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1 80. 하아~. 그렇구나. 정수가 자고 있는 것이 맞구나. 후훗. (81/116)

00081  80. 하아~. 그렇구나. 정수가 자고 있는 것이 맞구나. 후훗.  =========================================================================

안명수는 정수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들어가보지도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눈물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겪은 오늘 하루를 돌이켜보면 <머피의 법칙>이 생각난다.  오늘은 바로 <머피의 법칙> 이 안명수의 주변 곳곳에서 작용하는 날인 것 같다. 도대체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서러웠다. 이런 날에 그는 안명수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혼자 이렇게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어이없는 사실... 생각하면 저절로 두 눈이 젖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마도 엄마는 딸 안명수가 한서방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당장 그렇지는 않았지만 조금 있으면 그럴 지도 모르는데.

커피의 씁쓸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울 때처럼, 지금은 입안이 아니라 기분이 씁쓸하다.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TV를 켰다. 안명수는 채널을 LBS로 그냥 둘까 하다가 이번에는 뉴스채널로 놓았다. 한시간에 한번은 반복하겠지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커피를 한잔씩 들고 소파에 앉았다. 

몇 모금 마셨을까? 정수의 외숙모 이세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정수의 병원을 묻는다. 안명수는 그가 지금 중환자실에 있으며, 아직 일반 병실로 가지 않았으므로, 문병은 갈 수 없다고 말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박PD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그도 정수에 대한 보도가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 그녀는 자기도 내용은 모르고, 중환자실에 있다는 말은 들었으며, 이제 조금 있다가 면회 시간이 되면 병원에 가서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윤희에게서도 전화가 걸려왔다. 안명수는 똑같은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또 짜증이 밀려온다. 이러다가 대한민국 오천만이 다 전화를 걸어올 것 같다. 전화를 하는 것은 좋은데 똑같은 말을 자꾸 되풀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전화는 김경애에게서 왔다. 포항에 있다는 정수가 누나라고 부르는 여자이다. 역시 똑같은 것을 물어서 똑같은 말로 대답했다. 이제는 완전히 외워버렸다. 그런데 김경애는 약간 스타일을 다르게 끝을 맺는다.

"안기자님, 잘 부탁드려요. 저는 지금 외할머님 때문에 가서 뵐 수도 없고 .. 답답하네요."

"왜요? 외할머님께 무슨 일이 있어요?"

"모르세요? 지금 노환에 치매가 겹쳐서요. 당분간은 제가 꼼짝을 못해요."

"아니, 친척도 아니고 이웃인데 왜 경애씨가 병수발을 다해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보내세요."

"친척은 아니지만, 저에게는 친척보다 더 잘해주신 분이거든요."

"경애씨,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닌데, 치매에는 약도 있어야 하고 ..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훨씬 더 잘 돌보니까 얼른 내 말대로 하세요."

지금 정수 외할머니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왜 안명수는 경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뉴스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스스로를 자책하는 말을 쏟아낸다. 

"어이구. 이 나이에 나한테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아이돌 사위를 구경하겠다고 설쳐대는 바람에, 우리 한서방을 병원 중환자실에 눕게 하고 .."

이 말은 안명수더러 들으라는 말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냥 혼자 뱉는 말인지. 어쨌든 안명수는 듣기에 영 짜증스럽다. 그래도 안명수는 그냥 못들은 척하고 넘기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명수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나오지 않자 한마디를 더 얹는다.

"명수 시집이야 20대에 가면 어떻고 40대에 가면 어때? 우리 한서방이 이렇게 인물 훤하지, 잘생겼지, 노래 잘하고 똑똑하지, 장모 보러 온다고 목숨 걸고 밟아대지 .. 이런 남자 있으면 됐지. 내가 뭐 한다고 명수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다가 우리 한서방을 병원 중환자실에 눕게 하고 .."

안명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가 왈칵 치솟는다. 이것은 거의 넋두리 수준이다. 한마디 하자니 엄마가 상처받을 것 같고, 그냥 두자니 더 심한 걸로 또 다시 할 것 같다. 엄마의 시리즈는 한번 시작했다 하면 저기서 끝날 것 같자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안명수는 고민한다. 정수가 사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일일사위> 였다는 것을 밝혀야 하나? 아니면 엄마를 그냥 조용히 서울 집으로 돌아가게 해야 하나? 이미 밖은 어둡다. 일단 병원부터 가야 한다.

안명수는 낮에 했던 실수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가방, 지갑, 현금, 카드 그리고 보조키까지 전부 다 꼼꼼하게 챙겼다. 엄마가 세번째 넋두리를 시작하려는 순간 안명수는 엄마를 불러서 일으켜 세웠다.

"엄마, 나가요. 시간 됐어."

엄마는 그 다음 편을 준비한 모양이지만 시간이 됐다는 말에 벌떡 일어섰다. 안명수는 엄마에게서 차의 키를 받고 운전대를 잡았다. 엄마의 하얀 그랜져가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나왔다. 아까 택시 기사가 가던 기억을 되살려서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다.  인명수는 우선 안내데스크로 가서 정수가 아직도 중환자실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3동 202호로 갔다. 그곳이 정형외과 중환자실이란다. 엘리베이터는 만원이고, 한 층 위이므로 차라리 계단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안명수는 엄마의 팔을 잡고 계단을 오른다. 중환자실 앞에 있는 넓은 공간에는 20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그녀는 입구에 붙어있는 환자 목록을 읽는다. 30명의 환자 중에서 환자번호 30 이다. 오늘의 마지막 환자라는 뜻인가?

시간이 되자 병실의 자동문이 열리고,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환자 이름을 한 명씩 부른다. 그러면 보호자 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걸이 두 개씩만 준다. 안명수도 엄마와 함께 그 보호자 신분증을 받아 들고 30번 침대를 찾아갔다. 들어오는데 다른 간호사가 주의 사항을 소근거린다. 이곳  중환자실에서는 환자, 의료진 말고는 다른 사람들 모두는 소근거려야 한다고 한다.

“위독한 다른 환자들을 배려하셔서 절대로 조용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퇴실입니다.”

맨 끝의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 있는 곳에 30번 침대가 있다. 안명수의 눈에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가 보인다. 저 남자가 바로 한정수이다. 

일일 장모도 장모니까, 장모를 만나러 다섯시간쯤 전에 안명수가 하는 전화를 저 남자는 받았어야 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고, 외식하러 나가자고 엄마와 자기를 차에 태우고 나갔어야 했다.  소든, 돼지든, 오리든, 닭이든 뭔가를 먹으러 나갔어야 했다. 엄마는 뭐든지 고기라면 다 잘 먹는 편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여기에 누워있다. 그는, 천하 태평으로 잠을 자는 것인지, 두 눈을 꼬옥 감고 있다. 아마 점심도 먹지 못 했을 것 같다. 링거로 영양분이야 공급이 되고 있겠지만, 배가 고플텐데.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일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데.

원래 창백한 것 같은 얼굴은 멀쩡한 것 같고, 머리에도 겉으로는 아무 상처가 없어 보인다. 그는 이불을 꼬옥 덮고 있다. 손 하나만 이불 밖으로 나와있고 링거 바늘이 꽂혀있다. 그의 침대의 뒤쪽으로 대여섯개의 모니터가 쉬지 않고 계속 뭔가를 비쳐준다. 아마도 심장, 맥박, 혈압, 호흡, 뭐 이런 것들이겠지. 그렇다면 의식이 깨어있다는 것인가?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오물오물한다. 안명수는 조용히 하라고 눈짓을 했다.

안명수는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찾았다.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들밖에 안 보인다. 다들 저녁 먹고 나서 휴게실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노닥거리는 중인가? 할 수 없이 그녀는 지나가는 분홍색 옷일 입은 간호사 한 명을 불렀다.

"저기요."

"예?"

"이 환자 담당 의사 선생님 지금 뵐 수 있을까요?"

"환자분 보호자 되세요?"

그녀는 챠트를 뒤적거리더니 안명수를 향하여 웃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제가 지금 전화로 연락할께요. 잠시만요."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서 통화를 하더니 다시 안명수에게로 왔다.

"지금 보고 있는 환자 끝나면 바로 오신다고, 기다리시라는데요."

그녀는 다시 한번 웃는 얼굴을 보이고 가버린다. 그녀가 웃지 않을 때에는 별로인 것 같았는데 웃는 얼굴은 참 예쁜 것 같다. 역시 사람은 웃어야 한다. 특히 못생긴 여자는 더 자주, 많이 웃어야 한다.

안명수는 의자 두 개를 당겨다가 엄마와 나란히 앉는다. 안명수와 엄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얼굴 말고는 딱히 볼 만한 곳이 없다. 그의 몸이 이불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얼굴이 아무리 잘생겼어도, 이렇게 얼굴만 쳐다보고 앉아있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역시 남자란 얼굴만 뜯어먹고 살수 있는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정수는 안명수에게 그랬다. 아무리 바라보고 있어도 더 보고 싶은 얼굴이라고. 지금 이 말의 진실성이 의심된다.

드디어 의사라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도 역시 안명수를 보고 웃는다.

"교통사고이고요. 현재 경찰이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외상은 없습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진통제와 안정제가 들어가고 있습니다. 지름 뇌파검사, CT, 그리고 MRI 까지 검사할 계획입니다."

"내과에서는 뭐라고 안 합니까?"

"이 환자는 대소변, 혈압, 호흡, 폐활량 모두 이상이 없습니다. 내과는 전혀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 지금 이 환자는 안정제 때문에 자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 것 같은데요."

"그럼 왜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죠?"

"우리는 아직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응급실에서 이리로 보냈거든요. 여기서 24시간 정도 관찰 한 후에 이상 없으면 일반 병실로 옮깁니다."

"그럼 지금 퇴원하겠다고 하면요?"

"환자가 퇴원하겠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지요. 다만 머리 부분은 이런 사고가 잇을 때에 조사를 잘 해두셔야 합니다. 외상이 없다고 안심하면 큰일 납니다. 사고의 후유증은 3개월후, 3년 후에도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요."

"그럼 일반 병실로 옮기든가요. 면회도 간병도 마음대로 못하잖아요. 이 구석에 처박아 둔다고 달라질 것이 있나요?"

"오늘은 일요일에 들어온 환자입니다. 각 검사실마다 시간이 되는 대로 기본 검사만 끝나고, 별다른 이상이 없으면, 퇴원이 가능합니다. 그 동안 여기에 두고 저희가 관찰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리합니다."

안명수는 약이 오른다. 화도 났다. 의식을 잃은 줄 알았는데 자고 있다니. 너무 괘씸한 연하남이다. 그녀는 이불의 한쪽을 들추었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손을넣고 간지럽게 했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어 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느끼는 간지러움이다. 그런데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안면 근육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은 그가 자는 것이 아닌데?

"지금 자는 것 같지 않은데요?"

"아닙니다. 자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한 시간 전에는 저랑 농담도 주고받았습니다. 지금 안정제 때문에 옷을 통해서 오는 약한 간지럼 자극을 느끼지 못하여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 뿐입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확인해주시겠어요?"

"보호자님께서 직접 손을 환자의 코 앞에 대보십시오. 숨쉬는 것을 느끼실 수 있지요?"

안명수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는 분명 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그가 겨드랑이에서 간지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안명수는 왠지 모르게 그가 수면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다.

"숨을 쉬고 있는 것은 맞는데요, 저는 지금 환자가 수면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합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확인해주십시오."

"보호자님. 호흡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자는 살아있습니다. 무엇을 염려하십니까?"

"혹시 지금 혼수상태나 식물인간 상태가 아닐까요?"

"보호자님,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면 안됩니다. 지금 혈압이나 호흡은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환자 스스로 하고 있거든요. 팔다리나 장기들이 모두 스스로 작용하고 있어요."

"그럼 딱 한번만 깨워주실 수 있으세요? 살아있는 것을 보고 싶은데요."

"자고 있는 사람을 왜 깨웁니까? 답답하네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걱정하십니까? 제가 의사로서 보호자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저는 우선 환자의 편에 서있는 의사입니다. 환자가 지금 자고 있다는 것은 그의 몸 안에서 치유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왜 우리가 무슨 권리로 방해합니까? 자꾸 그러시면 제가 지금 보호자님께는 당장 퇴실조치를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아아.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의사는 갔다. 그런데 그 때 정수가 몸을 안명수 쪽으로 굴려서 옆으로 세웠다.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안명수는 얼른 일어서서 그에게 다시 이불을 덮어준다. 그러면서 안명수는 잠시 보았다. 그의 남성은 발기하여 환자복 위로 불룩하게 텐트를 치고 있다. 그런데 엄마는 그의 얼굴을 보느라고 이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하아~. 그렇구나. 정수가 자고 있는 것이 맞구나. 후훗."

안명수는 그제서야 그가 자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머피의 법칙과 상관 없는 사건도 있기는 있네. 이런 것을 두고 불행중 다행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 때 뒤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례합니다. 한정수씨의 보호자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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