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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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수가 출근을 준비하면서 정수에게 묻는다. 

"다음 주에 미팅이라며?"

"어라? 내가 말 안했는데 누나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

"저게.  도대체 퀸을 뭘로 아는거야? 그 자리에 신예원도 나간다며?"

"누나, 이건 도대체 뭐래? 혹시 나를 스토킹 해?"

"퀸이 밥먹고 할 짓이 그렇게도 없니? 어제 예원이 만났어."

"어디서?"

"그 쪽 주말 드라마 벌써 15편 정도 찍었거든. 요새 편집실 완전 비상이야. 어제 편집실에서 드라마 PD랑 얘기하는데,  정수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던데? 요새 예원이가 정수 만난다고 분위기 완전 업이래. 그 얘기를 하는데 신예원이 쏙 나타나더라."

이야기하는 안명수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안명수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피하는 것 같았다. 안명수는 정수에게 신예원 만난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허튼 수작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겁을 주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각자 자기 차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정수는 5월이 돼도 4월과 다를 바가 거의 없을 줄 알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CF 촬영을 시작해서 일주일에 하루씩은 중노동을 한다는 것. 이 작은 변화는 커다란 결과를 만들어내버렸다. 그의 사진이 인터넷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또 그의 모습이 TV에서도 자주 보인다. 이 두가지 결과는 그의 앨범 판매량에 미세한 결과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판매하는 곳에서 느낄 수 없을 정도였으나 시간이 가면서 그것은 확실한 변화였다. 

그런데 지난 밤에 외숙모 이세영이 폭탄선언을 함으로써 정수는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된다. 그에게 소극장이란 과연 꿈일까? 

그날 저녁에는 안명수가 옐로우로 회의를 소집한다. 정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옐로우로 향한다. 그 중에 하나가 아반떼녀 윤수지를 잠깐 보기로 한 것이었다.

"수지누나, 정말 죄송해요."

"아냐. 나도 충분히 이해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려구 하네.. "

"괜히 내가 급해서 기다리지 못하고 중간에 어찌 해보려고 했던 건데. .."

"누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니죠?"

"만나서 얘기해."

"다음 주에 어떻게 해볼께요."

"아무튼 내가 더 고맙다. 이런 일로 나한테 전화까지 해주고."

윤수지가 오후 늦게 수업 끝날 때 학교 앞에 와서 기다리겠다면서 얼굴이나 보자고 했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수는 윤수지가 자기에게 얼굴보러 만나자는 말을 할 것 같지는 않고, 김미라 엄마와 갈들이 생긴 것이라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그가 LBS 로 가기 전에 잠시 만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안명수가 그의 학교로 와서 그를 태우고 갈 예정이므로, 윤수지를 만나는 일은 없던 일로 해야 했다.

정수와 안명수는 옐로우에서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윤현도는 정윤희와 함께 들어오고 또 나중에 박철호 PD는 김익환 감독까지 데리고 나왔다. 박PD가 앉으며 말했다.

"소극장 얘기라면 아무래도 나보다는 김감독이 전문가니까.."

먼저 안명수가 어제 들은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 소극장을 한정수가 어떻게 하여야 할 지를 물었다. 세 남자들의 대답은 단 한가지였다.

"해."

박PD 는 정수에게 이 소극장 운영을 과제로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학기 말에는 여름 방학 들어가기 전에 사인회를 또 열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한번은 강남점에서, 또 한번은 과천점에서. 이때마다 윤현도와 정윤희는 찬조출연을 하란다. 이것은 황제의 명령이기 때문에 토론도 불가능하다. 정수는 사형선고를 받듯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안명수가 불쌍한 연하남을 감싸고 나선다.

"선배님. 이번 학기말 시험으로 콘서트에 나가야 ..."

"안PD는 나설때 나서야지. 너는 이번 콘서트 녹화해와."

"예?"

"방송용이 아니고 취재용으로 해와."

"예대가 여기 하나도 아닌데 .."

"그럼 예대 기말시험 콘서트, 뮤지컬 전부 다 취재해서 보관해. 나중에 누가 어떻게 돼서 무슨 일을 할 때 우리가 다큐멘트로 제시할 수 있거든."

불똥은 안명수에게까지 튄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일단 <무조건 한다.>로 방침을 세우고, 어려운 일들을 한가지씩 맡기로 했다. 김익환 감독은 정수에게 공연을 기획는 일을 돕고, 윤현도는 음악하는 사람들과 개그맨들을 소개하기로 했다. 안명수는 강남점과 과천점으로부터 정수를 후원하는 문제를 문서화하기로 했다. 이들은 첫 공연을 할 때에는 백화점 고객, 강남에 있는 정치인, 기업인들까지 일일이 VIP로 초대장을 보내서 자선 공연을 하고,  그날 모아지는 성금으로 정수가 한달에 한두번 다니는 봉사활동의 경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백화점은 옐로우에서 꽤 먼 거리에 있다. 기자, 예술인들은 백화점 밖에 있는 카페를 이용하지 말고 백화점 안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기로 했다. 소극장과 카페가 힘을 합하면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와 매출액을 상승세로 바꾸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한가지 문제는 공연이 맥화점 매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공연시간을 저녁으로 하지 말고 오후시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가 주말에야 가능하지만, 주중에는 쉽지않을 것 같다. 그런데 만일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LBS가 녹화를 한다면 관객을 동원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안명수와 박 PD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렇게 많은 녹화를 해서 다 뭣에 써요?  하하하"

"그러게. 녹화를 안할꺼면서 녹화한다고 나와서 뻥을 칠 수도 없고 ..."

윤현도가 두달 후에 유럽 투어에 나가면서 정수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그는 벌써 유럽 투어의 공연 일정을 잡고있는 중이었다.

"형님, 그럼 이번 여름에 정수 유럽에 못나가요?"

"한두해 늦춰야 할꺼야. 우선 소극장 공사가 석달은 걸릴껄. 그러니가 오프닝을 석달 정도 후에 한다고 계산해보라고."

"이러언."

"현도 너도 안에서 번 돈 밖에 나가서 다 쓰고 들어오지 말고, 이번 여름에는 강남에서 소극장 일에나 매달리면 어때?"

"흐으음. 생각해 볼만한 일이네요."

"전에 방송하던 뮤직쇼를 여기서 계속해도 되잖아? 못생긴 머시마 김동재 데려다가 같이 하고."

김익환 감독도 정수랑 같이 할 겨울 프로그램을 기획중이었다. 이번에는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보다도 젊은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전혀 다르게 어필할 생각이었다. 정수를 뺀다는 일은 사실 불가능했다.

"나는 이번 겨울에도 정수랑 같이 다른 프로그램을 기획하려고 했는데 .."

"김감독, 차라리 김감독이 이번 겨울에 공연을 여기 나와서 하면 어때? 일주일에 두번은 대학로, 두번은 강남, 이렇게."

"공연을 일주일에 네번이나 하면, 우리 단원들 전부 나가떨어져. 안돼. 그건 무리야. 차라리 너네 LBS에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 공연들을 여기서 하면 어때?"

"그것도 생각해보자. 우리는 들어오고 나가는데에만 해도 돈이 워낙 많이 들기 때문에."

"박PD. 아예 여기다가 녹화 세트를 만들어 둬요. 보조 공연장, 뭐 이런거 해도 되겠구만. 외국에 있는 TV 방송들은 어려운 소극장을 살리느라고 여기 저기 찾아다니면서 그런거 하잖아. 자네는 언제 그런 것것 할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해?"

"그런 일은 안PD하고 이야기해." 

이런 일들 말고도 문제는 너무 많았다. 이 일들은 정수 혼자는 미처 생각도 못한 일들이었고, 또 앞으로도 정수 혼자서는 해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가 학교에 다니면서 이런 일들을 부업으로 한다는 것은 천지가 개벽해도 불가능하다. 박 PD 는 정수를 위로했다.

"그러니까 소극장 운영은 정수 네가 직접 나설 일이 아니야. 백화점에서 사람을 세명 정도 지원받아서 극장을 운영하도록 해야 하거든. 이것은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정수 너는 미리부터 겁먹지 말아."

"예. 감사합니다."

"하다가 보면 예상하지 않았던 까다로운 일들이 엄청 많이 생겨. 스트레스가 엄청 와. 그러니까 요가는 반드시 계속해서 하도록 해. 진짜.. 해보면 스케쥴에 잡혀있는 공연이 펑크가 나기도 하고.  기계가 말썽을 일으키기도 해. 사람이나 기계는 항상 스스로 말썽을 부려가면서, 또 다른 사람이나 기계가 부리는 말썽에 시달려가면서 움직여. 그것이 사람이나 기계가 똑같이 하는 일 같더라. 하하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 일이 앞으로 어떻게 굴러가는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안PD 손에 넘겨. 알았지?"

안명수가 정수를 보면 정말 답답하다. 이런 조건과, 이정도 빵빵한 백그라운드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저 연하남이 나이가 너무 어리고, 그래서 경험이 너무 적은 것이 문제인 것이다. 성공도 중요하지만, 실패라는 경험도 중요한데, 이 연하남은 실패를 너무 조금 한 것 같다. 만일 이 소극장에서 연하남이 마음놓고 실패를 저지른다면 그의 인생은 암흑기에 휩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명수가 팔을 걷고 덤벼들 수도 없다. 지금 방송국에서 하는 일만 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날 밤에 침대에서 안명수가 정수에게 물었다.

"남편아."

"네?"

"나, 이번에 방송국을 아예 고만둬버릴까?"

"그건 또 왜요?"

"남편이랑 결혼하고,  전업주부한다고 들어앉아서, 조용히 이 소극장이나 해보면 어때?"

"누나 마음대로 하세요. 그런데 100석짜리 해서 돈이 얼마나 되겠어요? 경비도 안나와요. 또 누나한테는 그렇게 조용히 하는 일이 어울릴 것 같아요? 아마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바로 지겨워할껄요."

"그건 나도 아는데, 결혼을 내 마음대로 해도 돼? 그 말 정말이야?"

"언제는 퀸 마음대로 안한 적 있어요? 하지 말랜다고 안할 사람도 아니잖아요?"

"내가 그 정도였나? .. 헤헤."

정수는 파고드는 안명수의 알몸을 꼬옥 안았다. 두 사람의 알몸이 밀착한다. 안명수의 가슴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정수의 귀에 들린다. 그런데 그 소리가 너무 여리고 가냘픈 것 같다. 그녀의 숨소리가 색색거린다. 그래도 너무 조용하다. 어느새 그녀가 잠들었다.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렇지만 안명수가 숨쉬고 또 그녀의 심장이 이렇게 뛰기 때문에 LBS에서는 박PD가 일을 하고, 예능국이 운영된다. 뿐만 아니라 한정수의 인생마저도 방향을 바꾸게 했다. 이 가냘픈 소리의 파워가 정수에게는 너무 엄청나게 다가온다.

사람은 거미줄을 동시에 여러 방향으로 내보내고있는 거미와도 같다. 그 거미줄의 저쪽 끝에는 역시 거미들이 매달려있다고 하자. 내 거미줄들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매달려있는가? 또 그들의 거미줄에는 어떤 사람들이 매달려있는가?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한 것은 고작 이 가냘픈 거미줄이다. 안명수의 숨소리를 또 심장 뛰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이 소리로 인하여 두 사람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 소리가 마치 거미줄처럼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는 것 같다.

이런 관계를 이용한 것들이 SNS라고 한다. 안명수는 아직도 정수가 SNS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트위터도, 미니홈피도 모두 내년부터 하라면서 금지되어있다. 정수는 사이버 공간에는 아직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해보면 어떤 결과가 올 것이라는 것을 정수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수는 해보고 싶다. 마치 미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윤경식이 하려고 덤벼드는 것처럼.

다음날 저녁에는 정수가 안명수의 엄마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장모님. 무슨 일이십니까?"

"일은 무슨 일? 나나 명수아빠가 우리 사위를 보고싶어하는 일이지."

"죄송합니다.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말로만 죄송하지 말고, 오늘 저녁에는 꼭 오는거다?"

식탁에서는 안명수 엄마가 해놓은 갈비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안명수 아빠는 정수와 소주잔을 기울인다. 안명수의 입술은 기름기로 번들거린다.

"얘가 왜 이래?"

"왜?"

"신랑이 몸이 허해진다고, 먹고싶다고 했다며? 신랑이 날더러 이거 해달랬다며? 그 소리 듣고 했더니, 지금 네가 다 먹잖아?"

"엄마. 이신전신 몰라? 부부 사이에는 몸에서 몸으로 전해진다!"

"하하하"

"지가 먹고싶으면, 지가 먹고싶다고 하지, 왜 신랑을 팔아?"

"엄마는 진짜 그걸 몰라서 물어요?"

"글쎄. 모르겠는데?"

"내가 먹고싶다고 할때랑, 자기가 먹고싶다고 할 때랑은 아예 양념이 달라요, 양념이.  그러니 나로서는 자기를 팔 수 밖에."

"하하하"

"남자가 먹을 때랑 여자가 먹을 때랑은 양념이 다른건 맞는데. 너 혹시 이거 먹고 나중에 신랑 몸 축나게 하는 것 아냐?"

"엄마, 그거 정말이야? 어째 내가 요새 쫌 밝힌다 싶더만. .."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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