무리 그래도 여친이 영화보자는데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

"진짜 여친도 아니면서?"

"가짜 여친도 여친은 여친이거든요."

"차라리 영화는 내일 어때? 나 오후 2시면 끝나는데. 지금 영화 보러 가면 밤 12시 전에는 헤어지기 힘들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영화는 내일 꼭 가는 거다.  나는 오전에 끝나니까 내가 2시에 너네 학교로 데리러 갈께."

"너. 이러다가 우리 학교에 저명인사 되겠다. 하하."

"내가? 왜?"

"벌써 애들이 쑤근거리거든."

"그럼 우리 둘이 다 문제가 되는 거니?"

"여기는 그런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문제가 되는 일은 없어요."

"역시. .. 기가 예대라 다르구나.  하하"

다음날 아침에 그는 미라네 연습실에 갔다. 미라와 수지가 같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정수가 들어서자 미라가 정수에게도 커피를 따라준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수지의 얼굴을 바라본다. 수지는 화장을 하지 않은 얼굴이다. 화장을 했을 때처럼 강한 인상은 없다. 수지가 무대에 설 때처럼 화장을 했을 때에는 꼭 고양이가 떠오르던 얼굴이다. 정수는 나오는 웃음을 애써서 참는다. 수지가 눈치를 채고 고개를 든다.

"뭐해? 지금 내 얼굴을 보는 거니?"

"언니. 거봐라 화장 안 하니까 오빠도 어색한가봐."

"나 화장 안 하니까 이상해?"

"아냐. 누나는 화장 안 해도 예뻐."

"진짜?"

"그럼.  화장 안 한 얼굴을 처음 보니까 그냥 쳐다본 거야."

"거짓말."

"거짓말 아니거든요."

"난 안 믿어.  여자가 화장 했을 때가 더 예쁜 것 아니야?"

"누나는 특별해.  화장 안 해도, 화장 해도 다 예뻐."

"얘가 오늘 왜이래?"

"딱 보니까 오빠 완전 작업꾼이구만. 하하"

"미라야. 내가 수지 누나한테 작업 걸 정도로 여자가 궁하지 않거든요."

"오빠가 그런 소리 하면 언니 상처받죠.  언니가 오빠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시끄럽고 .. 노래나 하자.  ..  정수씨,  여기 악보."

수지는 눈웃음과 함께 정수에게 악보를 건네준다. 수지는 화장 해도 안 해도 예쁘다는 말을 못 믿겠다고는 했지만 기분이 좋은지 웃는 얼굴이다. 웃는 얼굴도 예쁘다.

정수가 수지에게서 받은 악보는 <보리밭> 이다.

1952년에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중에 해군 종군 작가단의 박화목님께서 쓰신 노래말에 해군 종군 음악가단의 윤용하님게서 곡을 붙이신 곡이다.

원래 박화목님이 처음 노래말을 썼을 때의 제목은 〈옛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제목은 윤용하님이  작곡을 하면서 <보리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953년 처음으로 발표되었는데,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었다.  나중에 작곡자인 윤용하님이 세상을 떠나신 후,  1970년대 초반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금은 이 곡이 독창곡은 물론 합창곡으로도 편곡되어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들도 다양한 기법으로 부른 곡이다.

정수가 피아노에 앉아서 전주를 시작한다.

수지가 노래를 시작한다.

보리밭 사이길로 걸어가면 /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

옛 생각이 외로워 휘파람 불면 / 고운 노래 귓가에 들려온다

돌아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 저녁놀 빈 하늘만 눈에 차누나

정수는 오로지 감탄할 따름이다. 걸그룹의 멤버인 윤수지에게 이런 폭발적인 가창력이 숨어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수지의 목소리는 전혀 클래시컬한 소프라노도 아니면서도, 경박스럽지 않은, 과연 윤수지의 노래였다. 듣고 있던 미라가 손뼉을 친다. 정수도 피아노에서 일어서면서 손뼉을 친다.

"와아아.  언니 완전 다시 봐야겠다."

"누나.  이런 것을 보고 대박이라고 하는거야."

"아이. 참.  얘들이 오늘 왜 이래?"

"누나는 언제 이 노래를 불렀었어?"

"고등학교 때 학교 예술제에서 불렀었지. 그 때도 6인조였어."

"그런데 이상하네.  언니가 오늘 여기서 왜 노래를 부른거지?"

"다음 주에 정수네 강남 극장에서 무대에 설꺼야."

"언니!  나 완전 기죽어서 오늘은 노래 안 부를꺼다."

"미라도 언젠가는 저런 정도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하면 돼요."

그는 학교로 돌아와서 윤경식을 만났다. 그에게 다음 주에 무대에 서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윤경식은 무대에는 서겠지만, 정수에게 서운하다고 했다.

"왜?"

"미팅 끝나고 너네 진도 어디까지 나갔는가는 말 안 해주냐?"

"글쎄.  키스도 안 했는데.."

"정수 너 바보다."

"뭐가 맘에 안 드는데?"

"너 어제 신예원이랑 전화했지? 어제 영화보러 가자니까 안가고 오늘 간다고 했다며?"

"그래 2시에.  왜?"

"어제 신예원이 왜 널더러 영화 보라 가자고 전화했는지 생각 못하겠니?"

"글쎄.  ..   생각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닐 것 같네."

"너 어제 윤수지랑 같이 초밥집에서 저녁 먹었지?"

"그래.  저녁이라기 보다는 점심."

"그 초밥집에 우리 다 같이 있었거든. 신예원도 너를 그리로 부르려고 했어."

"그래서?"

"너 신예원이랑 사귀는 것 아니었어? 우리가 초밥집에 들어갔는데, 너는 거기에 윤수지랑 있던데?"

"신예원도 봤냐?"

"신예원이 보고 나한테 말해줘서 알았음."

"내가 윤수지 만난 것은 공연 무대 때문에 만난 것이고, 저녁에 초밥 먹고 나와서 바로 헤어졌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함."

약속대로 오후 두시에 신예원을 만났다. 신예원은 또 팔짱을 낀다. 그러더니 정수를 쳐다본다. 정수가 윙크를 하면서 웃어준다.

"어이없다. 오늘은 누드브라 아니거든요."

"그럼?"

"아예 노.  헤헤"

"표시 안나?"

"난 꼭지가 엄청 작거든."

"흐으음. .. 우리 다른 얘기하자. 영화보러 가자고? 무슨 영화 볼꺼야?"

"심했다. 여친한테 점심 먹었냐고 안 물어봐?"

"점심 먹었어?"

"아니."

"나도 안 먹었어. 영화 보면서 팝콘으로 해결하자. 그리고 저녁 먹으면 되지."

"돈이 없나?  이리 와.  점심은 내가 살께 밥먹고 가자. 밥 굶어가면서까지 볼 영화는 아니야."

"그게 아니라 저녁에는 다른 일 때문에 .."

"윤수지 때문이야?"

"경식이도 같은 얘기를 하던데, 어제 만나서 저녁 먹고 바로 헤어졌다. 우리는 다음 주 무대 때문에 만났던 거야." 

"우리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너희들 생각 보다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 더 사실에 가깝지 않나?"

"글쎄.  우리는 자기한테서 사실이 필요한 것이 아니거든. 당신은 용의자야. 용의자."

"알았으니까 점심부터 먹으러 가자."

"나는 자기가 그 여자랑 그렇다는 말만 했지, 그걸 갖고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알았어. 괜한 오해들 하지 마."

정수는 차에 신예원을 태우고 신촌으로 넘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사실 정수는 영화보는 것 보다는 점심 먹는 것이 더 좋다. 

점심 먹으면서  신예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고 깔깔거린다.

"이번에 두 번째로 영화 보는 것을 시도할껀데.."

"성공해야겠지? 주말도 아니고 평일 대낮에 설마 실패할까?"

"자기네는 다음 주에  또 무슨 공연인데?"

"맞다. 너네 혹시 20분 정도 되는 짧은 단막극 하나 가능하겠어?"

"개그 하라고?"

"뭐든.  깔끔하고 강한 인상이 남는 것으로." 

"강남 땅이라 이거네?"

"아직은 우리가 처음이라서 ... 백화점 눈치를 보는 중이거든."

"자기야. 그럼 영화를 볼게 아니라 그거 준비를 해야죠."

"그럼 오늘도 실패네."

"극장 앞에서 밥 먹는 것만 해도 벌써 두번째야.  언젠가는 극장 안으로 들어갈 날도 오겠지? 안 그래?"

신예원은 진짜 낙관적이다. 그런데 왜 성깔이 엄청 빡씨다는 소문이 돌을까? 그녀는 자기 친구들을 학교로 소집해서 준비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정수가 신예원을 다시 정화예대 앞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날 밤에 안명수가 정수에게 공연 준비에 대해서 물었다.

"누가 나오기로 했지?"

"일단 음악에는 윤수지랑 윤경식 그리고 연극에서 신예원 세 사람이 출연하기로 했어요."

"윤수지가 누구래?"

"White 멤버요. 주말에 악보를 받기로 했어요."

"윤경식은 랩이고.  혹시 얘네 둘 남매 아냐?"

"모르겠는데.  아닐껄요?"

"아무려면 어때? .. 음.. 이번에 윤희는 못나오나?"

"일본에 있어서 이번에는 안되고 다음에 하기로 했어요."

"한두개 더 필요하네."

"내일 개그맨팀 하나, 혼성그룹 한 팀이랑 얘기하기로 돼있어요."  

그 주의 주말에는 윤현도의 뮤직쇼가 막을 열었다. 그는 금, 토, 일 이렇게 3일간 뮤직쇼를 진행했다.   윤현도와 BY 가 다른 가수들을 초청해서 노래하고 또 김동재도 나와서 예리한 언변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역시 입장권은 매진이다.  40대와 50대가 관객의 대다수일 줄 알았으나,  20대와 30대도 많았다. 이렇게 해서 윤현도의 파워를 실감하게 했다.

그 다음 주부터는 정수에게 출연을 약속한 신예원을 비롯한 학생들이 극장을 일주일 내내 점령하다시피 했다. 주말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저녁에는 안명수가 극장에 들러서 이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해준다.

"신예원.  방송국에서 보는 너랑 여기서 보는 너는 완전 다른 사람 같네?"

"안PD님, 여기는 내 남친이 있는 곳이잖아요?  헤헤."

"남친?  여기에 있다고?  그게 누군데?"

"아이. 참. .. 자기야. 이리 좀 와."

신예원은 한정수를 당겨서 팔짱을 낀다. 안명수가 뻔히 보는 앞에서 정수의 뺨에 뽀뽀도 한다. 정수는 안명수의 두 눈에 불꽃 튀는 것이 보인다.

"너네 둘이 지난번에 고양 세트장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애정행각질을 했다더니, 그게 사실이었어?"

"햄버거 사오랬더니 더블버거로 200개를 사서 그 먼 길을 달려왔는데, 그 정도도 못 해주면 말이 돼요?" 

그날 밤 안명수가 정수에게 물었다. 

"사귀는 것이 아니, 사귀는 척만 하는 거라며?"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남들 앞에서는 완전 사귀는 것처럼 한다는데요?" 

"사귀면 사귀는 거고, 안사귀면 안사귀는 거지, 그게 뭐야?"

"나도 잘 모르겠어요."

"요새 애들 참 복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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