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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93 92. 쓸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랑 침대에 갈 생각이나 하지 말고 ... (93/116)

00093  92. 쓸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랑 침대에 갈 생각이나 하지 말고 ...  =========================================================================

윤경식은 정수와 만날 때마다 정화예대 연(극)영(화)과 여자애들과의 미팅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그는 이번 미팅에 마치 이번 학기의 모든 것을 걸기라도 한 것처럼 열을 올린다.  윤경식이 오디션에 나갔다가 실패한 후이기 때문에 정수는 그를 이해할 수는 있다. 정수도 실패의 아픔을 아직까지도 잊지 못하고 있다. 

"경식이 너는 내가 서울에 와서 맨 처음으로 사귄 친구야. 나도 네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 그런데, 너 지금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니? 이번 미팅에서 뭐 하나 건지기라도 할 생각이야?"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아."

"너네 기획사에서는 뭐래?"

"매니저 말로는 가을까지는 푹 쉬고 겨울에 준비해서 내년 봄에 뭔가를 해보자고는 하는데 .."

"내년에는 좋아지겠다 이거네?"

"실패자라는 낙인이 지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그러는 것 같아."

"이번에 문제가 랩이었지?"

"우리가 5인조였잖아. 한 녀석이 떨빵한 바람에 .."

"너도 빨리 잊고 뭘 해야 할텐데..."

"너는 뮤지컬 했잖아? 나도 그런 쪽으로 크로스 오버나 해볼까 생각 중인데." 

"그래서 이번에 연영과랑 미팅하니?"

"거기 뮤지컬 하는 애가 한명 있거든. 솔직하게 말하면 약간 쏠리기도 해."

"진작에 그런 얘기를 털어놓고 하지 그랬어? 쓸데없이 신예원 얘기나 하지 말고."

"아냐. 신예원도 너를 벼르고 있다던데? 하하하."

정수는 윤경식의 미팅에 나가기로 한다. 날짜는 정수가 한주 후에 월요일로 정해주었다. 

"고맙다. 이 원수를 어떻게 갚지?"

"고민되기는 하니?  하하"

"당연하지. 내가 정수 네 상황을 를 모르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마. 나도 너한테 뭔가 부탁할 일이 곧 생길 것 같아."

"그게 뭐든 좋으니까 제발 빨리 생겨라. .. 하하."

그날 외숙모 이세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밤에 늦게라도 좋으니까 안명수와 함께 꼭 만나자는 것이다. 정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으나, 외숙모는 전화로 말하기가 어렵다면서, 만나서 얘기하자고 했다. 그날 밤 10시 쯤 안명수의 텔에서 셋이 모였다. 외숙모는 먹을 것을 사왔다면서, 들고 온 보쌈과 족발을 풀었다. 안명수는 맥주도 꺼내왔다.

외숙모는 랏데백화점 본부, 강남점 그리고 과천점에서 사람들이 외숙모에게 딜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점의 경우에는 엄청난 고민이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고가의 명품 매출액은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중저가 상품의 매출액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청소년들을 겨냥하는 상품의 경우에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백화점 전체 매출액을 유지시켜주는 효자는 명품점이라고 한다.

이미 매출액의 감소는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의 수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방문자 수의 감소는 심각할 정도라고 했다. 

강남점의 마케팅과에서는 부유한 강남 사람들이 주말이나 공휴일에 백화점에 기웃거릴 일이 있겠느냐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런데 과천점의 경우에는 이와 정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매출액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이고, 방문자 수도 증가하며,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더 많이 증가한다. 청소년 상품 품목들의 매출액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강남점의 마케팅과에 과천점으로 가서 몇일 동안 벤치마킹을 하라고 권고했다. 그들은 이 말에 따랐다. 또 고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도 했다. 

강남점 마케팅 사람들이 알아낸 결론은 <아이돌 세탁소>가 백화점 경영의 노른자차럼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우선 한정수가 세탁소에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또 간간이 특별한 이벤트도 열어서 그 지역에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 성공적인 경영을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근래에는 정수가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한시간씩 세탁소에서 근무하고 있고, 또 최근에는 주말에 앨범 사인회도 열었기 때문에, 주말에 백화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는 엄청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주민들의 심리분석까지 했다. 사람들이 백화점 밖에 있을 때, 끼리끼리 만나면 대화를 한다. 이 대화 중에 백화점이 자주 거론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만날 장소도 아예 백화점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만큼 과천점은 주민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는 것과 또 주민들의 생활에 침투해 들어가는 것에서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이 성공에 세탁소와 한정수가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백화점이 주기적으로 하는 세일 행사는 다른 상품의 매출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그 예로 일요일 하루 백화점 전체 방문객을 5000명으로 추산한다면, 그 중에 500명은 세탁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살림을 담당하는 가정주부들이 많다. 이들은 세탁소에 오면 살림에 필요한 다른 상품들도 구매한. 그 상품들은 중저가의 생활용품이지 고가의 명품이 아니다. 

이 방문객의 10페센트를 아이돌 세탁소 혼자서 끌어들이는 것이다. 과천점은 이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아채고 점주 이세영이 경영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물심 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강남점에는 이 노른자가 명품점이라는 것이 문제이다.  방문객 5000명 중에서 명품점에 가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1000명 정도이지만, 대부분은 외국인 관광객인데, 이들은 중저가의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것에는 관심이 매우 적다. 이미 백화점에 온 사람들이 명품점에 구경하러 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명품을 사지는 않고, 구경만 한다. 그렇지만 역으로 명품점에 온 사람들이 다른 생활용품 매장을 찾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들은 자기가 살 상품을 샀으면 백화점을 급히 빠져나간다.

강남점과 과천점은 이렇게 모든 것들이 서로 반대되는 현상을 나타내고있다.

"그렇다면서, 날더러 강남점에서도 <아이돌 세탁소>를 해달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사장님, 그럼 서울로 진출하시는 건가요? 축하드려요. 하하하"

"강남점에서는 나한테 모든 것을 무료로 하고, 직원들도 보내주고, 매월 지원금까지도 지불하겠대요.”

“그럼 외숙모에게 좋은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세탁소가 다가 아니야."

"세탁소 하라며 세탁소가 다가 아닌 것은 또 뭐래?"

"세탁소 옆에다가 문화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제법 크게 따로 만들어 줄테니까, 한정수를 시켜서 그 공간을 활용하도록 해달래요."

"문화행사를? 어떻게요?"

"그거야 뭐. 정수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데려다가 미니 음악회를 하든지, 아는 사람 중에 연극, 미술 뭐 이런 것 할 줄 아는 사람들 불러서 뭘 하든지. 하여간에 백화점을 좀 시끌벅적하게 해달라는 거야. 주말에 사람들을 집에 있거나 다른 곳으로 가게 하지 말고 백화점으로 쏠리게 해달래요."

"그럼 사장님 생각은 어떠신데요?"

"나야 그냥 여기만 있고싶죠. 과천점에서 나한테 지금 엄청 잘해주거든. 그런데 본부에서는 강남점 편을 드는 것 같아. 그러니까 과천점에서는 강남점한테 반대는 못하고, 강남점으로 가게를 하나 더 해보라는 말을 해요. 그런데 내가 무슨 정신으로 강남 과천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게를 두개나 해? 난 죽었다 깨어나도 그건 못해."

"그것은 사장님께서 너무 힘드시니까 안되겠죠."

"그럼 외숙모가 직접 가지 말고, 직원을 그쪽으로 보내서 근무하도록 하면 안돼요? 영선이 누나나 뭐 이런 .."

"사장님께서 세탁소는 하지 말고, 정수가 거기서 문화행사만 하면 안되나요? "

"아니래. 세탁소가 있어야 사람들이 백화점에 계속 온대. 지금 까지는 땅값 비싼 강남에서 세탁소 같은 것을 하면 매장 운영비도 안나올까봐서 아예 생각도 안했었다는데, 이번에 과천점이랑 똑같이 하려고 한대. 그래서 그 세탁소 이름도 꼭 <아이돌 세탁소> 라고 해달래."

"돈 많은 사람들이 세탁물을 싸들고 백화점에 오려고 할까? 다들 배달시킬 것 같은데."

"그러니까 다른 세탁소는 안되고 <아이돌 세탁소> 라야 한대. 그래야 그 사람들이 세탁소에 나올꺼래."

갑자기 늦은 밤에 안명수와 정수에게 고민거리가 생겼다. 외숙모가 혼자 하던 그 고민이 이제는 이들에게로 전염된 것이다.  이들은 연구를 더 해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원래 안명수에게는 그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고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겨난 이 고민 때문에 안명수는 결혼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도 꺼내지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안명수는 갑자기 고민거리가 바뀌자 너무 허무한 느낌이 든다.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안명수는 정수의 침대로 들어왔다.

"자기 이 일을 어쩔래?"

"글쎄. 너무 일을 많이 벌여놓는 것은 실패의 원인이 되기 쉬운데 ..."

"내가 자기라면 힘이 들더라도 한다!"

"누나야 뭐. 일에 대해서는 블도저니까. 그렇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거든요."

"PD님 말씀을 생각해봐. 세탁소에서 일하는 것은 팬들을 한사람 한사람 직접 만난다는 점에서 중요한거야."

"그 말씀은 저도 맞다고 생각해요."

"그럼 너는 언제까지 과천에만 있을꺼니? 언젠가는 서울로 입성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지난 겨울에 했던 뮤지컬이 바로 그런 점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보는데.." 

"누나 말은 서울에 있는 세탁소에서 서울 팬들을 관리해라 이거네?

"그렇지. 또 백화점에다가 소극장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거야. 그럼 너는 공연 무대를 따로 갖는 거죠. 얼마나 좋아?"

"그렇기는 한데. .. 그 무대를 엉성하게 했다가는 그야말로 완전 폭싹 망할 것 같아요."

"망하게 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잘되게 할 생각을 해요. 윤현도 선배 가끔씩 오라고 하고, 그런 저런 인맥을 사용하고, 가끔씩 신인들 하나씩 끼워주고, 이사람 저사람 사인회 해달라고 하고 .. 안될 이유는 없잖아? 들어가는 경비야 백화점에서 지원할 것은 뻔하고."

"그럼 그걸 누가 다 관리를 해요?"

"한정수가 해야지. 내가 너라면 쓸데없이 이 여자 저 여자랑 침대에 갈 생각이나 하지 말고 그런 일을 할 생각이나 하겠다. 너도 그러면 안되겠니?"

"누나. 여기서 왜 그런 말이 나와? ..  그럼 새로 생길 세탁소 일은 어쩌고? 외숙모는 안했으면 하는데."

"야아. 뭐가 걱정이야? 포항에 있는 김경애씨를 서울로 오라고 해서 맡기면 되잖아?"

"그럼 나는 이제 서울에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과천에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날에만 오면 되니까."

"그럼 너 혼자 혜화동 우리 집에 들어가서 살을래?  그런다고만 하면 우리 엄마 아빠가 얼마나 좋아하시겠어?"

"누나, 정신 차려요. 그랬다가 내일 아침에 찌라시에 좌아악 뜨라고?"

"그런가? .. 그럼 백화점에다가 그 근처에 오피스텔 두개 사달래서 우리 둘이 같이 가서 살자."

"그럼, … 누나가 인천으로 갈 때는 어쩌게?"

"남편이 이 정도로 잘나가면 나야 이제는 일을 접든가. .. 하하하"

"누나아아. 툭하면 농담이야? 지금 이 판국에 농담이 나와요?"

"아무리 각박해도 인생은 즐겁게! 몰랐지?"

"으음 ..  그건 내가 한 말인데. 하하하."

"남편이 나를 걱정해주니까 고맙기는 한데,  나야 뭐. 그럼 지하철 타고 다녀야지."

"누나, 내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엄청 쑤시고 아파."

"알았어. 오늘은 그만 하고 자자. 내일 저녁에 내가 PD님이랑 윤현도 선배랑 옐로우로 초대할 께, 우리 거기서 같이 만나서 얘기하기로 해."

안명수는 정수를 품에 안고 그의 등을 다독아면서 얼굴을 그의 머리에 묻는다.

정수는 안명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세탁소 문제는 백화점으로부터 경비나 직원을 지원받으면 문제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또 소극장에 대한 욕심도 생긴다. 만일 정수가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 성과는 당장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백화점 측에서는 얼마나 오랫동안 인내심을 가질지도 문제이다. 

정수에게 공연무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가예대는 대학교 강당을 학생들이 공연하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그 강당을 공연장으로 이용하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다. 학기말 과제나 졸업 과제로 연극영화과나 음대생들이 콘서트를 여는 정도이다.

무대라는 것은 관객이 없으면 실패로 인정받기 때문에, 공연을 할 때에는 차라리 학교보다는 주로 대학로 쪽으로 나와서 한다. 그런데 대학로에서는 소극장을 임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수는 강남이라는 곳에 대해서는 말만 들었을 뿐 아직 잘 모른다. 강남에 소극장을 꾸민다는 것이 과연 성공할까? 사람들의 인식에 파고들 때 까지는 그 무대가 슈퍼급으로 화려해야 할텐데. 그렇다고 윤현도에게만 의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랏데백화점 스스로 소극장을 운영하지 않고 한정수에게 떠넘기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평소에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들은 갑자기 생겨도 외면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문화 예술만큼은 친숙한 분위기에서 즐기고 싶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설프게 시작했다가 정말 어설픈 것으로 낙인이 찍히면 그것으로 끝장일 것이다. 소극장은 정수가 함부로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함부로 덥석 물 수도 없다.

이 일은 실험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닌 것 같다. 강남이라는 곳은 대학로와는 다를 것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완성품을 요구한다. 그것도 명품이라야 한다. 랏데백화점의 매출액을 올려주는 것은 명품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그가 강남땅에서 조금이라도 성공에 가까이 가려면 <명품 소극장>을 운영하여야 한다.

지금 한정수는 여기에 대해서 누구에게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바로 김익현 감독이다.

안명수는 우선 하려고 덤빌 것이다. 일단 내일 박철호PD와 윤현도의 견해를 들어본다고 했다. 정수 생각에 그들도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일 것 같다. 오늘 안명수가 한 말을 내일 그들도 반복할 것이다.

김익현 감독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후에 머리 아프던 것이 가라앉는다. 이제는 잠이 들 것 같다.

그는 안명수의 젖가슴을 주무른다.

안명수는 정수가 잠들기를 기다렸는데, 조용하던 그가 갑자기 젖가슴을 만지는 바람에 흠칫 놀란다. 

"자기 안잘꺼야?"

"아무리 머리가 아파도 할 일은 하고 자야지."

"하아~. .. 너무 늦었는데."

"늦어서 안하겠다고?"

"누가 안한대?"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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