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80 79. 그건 죄가 아니야. 그 딸이 너라는 것이 문제지. (80/116)

00080  79. 그건 죄가 아니야. 그 딸이 너라는 것이 문제지.  =========================================================================

안명수는 전화를 끊었다. 엄마가 이미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큼지막한 보따리 두 개를 들고 들어온다. 안명수가 한 개를 받아 드는데 제법 무겁다. 그녀들은 보따리를 주방의 식탁에 얹어놓는다.

"내다보지도 않아?"

"전화가 안돼서 ..."

"한서방은?"

"글쎄 전화가 안된다니까."

"내가 오늘 한서방 보러 온다는 말 안했니?"

"내가 오늘 우리 엄청 바쁜 날이라고 말 안했어요?"

"그럼 어쩌지? 너도 나가봐야 해? 나 그냥 가?"

"기껏 왔는데, 가긴 뭘 가요? .. 한서방은 자기 일 끝나면 연락 하겠지. 우리끼리 나가서 점심이나 해결해요."

"나가긴 뭘 나가? 내가 도시락 싸왔다."

"엄마. .."

"엄청 바쁘다며? 이 나이에 젊은 애들한테 눈치밥 얻어먹을 필요 없거든."

엄마는 들고 온 도시락을 열었다.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는 엄마의 음식에 명수의 좁은 식탁이 좁을 정도이다. 엄마가 해준 음식을 얼마 만에 먹는 것인가? 엄마 얼굴에 생기는 주름의 숫자만큼이나 엄마가 가져온 음식이 많다. 명수는 엄마의 얼굴과 식탁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안명수의 가슴이 울컥해온다. 

"이것 저것 참 많이도 쌌다. 이 정도 하려면 도대체 새벽 몇 시부터 일어나서 설쳤을까?"

"하루에 다 못해.  2박3일은 해야지. 하하하"

"이걸 다 나 먹으라고 해온거야?"

"설마. 네가 이것을 다 먹으려면 일주일은 걸릴껄? 먹고 나서 빼는데 석달 정도는 살과의 전쟁을  해야 할꺼고."

"그럼 한서방 때문에 한 거야?"

"그렇지. 내가 잘 보여야 하잖아."

"왜 엄마가 한서방한테 잘 보여? 한서방이 엄마한테 잘 보여야지."

"내가 명수 네 엄마니까. 내가 지은 죄가 크잖니?"

"딸 가진 것이 무슨 죄라고.  딸 키워서 시집 보내는 것이 무슨 죄라는 거야?"

"그건 죄가 아니야. 그 딸이 너라는 것이 문제지.  하하하"

"엄마!"

"화통을 삶아 드셨나? .. 나 아직 귀 안먹었거든. 내가 이렇게 해야 명수 네가 신랑한테 조금이라도 사랑을 더 받을 것이 아니겠니? 더구나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난다면서.  너 연하남 관리하기가 얼마나 힘드는 줄 알기나 해?"

"연하남 관리? 엄마도 그런 것 해봤수? 아빠랑은 아닌데?"

"우리는 궁합도 볼 필요가 없다는 4년 차이야. 내가 오빠라고 부르다가 콱 해버렸지. 하하"

엄마랑 얘기를 하면서 조금씩 먹은 것이 벌써 배가 부르다. 그런데 이 연하남은 도대체 무슨 사고를 낸거지? 도대체가 잠시만이라도 틈만 주면 이 모양에 이 지경 이라니 ..

"엄마도 같이 먹자."

"지금이 몇 시인데, 이 시간까지 내가 배곯고 다닐 것 같아?"

"그럼 의리 없이 혼자만 먹었수?"

"오다가 하도 배가 고파서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왔다." 

"짜장면? 엄마가?"

"오래 만에 먹으니까 꿀맛이더라."

"참, 별일이야."

그녀들은 음식 뒷정리를 했다. 명수는 커피를 다시 내려서 엄마와 같이 마신다. 

"이게 내 생애 첫 내 집 이거든.  집 구경 안 해?"

"나는 명수 너만 보면 돼. 한서방도 보고 싶기는 한데 없으니까 어쩔 수 없고 ..."

"엄마, 한서방 보고 싶어?"

"보는 거야 TV에서 몇 번 봤는데 뭘 보고 싶겠어? 만나서 얘기나 해보고, 우리 명수를 얼마나 사랑할 남자인지 한번 보는 거지."

"에이. 한정수 보고 싶어하는 여자들 엄청 많거든요.   하하하"

"저게. 못하는 말이 없네."

"엄마한테 못할 말 있으면 내가 엄마 딸이 아니지."

"맞아. 사실 아이돌 이라니까 한번 가까이에서 보고, 얘기도 하고 싶고 .. 그건 그래. 하하하"

"이리 와. 집구경이나 해요."

그래도 안명수는 엄마에게 구석구석을 모두 구경시킨다. 엄마는 호기심에 찬 눈으로 구경을 한다.

"한서방도 근처에서 산다며?"

"응? 바로 요기 앞집.  가서 구경할까?"

"땡기기는 하는데. .. 주인도 없는데?"

"에이. 주인은 무슨? 엄마, 따라와요."

안명수는 정수의 도어락을 열고 엄마와 같이 들어갔다. 명수의 집에는 없는 악기들도 있다. 음향기기도 있다. 기타, 전자오르간 등등. 

"와아아.  아이돌이라서 그러나? 볼만한 게 많네."

엄마는 신기해하면서 이 방 저 방을 열고 집 구경을 했다.  두 사람은 다시 명수의 텔로 건너왔다.

"우리가 가서 구경했던 표시가 나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괜찮다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한서방 집 어때?"

"집이야 다 똑같지. 해놓고 사는 것을 보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도 있잖아."

"그래? 그럼 어떤 성격 같아?"

"꼼꼼?"

"그럼 나는?"

"너는 여기저기 숨겨놓은 것들이 제법 되네? 덜렁거리는 것은 여전하고.."

"내 바탕이 그건데 어딜 가겠수?"

"그러니까 내가 지은 죄가 많다는 거지."

"엄마아!"

"소리 좀 지르지 말라니까 또 !"

엄마와 딸은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았다. 안명수는 습관처럼 TV를 켠다. 엄마는 등을 기대고 편안하게 앉아서 TV를 본다. 안명수는 채널을 LBS로 돌렸다. 

"재미 하나도 없는 것인데? 내 취향도 아니고 .."

"혹시 재방송으로라도 내가 제작한 프로그램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래야 엄마한테 그 동안 왜 선보러 나가지 않았는가를 말해줄 수고 있잖아요."

"안보고, 네가 말 안 해줘도 다 알아요. 내가 바보 아니거든. 저런 연하남이 있는데 무슨 선을 봐? 아무 것도 모르고 설친 내가 바보였지."

그런데 안명수는 엄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를 못한다. 

엄마의 40대의 얼굴과 50대의 얼굴은 달라도 너무 달랐었다. 그런데 50대 후반을 달려가는 지금은 엄마도 <늙었다> 라는 말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게 변해있다. 세월 앞에 장사는 있어도, 엄마는 세월을 어떻게 해볼 수는 없다는 말일까?

엄마의 주름 하나하나마다 나에 대한 걱정이 가득 담겨있겠지? 저 수많은 주름은 전부 나 때문에 생긴 거지? 주름을 지우는 지우개는 없을까? 내가 정수한테 시집가서 행복하게 잘 살아도 저 주름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겠지?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 내 모습은 어떨까?

나이차이라고 해야 기껏 8살인데. 내가 정수랑 결혼한다는 것이 사기극인줄도 모르고.

엄마는 무엇이 그렇게도 마음에 걸리는지, 정수한테 잘 보여야 한다면서, 몇날 며칠 동안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바리바리 싸들고 온대? 

내가 딸이고 또 정수한테 시집간다는 것이 정수한테 그렇게도 큰 죄를 짓는 거야?

배고프면 도시락을 열고 몇 개 꺼내서 먹으면 되지. 하필이면 몇 년에 한번 먹을까 말까한 짜장면을 왜 먹는데?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자주 체한다면서.

엄마의 얼굴을 보는 안명수의 마음은 심하게 울렁거리면서 안명수의 두 눈이 젖는다. 그런데 어느새 엄마의 두 눈은 사르르 감긴다.  엄마가 무척 피곤한가 보다.

명수의 커피잔이 비어있다. 명수는 커피를 가지러 간다고 주방에 있는 커피메이커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비명을 지른다.

"아앗!"

"뭐야아. 놀랬잖아요."

"명수야! 저기! 저거! 빨리!" 

"숨 안넘어가!"

명수는 커피를 그냥 두고 엄마에게로 갔다. 엄마가 가리키는 TV 화면에 한정수가 나온다. 그가 병원에 있다고 한다. 그 병원은 이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이다.

설마. 잘못 본 것이겠지. 

아니면 동명이인이거나.

멀쩡하게 옷갈아 입으러 나간 사람이 왜 병원에 있대?

그런데 이 연하남은 왜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지?

그럼 혹시?

안명수는 LBS 보도국으로 잔화를 했다.

"예능국 안PD 입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한정수가 어떻게 됐다고 보도에 나온 것이 사실인가요?"

"예.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왜 병원에 있죠?"

"글쎄요. 교통사고라고 밖에 모르겠는데요. 자세하게는 그쪽 경찰로.."

"예? 교통사고요?"

안명수는 가슴을 쓸면서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아직은 모른다. TV 가 항상 바른 것만을 보도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다 실수할 수 있다. 끝까지 안했다고 오리발 닭발을 내미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정 안되면 주어가 없다고도 한다. 우리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주어가 없어도 다 안다.

일단은 가보자.

맞나 틀리나는 가서 얼굴을 보면 되지.

정수도 꽤 잘생겼거든.

안명수는 고개를 돌려서 엄마를 쳐다본다.

엄마는 겁을 잔뜩 먹고 있다.

"이를 어째? 너희 둘 다 엄청 바쁘다는데, 내가 고집을 부려서 왔더니. ... 내가 왔다고, 나 보러 온다고 서두르다가 큰 일을 당한 거지? 어이구우. 한서방. 내가 참 .."

엄마는 그냥 두면 대성통곡이라도 할 기세다.

"엄마!"

"미안해. 내가 괜히 아이돌 사위 본다고 .."

"시끄럽다니까."

"나 여기 다시는 안올께.."

"참나."

안명수는 엄마를 데리고 나가려고 차의 열쇠를 찾았다. 옷과 가방을 모두 찾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보조키 하나만을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뭔가 엄청 허전한 기분이다.

그런데 주차장에 세워 둔 차가 없다. 분명히 아까 정수랑 같이 장보고 와서 여기 세워뒀는데, 그 자리에는 싸가지 없어보이는 독일차 한대가 서있다.

생각을 더듬어본다.

맞다.

아까 정수에게 차와 키를 같이 주었다.

그럼 이 연하남이 내 차를 끌고 나가서 사고를 낸 거지?

"차 없니?"

"깜빡 했어요. 다른 곳에 있어요."

"그럼 내 차로 가자."

"키 주세요. 내가 운전.."

"시끄러워. 너 지금 엄청 흥분해있거든. 너야말로 시한폭탄이야. 병원에 한서방 혼자 두기 싫어서 나란히 같이 누워있을래?"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안명수는 그 대학병원이 이 근처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가본 적이 없다. 처음 가는 길을 엄마에게 맡기는 것도 그렇거든.

안명수는 다시 엄마와 같이 차에서 내려서 택시를 탔다. 안명수는 기사 옆자리에 앉아서 기사에게 말했다. 엄마는 뒷자리에 앉아있다.

"성가대학병원 부탁합니다."

"성가대학 병원은 없습니다. 혹시 가성대학병원 아닙니까?"

"예. 죄송합니다.  가성대학병원. 급한데요." 

 엄마가 뒤에서 소리를 빽 지른다.

"또 저런다. 기사님. 우리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가주세요."

"그 대학병원은 엎드리면 코닿는 가까운 곳이라서, 빨리 안가도 금방 도착합니다."

안명수는 택시 안에서 그의 전화기에 전화를 걸었다.  역시 전화기는 꺼져있다. 소리샘으로 연결이  어쩌고 하는데 안명수는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는 외숙모 이세영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놀란다.

"예? 교통사고라뇨?"

"전혀 모르세요?"

"아까 혁대를 깜빡 했다고 백화점에 와서, 나랑 같이 통가죽 혁대 하나 사들고 갔는데요."

"혹시 TV 안보셨어요?"

"지금 계속 배달 중이라서요."

"제가 지금 가는 중이니까, 나중에 연락 드릴께요."

"여보세요? 어느 병원인지나.."

안명수는 전화를 끊었다. 택시가 이미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난리다. 택시요금을 내야 하는데 안명수의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녀는 핸드백도 안들고 나왔다. 뒤에 앉은 엄마가 택시비를 냈다.

그녀들은 안내데스크로 갔다.

"나이 21살인 한정수가 여기 입원해있죠?"

"예. 보호자 되십니까?"

"예."

"지금은  정형외과 중환자실에 있습니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에 두번입니다. 오전 11시 그리고 저녁 7시 입니다. 각각 한시간씩이고 한번에 두명까지만 면회가 가능합니다."

"예?.. 아, 예."

안명수는 방금 또 실수할 뻔 했다. 그녀에게는 아직 LBS 기자증이 있다. 그걸 들이 밀고라도 중환자실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핸드백이 지금 여기에 없다는 사실.

안명수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너, 울지 마. 집에 갔다가 나중에 시간 맞춰서 다시 오면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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