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5 84. 정수 앞에서 쩔쩔매고 벌벌 기는 건 뭐야? 평소에 당당하고 앙칼지게 두들기던 안명수의 북소리가 왜 죽었냐고? (85/116)

00085  84. 정수 앞에서 쩔쩔매고 벌벌 기는 건 뭐야? 평소에 당당하고 앙칼지게 두들기던 안명수의 북소리가 왜 죽었냐고?  =========================================================================

정수는 퇴원하고 바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입원해있으면서 안명수의 부모님을 만난 후로는 정수를 대하는 안명수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그가 제안하는 것을 귀를 기울여 듣고, 그가 말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재빨리 갖다 준다.  

전에는 저녁에 안명수가 정수를 만나면, 주로 정수가 안명수에게 커피 마시러 갈까 아니면 저녁 먹으러 갈까를 물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명수가 먼저 정수에게 말한다.

"학교 수업 마쳤으면 배고프니까 우선 저녁부터 먹자."

밥 먹는 동안에도 그에게 물을 따라 주면서 천천히 물을 마시면서 먹으라고 한다. 밤에 침대에서 잠자리를 가질 때에도 안명수는 정수가 피곤할 것이라면서 그녀가 정수의 몸 위로 올라와서 말을 달린다.  이런 안명수의 변화를 알아차린 정수는 안명수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만일 너 어디 아프거나, 살이 엄청 빠져서 마르거나 야위면 우리 엄마 아빠가 나한테 엄청 뭐라고 하시겠대."

"역시 장인 장모가 있어야 사위들이 기를 펴고 사는구나."

"하아~. .. 시부모님 안 계신 내가 엄청 손해거든."

"미안해. 우리 엄마 아빠도 여보를 엄청 사랑하실텐데."

"야아아. 아직도 여보냐?"

"한번 여보는 평생 여보야. 몰랐어? 하하하"

그가 병원에 있을 때도 그랬었지만, 퇴원하고 나서도 박철호PD는 정수의 상태에 대해서 엄청 궁금해했다.  그는 안명수에게 정수에 대해서 자주 물었다. 

그래서 안명수는 정수에게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방송국에 들러서 박철호PD 에게 인사를 하라고 시켰다. 정수는 그 날 당장 오겠다고 했다.

안명수는 박PD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님, 지금 어디 계시죠?"

"나? 내 방에. 왜?"

"지금 한정수가 수업 끝났다고 선배님 뵈러 온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래? 그런데 이상하네. 전에는 정수가 오는지 가는지 나한테 이런 연락을 해준 적이 전혀 없었는데.."

"학교에서 오는데, 혹시라도 선배님을 뵙지 못하고 가게 되면 어쩌나 해서 말씀드린 것인데요."

"알았어. 오는 대로 데리고 와. 나도 한동안 안 봤더니 보고 싶네."

정수가 안명수의 방으로 왔다. 안명수는 정수를 데리고 박PD의 방으로 갔다. 박 PD는 정수에게 소파로 앉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안명수는 정수가 앉을 자리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는 것이다. 

정수가 소파에 앉고 박PD도 책상에서 소파로 와서 앉았다. 안명수는 정수에게만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정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밖에 나가서 커피 두 잔을 가져온다.

"안PD.  너, 나한테는 물어보지도 않았거든. 나도 커피 마시라고 한 적이 없고."

"에이이. 선배님 여기 오시면 꼭 커피 드시잖아요." 

박PD가 정수랑 교통사고와 입원해있었던 때의 이야기를 하는데, 안명수는 툭툭 끼어들어서 정수가 할 말을 대신해주기도 한다.

박PD는 정수에게 최근에 연습하는 곡의 악보를 보여달라고 하자, 안명수가 그의 가방을 열고 악보를 주섬주섬 꺼내서 박PD 앞에 펼쳐놓는다.

드디어 이야기가 끝나고 정수가 나갈 때에는 안명수가 먼저 일어나서 나가더니 문을 열어주고 정수를 내보낸다. 그리고 안명수가 나가면서 문을 닫는다.

둘이 나간 문을 향하여 박 PD는 껄껄대고 웃었다. 

한참 후에 박PD는 안명수에게 전화를 했다.

"정수 갔어?"

"아뇨. 지금 막 나가려구요. 학교 수업 끝나자마자 이리로 오는 바람에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엘로우가 좋겠죠?"

"야아아!  안PD!  너 지금 빨리 내 방으로 와. 정수는 거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너 혼자 와."

그는 전화를 끊었다.

안명수는 그가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서 그의 방으로 갔다.

그가 물었다.

"안PD. 너네 부모님께서 정수를 사위로 받아들이신 거니?"

"예?  하하하  정수 나이가 지금 몇인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속일 사람을 속여라. 너 정수 앞에서 쩔쩔매고 벌벌 기는건 뭐야? 평소에 당당하고 앙칼지게 두들기던 안명수의 북소리가 왜 죽었냐고?"

"......"

"내가 너한테 실없는 소리나 허튼소리 하는 것 들어본 적 있어? 내가 너한테 쓸데없는 일을 시킨 적 있냐고?"

"없죠."

"내가 정수보고 안명수한테 프로포즈 해서 붙잠으라고 시킨 것 기억 나?"

"예."

"내가 널더러 한정수랑 결혼하면 네가 원하는 것을 잡은 것이라고 한 말 기억나니?"

"예. .. 그렇지만 그건 그냥 농담 삼아 .."

"너도 신세대라서 결혼이나 프로포즈를 농담이나 장난으로 하니?"

"잘대 그렇게 못합니다." 

"너 오늘 보니까 한정수 마누라네. 아주 착한 마누라야. 너는 현모양처가 될꺼야. 잘해봐."

"참나. 그 말씀은 안들은 걸로 할께요." 

"그럼 오늘 저녁은 너희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내가 사지. 한 시간 후에 옐로우에서 만나자."

안명수는 그의 방을 나섰다.

그런데 억울했다.

그는 앞서가도 한참을 앞서간다.

현모양처라니.

그들은 예로우에서 만나서 룸으로 갔다. 

식탁이 차려지는데 안명수는 맛있어 보이는 모조리 음식은 정수 앞으로 놓아준다. 정수의 숟가락과 젓가락도 안명수가 챙겨준다. 정수에게 물을 따라준다. 천천히 먹으라며 정수의 등을 두들겨주기도 한다.

보다 못한 박PD가 말했다.

"이건 뭐.  남편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아기를 데리고 앉아서 이것 자것을 챙겨주는 것 같네."

"선배님. 정수가 연하남이잖아요."

"연하남 관리하기 어렵지?"

"그걸 어떻게 아시죠? 우리 엄마랑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안PD 너네 엄마 아빠를 정수가 만났을 때 자기 부모님 같다며 좋으신 분들이라고 했지?"

"선배님. 혹시 귀신이세요?"

"뭐? 귀신? 하하하"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알 수가 있어요?"

"그래, 부모님께서는 정수를 탐착하게 생각하셔?"

"탐탁요? 구게 아니라 완전 뻑 가셨는데요."

"그런데 너 왜 아까 내 방에서는 아니라고 우겼어?"

"아닌건 아니죠. 저 나이에 무슨 장가? 여보야, 안그래?"

"이건 뭐. .. 바보도 아니고 .. 참나."

"PD님, 제가 봐도, 누나 오늘 좀 이상한데요."

"정수야."

"예."

"여자가 남자한테 빠지면 바보가 되는 거야."

"맞는 것 같아요. 하하하"

"요게. 쪼끄만게,  오델 까불구 있어."

"여자는 자기가 바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다 바보고 자기는 바보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PD님 사모님께서도 과거에 그러셨나 보죠? 하하하"

"선배님. 언니한테 다 말할꺼예요."

"말해라. 말해.  네가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할꺼다.  천하에 안명수가 한정수 앞에서 완전 팔푼이가 됐다고.  하하하" 

개학이 되어 학교에 다니면서 정수가 세탁소에서 일하는 시간은 오후 6시부터 하는 것으로 늦추어진다. 그런데 교통사고 때문에 정수가 딱 한번 나오지 못했던 날이 있었다. 고객들은 그의 교통사고에 대해서 물었고, 세영과 직원들은 중환자실에 있으므로 면회가 어려워서 가보지 못했다는 답변을 하느라고 진땀을 빼야만 했다. 이 사건은 정수가 그 다음 약속된 날에 출근 하는 바람에 무마가 되었다.

세영은 안명수에게서 정수가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를 면회한 적은 없다. 세영은 병원이라는 곳에는 가고 싶지도 않다. 중환자실이라는 곳은 더더욱 싫다. 마치 자신의 과거가 악몽처럼 되살아나는 듯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수가 입원해있다는 병원을 알면서도 일부러 정수를 찾아가지 않았다. 

게다가 안명수는 중환자실 면회는 제한됨 시간에 제한된 인원에게만 가능하다면서 오지 말 것을 권유했었다. 그런데 정수가 입원해있으면서 세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으므로 세영도 그 사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포항에 내려가있는 경애가 세영에게 전화를 해서 정수의 사고에 대해서 물었다. 세영은 아는 대로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경애에게 말했다.

"안기자가 지금 정수를 확실하게 관리하고 있으니까 믿고 안심해도 되거든요. 너는 지금 외할머니 요양병원 문제나 해결하고, 네 일이나 해." 

안명수는 정수를 3월 두번째 주에 있는 <토요카페>에 세우기로 하고, 정수에게 준비할 것을 말했다.   

정수는 안명수에게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방송 말고 그 다음 방송으로 바꿔달라고 했으나, 안명수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TV 보도가 나가버렸기 때문에, 그는 퇴원했고, 건강하며 또 지금은 전과같이 음악에 빠져있다는 것을 내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정수는 이 방송에 나가기 위해서 부지런히 연습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별로 없어서 일주일에 세 번 있는 기악 수업에는 빠져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담당 교수를 찾아가서 상황설명을 했다. 

"그래서 수업에 올 수 없다고?"

"예. 죄송합니다."

"최근에 교통사고가 있었던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음악 방송에 출연한다는 점으로 나는 출석인정을 해 줄 수 있으니까 문제 없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 대신에 이번 무대가 좋으면, 이번 학기 과제로도 인정해 줄께요. 열심히 준비하세요."

기악 수업의 담당 교수는 정수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그는 많은 시간을 윤희와 함께 윤현도의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데에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윤희가 연습하는 것도 봐줄 수 있었다.

드디어 녹화가 시작되고, 정수가 무대에 섰다. 그날 녹화하는 스튜디오에는 박PD 도 있었고, 윤희도 있었다.

무대에 준비된 피아노에 정수가 앉았다.   처음에는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악단은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그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그가 피아노에서 일어서서 앞으로 나오고, 악단이 반주를 했다 그가 마이크를 손에 들고 노를 부른다. 드디어 마지막 악절이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의 애절해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지금 서로 사랑하잖아. 이것 말고 또 뭐가 필요한 거니.."

그런데 그가 울고 있다. 그의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서 그의 두 뺨으로 흘러내린다. 박PD는 중앙에 있는 카메라 A에게 정수의 얼굴를 클로즈업 할 것을 지시한다. 대형 모니터에는 그가 울고 있는 얼굴이, 그의 표정이, 그의 뺨을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이 가득하다.

한동안 스튜디오에는 침묵이 흐르고 숙연해진다. 일부 방청객들, 특히 나이 어린 여자들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부분에서, 그 순간에 정말로 눈물이 흐를 수가 있을까? 박PD는 MC를 하고 있는 안명수를 쳐다본다. 그녀도 티슈로 눈을 훔치고 있다. 한참을 흐느끼던 방청객들은 정수의 노래가 끝난 것을 알고 박수를 치면서 환호한다.

그날 밤,  안명수가 잠자리에서 정수에게 물었다.

"자기, 그 노래 부르면서 마지막에 왜 울었어?"

"정말로 눈물을 흘리면서 울으니까 안좋았지?"

"안좋긴? 방청객이나 스탭이나 거기서 다들 넘어갔잖아. 몰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나랑 결혼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그 텍스트에 그렇게 깊이 몰입했었던거야?"

"누나, 무슨 소리야?  나는 그 때 머리가 너무 아파서 쪼개지는 것 같아서 참느라고 울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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