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075 74. 지금은 다들 벗고, 내놓고, 흔들고 그러면서도 색기를 콸콸 뿜어내는 시대야. (75/116)

00075  74. 지금은 다들 벗고, 내놓고, 흔들고 그러면서도 색기를 콸콸 뿜어내는 시대야.  =========================================================================

정수가 외숙모라고 부르는 이세영. 그녀는 바로 <아이돌 세탁소>의 주인이다. 

세영은 요즈음 불안하고 초조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수가 뮤지컬 공연을 하게 되면서 툭하면 세탁소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가 나와있어야 할 시간에 맞추어 세탁소를 찾는 고객들은 그가 없다는 이유로 화를 잔뜩 내고 가는 것이다.

자기의 일정 때문에 정수는 세탁소에 나오는 날을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이고, 또 시간도 점심시간 이후에 두 시간으로 못을 박았다. 세영은 세탁소 입구에 스탠드를 세우고, 정수가 나오는 날과 나오지 않는 날을 안내를 한다. 

그의 일정에는 뮤직쇼나 뮤지컬 그리고 윤현도와의 연습일정 등등이 얽혀있어서 그가 나오지 않는 다는 것을 세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세탁소를 찾는 고객들이다. 그들은 정수의 일정에는 관심이 없고, 정수가 세탁소에 나오기로 한 그 시간에 과연 그가 나왔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오지 않았느냐가 관심사이다. 나와야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오지 못하는 날에는 고객들이 그를 보기 위해 하던 일도 접어두고 왔다면서 화를 낸다. 고객들은 사기라는 둥, 자기들을 무시한다는 둥, 무슨 장사를 이따위로 하느냐면서 세영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이다.

정수가 안명수와 같이 왔을 때 세영은 이 이야기를 꺼냈다.

"세탁소를 찾는 고객들이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것 같은데. .. 이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글쎄요. .."

"이제 세탁소에 나오는 것을 차라리 아예 그만 두는 것이 어떻겠어?"

이때 안명수가 나섰다.

"사장님, 지금 정수가 불협화음을 내는 바람에 세탁소의 매출은 감소합니까?"

"글쎄. ..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요새 부쩍 늘고 있거든요. 아무리 화를 내더라도 들고 온 세탁물은 맡기고 가니까요."

"바로 그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노이지마케팅> 이라고 합니다.  조용한 것 보다는 시끄러운 것이 오히려 매출액을 올려줍니다. 그러면서 정수도 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됩니다."

"그런다고 저 사람들을 저렇게 화나게 하면 ..."

"사람들은 궁금해하지 않으면 조용하거든요.  그럼 무관심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궁금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성격에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 번 더 들러본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저 사람들을 궁금하게 해서 관심을 끌겠다?"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네요. 나중에 언제 날을 잡아서 정수가 팬들의 은혜에 감사해 한다면서 사인회를 열고 앨범을 무료로 증정하든가 뭐 이런 행사를 한 번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대로 그냥 계속 주욱 가요?"

"당분간은 이대로 계속 가는 것으로 하시지요? 아직 뭐라고 속단할 수는 없습니다. 내년 봄이나 돼야 뭐라고 말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아무래도 그때 가서는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 * * * * * * * * *

증권가의 찌라시.

이것의 파워는 엄청나다. 다 된 밥에 재도 뿌리고, 공든 탑도 쉽게 금방 무너뜨린다. 이 나라에서 누군가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가면서 뭔가를 하려면 꼭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증권가의 찌라시이다. 

정수도 이 증권가의 찌라시에 스캔들에 몇번 올랐던 적이 있다. 그런데 금방 사그러들어서 별로 신경쓸 일은 아니었다. 이것은 그가 연예계에 아직 두곽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박하나는 항상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가, 이런 얘기가 나오면 바로 연락을 해준다. 

그런데 이런 증권가 찌라시의 뒷다마에는 근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런 말이 떠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이다. 그것이 사실인지를 밝히는 것은 기자들의 몫이다. 그런데 또 이런 시시콜콜한 얘기들은 새로운 사건이 떠오르면 금방 묻혀버린다. 

경찰에서도 반짝 하는 얘기에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일이 한두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골로 만일 범죄형의 스캔들이 계속 올라오면 체면상 뭔가를 한다.

그런데 윤희가 12월 초에 뮤직쇼의 첫번째 무대에 서고 난 후였다. 찌라시에는 윤희가 등장한다.  윤희의 얘기는 이미 흙탕물로 만신창이가 되다시피 해있다. 이런 얘기들은 윤희의 과거와 전혀 무관한 얘기들은 아니다.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만 없을 뿐 윤희의 사생활은 이미 다 폭로된 상태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성상납에 대한 얘기는 구체적이지도 않았고 또 그렇게 과열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심상치 않은 것은 사실이고, 앞으로 얼마든지 커질 수 있어 보인다. 잘나가는 여자 연예인으로서 겪는 정도의 스캔들 정도로 보기에는 위험수위가 높았다. 그로 인한 정윤희의 상심과 절망은 너무도 컸다. 이 때 또 안명수가 나섰다.

"냅둬봐. 저런 얘기들은 금방 사그러들어. 만일 그렇지 않고 계속해서 점점 커지면, 문제가 돼요. 그럼 경찰이 칼을 뽑거든요. 그 때 정 안되겠으면, 기회를 봐서 윤희 너도 네 일기장을 공개해버려. 이것도 하나의 방법이야."

"언니, 그럼 저는 뭐가 되라구요?"

"내가 말한 노이지 마케팅. 우리가 지금은 이것을 너를 위해서 역으로 이용할 수도 있어. 문제는 윤희 네가 조금도 기죽지 말고 오히려 당당해야 해요. 이런 스캔들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몸조심, 말조심, 남자조심하고." 

"지금 이런 얘기들은 노이지 정도가 아닌데 .."

"아침에 뜨는 해가 구름이 낄까봐 두렵다면서 다시 지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아무리 해가 구름에 가려져있다고 해도 낮이 밤이 될 수는 없는 법이야. 정윤희. 이를 악물고 버텨. 그래서 끝끝내 살아남아. 이것이 네가 할 일이야."

"언니, 과연 제가 해 낼 수 있을까요?"

"없어도 해야죠. 지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잖아요? 이번 뮤직쇼에서 실력으로 붙는 거야."

안명수의 말에는 틀림이 하나도 없어보인다. 윤희는 이런 것도 겪어야 할 시련이려니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윤희가 버텨내는 것 그리고 윤희가 실력으로 누르는 것 이 두가지이다. 버티는 것이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력은? 아무리 윤희에게 실력이 있다고 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면 소용없는 일이다. 실력이 있다는 것과 또 그 실력을 인정받는 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겉에서 보는 것과 뚜껑을 열고 보는 것이 달라도 너무 다른 이 세상에서 윤희는 이것을 해내야 한다.

* * * * * * * * * *

그런데 문제는 윤희의 장구였다. 윤희에게는 장구가 하나 있다. 이 장구는, 채로 치는 부분은 조그만 크기이지만, 전체적인 길이는 다른 장구들보다는 약간 길쭉하다. 흔히 볼 수 있는 장구와는 모양이 다르다.  윤희는 그 장구를 무대에 솔로로 설 때 마다 메고 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 정수가 그 장구에 대해서 태클을 걸어오는 것이다. 정수가 장구에 대해서 불만스러워하는 것을 윤희는 처음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장구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정수 : "장구가 너무 장구 같은 장구야."

윤희 : "언니, 정수 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래요?"

안명수 : "글쎄. 그건 정수한테 물어봐야지 왜 나한테 물어?"

정수 : "나도 아직 구체적인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데. ..  윤희가 메고 나간 것을 딱 보면 <아하, 저것은 장구이다.> 하고 알아차렸거든. 그럼 거기서 끝이 아닐까? 뭐. 소리가 나는 정도는 별로 중요한 역할이 아닐 것 같아."

안명수 : "장구가 장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장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정수 : "그렇죠. 그런데. .. 만일 장구가 아닌데도 장구역할을 한다면 어떨까요? 또 장구가 장구가 하는 역할 말고 다른 일을 해낸다면요?"

윤희 : "으음. ..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한번 더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 같은데?"

안명수 : "장구가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한다는 말이니?"

정수 : "바로 그거죠. .. 모양도 아주 특별하게 생기고, 또 특별한 일을 해내는 장구. 그래서 세상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장구. 이런 장구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자고."

윤희 : "장구가 장구지 뭐 별거 있어?"

정수 : "윤희야. 그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 음. .. 그러니까. .. 만일 장구를  섹시컨셉에 맞출수 있다면?"

윤희 : "뭐라고? 그럼 섹시한 장구?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하하하"

안명수 : "그러니까 정수 생각은 ... 윤희 너는 지금 다른 걸그룹 여자애들이랑은 다르게 갈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거야. 비슷한 여자애들이 엄청 많으면,  그들 중에서 그 중에 하나로 눈에 띈다는 것이 쉽지 않거든. 예를 들면 다른 애들이 벗고 흔들 때 너는 벗지 않고, 흔들지 않고 장구를 들고 나간다 이거야."

윤희 : "그래서요?"

정수 : "그러면 너한테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섹스어필 아닌가?"

윤희 : "그럼 그것을 장구가 해결한다고?"

한정수 : "아무도 벗지 않고, 모두 꽁꽁 싸매던 시절에 누구 하나가 노출만 약간 해도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어. 그러면 다들 따라서 누구나 다 노출을 하게 돼. 누구나 다 노출할 때 어떤 여자는 과감하게 벗었다. 그럼 다들 벗는 거야. 만일 누구나 다 다들 벗을 때에는 벗는 것 하나만으로는 만으로 부족해. 그럼 벗고 쩍벌하고 흔들어. 이제는 그것도 부족해. 얼굴 표정이나 몸짓에서 완전 색기가 퍽퍽 나야해. 그래서 지금은 다들 벗고, 내놓고, 흔들고 그러면서도 색기를 콸콸 뿜어내는 시대야. 이때 벗지도 않고 색기도 뿜어내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관심을 끌기에는 빈약하고, 너도 뭔가를 내뿜어야 한단 말이야. 그것이 색기가 됐든 뭐가 됐든."

안명수 : "그렇지 일단 생각을 그쪽으로 해보자고.  무엇이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그런데 그 때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아트스쿨에서 미술전시회가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

(1) 관람객은 한 명씩 또는 한 그룹씩만 입장한다.

(2) 이 관람객은 옷을 다 벗고 나체로 잘 반죽된 진흙판에 들어가야 한다. 

(3) 관람객은 진흙판에서 엎드리거나 눕거나 아니면 몸을 옆으로 세우거나 등등.  이렇게 해서 그 관람객은 진흙판에 자기 몸의 흔적을 음각으로 남긴다.

(4) 이 음각 진흙판이 말라서 굳는다. 

(5) 그러면 미술가는 마지막으로 이 음각에 석고를 부어서 굳게 한다. 

(6) 마지막으로 진흙음각을 깨버린다. 

(7) 그러면 석고작품이 만들어진다. 

(8) 관람객은 이 석고작품을 자기가 집으로 가져가든지, 기증하든지 한다. 

이것은 일종의 행위예술로서 미술 작품이라는 것을 미술가 혼자서 제작하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달리 관람객과 같이 만든다는 것 그리고 쭉빵걸이건, 장애인이건, 노인 어르신이건 누구나 다 참여할 수 있다는 것으로 관심을 끌었다. 

뉴욕타임스지는 이 미술전시회를 자세히 소개하고, 참여했던 관람객들의 후기도 곁들였다. 이 기사가 정수의 뇌리에는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남아있다. 그는 대중음악도 공연예술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형태를 찾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 당장 무엇이 될 수는 없어도, 앞으로 언젠가는 기대해볼 만한 일이다. 

정수는 자기 학교 국악과 교수들에게서 장구를 직접 제작하는 장인에 대해서 알아왔다. 그는 윤희와 함께 서울 외곽에 있는 노인 한 명을 찾아가기로 했다. 상대가 노인인 만큼 이들은 안명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명수는 기꺼이 따라 나섰다. 

안명수는 이들을 데리고 마트에 갔다. 그녀는 과일과 음료수 그리고 막걸리와 종이컵을 사서 차에 실었다.  윤희는 벌써 군침을 삼킨다. 정수는 코카콜라 두 병을 따로 샀다. 안명수의 호기심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어르신을 방문할 때에는 이런 것들을 준비해서 들고 가면 얘기하기가 훨씬 쉬워져."

"누나 같은 미녀랑 대화를 쉽게 한다고 굳이 막걸리가 필요할까요? 하하"

"지금 그 말이 진짜인 것은 맞는데. .. 하하."

"얘는 언니 앞에서 왜 또 나를 기죽여?"

"야아아. 정수야!. .. 예는 또 왜이래?"

"언니, 왜요?  걔가 이상한 짓을 했나?"

"막걸리가 있잖아! .. 코카콜라를 노인께 드린다고?"

"드시면 드려야죠. 하하하"

이들이 노인의 공방에 도착했을 때, 노인은 안채에 있는 온돌방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노인은 밖으로 나와서 갑자기 들이닥친 젊은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들은 노인이 자던 뜨뜻한 온돌방으로 들어갔다. 안명수는 들고 간 것들로 방바닥에 술상을 차린다. 안명수가 말한 대로 노인과의 대화는 처음에는 어렵지 않았다. 

"요새는 장구를 만들어 달라는 사람이 없다네. 허허허"

"어르신께서 쉬고 계신데 저희가 무례하게 방해를 해서 죄송합니다.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사람. 그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찾아주면 나야 고맙지."

안명수가 막걸리를 따른다. 노인은 잔을 비우고 나서,  윤희와 정수에게 막걸리를 따라주고 마시라고 권했다. 안명수는 운전 때문이라며 사양한다. 

안명수가 얘기를 꺼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매우 난감해한다. <섹시한 장구를 만들어주십시오>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어떻게든 시작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녀가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고민만 할 뿐이다.

노인은 안명수의 이런 마음을 헤아렸는지 먼저 한마디 한다.

"그래. 자네들이 나한테 온 것은 장구 때문이겠지?"

"예. 그렇습니다, 어르신."

"내가 만들어놓은 것이 있으니까 급하면 그걸 갖다 써도 좋을 텐데.."

"그 장구들은 매우 특별한 장구겠네요?"

"장구면 장구지 특별한 장구가 있는가?"

"어르신께서 만드시면 특별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그런가? 하하하"

이들 두 사람의 대화에는 도무지 진전이 생기지 않는다. 이러다가는 날밤을 새워도 안될 것 같다. 이 때, 정수가 껴든다.

"혹시 장구의 모양을 여자의 몸과 비슷하게 만들 수는 없겠습니까?"

노인은 정수가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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