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9 88. 미라라는 여자애와 모르는 여인 그리고 검은 색의 아반떼. (89/116)

00089  88. 미라라는 여자애와 모르는 여인 그리고 검은 색의 아반떼.  =========================================================================

안명수는 정수를 태우고 정수의 학교로 가서 그를 내려놓는다.

"오늘은 녹음만 하고 바로 집에 갈꺼니?"

"아뇨. 나도 차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아. 지금 이 판국에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도 없고. .." 

"그래서 어쩌려고?"

"하나 누나가 오라고 했거든. 그 누나네 회사로 가봐야 해요. 그 누나가 여보하고는 얘기가 됐으니까 걱정 말고 오라고 하던데?"

"그럼 주문은 한거야?"

"몇일 전에 만나서 같이 했어요."

"알았어. 그럼, 저녁에 보자."

안명수의 차가 멀어지는 것을 정수는 머엉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윤희가 빵빵거린다. 그는 윤희와 함께 녹음실로 갔다.

안명수의 꼭지가 돈다. 그 여우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안봐도 훤하다. 차를 미끼로 그를 침대로 끌어들이겠지. 그러면 정수는 싫다고 거절 할 남자가 아니다. 저런 남자랑 어떻게 결혼을 한다?

정수가 오늘 윤희랑 녹음한다는 것은 잘 될까?

정수는 얼마 후에 랏데백화점에서 사인회를 할 계획이다. 그 때 팬들에게 그가 친필로 사인한 그의 앨범을 무료로 뿌려야 한다. 여기에 윤희의 노래가 다섯곡 정도 수록된다. 이 것을 계기로 한정수의 첫번째 앨범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윤희의 노래라는 것도 노래는 윤희가 부르지만 그 노래는 정수가 만든 것이다. 

정수나 윤희는 둘이 같이 내는 첫번째 앨범이고, 정수 역시 그가 내는 첫번째 앨범이다. 윤희는  재작년에 그녀 혼자 낸 독집이 따로 있고, 작년에는 에서 낸 앨범이 있다. 둘 다 먼지 속에 파묻혀있을 것이다. 윤희에게 앨범은 이번이 세번째이다.

랏데백화점 과천점은 이미 정수의 앨범을 제작하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을 사인회를 열 장소를 제공했다. 또 그들은 이 일을 엄청나게 홍보를 해서, 그 날은 자기들도 매출을 올릴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이 앨범을 제작하는 데에 필요한 노래들을 정수랑 윤희는 녹음하는 것이다. CD 한장에 25곡을 수록하는데, 정수가 부르는 노래가 20곡 그리고 윤희가 부르는 노래가 다섯곡이다. 

녹음은 윤희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NG 가 수없이 나온다. 윤희가 너무 긴장한 탓이다. 윤희가 오전에는 한곡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수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서 녹음실을 내일도 계속해서 사용할 생각을 하고, 녹음실 사용자 리스트를 본다. 내일은 비어있다. 

오전 두시간은 허무하게 지나갔다. 윤희는 차라리 내일 와서 다시 하겠다면서 윤현도의 연습실로 가버렸다.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도 엄청난 스트레스이다.

윤희같은 무명의 가수들은 뮤직쇼나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엄청난 부담이다. 한번 나가면 출연료는 교통비 정도로 나온다. 무명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코디, 스타일, 메이크업으로 나가는 비용은 만만치않다. 게다가 윤희는 기획사에 소속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자비로 해결하여야 한다. 

지금은 지난 번에 박철호 PD가 무이자로 빌려준 돈이 있고, 또 연습실도 윤현도의 호의로 무료로 사용하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남은 돈은 빠듯하다. 

윤희는 이번 앨범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 이번 앨범은 독집이 아니고 정수랑 같이 제작하기 때문에 정수의 유명세를 업는 것이다. 그런데 앨범은 고사하고 녹음부터 말썽이다. 

정수는 녹음실을 내일 하루 종일 사용하겠다고 사용자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녹음실 스태프들을 일일이 만나서 설득하고 구슬러야 했다. 그들이 없이는 녹음이 전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의 점심시간이다. 정수는 그들과 오후 3시부터 작업을 계속하기로 하고 녹음실을 나섰다. 그는 주차장으로 나오는 샛길을 빠져 나와서 본관 앞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제 해 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미라라는 여자애와 모르는 여인 그리고 검은 색의 아반떼.

그렇지만 이들과 점심시간이 길어지면 녹음실이 위험한 것이 정수의 고민이다. 궁금해하면서도 고민스러워서 정수의 머리가 복잡하다. 그가 한가지 생각해 낸 것은 점심식사를 저녁식사나 아니면 다음 주로 미루는 것인데, 그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학교 근처에 있는 김밥집에서 해결한다면야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멀리서 미라라는 여자애가 정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든다.  정수는 그녀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미라가 어디선가 본 얼굴이라는 생각을 한다. 미라는 어제 했던 왕싸가지 짓은 기억에도 없다는 듯 장난기가 어린 얼굴로 정수를 맞는다. 아반떼에서 나이든 여자도 내린다. 그녀도 정수에게 인사를 한다.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한정수씨, 양반은 못되네요."

"제가요?"

"방금 미라와 정수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해요."

"죄송하지만 부탁이 있는데요."

"일단 차에 타고 가면서 얘기하시면 안될까요?"

"안될 것 같아요. 지금 녹음실에서 문제가 생겼거든요. 두시 반까지는 돌아와야 하는데, 지금이 벌써 한시가 다돼가서요."

"페어플레이는 아니네요."

"지금 한참 바쁠 때라서 이런 일들은 예상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

"할 수 없죠. 그럼 이 근처에서 간단히 해결해요."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미라, 너도 들었지?"

"언니, 그럼 초밥이나 먹어요. 요기 오다가 보니까 있더만." 

"한정수씨도 초밥 마음에 드세요?"

"저야 뭐 .. 좋습니다."

미라가 말한 대로 세사람은 차를 그냥 세워두고 정문을 나서서 초밥집으로 갔다.  이들은 홀에서 먹지 않고 룸을 달라고 했다. 여사장이 나와서 정수에게 인사를 한다.

"한정수씨 오셨어요? 손님 모시고 오셨네요?  따라오세요."

사장은 이들을 데리고 룸으로 들어간다. 그녀는 손에 물수건을 들고 식탁을 닦아준다. 무릎을 끓다시피하여 윗몸을 굽히고 식탁을 유난히 깨끗이 닦는다.

그 순간 정수의 눈이 돌아간다. 그는 그녀의 V넥 티셔츠 사이로 그녀의 가슴을 보게 된 것이다. 정수는 두 여자가 얘기하는 틈을 타서 사장의 가슴 계곡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오늘따라 심하게 파인 V 안에는 브래지어도 없다. 그는 그녀의 젖꼭지까지 보고 말았다.

그런데 여사장은 고개를 들어서 한정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 여사장의 나이는 외숙모 세영과 대충 비슷할 것 같다. 정수는 뭐라고 말을 하지도 못하고 얼굴이 빨개진다. 그런데 여사장은 정수에게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한다.

"한정수씨, 손님들이랑 맛있게 드시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

정수는 가끔 이 집에 온다. 혼자 오기도 하고, 친구들이나, 학교 선배들과도 온다. 그런데 여사장이 한정수를 TV 에서 몇번 보고 나더니 엄청 친절하게 대해준다. 지금도 어색한 순간이었지만 여사장이 은은하게 웃으며 대해주는 바람에 정수의 마음이 놓인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미라가 엄청 좋아한다.

"와아아~. 맛있겠다."

"너는 도쿄에서도 초밥, 서울에서도 초밥.  초밥 하면 사족을 못쓰니?"

"언니, 그런데 도쿄 초밥 이랑 서울 초밥이 맛은 엄청 달라."

미라가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두 눈을 살포시 감는다. 입을 오물거리며 맛을 본다. 정수는 그 때 녹차를 마시면서 아까 본 여사장의 젖가슴과 젖꼭지를 생각해내고 혼자 속으로 웃고 있었다.

"와아아~. 살살 녹는 것이 쥑인다. 언니도 먹어봐."

"너나 많이 먹어."

"아니, 정수씨는 왜 저렇게 웃고 있어? 뭐 좋은 거라도 봤나?"

정수에게 말하는 미라는 눈을 살짝 흘기며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짓는다.  정수는 녹차가 목에 걸리는 듯 하여 뿜을뻔 했다. 아까 여사장의 젖가슴을 들여다 본 것이 들통난 것 같다.

미라는 하아얀 바탕에 바다색 줄무늬가 있는 남방을 입고 있다. 얼굴이 예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데 젖가슴에는 볼륨이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남방의 단추는 두개가 열려있다. 딱 한 개만 더 열리면 좋았을 것 같은데..

 미라가 언니라고 부르는 여자는 나이가 안명수와 비슷할까? 아니면 더 젊든가. 그녀는 하얀 남방에 갈색 가디건을 걸쳤다. 두 여자 몸은 별로인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것인지 말이 없다. 정수는 그냥 두기로 했다. 정수가 그녀들을 만나자고 한 것은 아니니까, 답답한 것은 정수가 아니다. 

"정수씨는 안드세요?"

"지금 먹고 있습니다."

그녀는 <무산 일인지가 궁금한데 초밥이 넘어가냐?> 뭐 이런 말을 기대했겠지. 정수는 말을 더 잇지 않고 거기서 잘라버렸다. 그리고 초밥을 입에 넣었다. 꼭 모래를 씹는 기분이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미라가 좀 웃긴다. 오늘은 초밥 맛이 영 꽝인데도, 이걸 맛있다고 호들갑이라니 .. 

"한정수씨. 저희가 누구며, 왜 이러는지 궁금하시죠?"

"그렇기는 한데, 일단 배가 고프니까 .."

그는 일부러 무관심한 척을 한다. 그러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는 미라라는 애를 본다. 그런데 세번째 단추가 어느새 열려있다. 룸이라서 답답해서일까? 아니면 정수의 눈길을 끌어보려는 생각일까? 정수는 속단은 하지 않기로 한다. 언니가 물었다.

"정윤희 아시죠?"

"예."

"정윤희가 Girls 시대에서 노래한 것도 아시죠?"

"예."

"얘는 김미라입니다. 정윤희가 나가면서 바로 김미라가 그 자리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두달도 못채우고 다시 나왔어요."

"흐으음 .."

"그 왕언니라는 애 성질이 보통이 아니고, 게다가 욕은 물론 손찌검까지 했대요."

"그런 일이 ..."

"저희가 듣기로는 한정수씨다 정윤희에게 곡을 준다고 알고 있는데, 맞나요?"

"저야 뭐. .. 그냥 같이 공부하느라고 .."

"아닌데. 내가 듣기로는 정윤희씨도 반응이 괜찮다던데요."

"윤희는 악착같이 노력하거든요. 한 번 손에 넣은 것은 절대 잃으려고 하지도 않고 .."

"김미라도 그정도 악착인데, 미라한테도 곡을 주시면 안될까요?"

"예?"

"저 어린 것이 너무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요."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 같고. .. 차라리 제가 기획사를 소개해드리면 어떨까요?"

미라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앉아있다. 그렇게 맛있다고 말하던 초밥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세번째 열린 단추 때문에 계곡의 좌 우로 뽀오얀 가슴살이 볼록한 것이 보인다. 정수는 얼른 눈을 내려깔았다. 또 들킬 것 같아서이다.

"정수씨는 윤현씨가 뒤를 봐준다고 들었는데 .."

"현도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정수씨랑 미라가 가까이 지내면서 미라도 그런 분들과 줄이 닿게 해주시면 안될까요?"

정수는 이제야 사건의 전보를 알 것 같다. 김미라는 한정수를 징검다리로 연예계에 나가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럴꺼면 차라리 기획사를 하나 오픈해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정수는 혼자 웃었다.

그런데 김미라는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어차피 얼굴은 화장을 떡칠하니까 표는 별로 안날 것 같다. 몸매는 벗고 흔들기에는 괜찮을 것 같다. 문제는 노래이다. 

"제 생각에는 ... 미라씨는 나이도 있고 하니까 ... 장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믿을 만한 기획사에 가셔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솔로나 그룹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역시 거절하시는군요."

"그런데 어제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된 거죠?"

"기가 예대에 입학이나 공부하는 것이 어떤가를 상담하러 왔었어요. 상담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두 분이서 툭탁거린 것이고요."

"그럼 내년에 입학하면 우리는 같이 공부하겠네요?"

"글쎄요."

언니라는 여자는 고개를 돌려 출입문 쪽을 본다. 마치 실망이 크다는 것 같다. 

미라가 고개를 들고 정수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해요?"

"예?"

"어떻게 하면 나도  M7 오디션에 나가지 않고도 한정수씨처럼 잘나길 수 있냐구요."

"글쎄요. .. 딱히 방법이 있을까요? 그런데 어쩌죠? 난 이만 들어가야 하는데. 늦으면 녹음실 스태프가 화를 많이내거든요."

"알았어요. 다음에 또 뵙죠. 전화드려도 되나요?"

"아마 통화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 예아. 그렇겠지요. 언제 시간좀 내주세요."

"오늘 시간을 냈는데, 이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기획사를 찾아드릴께요."

"정수씨. 그런데 이건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요? 나같이 예쁜 여자가 이 정도로 굽히고 부탁하는데, 한번쯤은 ..." 

"예?"

"나 안예뻐요?"

"예.  예쁘죠. 당연히 예뻐요."

"나랑 사귀고 싶지 않아요?"

"저는 아직 그런 쪽으로는 생각이 .."

"하긴 뭐 .. 윤희같은 걸레랑 강데까지 갔을 텐데..." 

"윤희같은 걸레랑 강데까지 가다뇨? 무슨 그런 말이 다 있어요?"

"곡을 그냥 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저는 바빠서 이만 .."

"잠시만요."

무슨 잠시?  무슨 한번쯤?  아직 한가지 밖에 말 안했거든.  나같이 예쁜 애라니? 이 바닥에서 <예쁘다>는 말을 하려면 얼마나 예뻐야 그런 말이 먹혀들어가는 줄 모르네. 하긴, 그 나이에 남자애들이랑 성질 팍팍 부리면서 놀러 다닐 줄만 알있겠지.

윤희같은 걸레라니? 그럼 너는 행주냐?

정수는 목을 넘어오는 수많은 말들을 삼켜야 했다. 잘못하면 어제와 같은 일들이 생길 것 같아서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밖에 나가서 말을 함부로 하면 정수는 헤어날 길이 없다.

이제는 언니라는 사람이 자리를 정리하는 듯 말한다.

"정수씨한테 죄송해요. 그런데 말 꺼낸 김에 ..."

"오늘은 말고 다음에요. 정말 죄송해요. 다음 주에 한번 뵙도록 해볼께요."

이들은 초밥집을 나와서 본관 앞에 있는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정수는 그녀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녹음실 쪽으로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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